신기한 경험을 통해 깨달은 삶
4월 30일 밤 비행기를 타고 아이들을 데리고 나의 101번째 여행이자 아이들의 10번째 국가인 대만에 도착했다. 호텔에 짐 풀고 아이들을 재운 게 약 새벽 2시 30분쯤이었고 난 3시쯤 잠이 들었던 것 같다. 깊이 자는 중 갑자기 방이 빙빙 도는 현기증을 느끼면서 일어났다. 온몸이 너무 뜨거웠고 말 그대로 온 방 전체가 빙빙 돌아 어지러웠다. 이런 경험과 증상이 처음이기에 너무 놀라 화장실로 들어갔다. 열이 나더니 식은땀이 심하게 나 입고 있던 옷을 모두 벗었다. 내 머리카락이며 온 몸이 축축하게 젖었고 거울 속의 나는 검은 다크서클이 눈 밑으로 내려온 퀭한 눈으로 어지러움과 식은땀에 정신을 못 차리고 있었다. 고통스러웠다. 물을 마시기 시작했다. 그렇게 하면 괜찮을 거라 생각했는데 마시던 물을 그대로 토했다. 이렇게 죽는구나. 죽을 때 기분이 이렇구나 싶었다. 그저 건강하게 일상으로만 돌아갈 수 있다면 일상이 그저 편안한 몸 상태가 얼마나 소중했던가를 감사하며 그것만으로도 충분한 삶을 살 수 있겠구나 생각했다. 그 순간 100프로 느꼈던 게, 그저 어제의 편안함이 내가 가진 최고의 행복이구나 싶었다. 나이가 들고 건강을 잃는 일이 이런 고통이겠구나 정말로 온몸과 마음으로 고스란히 느꼈다. 죽는 순간 같았다. 화장실이 갑자기 빙빙 돌아 차가운 바닥에 앉아 눈을 감고 중심을 잡으려고 멈추려고 노력했다. 따뜻한 물로 샤워라도 해야겠다 싶어 그 새벽에 축 늘어진 몸으로 억지로 샤워를 했다. 그러고 나니 그 고통스러운 어지러움과 구역질 날 것 같은 속이 천천히 편안해지기 시작했다. 하지만 기운이 빠지며 어디 아프다고 정확히 말하지 못하겠지만 그저 에너지가 고갈된 앓는 상태를 경험했다. 샤워 후에도 잠깐 정신을 못 차리고 조금 어지러워 겨우 옷을 갈아입고 아이들 사이로 비집고 들어가 누웠다.
그리고 문득 어제 시누에게서 받은 메시지가 떠올랐다.
Putting Bart down tomorrow at 4. Feeling sad.
시간을 확인하지는 않았지만 그 순간,
바트가 이런 고통을 느끼고 저 세상으로 떠났구나.
안락사 주사를 맞고 이 생을 마감하는 순간에 내게 작별 인사하러 왔구나
한밤중에 잘 자다가 깨 말로 설명하지 못한 고통을 경험한 내 마음속에서 그 이유를 말해주었다.
우리 시월이도 이런 고통을 느끼고 저 세상으로 갔겠구나.
이상하게 들릴지 모르겠지만 나는 그날 아침,
안락사 주사를 맞으면 꼭 그런 기분이 느껴지고 생을 마감한다는 확신과 함께,
내 둘째 시누 개 바트가 내게 싱크로율 되어 마지막 인사를 하고 떠났다는 확신을 했다.
그렇게 잠깐 아이들과 자고 일어나 남편이 배고프다며 9시쯤 깨워 일어났고
간밤에 내가 얼마나 고통스러웠는지를 남편에게 말하며 기운이 쭉 빠진 몸뚱이를 일으켰다.
그 어지러움증이 다시 몰려올까 봐 겁이 났지만, 그러나 또 한편 그것은 오지 않으리라는 것도 알았다.
조식을 먹으면서 남편에게 바트가 내게 마지막 인사를 하러 온 것 같다고 얘기하니 남편도 시간대가 왠지 딱 바트가 떠났을 때 같다고 확신에 차 내 말에 동의했다.
그 강한 확 신의를 가진 동의에 바트와의 추억이 주마등처럼 지나갔다.
내가 알고 있는 가장 쿨 한 제트스키를 잘 타는 개,
내가 30살쯤 미국 유학을 하고 시누 집에 놀러 가면 시누들과 가족들이 하는 말이 100프로 이해가 안 되 나는 바트랑 있는 편이 편할 때도 많았고 그때 나의 아들 같은 말티즈 시월이가 한국에 있어 그 그리움을 바트에게 많이 표현했다. 바트는 내 차 소리만 듣고도 기뻐하며 점프하며 2층에서 뛰어와 나를 반겼다. 레이크 하우스에서 지낼 때, 제트스키를 너무 좋아해서 우리가 시동을 걸면 뱅글뱅글 돌면서 가고 싶다는 의사를 온몸으로 표현해 우리는 바트를 태우고 제트 스키를 타기도 했다. 어떨 때 나 혼자 탈 때는 물을 무서워하는 내게 바트는 가장 친하고 든든한 친구였다. 그 녀석을 씻기기도 했고 마사지도 해주었고 엉덩이를 긁어주기도 했다. 함께 자기도 했고 어떨 때 그 녀석은 우리 차에 올라 우리와 같이 가고 싶다는 의사도 표현했다. 그냥 거의 10년을 미국 생활에서 그 녀석은 내 가장 가까운 가족이기도 했다. 임신했을 때도 바트를 안고 아이들 아껴달라고 속삭였고 내 아들 제임스의 거친 장난도 너무 자상하게 받아주었다. 노쇠해 귀도 멀고 눈도 멀어지는 그 녀석에게 한국으로 돌아오기 전 매일 다시 만나자고, 내가 돌아올 때까지 건강하게만 있으라는 작별 인사를 약 2~3년 정도 했었다. 그리고 이번 겨울에 미국을 처음으로 가지 않은 나는 그래도 내가 돌아갈 7월에 우리 개 걸리를 소개해 줄 거란 막연한 기대를 했었다.
나는 조식을 먹다가 그 모든 추억들에 눈물을 흘렸다. 울고 또 울고 눈물을 닦고 또 닦았다.
작년 8월에 나는 바트에게 마지막 인사를 했다. 그 녀석을 보내고 보니 그것이 마지막 인사라는 걸 지금에서야 알게 되었다. 그렇게 1년에 2회 바트와 시간을 보내면서 하던 마지막 인사의 텀이 너무 길어서 그 녀석이 내가 보고 싶었던 모양이었다. 이번해 겨울 미국에 가지 않은 것이 조금 후회가 되었다. 그토록 고통스러운 순간으로 이 생에와 작별하는 순간에 나를 보러 온 것을 보면 말이다.
나는 내내 내가 머무를 때 비가 많이 온 Taiwan에서 평소처럼 여행의 감흥을 느끼며 돌아다니기보단 기운 없이 그저 편안한 몸상태에 감사했으며 그냥 거의 호텔에서 책을 읽고 휴식했다. 그때 류시화 님의 새는 날아가면서 뒤돌아보지 않는다라는 산문집을 거진 다 읽었는데 뭔가 큰 깨달음이 있었다.
그리고 이번 대만 여행에서 나는 죽었고 다시 선물 같은 삶을 부여받았다고 확신했다.
아직도 기운은 없고 타이완에서의 2박 4일 정도의 기간이 나의 죽음의 의식이었던가라는 생각으로 말로 다 표현하지 못할 이상한 경험에 사로 잡혀 있다.
분명한 것은 늙고 죽는 것의 고통을 실제 했고 편안함이 다시 찾아온 지금을 나는 살 수 있는 기회를 한번 더 얻은 것이리라 믿는다는 것이다.
그렇다면,
앞으로의 삶은 어떻게 살아가야 할 것인가가
바트와 시월이가 내게로 와 무엇을 말하고자 했는지의 의미를 제대로 생각해보고 싶다.
나는 지금 삶을 다시 한번 살 수 있는 기회를 부여받았다.
지금부터의 삶은 모든 것이 덤이다.
그렇다면 편안한 이 몸상태부터 감사할 일이고 사랑하는 내 가족과 사람들과 사는 이 순간이 눈부시도록 감사하며 글을 쓰고 있는 내 정신을 감사할 일이다.
이번 여정은 어디로 할지,
걷던 길에서 멈춰
잠시 여정을 생각해 본다.
다시 채비를 해서 떠날 때는 첫 번째 삶과는 조금 의미가 달라질 것임을 나는 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