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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Momanf Jan 06. 2022

19. 세 사람

여기 세 사람이 있다.

첫 번째 사람은 거울을 보지 않고 그저 매일 아침, 자신의 얼굴을 닦아내고 깨끗하다 여기며 사는 사람

두 번째 사람은 거울을 보고 자신의 얼굴이 더럽다는 것을 안다. 그래서 매일매일 그 더러움을 닦아내기 위해 갖은 노력을 하며 산다.

세 번째 사람은 거울을 보고 자신의 얼굴이 더럽다는 것을 안다. 하지만 그 더러움은 자신이 닦아 낼 수 없다는 것을 알기에 닦아줄 수 있는 이에게 의지하고 감사히 여기며 산다.

자, 이 세 사람 중 두 사람은 여전히 얼굴이 더럽고 한 사람만 얼굴이 깨끗하다. 과연 누굴까?


세 번째 사람이다.

거울은 율법이고, 얼굴이 더럽다는 것은 우리의 죄이다. 그리고 더러운 얼굴을 닦아주는 사람은 예수님이시다.

이제 이 세 사람이 처한 상황을 이해할 수 있을 것이다.

첫 번째 사람은 자신의 죄를 비춰 볼 거울 자체가 없기에 얼굴을 매일 얼굴을 씻는 습관으로 자신은 깨끗한 사람으로 여기며 산다. 이 사람은 하나님을 믿지 않는 사람으로서 자기가 주인 되어 자신의 생각으로는 매일 습관적으로 세수를 하기에 자신은 착한 사람이라 여기며 사는 사람이다.

 번째 사람은 하나님을 믿고 율법을 보고 자신이 죄인이라는 것은 안다. 하지만  죄를 자신이 닦을  있다고 생각하기에 , 자신의 힘으로는 절대로 지워지지 않을 죄를, 닦는다고 애쓰는 사람이다.

하지만 지워지지 않은  때문에 거울을  때마다 최선을 다해 문지르며 절망에 빠지고 자괴감과 자책을 하는 사람이다. 그래서 아예 얼굴 자체를 더럽게 만들지 말자고 마음먹는다.

세 번째 사람은 하나님이 왜 율법을 거울 삼아 주셨는지를 잘 안다. 그 거울 속에 자신의 죄를 보고 자신이 죄인이라는 점을 그 누구보다 잘 안다. 그리고 그 죄를 자신의 힘으로  없어지는 것이 아니기에 예수님께 의지하고 그가 그 죄를 사하여 주시고 구원해주시는 유일한 방법이라는 것을 잘 안다. 그래서 죄를 바라볼 때마다 예수님을 찾고 예수님에 의해 죄가 사함을 받고 그것에 감사하기에 오로지 예수님께 의지해서만 산다.


이 세 사람의 삶의 방식과 방향은 현저하게 차이가 난다.

첫 번째 사람은 하나님을 믿지 않고 자신이 착한 행동을 하며 살기에 자신은 좋은 사람이라 생각하며 살아간다. 하지만 그의 얼굴에는 더러움, 즉 그에게는 얼굴 가득 더러움이 있다.

두 번째 사람은 하나님을 믿지만 자신의 힘으로 아예 죄를 만들지 않기 위해 노력하고, 죄를 닦아내는 노력으로 죄가 없어질 수도 있다고 생각하는 사람이다. 더욱이 지우다 지우다 지칠 때는, 하나님이 자신이 죄를 위해 열심히 지우려고 노력하는 것을 알아주리라는 자기 합리화를 갖기도 한다. 하지만 결론은 그의 얼굴은 여전히 더럽다.

세 번째 사람은 아무리 자신이 노력해도 죽을 때까지 자신은 죄로 더럽혀졌고 더럽혀질 것을 안다. 이것을 받아들이고 죄를 저질렀다는 것을 알 때마다, 아니 수시로 그 거울을 들여다보며 자신의 죄를 확인한다. 그리고 그 죄를 확인할 때마다 예수님을 부른다. 예수님만이 그 죄를 사하여 주실 유일한 방법임을 알기에 예수님을 꼭 부여잡고 말한다. “주님만을 따르겠습니다.” 원죄에 더해 죽을 때까지 죄를 짓고 살아갈 인간이지만 죄를 닦고 깨끗한 얼굴로 만들어 주실 주님을 알기에 남은 삶을 예수님께 의지해서 평강 안에서 지낼 수 있다.


이 세 사람 중 유일하게 구원에 오르는 자는 세 번째 사람이다. 두 번째 사람은 하나님을 알지만 자신의 힘으로 죄를 저지르지 않고 죄를 구원할 수 있다고 생각하기에 종교에 빠지는 사람이다. 그에게는 예수님이라는 구원자가 없고 자신이 모든 책임을 지려고 하기에 자기의 생각대로만 하나님이 좋아하시는 일을 하기 위해 최선을 다한다. 하지만 그것은 정작 하나님을 믿지 않고 자신이 주인 되어 하나님의 방식이 아닌 자신의 방식에 최선을 다하다가 결국 죄인으로 죽게 되는 가장 불행한 사람이다. 그런 면에서 아예 하나님을 믿지 않는 사람과 동일한 죄인이며 어쩌면 믿지 않는 사람보다 종교에 묶여 자신을 힘들게 만들고 같은 잣대로 다른 사람을 정죄하기에 바쁜 가장 불행한 사람이다.


그렇다면 세 번째 사람의 일상은 어떨까? 육신에 갇혀 평생을 살아가는 우리는 조상으로부터 받은 죄성으로 죄를 짓고 살아가는 인간이다는 것을 분명히 인식한다. 그래서 예수님만이 우리 죄를 사하고 우리를 구원하실 수 있는 유일한 분임을 알기에 예수님에게만 전적으로 의지하며 살아갈 수 있다. 주님이 주신 율법을 알기에 그 거울에 나를 계속 비춰보며 점점 나에 대해 더 깊이 알아갈 수 있다. 나를 알아가면 알아갈수록 예수님의 존재도 더 많이 알아가게 된다. 그리고 나와 예수님의 존재가 깊이가 더해질수록 나는 주님 없이는 아무것도 할 수 없다는 사실을 깨닫게 된다. 그러면 전적으로 예수님께 의지할 수밖에 없게 되고 결국 내 안에서 주님이 진정한 왕이 되실 수 있다. 매일 수시로 더러워지는 나의 죄로 예수님을 부르고 닦아 달라 부탁하게 된다. 나를 위해 닦아주는 그의 손길을 느낄 때마다 나는 감사함으로 그에게 의지해 아예 내 곁을 떠나지 말고 완전히 밀착해 달라고 매달리며 주님만이 구원자라는 고백을 할 수 있게 된다. 그리고 그 안에서 결국 평화롭게 지낼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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