남편과 5년 만에 둘만의 여행으로 North Carolina주, Asheville로 1박으로 여행을 가 우리는 연인 때처럼 손을 잡고 아름다운 타운을 걸어 다녔다. 걷다가 길거리에 아이들이 탈법한 조그마한 파란색 카트 안에서 몸을 웅크리고 자고 있는 가녀린 노숙자 할머니를 보게 되었다. 마침, 혹시 노숙자를 만나면 돈과 함께 예수님이 부활했다는 소식과 주님이 살아 있다는 복음을 함께 전하려고 문구를 만들어 놓은 터라 저녁 식사 후, ATM에서 돈을 찾았다.
다음 날 아침, 나는 조깅을 하면서도 그 할머니가 여전히 그 자리에 있는지를 확인했고 몇몇의 노숙자를 지나쳐 뛰는데 젊은 다른 노숙자 여자와 눈이 마주쳤다. 하지만 눈에 생기가 하나도 없음을 보고 무서워 금방 외면하고 계속 뛰었다. 체크 아웃을 하고 남편과 어젯밤 보았던 할머니를 찾아갔더니 할머니 옆에 노숙자 남자분이 계셨고 나는 준비했던 돈과 메모 2개를 꺼내 할머니에게 내밀었다.
하지만 그녀는 내게 자신은 이미 축복을 받아 충분하다며 옆에 남자에게 돈을 주라고 말했다.
난 그녀의 말대로 그 남자에게 돈을 건넸고
“God Bless you.”라고 말한 후 그곳을 황급히 지나쳐 타운을 걷는데 그녀의 말이 묵직하게 내 마음에 자리를 차지했다.
남편은 그녀의 이야기를 못 들어 돈을 거절한 그녀가 정신 나간 것 같다고 얘기했지만 어쩐지 나는 차가운 길바닥에 앉아 이미 축복을 받았다며 돈을 거절하고 옆에 있는 남자에게 건네는 그녀에게 품위를 느꼈다.
나는 동네를 걷고 다른 노숙자에게 돈을 건네면서도 그녀의 생각을 멈출 수가 없었고 다른 노숙자에게 돈을 내밀면서 정확하게 이유를 설명하기 힘들었지만 어쩐지 마음이 개운치 않았다.
노숙자라는 상황에서도 오히려 동정하기보다는 동정을 거절하는 그녀의 자유가 부러웠다. 그리고 이미 하나님의 축복을 받아 충분하다고 말하는 그녀의 강한 믿음에 경탄했다.
돌아오는 차 안에서, 나는 개운치 않았던 내 마음의 정체를 알게 되었다. 그것은 노숙자를 위해 돈과 메모를 준비하며 내가 제법 잘 살고 있구나라고 생각했던 교만이었다.
나는 가장 손쉽게 돈과 복음이 담긴 메모를 준비해 한 끼 따듯하게 식사하며 이 메모를 읽고 주님을 믿고 정신 차리기를 바란 것이었다. 그것은 도움이 아니라 동정이었다.
한 사람의 영혼을 구원하는 길이 아니라 그저 여러 사람에게 값싼 동정을 던져준 것뿐이었다.
할머니를 정말 돕고 싶고 할머니가 구원을 받기를 진정으로 원했다면 돈을 거절하는 할머니에게 할머니가 필요한 것이 무엇인지, 당장 내가 도와줄 수 있는 일이 무엇인지를 물었어야 했고, 할머니가 추운 길바닥에 자고 있는 모습이 어제부터 걱정돼서 따듯한 식사라도 하시길 바랬다고 내가 돈을 드린 이유를 설명했어야 했다.
나는 단 돈 20달러와 복음의 메모를 이리저리 던지며 돌아다녔을 뿐, 그 한 사람, 한 영혼에 대한 예의가 없었다.
그들의 삶을 내 멋대로 판단하고 나와 구별했고, 돈만 던졌을 뿐 대화를 하며 관계를 맺는 일을 질색했고 두려워했다. 가장 손쉬운 방법으로 예수님을 조금 도우면서 살고 있다고 큰 착각을 했던 것이다.
20달러와 복음 메모를 이리저리 뿌리면서 내 일을 다했다고 생각한 것은 고기 한 마리라도 꼭 잡겠다는 의지 없이 이리저리 그물만 던지고 운 좋게 하나가 걸리면 다행이고 아님 말고식이었다. 한 영혼이라도 사랑을 갖고 최선을 다해 구하려는 생각보다 평소의 내 습관대로 대충대충, 빨리빨리, 많이 하는 것에만 의의를 둔 것이다.
짧은 만남이었지만 할머니는 나를 많이 돌아보고 많은 것을 생각해보게 해 주셨다. 내가 도와드리려고 했는데 오히려 도움을 받은 쪽은 나였다.
나의 교만한 마음을 깨닫게 해 주셨고 깊이 없이 많이 하는 것보다 한 영혼이라도 최선을 다해야 한다는 마음을 주셨다.
집에 돌아와 노숙자의 삶에 관한 영상들을 찾아보며 그들이 어떻게 길바닥으로 나오게 되었는지, 얼마나 삶이 힘들었기에 한 사람이 살아가는데 필요한 요소인 집을 떠나 길 위에 살면서, 그 위험천만한 곳에서 떠날 수 없는지를 아주 조금 알게 되었다.
그들도 소중한 생명인데 투명인간 취급하고 눈이 마주칠까 봐 시선을 피했던 내 모습이 떠올랐다. 이방인으로서 미국에 살면서 이방인의 서러움을 더 잘 이해할 수 있었을 내가 그들을 우리 사회에 속하지 않은 이방인으로 대했다는 것에 미안함을 느낀다. 그리고 상대가 과연 내게서 돈과 메모를 받으면서 동정이 아닌 하나님의 사랑까지 전달받을 수 있었는지를 돌아본다.
앞으로는 내가 드러나 동정이 되질 않기를 하나님의 영광이 드러나 사랑으로 느낄 수 있기를.
나는 오늘 노숙자 할머니에게서 더 큰 동정을 받은 것 같다
길거리에 앉아 있는 그 할머니보다 지붕 밑에 안락하게 사는 내가 더 불쌍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