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9화. 결과 발표 & 갈라지는 길
한 달 후, 드디어 결과 발표 날이 찾아왔다.
그날 아침, 선호는 평소보다 훨씬 일찍 눈을 떴다. 제대로 잠을 잔 것도 아니었다. 밤새 뒤척이다가 겨우 몇 시간 눈을 붙였을 뿐이었다. 머리는 멍했고, 몸은 무겁게 가라앉아 있었지만, 마음만은 이상하리만치 또렷하게 깨어 있었다.
선호는 떨리는 손으로 컴퓨터 전원을 켰다.
부팅되는 짧은 시간조차 길게 느껴졌다. 심장이 가슴을 뚫고 나올 것처럼 세게 뛰었다. 마치 누군가 안에서 계속 문을 두드리는 것 같았다.
결과 페이지에 접속했다.
익숙한 화면, 그러나 오늘만큼은 낯설게 느껴졌다. 손가락이 몇 번이나 멈칫했다. 수험번호를 입력하는 것조차 쉽지 않았다. 숫자 하나하나를 누를 때마다 손끝이 떨렸다.
엔터를 눌렀다.
잠깐의 로딩.
그리고 화면이 바뀌었다.
[불합격]
단 세 글자.
하지만 그 세 글자는 너무나도 무겁게, 너무나도 선명하게 눈앞에 박혀 있었다.
선호는 한참 동안 아무것도 하지 못한 채 화면만 바라봤다.
눈을 깜빡이지도 못했다. 숨도 제대로 쉬지 못하는 것 같았다.
‘또 떨어졌어.’
그 생각이 머릿속을 천천히, 그러나 깊게 파고들었다.
이미 예상하고 있었던 결과였을지도 모른다.
그래도, 그래도 어딘가에서는 아주 작은 기대를 품고 있었던 자신이 있었다.
그 순간, 핸드폰이 울렸다.
화면에 뜬 이름은 해주였다.
선호는 잠시 망설이다가 전화를 받았다.
“선호 씨! 저 붙었어요!”
밝은 목소리였다.
숨길 수 없는 기쁨이 그대로 묻어나는 목소리.
들뜬 숨, 빠른 말투, 웃음이 섞인 말끝.
선호는 아무 말도 하지 못했다.
그저 그 목소리를 듣고만 있었다.
잠시 후, 힘겹게 입을 열었다.
“……축하해요.”
짧은 말이었지만, 그 안에는 많은 감정이 뒤섞여 있었다.
목소리는 떨렸고, 스스로도 그 떨림을 감출 수 없었다.
“선호 씨는요? 결과 봤어요?”
해주의 물음이 이어졌다.
조심스럽지만 기대가 담긴 질문이었다.
“……네.”
짧은 대답.
“……”
전화기 너머로 잠깐의 침묵이 흘렀다.
해주는 뭔가를 느낀 것 같았다.
그 짧은 대답 속에서 모든 것을 읽어낸 것처럼.
“선호 씨……”
그녀의 목소리가 조금 낮아졌다.
조심스럽고, 걱정스러운 톤이었다.
선호는 더 이상 말을 이어갈 수 없었다.
“나중에 연락할게요.”
급하게 말을 마친 뒤, 전화를 끊었다.
통화 종료 화면이 떠 있었다.
그 화면을 바라보며 한참 동안 손을 내리지 못했다.
* * *
그날 이후, 선호는 해주를 의도적으로 피하기 시작했다.
도서관에도 가지 않았다.
둘이 자주 앉던 자리도, 함께 보던 창가도, 모두 피했다.
전화는 울렸지만 받지 않았다.
메시지는 왔지만 읽지 않았다.
읽지 않은 채로 쌓여가는 알림 숫자를 보면서도, 손을 대지 않았다.
비겁한 거 알아.
선호는 스스로를 계속해서 자책했다.
이건 도망이라는 걸 알고 있었다.
해주는 아무 잘못도 없다.
그녀는 누구보다 열심히 했고, 그 노력의 결과를 받은 것뿐이다.
축하해줘야 한다. 진심으로.
당연한 일이다.
그런데.
얼굴을 볼 수가 없었다.
그녀를 마주하는 순간,
자신이 더 작아질 것 같았다.
내가 너무 초라해 보일 것 같아서.
너무 뒤처진 사람처럼 보일 것 같아서.
그녀 옆에 서는 것만으로도, 내 실패가 더 또렷하게 드러날 것 같아서.
그래서 선호는 도망쳤다.
반지하 방에 틀어박혔다.
햇빛이 거의 들어오지 않는 그 좁은 공간에서, 하루 종일 누워 있었다.
천장을 바라봤다.
예전에는 천장의 물 얼룩이 별처럼 보였었다.
희미하지만 반짝이는 무언가로, 나름의 위로가 되었었다.
하지만 이제는 아니었다.
그저 번진 자국일 뿐이었다.
지워지지 않는 얼룩처럼, 그대로 남아 있는 실패 같았다.
선호는 눈을 감았다가 다시 떴다.
그래도 아무것도 달라지지 않았다.
그저, 그대로였다.
*30화 이어서 보기
이 글의 행간에 다 담지 못한 더 많은 그림과 소박한 기록들은 저의 개인 블로그에서 계속 이어집니다. 언제든 편히 들러주세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