7. 인정 욕구

by Momanf

폭풍같이 오후가 지나고 잠잠히 아이들을 먹이고 씻기고 재운 밤, 수경은 일어나 조용히 옷장에 넣어 두었던 쇼핑백을 꺼내 거실로 들고 나와 스탠드 불을 켰다. 그리고 가방을 꺼내 사진을 찍었다. 소파에 털썩 누워 휴대폰을 꺼내 조리원 친구들의 채팅방을 열었다. 매일 이 시간쯤에는 일상에 일어난 일들에 대해 시시콜콜하게 수다를 떨었다. 수경처럼 친구들도 아이들을 재우고 나와 TV를 보고 있거나 혼자만의 시간을 즐기고 있는 중이었다. 수경은 금방 찍어두었던 가방을 그 채팅방에 올렸다. Ryan의 반품하라는 성화에 가방을 간직할 수는 없겠지만 친구들에게만큼은 어쩐지 그 가방을 소유했었다는 사실을 알리고 싶었다. 가방이 너무 예쁘다고 칭찬하는 친구, 클래식한 스타일이라 질리지 않고 들고 다니겠다는 친구, 시간이 변해도 가치가 있다는 친구, 이 모델은 연예인 누가 즐겨 든다고 말하는 친구도 있었다. 하지만 어쩐지 그녀들의 답변은 수경의 마음을 채워주지 못했다. 모두들 정작 그들은 자신들이 얼마나 그 브랜드에 대해 잘 알고 있고, 이미 소유하고 사용해봤기에 잘 알고 있다는, 여전히 자기들을 자랑하는 말처럼 여겨졌다. 결국 자기도취에 취한 답변들을 바라보며 수경은 대화에 끼지 못하고 메시지를 읽어 내려갔다. 그때, 한 친구가 수경의 남편이 명품백이라면 질색한다더니 어떻게 이 가방을 받아냈냐고 하자, 수경은 웃는 얼굴 이모티콘으로 답변을 달았다. 수경의 입가에 미소가 번졌다. 그리고 친구들과 채팅방에서 수다를 떠는 손가락이 분주해졌다.

하지만 수경은 곧 휴대폰을 내려놓으며 허공 중에 긴 한숨을 쉬었다. 그리고 다시 명품백 사진을 열어 그것을 한참 바라보았다.

‘가질 수 없다. 나에게 이 가방을 구입할 돈이 없으니 반품해야 한다.’

수경은 자리에서 일어나 소파 옆에 둔 명품 가방을 한번 쳐다보고 다음 모임에 꼭 들고 오라는 메시지를 다시 읽었다.

[아니. 사고 보니 이 돈 주고 살만한 값어치가 있는 가방인가 싶어서 반품할까 해.]

수경은 오리 떼들 속에서 홀로 헤엄치는 백조를 떠올렸다. 우월함을 느끼는 동시에 무리들과 어울리지 못하는 외로운 백조에게 연민을 느꼈다. 백조가 회색의 털도 고르지 않은 오리로 변해 버렸다. 오리 떼들을 보고 따라갔지만 오리 떼는 시선조차 주지 않고 자기들끼리 줄을 지어 유유히 못생긴 오리를 떠나버렸다.

수경은 그녀들처럼 비싼 돈을 주고 명품을 쉽게 살 수 있는 형편이 아니다. 그녀들처럼 남편과 인기 있는 드라마를 함께 보거나 아이들 재워놓고 야식을 시켜 먹고 낄낄대지 않는다. Ryan은 먹는 것을 그리 즐기지도 않고 야식은 아예 먹지 않는다. 스포츠를 좋아하고 드라마를 전혀 보지 않는다. 수경은 드라마를 좋아하고 스포츠를 좋아하지 않으며 아무거나 잘 먹는다. 그녀들은 친정부 모가 전적으로 육아에 참여해주고 시부모도 육아나 경제적인 지원에 적극적이다. 언제든 친정이나 시댁에 아이들을 맘 편히 맡기고 자유롭게 외출도 할 수 있다. 철마다 그녀들의 부모들은 손주들 먹이라며 유기농 과일이나 채소를 보내기도 하고 선물을 받는다. 어버이날에 그녀들은 자신들의 부모에게 어떤 선물을 하는 것이 좋은지 함께 고민하기도 하고 ‘용돈을 얼마 드렸네’ 하며 어버이날 어떻게 보냈는지를 공유하지만 수경은 그럴 부모나 시댁이 없다. 어린이날과 아이들 생일에는 친정이나 시댁에서 무엇을 받았는지 아이들의 선물들에 대한 대화에도 수경은 참여할 수 없었다. 아이들 이야기가 아니면 수경은 그녀들과 아무것도 공유하거나 공감할 수 있는 주제가 없다. 자신에게는 부모가 있지만 20년을 보고 살지 않고 있다거나 함께 살고 있는 남편과는 의사소통이 잘 되지 않고 공감하지 못하고 사는 수경의 얘기들은 그녀들과는 확실히 너무 달랐다. 수경은 그럼에도 그 무리에 끼고 싶었다.

‘내가 왜 이 가방을 그토록 갖고 싶어 했을까?’

자신에게 이런 질문을 하자, 학교 수업뿐만 아니라 이 집 저 집 운전해 과외까지 가르치러 다니며 중간중간 김밥이나 햄버거로 겨우 끼니를 때우며 일로 지친 남편이 떠올랐다.

‘내 힘으로 되지 않는 늘 나를 돕는 친정, 물질적으로나 심리적으로나 든든한 시댁이 부러웠다. 언제든 도움을 요청할 수 있는 부모가 없는 내 초라한 현실이 싫었다. 남편과 문화와 언어 차이 때문에 서로 공감하는 것이 줄어들자 관계가 멀어졌고 우리의 관계가 단지 자식을 위해서만 지탱되는 것이 아닌가? 하는 외로운 현실이 싫었다. Ryan 혼자 가족 네 명을 먹여 살려야 하니 금전적으로 넉넉지 못해 여행은커녕 Ryan과 내가 개인적으로 자유롭게 쓸 돈도 없다는 현실이 싫었다. 명품백으로 그것을 다 감추고 싶었다. 나는 나 자신이 부끄러워 감추고 싶었다.’

수경은 휴대폰을 끄고 소파에서 일어나 앉자 식탁 위에 먹다 남은 Ryan이 즐겨 먹는 삼각 김밥이 눈에 들어왔다. 삼각 김밥을 물끄러미 바라보는 수경의 눈에 눈물이 차올랐다.

‘또 서로를 아픈 말로 난도질했구나. 그렇잖아도 둘 다 힘들게 버티는 중인데.... 나는 곧 죽고 두 아이의 짐을 모두 어깨에 얹고 Ryan은 홀로 살아가야 하는데 나는 도대체 그렇게 가여운 남자에게 무슨 짓을 했던가?’

바닥에 둔 가방으로 시선이 닿자 뺨 위로 눈물이 흘러내렸다.

‘6개월 밖에 남지 않은 이 시간을 살면서도 아직까지 내 인생에서 뭐가 가장 중요한지, 내가 남은 날을 어떻게 살아가야 하는지도 모르는 이런 바보 멍청이가 애 둘을 낳은 엄마라니. 참, 애가 애를 낳아 기르고 있는 꼴이니 육아가 이 만큼 고달팠겠지.’

수경은 두 손으로 얼굴을 감싸 쥐고 울었다.

서른아홉. 어른이라 생각했지만 ‘모든 것이 부모 때문이야, 부모 때문이야’ 하며 여전히 울고 불며 소리 지르는 어린아이였다. 그 아이는 풍족한 집에서 부모의 사랑을 듬뿍 받고 자라길 바랬고 부모가 자신을 지켜주길 바라왔다. 하지만 현실은 바람과 달랐고 몸은 서른아홉의 해를 거듭하며 성장했지만 그 아이는 거기 그대로 서 있었다. 한 때는 자신을 발전시키려고 부단히 노력했고 덕분에 사랑하는 남자를 만나 쌍둥이 남매와 가정을 이루어 만족한 때도 있었다. 열등감이 원동력이 되어 운명을 스스로 바꾸었다고 자신을 자랑스럽게 여긴 적도 있었다. 하지만 늘 다리 길이가 달라 넘어지고 절뚝거리는 사람처럼 육체와 함께 성장하지 못한 아이와 함께 늘 넘어지곤 했다.

수경은 조심스레 가방을 상자에 밀어 넣고 종이 가방에 담고 일어나 거실 불을 껐다. 아이들이 자고 있는 캄캄한 방에 조심스레 들어가 손을 더듬어 옷장 안으로 가방을 밀어 넣었다. 그리고는 아이들이 자는 침대로 들어가 아이들 사이에 공간을 더듬어 파고 들어가 누웠다.

오후에 백화점에서 명품백을 들고 우쭐해하던 여자는 달콤한 꿈이었다. 삼각 김밥을 먹으며 지쳐서 집에 들어오는 남편. 후줄근한 옷을 입고 눈물이 많아진 아이들. 그리고 수경은 곧 그들과 함께 없다는 것이 현실이었다.

수경은 흐느끼며 아이들을 더듬어 그들의 볼에 입 맞추고 품에 한 명씩 꼭 껴안았다.

‘미안해. 미안해.

너희들을 낳고도,

죽음 앞에서도 여전히 철이 없는 엄마라서 미안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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