8. 선인장을 껴안은 남자

by Momanf

수경은 다음날 가방을 반품하기 위해 아이들을 어린이집 보내자마자 백화점으로 향했다. 수경의 기분 탓인지 직원의 태도는 가방을 살 때와 반품할 때가 달라 주눅이 든 수경은 황급히 백화점을 나왔다. 버스정류장으로 걸어 나오며 쇼핑백이 없어 홀가분하다 생각했다. 백화점으로 오는 버스 안에서 쇼핑백을 안고 앉아 있었던 게 어쩐지 불편했기 때문이다. 버스에 올라타던 여자들의 시선에서 ‘왜 그 가방을 안고 이 버스를 타고 있냐?’고 비아냥 거리는 것 같았다. 버스에서도, 조리원 친구들에게도 그 어느 곳에도 속할 수 없는 아웃사이더 같았다.

버스에 자리를 잡아 창가에 기대 눈을 감으니 마음이 편안해졌다. 자기 자리에 돌아온 거 같은 소속감을 느꼈다.

집에 도착한 수경은 Ryan의 책상 위에 가방 반품 영수증을 올려놓고 집 청소를 시작했다. 어제 싸움 이후, 두 사람은 서로에게 아무 말도 하지 않았다. 각자 아이들에게 아침 인사를 건넸고 Ryan은 눈 마주침도 없이 그저 Bye라고 짧은 인사만을 남기고 아침 일찍 출근해 버렸다. 청소를 마친 수경은 동네 마켓에서 모처럼 갈비와 양념 재료들을 사 와 오후 내내 정성 들여 양념을 만들어 갈비를 재우는데 문자가 울렸다.

[I’m sorry about yesterday. I was mad and I’ve been feeling bad what I told you yesterday. Please don’t take everything is true. I know you are doing great. You are the great mother of our kids. I can’t take kids from you. I am sorry that I said that I would take kids from you. It was mean. It was wrong. Sukyeong, We are a team. I love you.] (어제 일은 미안해. 나는 화가 났고 내가 어제 당신한테 한 말로 기분이 안 좋아. 내가 한 말이 모두 다 진실이라 여기지 마. 당신이 훌륭하다는 걸 알아. 당신은 우리 아이들의 최고의 엄마야. 나는 당신에게서 아이들을 데리고 올 수 없어. 당신으로부터 아이들을 데려온다고 말했던 것 정말 미안해. 정말로 그렇게 말한 것은 나빴어. 그것은 잘못됐어. 수경, 우리는 같은 팀이야. 사랑해.)

수경은 그 문자를 읽고 눈시울이 붉어졌다. 수경은 미안하다는 말하고 싶었지만 그 말이 자신의 미안한 마음보다 가볍게 여겨져 쉽게 답장을 보낼 수가 없었다.

수경과 Ryan은 연애시절부터 이런 식의 패턴으로 싸우고 화해해 왔다. 수경은 소리 지르고 헤어지자는 말을 반복적으로 했고 Ryan이 늘 먼저 사과하고 수경에게 사랑한다고 손 내밀어 주었다. 수경은 한 번도 고백하지 않았지만 그의 행동에서 깊은 안도감을 느꼈다. 가시 돋친 말로 Ryan을 상처 주면서 실은 그가 정말로 떠날까 봐 그녀는 불안해했었기 때문이다.

수경은 자신이 메마른 선인장 같았다. 고약한 말의 가시는 부모로부터 보장된 보호와 안전, 사랑을 받기는커녕 오히려 학대를 당하고 버려졌기에 생겨났다. 일차적인 신뢰감을 상실한 사람은 ‘모든 사람은 쉽게 자신을 버리거나 떠날 것이다’를 마음에 새긴다. 상대에게 버림받기보다는 자신이 먼저 상대를 떠나는 편이 나았다. 가시는 점점 매섭게 자라나 ‘나는 아무도 필요치 않다’, ‘물도 없는 사막에서도 견딜 수 있다.’라고 가장할 수 있었다.

누군가와 관계를 맺을 때, 그 날카로운 가시 안에 있는 속살을 봐주길 바랬으면서도 정작 더 날카롭게 가시를 세웠다.

하지만 Ryan만은 달랐다. 그 가시가 가짜라는 사실을 알아준 유일한 사람이었다.

“Sukyeong, You are crazy but I still love you. I am not going anywhere.” (수경, 너는 막무가내야. 하지만 나는 너를 사랑해. 나는 아무 데도 안 갈 거야.)

Ryan은 수경이 부모로부터 사랑과 보호를 받지 못한 것을 마음 아파했고, 부모 없이 열심히 살아온 것을 높이 평가해 주었다. Ryan은 수경에게 절대로 떠나지 않는다는 약속으로 그녀를 안심시켜 준 유일한 사람이었다.

그날 저녁 Ryan의 퇴근 시간에 맞게 수경은 갈비를 굽기 시작했고 그가 집으로 돌아왔을 때, 너무 미안해서 그와 눈도 마주치지 못했다. 상을 차리는 동안 그를 기다렸지만 한참 동안 나오지 않자 수경은 Ryan의 방으로 가서 문을 두드렸다.

“Dinner is ready, It is galbi.”(저녁 준비했어. 갈비야.)

“Oh, I should have known about it. On the way home, I had a hamburger because I was starving.” (오! 내가 그것을 알았어야 했어야 했는데. 집에 오는 길에 너무 배고파서 햄버거를 사 먹어 버렸어.)

수경은 Ryan에게 미안한 마음으로 오후 내 정성스럽게 양념을 만들어 그에게 푸짐하게 저녁을 차려 줄 참이었다. 갈비는 그녀의 사과였기에 실망감이 밀려왔다. Ryan에게는 그저 음식일 뿐이었지만 수경은 자신의 사과에 대한 거절로 여겨졌다.

“OK. Never mind. Anyway, I refunded the bag as whatever you want.” (알았어. 신경 쓰지 마. 어쨌든, 당신이 원하는 대로 나는 가방을 반품했어.)

수경의 말에 가시가 돋쳐 있었다.

“Thank you Sukyeong. Thank you so much. And I am gonna eat galbi tomorrow for sure. Could you leave it for me?” (고마워, 수경. 정말 고마워. 그리고 확실히 내일 갈비 먹을게. 나를 위해 좀 남겨놔 줄래?)

Ryan은 다정스레 수경에게 다가왔다.

“My words yesterday was mean, I am sorry, Sukyeong” (어제 내 말은 진짜 심했어. 미안해, 수경)

“OK.” (알았어.)

수경은 자신의 가시가 날카롭게 곤두서자 당황하며 얼른 주방으로 나갔다.

“Are you still angry at me?” (당신 아직도 화가 났어?)

뒤따라 나온 Ryan이 수경에게 물었고 수경은 당황하며 재빨리 고개를 저었다. 복잡한 감정은 수경의 얼굴을 경직시켰고 그 마음을 다 헤아릴 길 없는 상대는 여전히 그녀가 화난 것처럼 보였다. 얼굴 표정으로 괜한 오해를 사고 싶지 않아 수경은 용기 내어 Ryan에게 말했다.

“I am sorry, too. “ (나도 미안해.)

수경은 Ryan의 얼굴을 외면한 채, 아이들의 식사를 거들어 주었다.

“Sukyeong, we are a team, not enemies.” (수경, 우리는 적이 아니라 팀이야.)

수경은 Ryan의 말에 고개를 끄덕이는 것으로 동의했다. Ryan은 아이들에게 말을 걸며 먹는 모습을 지켜보았고 준은 양념이 묻은 갈비를 손으로 뜯어먹다가 바닥에 던지고는 식탁에 손을 쓱쓱 닦았다. 수경은 그 갈비뼈를 줍고 테이블을 닦으며 한숨을 쉬었다.

“If we are a team, could you help me right now?” (우리가 팀이라면 지금 당장 나를 좀 도울래?)

감정의 쓰나미로 인해 불안정한 상태에서 인내심이 점점 바닥나기 시작하고 있었다. 더군다나 Ryan과 함께 식사를 하려고 기다린 탓에 배도 고팠다.

“O.Ok” (알. 알겠어.)

수경의 말에 Ryan은 당황하며 준이 옆에 앉아 준이가 밥을 먹는 것을 거들기 시작했다.

“I prepared galbi from scratch all day, so I didn’t have time to eat anything. I am starving.” (나는 하루 종일 양념부터 만들어 갈비를 준비했어. 그래서 먹을 시간이 없었어. 너무 배고파 죽겠어.)

그녀는 배가 고플 뿐만 아니라 감정까지 허기져 있다고 생각했다.

“Why didn’t you call me? How could I know you are making galbi tonight?” (왜 전화 안 했어? 내가 오늘 당신이 갈비 만드는지 어떻게 알 수 있어?)

수경의 짜증 섞인 말투에 마침내 억울해하며 Ryan이 말했다.

“You usually come home and make potpie for dinner, so I just thought today is like the other days.” (당신은 주로 집에 와서 저녁으로 팟파이를 먹잖아, 그래서 나는 오늘도 다른 날과 똑같은 날이라고 생각했어.)

수경도 자기가 억지를 부린다는 것을 알고 있었지만 자신의 마음을 어쩌지 못하고 있었다. 수경에게 화는 가장 표현하기 쉬운 감정이었다.

“I’m sorry.” (미안해.)

Ryan은 지친 기색으로 수경에게 말했다. 마음은 고삐 풀린 망아지 마냥 날뛰는 것을 인식하고 있음에도 멈출 줄을 모르고 내달렸다.

“Please take care of kids if you are not hungry. I need to eat. I am starving.” (당신 배고프지 않으면 아이들 좀 돌봐. 난 먹어야 해. 너무 배고파.)

수경의 큰 목소리에 보리가 수경을 보며 물었다.

“엄마 왜? 엄마 화났어? 아빠가 잘못했어?”

수경의 날뛰는 감정 망아지가 보리에 의해 고삐가 잡혔다.

“아. 아니야. 미안해.”

수경이 당황하며 일어나 밥솥에서 자신의 밥을 푸기 시작했다.

“엄마. 아빠는 착해. 아빠는 착한 사람이야. 이 놈 하지 마. 응?”

보리가 Ryan을 안쓰럽게 보며 부탁했다. 준이도 수경과 Ryan을 표정을 살피고 있었다. Ryan의 지치고 슬픈 얼굴과 걱정스러운 아이들의 표정을 보는 게 싫었다. Ryan에게 미안한 본심을 전하기는커녕 준비한 갈비를 먹어 주지 않는다는 이유로 그에게 화내고 있었다. 아이들 앞에 있는 그녀 자신이 그들과 똑같이 감정을 통제하지 못하는 네 살 배기라는 생각에 창피해졌다.

‘밥을 먹자, 밥을 먹자. 배고파서 더 예민하게 굴고 있는 거야. 밥을 먹자.’

수경은 테이블에 앉아 밥을 먹기 시작했고 고개를 떨군 Ryan의 옆모습을 바라보자 수경의 가슴이 누가 대문을 몽둥이로 쾅쾅 쳐대듯 울렸다.

‘그가 지쳤다. 정말로 나란 여자에게 지쳐 버렸다.’

예전부터 아기들이라 아무것도 모른다고 생각해 아이들 앞에서 마구 소리를 질러대곤 했었다. 접시나 물건을 세게 놓거나 문을 쾅 닫아 버리며 보란 듯이 화를 내기도 했다. 그 소리에 깜짝깜짝 놀라던 아기들을 수경은 잊을 수가 없었다. 그렇게 격렬하게 싸운 날에는 아이들이 수경의 품으로 파고들며 두려워하기도 했었다. 그 모습에 부부는 아이들 앞에서는 싸우지 말자고 합의했고 사소한 불만이 꼭 싸움으로 이어졌기에 부부는 더 이상 깊이 대화를 하지 않게 되었다. 그 기억이 떠오르자 수경은 아이들의 표정을 살폈다. Ryan도 같은 생각을 했는지, 일부러 비행기 소리를 내며 숟가락을 비행기 삼아 아이들의 입 안으로 음식을 넣어주기 시작했다. 아이들은 Ryan의 행동에 금세 웃었고 수경은 조금 안도했다. 예전만큼 목소리를 높이며 아이들 앞에서 싸움은 것은 자제하고는 있지만 두 사람의 불편한 기류를 느낄 만큼 아이들도 자랐다는 것을 수경은 깨달았다.

“우리 보리, 준이 밥을 참 잘 먹네. 아빠가 비행기를 만들어 줘서 더 잘 먹는 것 같네. 아빠 정말 재미있다. 그렇지?”

수경은 아이들의 눈치를 살피며 그렇게 말하고 과장해서 입 꼬리를 올려 미소를 지었다. 식사 후, 수경과 Ryan은 서로 아무 말 없이 아이들을 함께 씻기고 잠옷을 갈아입히고 침대에 뉘었다.

“Sukyeong, Thank you so much to cook galbi for us. I am excited to have it tomorrow. I tasted it a little bit and it was awesome as usual.” (수경, 우리를 위해 갈비를 만들어줘서 고마워. 내일 먹을 생각에 신나, 내가 조금 맛봤는데 평소처럼 너무 맛있었어.)

수경은 다정한 Ryan의 말에 온몸에 힘이 풀리는 것 같았다.

‘그가 다시 돌아와 주었다.’

“I don’t want to sleep with this bad feeling. We are a team. I love you.” (나 이렇게 나쁜 감정으로 잠들고 싶지 않아. 우린 팀이야. 사랑해.)

Ryan은 수경을 품에 안았다.

“I love you too. Thank you for everything.” (나도 사랑해. 다 고마워.)

수경도 Ryan을 꽉 안으며 말했다.

Ryan은 수경의 이마에 입을 맞춘 후, 아이들에게 다가가 굿 나이트 키스를 하고 조용히 방에서 나갔다. 아이들은 수경의 두 팔에 편안하게 누웠고 수경은 두 아이를 안고 입을 맞춰주었다.

수경은 안도감에 자장가를 부르기 시작했다. 평소보다 더 열심히 정성을 다해 불러 주었다.

아이들은 수경의 품에 누워 편안히 잠들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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