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릴 적 나는 칡을 자주 캤다.
삽을 깊이 넣으면 흙은 쉽게 갈라졌지만, 조금만 더 내려가면 단단한 저항이 손목을 울렸다. 우리는 자주 중간에서 끊어먹었다. 끝까지 따라가기엔 힘이 들었다. 땅속에 남은 뿌리는 보이지 않았다. 보이지 않으면, 없는 것처럼 살 수 있었다.
나는 한 사립학교를 서른두 해 다녔다.
그 긴 시간 동안 수많은 아이들을 만났지만, 한 아이의 얼굴은 아직도 또렷하다. 내가 담임이었던 해였다. 봄이었다. 교문 안 벚나무가 막 꽃을 터뜨리던 때였다. 그 아이는 유난히 말이 적었고, 웃을 때 눈이 먼저 휘어졌다.
사고 소식을 들은 날도 봄이었다.
화재.
그 단어 하나로 모든 설명이 끝났다.
나는 병원 복도에 서 있었다. 벚꽃은 그날도 피어 있었을 것이다. 그러나 나는 기억하지 못한다. 머릿속이 텅 빈 채로 보호자의 울음소리만 또렷했다. ‘담임 선생님이시죠?’라는 질문에 고개를 끄덕였지만, 그 순간 내가 그 아이에게 무엇이었는지 확신할 수 없었다.
나는 그 아이의 마지막 표정을 모른다.
그 사실이 아직도 나를 붙든다.
그 후로도 시간은 흘렀다. 다른 아이들이 졸업했고, 또 다른 봄이 왔다. 나는 다시 담임을 맡았고, 다시 생활지도를 했다. 겉으로는 아무 일 없다는 듯 교문을 드나들었다. 그러나 벚꽃이 필 때마다, 나는 그 해를 떠올렸다. 꽃잎이 떨어질 때마다 타버린 방 안을 상상했다.
나는 그 아이를 끝까지 이해했을까.
혹시 놓친 신호는 없었을까.
더 물어볼 수 있었던 말은 없었을까.
답은 없다. 다만 질문만 남았다.
은퇴식 날, 사람들은 내게 ‘헌신’이라는 말을 건넸다. 꽃다발을 받으며 나는 웃었다. 그러나 속으로는 그 아이의 이름이 먼저 떠올랐다. 서른두 해의 시간은 길지만, 한 생의 무게를 지우기에는 턱없이 짧다.
은퇴 후 처음 맞는 봄, 나는 학교 앞을 지나갔다. 교문 안 벚나무는 여전히 꽃을 피우고 있었다. 아이들은 웃고 있었고, 호각 소리가 운동장을 울렸다. 세상은 아무 일 없다는 듯 흘러가고 있었다.
그 나무 아래에서 나는 한때 교사였다.
지금은 그 밖에 서 있는 사람이다.
나는 그 뿌리를 바라보았다. 화려한 꽃은 며칠이면 지지만, 뿌리는 남는다. 그러나 불은 꽃만 태우지 않는다. 때로는 뿌리까지 스민다. 나는 그 해 이후, 완전히 예전으로 돌아가지 못했다. 교사라는 이름 아래 감춰 두었던 균열이 그때부터 번지기 시작했다.
어쩌면 나는 서른두 해 동안 뿌리를 내린 것이 아니라,
타버린 자리를 붙잡고 서 있었는지도 모른다.
요즘도 가끔 새벽에 눈이 뜨인다. 일곱 시 반.
그 아이의 출석부 번호가 문득 떠오른다. 이미 존재하지 않는 번호인데도, 나는 아직 그 칸을 비워 두지 못했다.
벚꽃은 앞으로 계속 필 것이다.
아이들은 또 웃을 것이다.
나는 이제 교문 안으로 들어가지 않는다.
그러나 어떤 봄날은 아직도 내 안에서 타고 있다.
칡을 캐다 중간에서 끊어먹었던 어린 날처럼,
나는 아직 끝까지 따라가지 못한 뿌리 하나를
마음속에 묻어 두고 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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