나는 고등학교 선생이다. 아이들은 나를 ‘천사’라 부른다. 아이들이 나를 무척 좋아해서다. 가끔 내 선한 성격을 이용하기도 하지만, 아이들로 인해 스트레스를 받을지언정 아이들을 원망한 적은 한 번도 없다. 화를 못 내서 천사고, 싫은 소리를 못 해서 천사다. 착하고 마음이 약해서 천사다.
시골에서 태어나 도시의 학교에서 교편을 잡은 지 어언 이십오 년. 초등학교 때부터 지천명을 바라보는 지금까지, 내 삶은 언제나 학교라는 울타리 안에 머물러 있었다. 마음속에는 늘 고향이 아른거린다. 논두렁에 앉아 개구리 소리를 듣던 여름밤, 마당에서 누렁이와 뒹굴던 오후. 그러나 그리움만으로 도시를 떠날 용기는 나지 않는다. 이것저것 걸리는 것이 많다며 스스로를 설득하지만, 솔직히 핑계다.
나는 도시 사람이 아니다. 그렇다고 시골 사람도 아니다. 어중간하게 그 사이에 끼어 있다. 신천동도 그렇다. 도시가 되고 싶어 안달하는 시골이거나, 어딘가 덜 다듬어진 도시. 재개발 현수막이 펄럭이는 골목 옆에 할머니가 파 심은 스티로폼 화분이 놓여 있다. 나도, 이 동네도, 뭔가 어중간하다.
내 포부는 크지 않다. 욕심이라면 가족과 함께 웃으며 밥 먹는 일 정도다. 그마저도 뜻대로 되지 않는다.
교무실에서 나는 늘 조용하다. 누가 언성을 높이면 먼저 고개를 숙인다. 내 잘못이 아니어도 그렇다. 지난주, 업무 분장 문제로 같은 학년 선생과 마찰이 있었다. 그 선생이 자기 일을 내게 떠넘기려 했다. 다들 보고 있었다. 나는 "제가 할게요"라고 말했다. 속으로는 부글부글 끓었지만, 입 밖으로 나온 건 그 말뿐이었다. 돌아서는데 누군가 작게 혀를 찼다. 그 소리가 며칠이 지나도 귓가에 맴돌았다.
화를 내지 못하는 사람은 그 화를 어디로 보낼까. 나는 안다. 안으로 삼킨다. 삼킨 것들이 뱃속에서 썩는다. 요즘 아침마다 일어나기가 힘들다. 몸이 천근만근이다. 출근길 지하철에서 '오늘 하루만 버티자'라고 되뇐다. 하루가 지나면 또 '오늘 하루만'이다. 그렇게 하루하루를 이어 붙여 살고 있다.
얼마 전 병원에 갔다. 아내가 등을 떠밀었다. 의사는 '우울 증세'라고 했다. 약을 처방받았다. 작은 알약을 손바닥에 올려놓고 한참을 들여다보았다. 이게 나를 나아지게 해 줄까. 삼키고 나니 별다른 느낌이 없었다. 다만 내가 약을 먹어야 할 만큼 아프구나, 하는 생각이 쓸쓸했다.
지난주, 퇴근 후 거실 소파에 앉아 멍하니 텔레비전을 보고 있었다. 뉴스가 나오는지 예능이 나오는지도 모르게. 아내가 한숨을 쉬며 말했다. "당신은 맨날 그렇게 앉아만 있을 거야?" 대꾸할 기력이 없어서 그냥 방으로 들어가 누웠다. 천장의 조명이 너무 밝았다. 불을 끄고 어둠 속에 누워 생각했다. 내가 뭘 잘못한 걸까. 아니, 잘못한 건 없다. 다만 잘한 것도 없다.
술을 좋아하지 않는다. 다음 날 밀려오는 허무감 때문이다. 점심시간이면 혼자 옥상에 올라간다. 아무도 나를 부르지 않고, 아무도 내게 뭔가를 떠넘기지 않는 시간. 난간에 기대어 하늘을 본다. 구름이 느릿느릿 흘러간다. 나도 저렇게 흘러가고 싶다.
내 소망은 소박하다. 적게 먹고 책이나 읽으며, 하루 종일 내 언행과 마음씨를 살피며 사는 것. 그러나 그것도 쉬운 일이 아니다. 예수님을 닮으려 해도 한쪽 뺨을 맞으면 화가 울컥 치민다. 다만 그 화가 밖으로 나가지 못하고 안에서 맴돈다. 부처를 닮으려니 자잘한 욕심이 너무 많고, 공자님처럼 예(禮)를 취하자니 마음 없는 몸짓이 허무하다. 가끔 자동차 타고 출퇴근하는 월급쟁이 공자님을 상상하다 혼자 피식 웃는다. 수신(修身)도 못하는 꼴이라니.
직장에서, 가정에서 이리저리 치인다. 마음이 대범하지 못하니 옹졸하게 '꽁' 하는 감정을 삭이기가 힘들다. 가랑비에 옷 젖듯 이것저것 쌓이니 마음이 몹시 지쳐 있다. 몸도 젊을 때만큼 쉽게 회복되지 않아서, 소금에 절인 배추처럼 생기가 없다.
그런 날, 베란다 문을 연다. 저녁노을 진 하늘 아래, 아파트 단지 너머로 산이 보인다. 소래산이다. 해발 299미터. 산이라 부르기엔 야트막하지만, 이 동네 사람들에게는 산이다.
소래(蘇萊)는 '되살아난다'는 뜻이라 한다. 옛날 이 일대가 바닷물이 드나드는 갯벌이었을 때, 소금을 굽던 사람들이 지친 몸을 이끌고 이 산에 올랐다고 한다. 그래서 소래산인지, 아니면 죽어가던 이들이 이 산에서 기운을 되찾아서 소래산인지, 정확히는 모른다. 다만 나도 지칠 때면 이 산을 오른다. 되살아나고 싶어서.
요산요수(樂山樂水)라지만 바다를 찾아가기는 쉽지 않다. 그러나 산은 도시 한복판에도, 외곽에도, 적당한 곳에 적당한 높이로 앉아 있다. 태곳적부터 그 자리를 묵묵히 지키고 있다. 시골 산은 사람의 발길이 드물어 은밀한 자태를 간직하지만, 도시의 산은 사람들 발에 몸 성할 날이 없다. 자동차 매연을 뒤집어쓰고, 등산객들에게 이리저리 밟혀도 산은 군말 없이 자정 작용을 한다. 부지런히 푸른 잎을 매달고 꽃을 피우며, 신선한 산소를 도시의 허파까지 불어넣는다.
한국의 산은 옹기종기 가부좌를 틀고 앉아 숨을 고르고 있다. 사람들은 산을 닮아간다. 웅장하지도, 뾰족하지도 않게, 정 깊고 둥글게 삶을 살아간다. 삶이 힘들 때면 우리는 산을 쳐다본다. 그리고 산을 찾아간다. 도시에서 산은 고향과 같다.
산을 찾는 이유는 제각각이다. 살을 빼려는 사람, 건강을 되찾으려는 사람, 직장을 잃은 사람, 마음이 아픈 사람. 산은 누가 왔는지 묻지 않는다. 무엇 때문에 왔는지도 묻지 않는다. 아무 말 없이 품에 안는다. 발에 흙이 파이고 돌부리가 뽑혀도 산은 신음하지 않는다.
나도 삶이 버거울 때면 소래산을 오른다. 집에서 산 입구까지 걸어서 이십여 분. 이 시간이 준비 운동이다. 힘이 드는 날이면 몇 번이고 '그냥 돌아갈까' 망설인다. 그래도 기어이 산 입구에 다다른다. 내원사 약수터에서 차가운 물로 목을 축인다. 철철 넘치는 약수가 손등을 적시고, 그 찬 기운이 손목까지 올라온다. 산으로 난 길을 바라보며 마음을 다잡는다.
산을 오를 때는 처음이 힘들다. 헉헉대며 오십여 미터쯤 오르면 몸이 적응하여 한결 수월해진다. 가파른 길 끝에는 평탄한 길이 열리고, 숨을 좀 돌리면 어김없이 다시 가파른 길이 나타난다. 산길은 삶의 굴곡과 닮았다.
산을 오를 때는 경쟁하지 않는다. 걸음이 빠른 사람은 앞서 가고, 느린 사람은 천천히 걸으면 된다. 서너 살 아이도 부모 손을 잡고 오르고, 지팡이 짚은 노인도 쉬엄쉬엄 오른다. 누가 먼저 올랐는지는 중요하지 않다. 각자의 속도가 있을 뿐이다. 교무실에서는 상상할 수 없는 일이다. 거기선 느린 사람은 짐이 되고, 양보하는 사람은 호구가 된다. 산에서만큼은 아니다. 산에서는 느려도 괜찮다.
중턱에서 헉헉댄다. 몹시 더운 한여름이지만, 오히려 흐르는 땀 속에 더위를 잊는다. 오른발을 내딛고 들숨. 왼발을 내딛고 날숨. 들이쉴 때 솔향기가 코끝을 적신다. 축축한 흙냄새, 풀잎의 비린내, 어디선가 풍기는 찔레꽃 향기가 뒤섞인다. 산이 거친 콧속으로 온전히 들어온다. 내쉴 때 가슴 깊은 곳의 탁한 것들이 빠져나간다. 교무실에서 삼킨 것들, 집에서 삼킨 것들, 그 썩은 것들이 날숨에 섞여 나간다.
숨이 턱까지 차오른다. 사는 일이 그렇다. 턱까지 차는 일이다.
지난달 교무실에서 있었던 일이 떠오른다. 담임을 맡은 반 학생이 자퇴서를 들고 왔다. 부모가 이혼했고, 어머니를 따라 지방으로 내려가야 한단다. 손톱을 물어뜯은 자국이 선명한 손으로 서류를 내밀며 아이가 말했다. "선생님, 저 거기서도 공부 열심히 할게요." 웃고 있었지만 눈가가 붉었다. 나는 아무 말도 해줄 수 없었다. "그래, 잘 지내라." 그게 전부였다. 며칠 뒤 빈자리를 볼 때마다 목이 멨다. 이십오 년을 교단에 섰지만, 그 앞에서 나는 늘 무력하다.
지천명의 나이가 되니 이런 무력감이 더 잦아진다. 아버지가 요양병원에 계신다. 뇌경색이었다. 어느 날 갑자기 쓰러지셨고, 그 뒤로 오른쪽 몸을 쓰지 못하신다. 격주로 찾아뵙지만, 아버지는 말씀이 없다. 입을 여시려 애쓰시다가 이내 포기하신다. 그 눈빛이 무엇을 말하려는 건지, 나는 안다. 알면서도 모른 척한다. 모른 척하는 것 말고는 방법을 모르겠다.
지난번에는 아버지 손을 잡고 한참을 앉아 있었다. 창밖으로 햇빛이 들어왔다. 커튼 사이로 먼지가 반짝였다. 아버지가 창밖을 보셨다. 뭘 보시는 걸까. 돌아가신 어머니를 떠올리시는 걸까. 어머니가 일흔둘에 간암으로 돌아가신 지 삼 년이 됐다. 나의 전부였던 어머니. 임종 때 아버지는 어머니 손을 잡고 아무 말도 못 하셨다. 오십 년을 함께 사신 분이, 아무 말도. 나도 아무 말도 못 했다. 그때나 지금이나, 나는 아무 말도 못 한다.
병원을 나서며 주차장에서 한참을 서 있었다. 바람이 불어왔다. 어머니 살아 계실 때, 건강 챙기라고 그렇게 잔소리하셨는데. 그 잔소리가 듣고 싶다. 아버지 목소리도 듣고 싶다. 예전에 내 등을 두드리시며 "잘하고 있다"라고 하시던 그 목소리가.
"왜 자꾸 피하려고만 해?" 아내가 한심하다는 눈으로 물은 적이 있다. 아이들 학원비 문제로 다투다가 내가 먼저 방으로 들어가 버렸을 때다. 피하는 게 아니라 지친 것인데, 그 차이를 어떻게 설명해야 할지 몰랐다. 아내도 지쳐 있고, 나도 지쳐 있다. 서로 지쳐 있으니 작은 말에도 상처를 주고받는다. 함께 산다는 것은 그렇게 어렵다.
그런 일들을 겪고 산에 오른다. 팔부 능선 바위를 붙잡고 오르다 눈물이 난다. 상처 때문이 아니다. 불행해서도 아니다. 가쁜 숨이 차츰 편안해지듯, 삶의 무게도 한 발 한 발 옮기다 보면 조금은 가벼워지지 않을까. 그런 막연한 믿음에 눈물이 난다.
구부 능선을 넘어선다. 정상이 보인다. 발걸음이 빨라지고, 가쁘던 숨이 어느새 편안해져 있다. 마지막 바위를 딛고 올라서니, 탁 트인 하늘이 펼쳐진다.
산꼭대기에 서니 온몸이 시원하다. 바람이 등줄기의 땀을 식혀준다. 서쪽으로 시화호가 햇빛에 부서지고, 그 너머 인천 앞바다가 아스라이 빛난다. 발아래로 신천동 아파트 단지가 성냥갑처럼 늘어서 있다. 저 어딘가에 내 집이 있다. 퇴근하면 돌아가야 할 곳, 피곤해도 기어이 돌아가게 되는 곳.
정상의 소나무들은 키가 작다. 바람에 시달려 옆으로 휘었지만, 단단하게 뿌리를 내리고 있다. 더 높이 자랄 필요가 없으니 애써 위로 뻗지 않는다. 그러나 산 밑의 나무들은 키가 크다. 햇빛을 향해, 정상을 향해 발돋움한다. 낮은 곳의 부족함이 큰 나무를 키운다. 나는 어디쯤 있는 나무일까. 위로 뻗지 못하고 옆으로 휘어지기만 하는 나무. 그래도 뿌리는 내리고 있을까.
정상에 앉아 숨을 고른다. 올라온 길을 내려다본다. 저 구불구불한 길을 올라왔구나. 내려가야 할 길도 똑같이 구불구불하다. 올라온 자는 내려가야 한다. 높이 오른 만큼 멀리 내려가야 한다. 그게 산이고, 그게 삶이다.
산을 내려간다. 올라올 때와 달리 무릎에 힘이 들어간다. 내리막이 오르막보다 무릎에는 더 고되다. 인생의 내리막도 그럴까. 아버지도 지금 내리막을 걷고 계신 걸까.
발밑의 돌부리를 피하며 걷는다. 등산로 가장자리에 어린싹이 돋아 있다. 밟지 않으려 발을 옮긴다. 얼마나 많은 길을 걸어야 이 길이 익숙해질까. 얼마나 많이 넘어져야 돌부리가 눈에 들어올까. 몰라도 괜찮다. 오늘은 그냥 걷는다. 아무것도 옮기지 않고, 아무것도 밟지 않으려 애쓰며, 천천히 걷는다.
산 밑에 다다르니 해가 뉘엿뉘엿 넘어간다. 내원사 약수터에서 다시 물을 마신다. 올라가기 전 마셨던 물보다 달다. 땀을 흘려서 그런 걸까, 내려와서 그런 걸까.
집으로 돌아가는 길, 문득 콧노래가 나온다. 무슨 노래인지도 모르게 흥얼거린다. 아파트 현관에 들어서니 아내가 밥상을 차리고 있다. "산 다녀왔어?" "응." "씻어. 밥 먹자." 그게 전부다. 그게 전부인데, 오늘은 그게 좋다.
내일 다시 학교에 가야 한다. 모레도, 그다음 날도. 교무실의 그 선생도 여전히 거기 있을 것이고, 빈자리는 여전히 비어 있을 것이며, 주말이면 또 아버지를 뵈러 가야 한다. 아내와 또 다툴지도 모른다.
그래도 괜찮다. 힘들면 다시 산에 오르면 된다. 약을 먹듯이, 산에 오르면 된다.
소래산은 거기 있다. 저녁노을이 지면 검푸른 능선만 남고, 새벽안개가 끼면 산은 자취를 감춘다. 보이지 않아도 산은 거기 있다. 아무것도 묻지 않고, 아무 대답도 하지 않으면서, 다만 거기 있다. 내일도 창문을 열면 보일 것이다. 되살아나라고, 다시 오르라고, 말없이 서 있을 것이다.
어머니가 그랬듯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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