삶의 방향
몇 주 전, 아침 산책을 하다 이제 잎사귀가 다 떨어져 나간 겨울나무를 보았다.
내 나이 만으로 39 끝자락, 나무의 민낯을 보고 경탄하며 그 자리에 우뚝 선 일은 처음 있는 일이었다.
마지막 잎사귀까지 떨어지고 난 후의 그 매끄러운 나무동이 너무 아름다워 한참을 그 자리에서 나무를 쳐다보았다.
봄에는 싹이 트는 것을 바라보며 생명을 찬양했고, 여름에는 무성하게 뻗은 장대같이 서있는 나무를 보고 풍성한 에너지를 느꼈다. 그리고 황혼의 가을이 오면 자연적으로 물드는 색감에 넋을 잃고 바라보다 떨어진 낙엽을 줍기도 했었다.
하지만 그런 모든 생동감을 잃어버린 채 서 있는 나무에게 어쩐지 숙연해졌다.
예전에는 겨울나무를 보고 생명이 느껴지지 않은 죽은 나무라 치부했었다.
하지만 그날 나는 아무런 치장도 걸치지 않았지만 부드럽고 가지가지 곧게 뻗은 말쑥한 나무의 모습에 압도당했다.
그리고 딱 두 글자가 떠올랐다.
‘민낯’
나무가 내게 물었다.
"너는 누구니?"
나는 그 질문이 의미하는 바를 알았다.
내 소유라 여기며 나를 치장했던 물건이 내가 아니었다. 내가 가진 집과 차가 내가 아니었다. 내 이름과 내 나이, 내 국적이 내가 아니었고 내가 어떤 일을 하는지가 내가 아니었다. 누구의 엄마, 누구의 아내, 누구의 딸, 누구의 친구가 내가 아니었고 시시때때로 바뀌는 기분이나 성격이 내가 아니었다. 내가 좋아하고 싫어하는 것도 내가 아니었다.
나라고 드러내던 것들이 그저 봄, 여름, 가을 저 나무 민낯 가지 위에 치장되던 나뭇잎이라는 것을 깨달았다.
마지막 나뭇잎 한 장 마저 떨어진 후, 적나라게 드러난 내 모습이 진짜 나였다.
죽을 때 내가 갖고 갈 수 없는 것들이 온통 그 떨어진 나뭇잎들이었다.
그렇다면 나는 어떤 사람인가?
내 삶이 끝나는 순간 나는 어떤 민낯을 가진 사람이 되어 있을까?
이제 만으로 30대의 끝자락에 서서 나무에게 삶의 방향에 대해 배웠다.
앞으로 내 삶은 그 민낯을 향해 걸어가야 한다.
그리고 거기에서 나는 마침내 내가 누구인지 그 나무에게 대답할 수 있을 것 같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