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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Momanf Oct 11. 2021

6. 주님만이 해답이라는 의미

주님의 은혜로 믿음을 갖게 되었지만 나조차도  주님만이 답이라고 하는지 완전히 이해하지 못했다.

무엇을 하라, 무엇을 하지 마라는 성경 속의 가르침을 따라야 한다고 생각했기에 성경 말씀이 부담스럽고 나의 자유를 억압당하는  같았다. 주님이 답은커녕 내가 아무리 의지를 내어도 거듭 죄를 짓는 것에 좌절감을 느끼고 끊임없이 회개해야 하는데에  실패자 같았다. 크리스천으로 살지 않는 편이 마음 편하다고 생각했다.

주님만이 의인이라 인간은 율법을 지킬  없다는 말을 들으면 내가 마음 편히 죄를 지어도  용서를 받게 되는 것이니 마음대로 살면 된다는 말인가? 헷갈렸다.


주님을 믿는 사람들은  시련을 겪게 되는 것만 같고 세상과 종교 사이에서 평생 갈등을 겪는 것만 같았다. 진짜로 믿게 되면 믿음을 시험하기 위해 악마가 들이닥칠까 봐 두렵기도 했다. 그렇게 여러모로 주를 믿는 것은 그저 고난, 시련, 좌절을 느끼고, 내가 죄인이라는 생각을 갖고 하나님만을 찬양하고 나는 아무것도 아닌 피조물이라고 생각하는 것이 크리스천의 생활이라 여겨졌다.

주를 믿는 것은 여러모로 나에게 손해처럼 보이기만 했다. 믿지 않는 많은 사람도, 교회를 다니는 사람도 이런 이유로 멀리하거나 이중생활을 한다.

하나님 믿으면 술 마시고 담배 피우지 말라고 하잖아, 믿으면 교회 나가야 한다고 하고 돈 내라 하고  시간을 들여 봉사하라고  거잖아 등의 내가 좋아하는 것을 속박하고 나에게 명령만을   같은 생각에 아예 복음을 듣는 것조차도 부담스러워한다.  뿐만 아니라 대다수의 사람들이 내가 혼자 답을 찾고  판단에 의해    있는데 굳이 무슨 예수라는 정답이 필요한 건지 이해를 하지 못한다. 그것은 나약한 사람들이 자신들처럼 똑똑하게 해답을 찾지 못해 매달리는 종교일 뿐이며 예수를 믿는 사람들을 자기 문제 하나 처리 못하는 한심한 사람이라 여기기까지 한다.  이같이 생각하는 사람은 대부분의 중산층 가정에서 크게 돈걱정 없이, 공부도 웬만큼  자신이 똑똑하다고 생각하기에  문제없이 사는 사람들이다. 부모들과 주변 사람들과의 관계도 무난하기에 자신이 아는 방법으로 지금처럼 사는 것에 만족하고 그것이  사는 , 옳은 길이다 여긴다.


그런데 나는 오늘, 성경에서 강요처럼 여겨지던 ‘해라, 하지 마라’가 다른 의미임을 알게 되었다.

그것은 우리의 방식의 언어가 아닌  성경의 언어로 쓰인 ‘주님께서 우리에게 ‘한다, 하지 않는다였다.

예를 들어, 원수를 사랑하라는 말씀은 주님이 “나는 원수를 사랑한다”는 말이었고 그것은 내가 주님을 거부하고 핍박하는 원수라도 나를 사랑한다는 말이었다. 다른 신을 섬기지 말라는 나는 너만을 섬긴다라는 의미였다. 범사에 감사하라는 말은 주님이 나의 모든 것에 감사한다는 말이었고 기뻐하고 경배하라는 주님이 나를 기뻐하고 경배하신다는 것이었다. 하나님은 주이고 나는 그분의 종이라는 말은 주님이 나를 주처럼 대하시고 그분이 내게 종처럼 행하시며 사랑하고 계시다는 걸 알았다.


 모든 말의 의미 속에는’ 우리를 하나님의 형상으로 지으셨다’라는 말이 핵심 키였다. 

우리에게 명령하고 우리를 속박하는 , 우리를 낮추는 것만 같던  모든 말이 실제로는 하나님이 나를 위해 그렇게 하고 계신다라는 의미였다. 그만큼 나를 사랑한다는 말이었다.

이것은 예수님을 믿고 성경의 말씀에서 인생의 모든 해답을 찾는데 굉장히 중요한 말이다.

주님을 믿는 것이 자유를 억압당하고  마음대로   없다고 생각해 성경을 율법적으로 접근하는 사람들에게는 창조주이신 하나님이 우리를 위해 하셨고  하시고 계신 일들이 무엇인 줄 알게 되기 때문이다. 그가 하라고 명령하는 말씀들과 자신을 믿으라는 말씀들 모두  창조주이신 하나님이 우리에게 행하고 있고 그렇게 우리를 믿고 있다는 말씀이다.


주님은 길이요, 진리요, 생명이라고 말씀하셨다. 자신을 믿으라고 말씀하셨다. 그것의 의미는 주님이 나를 길이요, 진리요, 생명이라 생각하고 나를 믿는다는 말씀이다. 절대자인 주님이 나를 길, 진리, 생명으로 생각하고 나를 믿고 있다고 말씀하시는 것이다.  주님은 나를 왕 대접하고 계신다는 말이었다. 절대자인 하나님이 자신의 형상으로 우리를 지으신 이유는 그의 모든 것을 주셔서 나를 영화롭게 했다는 의미였다.

나는 그것을 깨닫지 못하고 나를 하나님이 자신의 영광을 위한 도구로  삼는 것일까?라고 억울하다, 나를 이용하나 의심을 품은 적이 있는데  말이 나에게 모든 것을 주신 주님이 나에게 영광을 돌려주신다라는 의미를 몰랐기 때문이었다. 생각해보면 그분의 모든 능력을 내게 주셔서 내가 사고하고 계획하고 내가 자율의지를 가지고 창조하며 살아가고 있는 것이다.  내가 무엇인가 성취를  자신감이 넘치고 뿌듯할 때에 나는  사실보다  능력의 주인이 나라고 생각했다. 내가 바라고 노력하는 일은 모두 이루어지기에  삶의 주인은 나고 나는 다른 사람들보다 위대하다고 생각한 것이었다.  그렇게 내가 주인 되어 주님에게 내가 길이요, 진리요, 생명이니 주님이 나를 믿고 따르라고 끌고 다녔으니 나는 예수님을 결국 고통 속에 죽게  사람들  하나였다.  

주님을  길로 끌고 다니며 창조주를 조롱하고 모욕했고 실패를 하면  책임을 회피하고 주님을 원망하고 저주하기도 했다.


내가 주님을 제대로 아는 것은 결코 “내가 주님을 위해 무엇을 해주는  아니라 “성경 속에서 “주님이 나를 위해 무슨 일을 하고 계신지를 정확히 아는 , 나에 대한 주님의 마음을 보라는 것”이었다. 

절대자인 주님, 순수하게 우리를 사랑만 하시는 주인이 우리를 위해 하고 있는 일만 알고 믿고 보라는 것이었다.

자신의 삶에 만족을 하기에 주님을 믿지 않는 사람들은 자신이 길이요 진리요 생명이요라고 말하며 창조주인 하나님을 이리저리 자신의 뜻대로 끌고 다닌다.  나를 따라와 보니 얼마나 평탄하냐고?  괜찮지 않냐고? 종이 주인을 끌고 다니는 일이다. 주객이 전도되어 주인에게 내가 명령하며 무시하는 행동이다.

래서 믿는 자들과  믿지 않는 자들의 인생 여정에도 차이가 크다. 주님의 형상을 회복하고 에덴동산, 천국으로 돌아가는 목적을 상실하고 자기 방식대로 주를 자신의 뜻대로 끌고 목적지 없이 떠돌다 죽게  것이기 때문이다. 그것은 주를 죽이는 일이기도 하다.


신앙의 성숙이란 주님을 알아가는 과정이고 주님의 형상을 되찾는 길이다.  처음부터 천국을 주셨지만 천국에서 쫓겨난 것도 우리, 출애굽을 통해 우리에게 이미 준비해주신 천국을 이끄심대로 빨리 들어갈  없었던 것도 우리가 문제였다. 나를 사랑하고  나와 같이 있고 싶어 하는 순수한 주님의 명령을 거역하고 에덴동산에서 나와 결국 예수님까지  마음대로 이리저리 끌고 다니다 십자가에 못을 박아 죽여버렸다. 하지만 주님이 3일 만에 다시 살아나셨다. 그것은 내가 아무리  마음대로 끌고 다니고 십자가에 못 박아도 그는 절대자인 하나님이라는 증거였다.  


당신이 주인이라면 당신의 목숨까지도 당신의 마음대로 할 수 있어야 하는 것이다. 오늘도 주님은 수많은 사람들에 의해 끌려다니다 죽음을 당하시고 다시 부활하셔서 말씀하신다.

내가 길이요 진리요 생명이니 나를 믿으라고. 그것이 진정으로 우리가 사는 길이라고.

절대자인 하나님과 나와의 관계, 그리고 주님의 형상 그대로 지음을 받았으나 죄로 말미암아 그의 형상을 잃어버린 우리가 그의 형상을 회복해 천국으로 돌아가는 과정이 인생이라는 사실을 정확히 안다면 당신의 모든 문제의 해답이 성경에 있다는 말을 믿을  있게  것이다. , 자신이 하고 괜찮은 사람이라고 자부해도 주님을 믿지 않는 것은 주님을 당신의 길대로 끌고 다니다 죽이는 사실을 정확히 안다면 믿지 않는 것이  죄라고 하는지도 이해할  있을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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