캔커피 한 잔의 온도[30화]

30화. 무너지는 시간

by 선비천사

30화. 무너지는 시간


[선호가 해주를 피하기 시작한 후 — 반지하 방]


일주일째. 선호는 방에서 나가지 않았다. 커튼을 쳐놓으니 낮인지 밤인지 알 수 없었다. 그게 좋았다. 시간이 흐르는 걸 모르고 싶었다.

핸드폰은 무음으로 해놨다. 화면이 가끔 켜졌다. 해주의 메시지가 쌓여갔다.

‘선호 씨, 괜찮아요?’ ‘연락 좀 주세요.’ ‘걱정돼요.’

읽지 않았다. 아니, 읽었지만 답하지 못했다. 뭐라고 해야 할지 몰랐다.

'축하해.'

그 두 글자가 나오지 않았다. 목구멍까지 올라왔다가 녹아버렸다. 왜 이러는 걸까. 선호는 자신이 한심했다. 해주는 열심히 했고, 그 결과를 받은 것뿐이다. 마땅히 축하해야 할 일이다. 마땅히 기뻐해야 할 일이다.

그런데 왜. 왜 이렇게 비열하게 질투가 나는 걸까. 왜 그녀 앞에 서는 게 두려운 걸까.


* * *


천장의 물 얼룩을 바라봤다. 예전엔 별처럼 보였다. 해주를 알게 된 후로. 하지만 지금은 그냥 얼룩이었다.

방구석에 캔커피 빈 캔이 쌓여 있었다. 버리지 못하고 모아둔 것들. 스물네 개.

'이제 더 이상 늘어나지 않겠지.'

그 생각이 가슴을 찔렀다.

열흘째. 문을 두드리는 소리가 났다. 선호는 무시했다. 집주인이겠지.

“선호 씨.”

해주의 목소리였다. 선호는 숨을 멈췄다.

“저예요. 문 열어요.”

대답하지 않았다.

“선호 씨, 있는 거 알아요. 불 켜져 있어요.” “……” “문 안 열어줘도 괜찮아요. 여기서 말할게요.”

선호는 침대에서 일어나지 못했다. 그냥 문 쪽을 바라봤다.

“저, 걱정됐어요. 연락도 안 되고, 도서관에도 안 나오고.” “……” “화난 거 알아요. 아니, 화난 게 아니라… 힘든 거겠죠. 제가 붙고 선호 씨가 떨어져서. 그게 불공평하게 느껴지겠죠.”

선호의 눈에서 눈물이 흘렀다.

“저도 그랬을 것 같아요. 만약 반대였으면. 저도 선호 씨 피했을 것 같아요.” “……” “그러니까 괜찮아요. 피해도 돼요. 화내도 돼요. 미워해도 돼요.”

해주의 목소리가 떨렸다.

“근데 한 가지만 알아줘요.” “……” “저, 선호 씨 포기 안 해요.”

선호는 문을 바라봤다.

“기다릴게요. 선호 씨가 준비될 때까지.”

발소리가 멀어졌다. 선호는 한참 동안 문만 바라봤다.



*31화 이어서 보기

캔커피 한 잔의 온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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