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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Momanf Apr 28. 2022

31. 광야 여행 전문가 되고 싶다!

하늘은 맑았고 구름 한 점 없는 파란 하늘에 따듯한 햇볕이 내리쬐는 그야말로 완벽한 날이었다.

사랑받고 사랑하고 기쁨으로 충만했다. 하늘을 올려다보았다. 태양이 너무 눈부셔서 금세 눈을 감고 미소를 머금으며 신나게 걸었다.

그런 풍경화 같은 아름다운 하늘에 구름이 한점, 두 점 몰려오기 시작했다. 작은 구름이 큰 구름이 되더니 이내 솜사탕 같던 구름은 조금씩 회색빛도 띄는 듯했다. 완벽하던 풍경화에 균열이 생기는 듯했다. 나는 갑자기 안갯속에서 길을 잃은 것만 같았다. 나를 찾는 가족들의 목소리가 버거워져서 혼자 있고 싶었다. 친구에게는 섭섭하기 시작했고 질투가 나기 시작했다. 나 자신이 초라하게 보이기 시작했고 쓸모없는 사람처럼 여겨지기 시작하자 나의 먹구름은 두 눈을 타고 비가 되어 내렸다. 외로움과 거절, 받아들여지지 않음, 집착과 무시당함. 불안감이 나를 사로잡아 버렸다. 스펀지처럼 마음의 눈물들을 빨아들여 내 몸까지 가라앉아 지치고 무기력해졌다.

나는 좀 전에 맑은 하늘을 만끽하고 기쁨으로 충만해 있었기에 완전히 뒤바뀐 상황에 몹시 당황했다. 눈을 고정시키고 따라갔던 하나님을 이리저리 기웃거리다 놓쳐버린 것만 같았다.


마음이 힘든 이유를 알기 위해 많은 상념들 속에서 분류하기 시작하자 어린 시절 사랑받지 못한 자의 트라우마라는 결론이 수면 위로 떠올랐다. 부모로부터 한 개인이 성장하며 잘 발달되어야 하는 두 단계인, 하나는 문제가 무엇이든 자녀로서 부모에게 받아들여져야 함이었고, 또 다른 하나는 “나를 봐줘, 나를 봐줘” 할 때, 부모로부터 주목을 받는 것이었다.

나는 이 발달의 두 단계에서 충분히 성장하지 못했음을 깨달았다. 그래서 상대의 가벼운 약속 취소에 거절을 느꼈고 나를 빼고 만나면 버림받은 것으로 느꼈고 문자에 답장을 빨리 하지 않을 때는 내가 하찮게 느꼈다. 그리고 누군가와 만날 때, 나에게 주목하고 있지 않으면 무시당하는 느낌을 받았고 분위기 메이커로 중심이 되길 원했다. 그런 내가 남들보다 뭘 잘 못하면 금세 수치감이 언습해왔고 곧 내게 실망하고 화가 났다.

나는 주목받고 싶었고 모두 다 나에게 집중하고 무조건 받아주고 사랑해주길 바랬다. 그래서 인스타에 나를 나타낼 수 있는 글과 사진을 업데이트하는 것을 좋아했던 것이다.


나는 트라우마를 치료해야겠다고 마음을 먹었다. 가끔 갑자기 스멀스멀 끊임없이 올라오는 감정을 명명하고 원인과 결과의 상관관계를 따져 해소해버리고 싶었기 때문이다. 어린 시절부터 나이 41에 이르기까지 지속되는 아주 낯익은 감정과 이제는 정말로 이별하고 싶었다. 그리고 인간관계에서 오는 내 문제의 패턴은 늘 같았다. 주목받고 관심 얻어 서로를 깊이 알아갈 때, 나는 내가 어떤 사람인지를 어필하려고 애쓴다. 패션에 신경 쓰고 마음을 절제하지 못하고 표현하고 나의 일상의 대부분을 공유하려고 애쓰고 인정받기를 원한다. 그렇게 관계들이 깊어가며 사랑받는 느낌이 들 때의 내 감정은 최고조다. 내 자아는 그때 제일 기가 살아있다. 사람들에게 많이 사랑받아 내가 중요한 사람으로 여겨지고 내 사랑도 맘껏 표현할 때, 내 자아의 행복은 완벽하다.

그러다가 누군가 문자에 답장을 하지 않으면, 내 제안을 거절하고 내 앞에서 다른 사람과 더 많이 이야기하고 나를 빼고 이야기했거나 만난 걸 알게 되면 완벽하던 행복은 균열이 생기기 시작한다. 온통 질투에 사로잡혀 있고 불편한 감정을 곱씹고 또 곱씹으며 상대에게 내가 받아들여지지 않은 것처럼, 상대가 나를 바라보지 않는 것처럼 여겨진다. 그래서 분노가 일어나기 시작한다. 그리고 그 분노를 상대에게 표현하기도 하고 상대를 피해버리기도 한다. 상대를 무시하는 것으로 여전히 표현하는 것이다.


이번에도 여느 때처럼 먹구름이 밀려왔고 관계에 집착을 끊는 방법을 선택했다. 쉽지 않았지만 내가 느끼는 감정을 표현하는 대신 나에게 집중하기로 했다. 불편한 감정을 느끼는 친구들에게 집중하기보다는 주위에 있지만 신경 쓰지 못했던 다른 친구들의 안부를 묻고 만나기 시작했다. 운동을 시작하고 몸을 움직이기 시작했다. 아이들을 돌보는 시간을 집중하고 휴대폰을 멀리하기 시작했다. 내가 하는 일상의 일에도 천천히 그 행위에 몰입하려 애썼다. 계속 무언가를 듣는 대신 혼자 멍하게 생각하는 시간도 가졌다.

그랬더니 불편한 감정을 느끼던 친구들이 문자가 오고 전화가 와 나를 찾기 시작했다. 그리고 내 마음을 다 털어놓지는 않았지만 대화를 하는 동안 나를 걱정하고 생각했던 마음, 무언이었지만 나와 느꼈던 거리감에 다시 거리를 좁히고 싶어 하던 사람들의 노력이 눈에 보였다. 나를 좋아하는 감정을 느꼈고 그들도 그들마다 각자의 자리에서 힘겨운 것들이 많다는 것, 고민들, 그리고 나와 비슷한 감정으로 정신적으로 육체적으로 힘들다는 것들을 깨달았다. 나는 유치하게 굴었던 내 마음을 잘 알기에 그 사람들에게 미안해졌다.

유치하지만 나 혼자만 느끼는 감정도 아니었다. 우리는 모두 죄성을 가진 인간이었기에 늘 죄성끼리 부딪히고 그것에 상처를 받고 짜증과 분노가 일어나는 것이다. 끊임없이 남들과 비교하고 영향을 받고 영향을 주며 의식적으로나 무의식적으로나 실수를 하기도 하고 감정이 상하기도 한다. 사람들은 늘 변화무쌍하고 감정과 상황에 대범하게 중립을 지키지 못한다. 우리 모두 같은 것을 고민하는,  죄성으로 힘겨워하는 똑같은 인간들이라는 것을 깨달았다.

나는 이 과정에서 변화무쌍한 인간들인 나와 타인에게 또 의지하고 시선을 고정했구나, 나는 하나님께 사랑받는, 하나님의 가장 큰 계획으로 창조되었고 구원받은 자가 내 정체성이라는 것을 잊어버렸구나. 하나님을 알고 하나님 안에서 구원받고 그의 사랑으로 살아가는 그 은혜받은 자로 거듭났는데 거짓 자아, 이미 못 박혀 죽은 자아에 시선이 사로잡혀 혼란의 바다에 빠져버렸구나.라고 생각했다.

그리고 고개를 들어 다시 하늘을 보니, 구름 속에 일부가 가려진 해가 쏟아내는 빛이 물 쏟아지듯 땅을 향해 쏟아지는 것을 볼 수 있었다. 눈으로 보이지 않는 저 빛 광선이 구름이 에워싸니 폭포수처럼 땅 위로 쏟아지는 것이 보이다니!

아!

우리 마음이 걱정 한 점 없이 행복할 때는 하나님을 의식하지도 않고 잘 찾지도 않고 바쁘게 할 일만 하고 살아간다. 주님을 잘 볼 수 없다.

하지만 마음에 문제가 생기기 시작하면 어디서 파생된 것인지를 고민하고 해결방법을 찾는 과정에서 우선순위가 뒤 바뀌어 있다는 것을 발견하고 주님이 이 땅 위로 사랑의 빛을 퍼부어 주신다는 것을 볼 수 있게 된다.


맑은 태양 하늘을 우리가 추구하는 행복으로 생각한다면 구름 낀 하늘이 우리에게 달가울 일은 없다. 구름을 마음에 문제들로 여긴다면 구름 낀 하늘은 우리에게 광야라고 표현할 수 있겠다.

사람들은 광야를 빨리 지나길 바란다. 아니면 광야에 들어가지 않게 해달라고 기도할 때도 있다.

하지만 광야를 지날 때만이 내가 그동안 들여다보지 않았던 내면 속으로 들어가 이것저것들을 살피고 정리하기 시작한다. 그리고 내 마음속에 뭐가 있는지 발견하고 나를 더 잘 알게 된다. 구름 사이로 내리쬐는 빛의 광선이 보이듯 광야에서 나를 깊이 알아가면 알수록, 마음이 아프고 슬프고 힘겨울수록, 하나님이 보이기 시작한다. 나만 가득해 주님이 보이지 않던 맑은 마음이 구름을 통해 하나님의 무한한 사랑이 육체의 눈과 마음의 눈을 떠지게 한다. 다시 내 흩어졌던 시선이 되돌아와 주님의 내리쬐는 그 사랑에 고정된다.


광야는 아팠고 슬펐으며 피곤했고 위험했다. 구름이 한 점 두 점 바람에 흩어져 다시 맑은 하늘로 개이기 시작한다. 나는 다시 사랑으로 충만해졌고 따듯해졌다. 기쁨으로 마음이 차올라 다른 사람을 더 많이 이해하고 사랑해 줄 수 있게 되었다.

하지만 이 맑은 하늘이 너무 눈부시고 아름답고 기쁨으로 충만된 행복하지만 해가 내뿜는 광선을 볼 수는 없다는 것을 나는 안다. 마음에 기쁨이 차 오를 때는 성령 충만의 증거가 되기도 하지만 주님을 볼 수 없어 하늘을 올려다보지 않고 타인과 나에게로 시선을 돌리고 살아가기 바쁜 시간이 되는 것을.

그래서 주님이 바람으로 구름 한 점, 두 점을 허락하셔서 다시 하늘로 고개를 들어 주님 사랑의 빛을  바라보게 하심을. 흐트러져 있던 시선을 다시 하늘로, 주님에게로 고정하시는 것임을.

그리고 이 반복되는 과정을 끝없이 하며 살아간다는 것을 나는 이제 안다.


그러니 이제 광야를 여행하는 마음으로 내려갈 수 밖에야. 광야에서 돌아오는 길에는 늘 사랑으로 기쁨이 채워져 주님이 내 안에서 역사하시는 것을 바라볼 수 있기에. 그 영광과 기쁨이 나를 무척 행복하게 하는 것임에,

우리가 편안한 집을 두고 가방을 싸고 불편하고 힘든 여행을 마다하지 않는 것처럼. 여행지는 힘들지만 낯선 풍경들과 사람들을 만나고 새로운 것들을 경험해보는 매력이 있기에 나도 광야로 여행하는 것을 즐기고 광야로 여행하는 광야 전문가가 돼보기 위해 노력하겠다.


분명히 기억할 것은 내 집은 하나님이 계시는 편안한 곳. 내가 사는 주거지. 어디를 나갔다 오더라도 꼭 돌아올 곳. 나는 하나님의 자녀로 하나님의 계획으로 만들어진 사랑받는 존재라는 것. 이것이 내 진짜 자아이고 내 집이다. 일상을 살아가며 부딪히는 죄성, 감정, 육체의 욕망과 관련된 모든 것들로부터 파생되는 것은 나의 거짓 자아라는 것, 여행지를 집으로 삼고 살아가려는 어리석음, 혹은 부질없음. 그곳들은 내 종착지가 아니다. 는 사실.


여행은 힘들지만 장소와 그 시간이 인생에서 아름답고 새로움에 설레기 때문에 좋은 것이다. 앞으로 나는 집에만 머물며 편안하게 살기를 기도하는 대신 조금 불편하고 힘들고 낯설고 불안하고 때론 위험하고 무서워도 광야로 자주 여행을 다니겠다. 그래서 주님 사랑을 보고 그 힘으로 성령이 충만해 다른 사람들을 이해하고 사랑하고 주님을 느끼고 향기 맡을 수 있도록. 역사하시도록, 나는 계속 들락날락하며 집안에만 안주하지 않도록 광야 여행 전문가가 되어야지.


광야는 그런 의미에서 차에 넣는 기름처럼 내 삶과 일상에 평생토록 에너지가 되어 줄 것이다.

고난은 오히려 생활에 활력을 줄 수 있는 광야로 여행을 떠난 것임을 깨닫자. 맑은 하늘에 구름 한 점을 느끼기 시작한다면 곧 광야로 떠날 시간임을 깨닫고 낙담하고 좌절하며 위험이 늘 도사린다는 것은 알지만 나에겐 돌아갈 집이 있다는 것, 그곳에 주님이 계시다는 것만 기억하자.  

물에 빠져 허우적거리며 목숨이 위태로울 수 있는 위험에 처할지도 모르겠지만 주님은 자식에게 눈을 떼지 않고 구해주시는 부모라는 점을 기억하며 광야로 여행하는 것을 즐기며 살아가야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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