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1화. 어머니의 손수건
해주가 자기 이야기를 꺼내서였을까.
그 이야기를 듣는 동안 선호의 마음 어딘가가 조금씩 풀어졌다.
괜히 입을 다물고 있기보다는, 자신도 무언가 말하고 싶어졌다.
“저, 강화도요.”
퇴관 후 정류장으로 걸어가던 길이었다.
차가운 저녁 공기가 천천히 내려앉고 있었고, 두 사람의 발걸음이 보도블록 위에서 잔잔하게 울렸다.
잠시 침묵이 흐른 뒤, 선호가 조심스럽게 입을 열었다.
“겨울에 바람이 엄청 세요. 바닷바람이라 모래가 섞여 있거든요.”
해주가 고개를 약간 기울였다.
“모래바람?”
“네. 그냥 바람이 아니라, 모래가 같이 날아와요. 얼굴에 막 부딪히거든요.”
선호는 손으로 자신의 뺨을 가볍게 쓸어내리며 말했다.
“얼굴에 모래가 박혀요. 진짜로요.”
해주는 잠시 눈을 깜빡였다.
상상이 잘 되지 않는다는 듯한 표정이었다.
“상상이 안 되죠?”
선호가 웃으며 덧붙였다.
“어릴 때, 학교 가다가 바람에 날아간 적 있어요.”
해주의 눈이 조금 커졌다.
“……날아갔어요?”
“과장이에요.”
선호가 곧바로 웃음을 터뜨렸다.
“근데 진짜 넘어졌어요. 모래바람맞으면서요. 바람이 너무 세서 앞으로 걸어가기가 힘들 정도였거든요.”
그때의 장면이 떠올랐는지 선호의 시선이 잠시 먼 곳을 향했다.
“눈도 제대로 못 뜨고, 얼굴은 따갑고… 길가에 쭈그리고 앉아 있었어요.”
그는 쓴웃음을 지었다.
“어머니가 손수건으로 제 얼굴 닦아주셨어요.”
잠깐 멈추었다가, 조금 더 천천히 말을 이었다.
“모래 털어주시면서요. 눈에 들어갔냐고 계속 물어보셨고.”
해주는 아무 말도 하지 않았다.
그저 조용히 듣고 있었다.
“……”
선호는 잠깐 숨을 고르고 말했다.
“그 손수건, 아직 있어요.”
그 말에 해주가 갑자기 걸음을 멈췄다.
선호도 자연스럽게 발걸음을 멈췄다.
정류장은 아직 조금 남아 있었고, 가로등 불빛이 두 사람 사이를 조용히 비추고 있었다.
“간직하고 있어요?”
해주가 물었다.
“네.”
“왜요?”
선호는 잠시 생각했다.
대답이 바로 떠오르지 않았다.
가로등 불빛 아래에서 그는 잠깐 눈을 내리깔았다.
“모르겠어요.”
잠시 후, 선호가 천천히 말했다.
“그냥… 버릴 수가 없어서요.”
그 손수건은 오래돼서 색도 조금 바랬고, 가장자리는 닳아 있었다.
하지만 이상하게도 버릴 생각이 한 번도 들지 않았다.
해주가 천천히 고개를 끄덕였다.
마치 그 마음을 이해한다는 듯한 움직임이었다.
“저도 있어요.”
선호가 고개를 들었다.
“뭐가요?”
해주는 잠깐 웃었다.
“아버지 만년필.”
“만년필이요?”
“네. 안 써요. 잉크도 말랐고요.”
해주는 손가락으로 허공에 펜을 쥐는 시늉을 했다.
“그래도 못 버리겠더라고요.”
그녀의 목소리는 담담했지만, 어딘가 따뜻했다.
“이상하죠? 쓸 일도 없는데.”
선호가 고개를 살짝 저었다.
“아니요.”
그는 짧게 말했다.
“이상하지 않아요.”
두 사람은 다시 걷기 시작했다.
아까 멈춰 섰던 자리에서 자연스럽게 발걸음을 옮겼다.
말없이.
하지만 침묵이 어색하지는 않았다.
조용한 길 위에서 발걸음 소리만 나란히 이어졌다.
그런데도 뭔가가 조금 달라진 것 같았다.
아까와 같은 길인데도 느낌이 달랐다.
공기가,
그리고 두 사람 사이의 거리감이.
조금 가까워진 것 같았다.
잠시 후, 해주가 먼저 입을 열었다.
“선호 씨.”
“네.”
선호가 고개를 돌렸다.
해주는 잠깐 망설이다가 말했다.
“우리 친해진 것 같지 않아요?”
그 말에 선호는 잠깐 웃었다.
대답 대신, 그는 천천히 고개를 끄덕였다.
친해졌다.
확실히.
아까보다 조금 더.
*22화 이어서 보기
이 글의 행간에 다 담지 못한 더 많은 그림과 소박한 기록들은 저의 개인 블로그에서 계속 이어집니다. 언제든 편히 들러주세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