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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Momanf Sep 24. 2021

1. 킹덤의 좀비에서 내 모습을 보았다


나는 좀비 영화를 아주 싫어한다. 관절이 다 꺾이고 창자가 다 쏟아져 나와 피범벅이 되어 살아 있는 사람들에게 야수처럼 달려드는 좀비. 그 시체들이 살아 있는 사람처럼 움직이는 것을 생각만 해도 끔찍하다. 그래서 아무리 유명한 영화라도 좀비 이야기이면 절대로 보지 않았다.


그런데 며칠 전, 유튜브에서 넷플릭스 드라마 킹덤에 관해 감독과 김은희 작가, 그리고 배우가 대화를 나누는 영상을 우연히 접하게 되었다. 킹덤의 주제를 설명하고 부조리한 사회를 꼬집는 정치 스릴러라는 작가의 의도가 좋았고 요즘 좋아하는 주지훈이 나와 용기를 갖고 삼일 만에 시즌 1,2를 끝냈다.

처음에는 벌벌 떨면서 보기 시작했지만 왜 배경이 조선이 되어야만 했는지, 옛날이라고 치부했던 그 신분사회가 21세기에 똑같이 일어나고 있는 장면들을 떠올리며 눈을 뗄 수 없었다. 조선 사회가 옛날 고리타분한 지금보다 발전하지 못한 사회가 아니었다. 그 역사는 지금도 리바이벌되고 있었다. 노골적인 양반과 상놈 계급은 현재 교묘하고 은근히 감추어졌을 뿐이었다. 돈이 있는 사람은 양반이고 없는 사람은 상놈, 그래서 돈을 세습하기 위해 절세를 꾸미고 위장으로 법을 농락하고 힘입고 돈 있는 사람 중심으로 세력을 만들고 견제한다. 잘못된 정보로 백성을 이용하고 무자비하게 버린다. 자신의 권력을 위해 위험한 생사초를 사용해 사람들을 좀비로 만들고 양반들은 자신의 생명만을 위해 백성을 이용한다. 하지만 살려달라고 울부짖던 백성들이 좀비에게 물려 좀비가 되고 그 엄청난 좀비수에 결국 양반도 좀비가 되고 만다. 좀비가 되는 순간 양반 상놈 할 것 없이 눈앞에 있는 어린 자신의 딸도 잡아먹고 오랫동안 모셔온 아버지도 잡아먹고살아있는 생명을 먹으려고 달려든다.


나는 드라마를 제삼자 입장으로 보면서 그런 양반을 비난하고 좀비가 너무 끔찍한 괴수라며 외면했다. 그런데 갑자기 마음속에서 질문이 떠올랐다. 만약, 내가 드라마 속의 상황에서 살고 있다면 과연 내가 저 잔인하고 이기적인 양반들과 다를 수 있을까?

드라마 밖의 나는 생활이 편하고 의식주가 넘쳐흘러 생존을 위협하는 것과 싸울 것이 없다. 그러니 남을 배려하고 도와줄 수도, 예의를 차리고 우아하게 행동도 할 수 있다. 하지만 내 상황이 드라마처럼 극한에 달해 내 목숨이 위협받는 상황이라면 나 또한 내 죄성을 숨길 수 없을 것이 분명했다.

돈이나 권력으로 사람을 차별해 힘없는 사람을 멸시하고 도움을 외면하고 무시하는 일이 결국 그들을 범죄자로 만들고 그 범죄자들의 위협 속에서 불안에 떨며 살다가 나도 그들과 똑같이 돼버릴 수 있다는 사실을 일깨워 주었다. 이것은 내가 사회의 문제를 결코 외면해서는 안 되는 이유라는 것을, 사회의 약자를 도와 함께 사는 일만이 내 목숨을 지키는 일이라는 진리를 깨달았다.


뿐만 아니다. 인간성을 상실한 괴물들이 자신의 부모나 어린 자식을 잡아먹는 끔찍한 모습에서 인간성을 잃은 좀비들은 모두 다 똑같은 괴물이었다.  

사람은 영과 육이 있어 육체가 아무리 풍족하다고 해서 행복을 누릴 수가 없다.  영이 없는 우리는 인간성이 없는 좀비와도 같은 것이다. 그런 생각이 들자 성경에서 말하던 죄가 들어온 이후의 인간을 죄인이라 부르는 것이 떠올랐다.

그 죄인이라는 단어를 좀비로 바꾸니 그동안 머리로만 알고 잘 이해되지 않던 성경의 말씀들이 분명한 이미지가 그려지며 이해되기 시작했다. 좀비처럼 돈을 좇으며 서로가 서로를 물어뜯는 이 세상이 너무 선명하게 그려져 나는 한동안 충격에 빠져 잠시 아무것도 할 수 없었다.

 좀비가 생명을 가진 사람을 향해 뛰어 들 듯, 우리는 태어나 돈을 향해 교육받고 그것이 상식적인 사회에서 살고 있으며 그것이 만연하고 당연한 세상에서 살고 있다. 돈이라면 무엇이든 달려들고, 돈으로 인간관계를 차별하고 자식에게 돈을 많이 벌기 위해 공부하고 경쟁에서 이기라고 가르친다. 우리 모두는 돈을 향해 달려드는 세상에 물어 뜯겨 좀비가 되었고 똑같은 방식으로 내 자식까지 물어뜯으며 돈을 향해 달리는 좀비로 만들고 있다.


극대화되긴 했어도 내가 죄인, 더러운 좀비였다는 이미지보다 예수님이 우리를 구원하신 게 왜 좋은 건 지를 설명할 수 있는 예는 없을 것 같다.

본래 하나님은 하나님의 형상대로 사람을 만드셨다. 그런데 뱀의 꾐에 사람이 선악과를 따먹고 죄인, 좀비가 되었다고 가정하자. 하나님은 에덴에서 아담과 하와를 내쫓는 순간에도 인간을 사랑했기에 구원자를 약속하셨고 그것은 구약에서 끊임없이 되풀이된다. 그 약속을 믿은 자들은 인간성이 회복되어 그것을 계속 전했지만 이미 좀비가 된 사람들은 그 말을 듣지 않았고 오히려 자식마저도 끊임없이 좀비로 만들면서 좀비의 사회를 구축하기에 이르렀다. 마침내 예수님이 육신의 몸을 입고 이 땅에 왔고 예수라는 이름처럼 좀비인 우리의 인간성을 위해 기꺼이 죽으셨다

. 3일 만에 부활한 사건을 통해 그가 진정으로 하나님의 아들이라는 것을 믿게 된 자는 좀비에서 인간이 되고 그것들을 사람들에게 전하기 시작했다. 좀비 세상에서 전신갑주이신 임마누엘, 이 철갑옷을 입고 있는 것이다. 이 험학하고 잔악무도한 좀비 세상에서 완전하게 안전할 수 있다니 이것은 정말로 굿 뉴스였다. 하나님의 형상을 다시 찾게 된 것이다. 이 사실을 나만 알고 있는 것은 내 목숨만을 지키려는 양반의 모습과 겹쳐졌다. 거기다 이 철갑옷은 무한하기에 나누고 나눠도 넘친다. 다른 사람을 좀비에서 인간성을 회복시켜 주어 이제 더 이상 좀비 세상에서 공격당해도 끄덕 없는 철갑옷을 나눠줘야만 한다. 내 옆에 있는 사람들의 인간성을 회복하는 일이 궁극적으로 내가 사는 길이기도 하다. 그래서 복음을 전해야만 한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가끔은 우리가 인간성을 회복했다는 사실을 잊거나 오랜 습관 때문에 다른 좀비들을 흉내 낸다. 하지만 이미 인간성을 회복한 나는 더 이상 좀비로 돌아가지 않는다. 이사실을 똑바로 직시할 때만이 인간성을 회복하고 갑옷으로 평생 안전하게 된 은혜를 마음껏 누릴 수 있다.

40 평생 좀비를 그토록 싫어했던 내가 킹덤을 통해 심오한 성경의 말씀을 깨달을 수 있었던 것도 모두 주님의 인도 덕분이라는 것을 잘 안다. 드라마 킹덤은 사회를 풍자하고 인간에 대해 생각하게 만들 뿐만 아니라 성경의 난해한 말씀도 이해되게 만드니 감히 왜 이드라마가 이토록 인기가 많고 김은희 작가님이 대가라고 불려지는지를 알게 되었다.

킹덤 3이 너무도 기다려지는 밤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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