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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Momanf Jan 08. 2022

20. 노아의 방주와 나의 비전

노아의 방주에 대한 이야기를 떠올리면 하나님이  세상에 있는 악한 인간을 홍수로  없애기 위한 계획을 가지셨고 당시에 하나님 보시기에 의인인 노아는 살려주시려고 방주를 설계를 맡겼다.  방주를  만들었을 , 각종 동물들 암수와 노아와 가족들을 방주에 넣고 대홍수에서 구해준 , 무지개로 다시는 이런 식으로 사람을 죽이지 않겠다는 약속을 해주셨다고만 알고 있었다.

하지만 그 속에 중요한 요소들을 간과했다.

첫째, 하나님이 사람은 태어나면서부터 악하고 그저 악한 것만 생각하는 것에 지으심을 탄식했다는 것.

둘째, 앞선 계보를 보면 아담에서 노아까지 이어진다고 돼있고, 하나님이 우리 세상에 간섭하셔서 믿음의 자녀를 보내주신다는 것을 알 수 있었다. 그래서 하나님 보시기에 의인이라는 노아는 행위로 말미암아 의인이라는 것이 아니라 태초부터 하나님의 택하심을 받은, 하나님이 주인이라는 것을 알고 자신이 종이라는 것을 바르게 아는 의인이었다.

셋째, 하나님이 우리에게 관심 갖는 오로지 하나는 “구원”이다. 처음 창조했을 때는 하나님과 사랑만 나누는 하나님 닮은 선하디 선한 인간이 사탄의 꾐으로 죄가 들어오며 그 죄로 인해 태어나는 순간부터 악한 생각만 하는 인간들에 대한 탄식 하면서도 포기하시지 못하신다. 하나님은 우리를 너무 사랑하시기에 하나님에게 가장 최고의 관심사는 우리의 “구원” 밖에 없는 것이다. 대홍수를 예언하셨을 때, 방주는 하나님의 구원이시다.

넷째, 방주는 약 70~80년 걸려 노아가 지었다고 한다. 그리고 하나님께서는 길이 삼백 규빗, 너비 오십 규빗, 높이는 삼십 규빗이라는 정확한 설계도를 주신다. 나는 단순하게 방주의 사이즈라 생각했었는데 방주가 구원이라면 구원의 참 뜻, 그 길이와 너비와 높이를 정확하게 알기를 바라는 하나님 마음이라는 생각이 들었다. 그것은 후에 ‘예수님이 그리스도, 그가 구원자라는 것을 염두에 둔다면 예수님의 너비와 길이와 높이와 깊이가 어떠함을 깨달아 하나님의 모든 충만하신 것으로 너희에게 충만하게 하시기를 구하노라’는 예배 소서 3장 19절의 말씀과도 같은 것이었다.

방주는 우리 인간을 구원하는 것이고, 노아가 그 일에 참여했다는 것은 그 구원에 대해 정확히 깨닫고 순종한다는 것이다.

다섯째, 방주를 짓는 동안, 노아가 ‘진짜 안다’는 상태가 된다. 우리는 ‘안다’라는 말을 할 때, 책을 통해 배워 아는 것이 있고, 경험을 통해 아는 것이 있다. 성경에서 아는 것은 경험을 통해 나에게 완전히 체험되었을 때, “안다”라고 한다. 그렇다면 노아가 주님 말씀에 순종하며 방주를 짓는 것은, 그동안 하나님의 말씀을 온전히 체험으로 자신의 것으로 만든 시간이라는 의미다. 그냥 읽는 성경이 아닌 성경을 통한 하나님의 말씀을 살아냄으로써 완전히 삶 속에서 그 말씀을 알게 된 시간이라는 의미다. 노아에게 방주 짓는 시간은 하나님의 구원에 대해 온전히 알게 된 시간이었다.

여섯째, 노아에게 구체적으로 짐승과 가축, 새의 암수와 먹을 양식을 모두 비축하게 하시는데 중요한 점은 명령하시지만 이것을 노아가 찾으러 다닌 것이 아니라 노아에게 이끌어 오셨다는 점이 중요하다. 방주가 지어지자 정확한 타이밍에 주님이 명령하신 짐승들을 노아에게 이끌어 오시고 문을 닫으셨다. 하나님의 비전은 인간의 구원밖에 없고 그 비전을 노아에게 보여주시고 노아가 그것을 완전히 이해할 수 있는 시간을 주었다. 그래서 그 구원의 매개체인 방주를 완성했을 때, 결국 그 계획대로 완성하시는 것은 하나님이라는 사실과 우리를 그 비전에 참여시킨다는 점이 중요한 것 같다.


이 깨달음은 내 비전에도 큰 용기를 주었다.

나는 예수님을 만나고 얼마 후, 40세의 생일을 자축하기 위해 작년에 혼자 마이애미에 떠났었다.

거기서 주님이 나의 비전을 보여주셨고 그때, 내가 쓰던 소설의 제목을 주시고 어떠한 언어로 써야 하는지도 구체적으로 말씀해주셨다. 뿐만 아니라 내가 하나님의 일에 어떻게 쓰일 것이고 그래서 내게 주신 은사가 글 쓰는 것이라는 것을 확실히 알 수 있었다. 그리고 그것을 위해서 내가 평소에 버리고 싶어 하던 내 성격까지 쓰시겠다고 말씀하셔서 나는 그 자리에서 한참을 목놓아 울었다. 예수님의 말씀을 충만하게 들었기에 지금도 그때가 생생하다.

그렇게 생각해보면, 어릴 때부터 내가 좋아하는 것은 글쓰기였다. 상장도 글쓰기에 관련한 것 밖에 없다. 나는 글 쓰는 것을 좋아한다는 것을 알고 있었고 그것이 어렴풋이 내 재능이라는 점을 알고 있었다. 성인이 되면서 나는 영화감독이 되고 싶기도 했고 연극 연출하고도 싶었지만 전혀 다른 길만 걷게 되었다. 하지만 글로 언젠가는 성공하리라는 꿈은 한 번도 바뀌지 않았다

작가로 죽는 게 꿈이다라는 말을 오랜 시간 했지만 생각해보면 정작 단편 한 편 쓴 것 빼고는 꿈만 꿨지 일기도 꾸준히 쓰지 못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항상 글로 성공해 돈 많이 벌고 살아야지가 내 꿈이었다. 그저 꿈만 꾼 것이다.

그렇게 글을 쓸 수 없었던 때가 있었는데 돌아보니 지금까지 한 3년 부지런하게 글을 써왔다. 일기도 꾸준히 쓰는 편이고 브런치에도 거의 150편이 되는 글을 올리고 있다. 무엇보다 A4 200페이지 소설도 쓰고 편집도 네 번했다.

글의 시작을 가만히 따져보니 아들이 자폐스펙트럼일지도 모른다고 생각하고 두 병원에서 검사하고 결과를 기다릴 때였다. 그때, 나는 처음으로 나만 알던 이기심에서 나보다 더 소중한 것이 자식이구나라고 깨닫게 되어 내 자아가 산산이 깨짐을 경험하던 때였다. 그때부터 돈 공부를 시작으로 철학, 선불교에 한참 마음을 두었다가 하나님을 만나게 되었다.


하나님을 알고 소설을 쓰는 동안 몇 번이나 했던 생각이 영감은 나에게서 나오는 게 아니라 주어지는 것이구나라는 것이었다. 그래서 주님을 알고 나서부터는 쏟아지는 영감에 글감이 너무 많아 오히려 시간에 쫓기는 신세가 되기도 했었다.

하지만 이런 경험과 큰 비전에도 불구하고 소설의 출판을 위해 문을 두드리면서 나는 점점 자신감을 잃게 되었고 이것저것 다른 것도 많이 기웃거렸다. 부동산 공부도 하고 있다.

그런데 이번 노아의 이야기로 들려주신 주님의 이야기는 주님이 내게 주신 그 비전에 확신을 주셨고 그 비전을 위한 계획이 내 자아가 산산이 깨진 후부터 시작되고 있었음을 깨닫게 하셨다.

소설을 쓰는 동안, 나는 매번 이 소설은 내게 할 일을 이미 다했다고 말했고 출판이 되면 하나님이 하신 일이라 나는 관객처럼 일어나 기립 박수 치며 지켜보겠다고 말했다.

그동안 돈 많이 벌어 성공하겠다는 내 꿈도 이미 하나님의 비전에 맞게 변했던 것이다.

나는 그 소설을 통해 내가 치유되는 과정을 보았고 그래서 죽어도 용서가 되지 않을 것만 같았던 용서도 하게 되었다. 내 가정도 치유가 되었다. 그 과정에서 소설을 출판사로 보낼 때, 이 글이 나처럼 마음이 아픈 누군가에게 위로가 되었으면, 내가 브런치에 올리는 글로 단 한 사람에게라도 주님의 말씀이 전해지기를 하는 마음으로 꿈이 변해 있었다.

새삼 하나님의 구원의 비전에 나를 참여시켜주심을 깨닫는다.


소설은 오늘로써 2번의 거절을 받았다. 하지만 노아를 생각한다. 사람들에게 무시당하거나 조롱받고 비웃음을 당했을 것이다. 자신도 한 해, 한 해가 지나면서 내가 하는 일이 맞나? 홍수는 일어나지도 않는데? 70~80년간 시간이 지날수록 주님의 비전에 과연 얼마나 많은 의심이 들었을까? 그럼에도 자신의 본업인 농사를 하면서 주님의 비전을 순종하고 묵묵히 해냈다.

그렇다면 나도 엄마로 아내로 내 할 일을 하고 부동산 공부를 하면서도 잊지 말고 꾸준하고 묵묵하게 할 일은 글 쓰는 일이다.

그것들보다 더 중요한 일은 말씀을 묵상하고 하나님의 말씀을 그저 눈으로만 아는 것이 아니라 내 경험으로 체득해 완전히 알게 되는 것이다. 주님과의 교제로 늘 비전을 향한 주님의 구원에 대해 내가 완전히 이해될 때, 내 글은 주님의 손으로 완성이 되어 누군가의 마음에 복음으로 전해질 것이다.

다만 내가 기도하는 것은, 악한 것만 생각하는 이 육신을 입고 하나님의 비전을 당장이라도 보기 위해 안달하고 조바심 내지 않기를.

하나님의 비전을 확신하니 그 약속을 믿고 매일매일 꾸준히 내가 해야 하는 글을 쓸 수 있기를.

성경의 말씀을 통해 예수님이라는 구원에 대해 완전히 알아 가는 것이 내 글이 성장하는 것임을 알고 그 성장한 글로 주님이 비전을 완성하신다는 것을 믿기를.

글이 구원의 매개체로 완성되어질 동안은 세상의 조롱과 무시, 비웃음, 거절을 당하겠지만 그것에 낙담하는 대신 이 시간을 통해서만이 내가 완전히 예수님을 알아가게 되는 시간이기에 감사할 수 있기를.

마지막으로 비가 그치고 땅이 말랐을 때에도 자기의 생각대로 나오지 않고 하나님께서 나오라고 했을 때야 방주에서 나와 여호와께 감사의 제사를 지낸 노아처럼 내 글이 주목을 받고 그토록 원하던 출판이 된다고 해서 주님의 때를 기다리지 않고 뛰쳐나가지 않기를. 끝까지 주님의 명령을 듣고 오로지 구원의 비전으로만 글이 쓰일 수 있도록 최선을 다하길. 내 이름이 아닌 주님의 영광만을 드러낼 수 있기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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