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7화. 버스 정류장까지
도서관 폐관 시간은 오후 10시.
선호는 책을 덮으면서 시계를 슬쩍 봤다. 9시 47분. 해주도 거의 동시에 일어섰다. 말하지 않아도 알 수 있었다. 함께 나가자는 것.
밖으로 나오니 선선한 바람이 불었다. 낮의 열기가 가신 저녁 공기. 도서관 앞 가로등이 두 사람의 그림자를 길게 늘였다.
“오늘 뭐 공부했어요?”
해주가 물었다. 선호는 잠시 생각했다.
“행정법이요.” “어땠어요?” “……어려웠어요.”
솔직한 대답이었다. 해주가 웃었다.
“저도요. 교육학 개론 진도가 안 나가요.” “해주 씨도 힘드세요?”
선호가 무심코 물었다가 입을 다물었다. 당연히 힘들겠지. 시험 준비가 쉬운 사람이 어디 있나.
“당연하죠.”
해주가 말했다. 힘들어도 웃으려고 애쓰는 것 같았다. 눈이 가늘어지는 그 웃음. 하지만 그 안에 숨겨진 피로가 보였다.
“매일 포기하고 싶어요. 근데.” “근데요?”
해주가 선호를 돌아봤다. 가로등 불빛이 그녀의 눈동자에 맺혔다.
“그냥요.”
그리고 다시 앞을 보며 걸었다.
버스 정류장까지는 10분 거리. 선호는 그 10분이 10초처럼 짧게 느껴졌다. 말을 많이 하지 않았다. 그냥 나란히 걷기만 했다. 가끔 해주의 팔이 자기 팔에 스쳤다. 그때마다 선호는 심장이 두근거렸다.
“저기요.”
정류장 앞에서 선호가 말했다.
“제가 바래다 드릴까요? 집까지.” “안 돼요.”
단호한 대답. 선호는 움찔했다.
“……아, 네.” “아니, 그게 아니라.”
해주가 손을 저었다.
“선호 씨 집 반대쪽이잖아요. 괜히 돌아가지 말고.” “어떻게 알아요?” “전에 얘기했잖아요. 반지하방이라고.”
선호는 기억났다. 쪽지를 받고 카페에서 처음 만났던 날. 자기 이야기를 했었다.
“기억하고 있었어요?” “당연하죠.”
버스가 왔다. 해주가 손을 흔들었다.
“내일 봐요.”
선호는 그 버스가 시야에서 사라질 때까지 서 있었다. 바람이 불었다. 차갑지 않았다.
*18화 이어서 보기
이 글의 행간에 다 담지 못한 더 많은 그림과 소박한 기록들은 저의 개인 블로그에서 계속 이어집니다. 언제든 편히 들러주세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