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엄마~”
아침에 눈을 뜬 보리가 수경을 불렀다.
“굿모닝, 보리야”
수경은 딸의 머리를 쓰다듬으며 양팔을 벌렸고 보리가 함박웃음을 지으며 수경에게 안겼다.
“굿모닝, 준.”
준이는 잠이 덜 깬 채, 수경의 배 위로 올라와 누웠다. 수경은 준이를 한 팔로 감싸 안고 다른 팔로 보리를 안으며 두 아이들의 머리에 입을 맞추었다.
“부모닝~.”
어설픈 발음으로 수경을 따라 하는 준이다.
준이는 보리와 비교해 말이 많이 늦었고 발음이나 문장이 또래에 비해 많이 서툴렀다.
“우리 보리, 준이 잘 잤어? 좋은 꿈 꿨니?”
아이들은 수경의 겨드랑이 사이로 파고들었고 수경은 팔에 힘을 주어 더 꽉 안아 주었다. 그렇게 한참을 서로를 끌어안고 침대 위에서 눈을 감은 채 누워 있었다. 시간은 7시. 아이들을 30분이라도 더 재우고 싶은 마음에 수경은 화장실을 가고 싶었지만 참기로 했다. 화장실 간다고 일어서면 아이들도 쪼르르 따라 일어나 나올 게 뻔했기 때문이다. 아이들도 그렇게 한참을 엄마를 끌어안고 누워 있었다. 강아지 소리가 나자, 보리가 번쩍 눈을 뜨더니 “멍멍이”하며 일어나 문을 열었다. 시월이는 방으로 들어서며 신나게 꼬리를 흔들었고 침대 위로 폴짝 뛰어올라 수경의 얼굴을 마구 핥아 대자 수경은 웃었다.
“그래. 그래. 시월아, 잘 잤니? 굿모닝”
아이들도 강아지를 껴안고 입을 맞추고 까르르 웃었다. 수경은 아이들을 물끄러미 쳐다보며 미소 띤 얼굴로 자리에서 일어나 앉았다. 수경은 다시 한번 보리, 준이, 시월이 까지 한 번씩 꼭 안아주고 입을 맞추어 주고는 자리에서 일어나 커튼을 열었다. 주위가 환해지자 보리는 기다렸다는 듯 침대 맡에 있는 책을 펼쳤고 준이는 장난감 상자가 놓인 선반으로 가 장난감을 꺼내 놀기 시작했다.
아이들이 책을 보고 장난감을 가지고 노는 동안 수경은 주방으로 나가 냉장고에서 우유와 과일을 꺼냈다. Ryan은 안 방에서 나오며 경쾌한 목소리로 아침 인사를 하며 다가와 입을 맞추었다. 그녀가 무표정한 얼굴로 대답하자 그녀의 시선을 따라다니며 웃자 마침내 수경도 미소를 지었다. 그제야 Ryan은 콧노래를 부르며 휴대폰을 들고 화장실로 들어갔다.
‘시간이 한계가 있다는 걸, 우리가 사는 모든 순간에 깨닫고 살았다면 나와 남편의 관계도 이것보다는 더 좋았을까?’
두 람은 언어와 문화가 달라 자주 소통의 문제를 겪었다. 서로의 말 뜻을 잘 이해하지 못해 짜증이 나 대화를 포기해버리기도 했다. 영어는 수경에게 큰 좌절감을 느끼게 했다. 남편이 수경의 말을 잘 못 알아듣거나 하고자 하는 말과 다르게 이해하면 쉽게 짜증이 났다. 대화가 줄어 갈수록 두 사람은 서로의 감정을 짐작하기만 하고 자기 식대로 상대의 말이나 행동을 해석해버리고 말았다. 오해가 쌓일수록 두 사람의 관계는 골이 깊어져 갔지만 육아와 일로 바쁘다는 핑계와 쌓아둔 감정들의 엉킴으로 관계에는 늘 팽팽한 긴장감이 있었다. 서로 부딪히면 재빠르게 수습한 후, 각자의 자리로 돌아가 분주한 쳇바퀴만 돌렸다. 늘 표면적인 화해는 임시적인 조치였을 뿐, 둘의 관계는 휴화산 상태와 같았다. 수경은 이 상태로 영원한 이별을 맞이하고 싶지 않다는 의지는 분명했지만 어디서부터 어떻게 시작해야 할지 막막했다.
Ryan이 막 화장실 문을 열고 나오는데 아이들도 엄마를 찾아 주방으로 달려 나왔다.
“Good morning.” (좋은 아침.)
Ryan은 자신을 지나쳐 주방으로 가는 아이들에게 인사했고 보리가 아빠에게 다시 돌아가 안겼다. 아이들은 주방으로 오다 거실에 있는 작은 미끄럼틀에 올라타 깔깔 거리며 내려왔다.
토스트 안에서 구워 나온 고소한 빵 냄새, 아이들의 웃음소리와 남편이 커피빈을 분쇄기에 넣은 향기에 수경은 하던 일을 멈추고 아이들과 남편을 봤다.
‘늘 이래 왔던가? 이런 행복한 아침을 그동안 매일 맞았으면서도 내가 알아차리지 못했던 것일까 아니면 내가 이제 남은 날이 6개월뿐이기에 느낄 수 있는 소중함인가? 왜 이런 날들을 평범하다고 불평하며 충분히 살아내지 못했을까? 잠을 더 잘 수 있다면, 아이들이 가능한 한 늦게 일어나 줬으면, 맘 놓고 화장실 좀 다녀왔으면, 책 한 권 맘 편히 읽는 아침이었으면.... 얼마나 오랫동안 뭔가를 바라기만 했을 뿐, 정작 이런 아침을 놓치고 살아왔나? 애초에 파랑새는 여기에, 지금 내 앞에 이렇게 머물고 있었는데 나는 그동안 얼마나 헤매었었던 것일까?’
멍하니 생각에 잠겨 서 있을 때, 보리가 수경에게 달려오며 그녀를 불렀다. 얼른 정신을 차리고 수경은 시리얼 볼에 자른 과일을 담아 보리에게 건넸다. 준이는 미끄럼틀에 스티커를 붙이고 있었다.
“준아, 이리 와서 아침 먹어야지”
수경은 아이들을 식탁에 앉히고 아침 식사를 도왔다. 아이들은 야무지게 과일을 씹고 시리얼을 호로록 삼키며 먹었고 그 모습이 마치 어린 새들의 조동아리처럼 귀엽다고 생각했다.
‘이 순간들을 놓치지 말고 담아내자. 이렇게 이쁜 내 새끼들을, 내 눈과 심장에 듬뿍 담아내자. 아이들이 언제든 내게 시선을 돌릴 때, 내가 언제든 저희들을 바라보고 있다고 느낄 수 있도록 아이들에게 눈을 떼지 말아야지. 그래야 내가 없어도 언제나 자기들을 지켜봐 주던 내 눈동자를 기억하고 힘을 내 살아갈 수 있을 거야.’
아이들의 머리를 쓰다듬으며 수경은 울컥했고 보리와 눈이 마주치자 금세 환하게 웃었지만 눈물이 한 방울 떨어졌다.
“우리 보리 준이가 눈물 나게 너무 이쁘다.”
수경은 손 등으로 눈물을 닦으며 말했다.
식사가 끝난 아이들의 얼굴을 씻기고 옷을 갈아입히고 어린이집에 갈 준비를 모두 마치고 신발을 신기는데 Ryan도 출근 준비를 모두 마치고 가방을 들고 나왔다.
“Ryan, plz get your breakfast before you start your class. OK?” (Ryan, 당신 수업 전에 아침 꼭 먹어. 알았지?)
수경은 오늘따라 아침을 먹지 않은 Ryan이 안쓰러웠다.
“From Tomorrow, I will prepare sandwich for you if you want. I think you are eating too much junk food these days.” (내일부터, 당신이 원하면 내가 샌드위치 준비할게. 요즘 당신 너무 나쁜 음식만 먹는 것 같아.)
수경의 말에 Ryan은 싱긋 미소를 지으며 말했다.
“OK. Thanks” (고마워.)
수경은 Ryan의 대답에 그의 아침 식사를 더 빨리 신경 쓰지 못했음에 미안했다.
“Have a great day, kids, and Sukyeong. I love you.” (얘들아, 좋은 하루 보내. 당신도. 사랑해.)
Ryan은 급하게 현관을 나서며 가족들에게 인사를 했고 수경은 아이들을 어린이집으로 데려다주었다. 집으로 되돌아오는 길에, 늘 휴대폰을 손에 들고 아이들에게 필요한 물품을 주문하거나 친구들과 채팅방에서 수다를 떨며 분주하게 이 길을 걷던 지난날들이 떠올랐다. ‘어젯밤 놓친 드라마를 봐야지’, ‘친구들과 브런치를 먹으러 어디서 만날까?’ 하며 아이들 없는 시간을 행복해했었다. 하지만 오늘은 아이들의 손 감촉, 엄마를 바라보던 눈빛, ‘엄마’하고 부르던 목소리가 떠올라 어쩐지 벌써부터 그리워졌다.
‘오늘은 보리가 좋아하는 퍼즐도 하고 준이가 좋아하는 숨바꼭질도 하며 놀아야지. 고구마를 건조기에 좀 말려서 우유와 함께 줘야겠다. 저녁은 뭘 해줄까?’
집에 도착한 수경은 현관으로 들어서며 흐트러진 신발들을 정리하고 거실에 들어서며 아이들이 벗어던진 잠옷을 빨래 바구니에 넣었다. 아이들이 가지고 놀았던 장난감들과 책을 제자리에 놓고 주방에서 아이들이 먹고 간 아침 식사를 정리하기 시작했다. 설거지를 하고 테이블을 닦았다. 평소에는 한숨을 짓게 했던 어수선하게 흐트러지고 지저분한 집안이 오늘은 이상하리만큼 수경을 안심시켜주었다. 수경은 아이들 방으로 가 장난감 바구니에서 장난감을 꺼내 소독 스프레이까지 정성스레 뿌려 깨끗하게 닦으며 아이들이 그 장난감 하나하나 가지고 놀면서 했던 말들과 웃는 얼굴을 떠올렸다. 거실과 아이들 방, 주방을 청소기로 밀고 빨래를 모아 세탁기에 집어넣었다. 오랜만에 안방도 들어갔다. 아이들이 태어나기 전에는 Ryan과 함께 잠들던 방이었지만 아이들이 태어난 이후 4년 동안 Ryan 혼자 쓰는 방이 되었다. 매일 바쁘게 일하는 Ryan은 여기저기 옷가지를 던져 놓았고 수경은 빨래할 것을 구별하기 위해 냄새를 맡아보았다. 이 방에서 Ryan의 품에 안겨 맡아오던 냄새가 날이 까마득한 옛날 일처럼 여겨졌다. 수경은 침대를 정리하며 Ryan이 그리워졌다.
안방에서 침대를 정리하고 빨랫감을 가지고 나오며 시계를 보니 이미 2시간이 흘러 있었고 수경의 손이 급해졌다. 청소기를 돌리고 주방으로 나와 냉장고에서 김치를 꺼냈다. 냉동실에서 랩으로 싸 둔 흰밥을 꺼내 전자레인지에 돌리는 동안 계란 하나를 구웠다. 계란과 흰밥에 간장과 참기름을 넣고 슥슥 비벼서 싱크대에 서서 김치와 함께 먹으며 거실을 돌아봤다. 미끄럼틀에 붙어 있던 스티커가 눈에 들어와 밥을 크게 한 숟가락 입에 넣고 씹으며 스티커를 떼는데 강아지 시월이가 꼬리를 흔들며 다가왔다.
“그래. 너 산책시켜 줄게. 조금만 기다려 나 금방 밥 다 먹고.”
수경은 식사를 하는 동안에도 고구마를 꺼내 싱크대에 올리고 냉동실에서 생선을 꺼내 놓았다. 식사를 마친 수경은 그릇을 물에 담그고 시월이를 데리고 아파트 앞 강을 따라 조성된 공원으로 나갔다. 개는 정신없이 나무나 전봇대를 킁킁 거리며 엉덩이를 흔들며 걸었고 수경은 웃음이 났다. 시월이는 너무 신난 나머지 수경이의 걸음을 재촉하듯 앞으로 뛰어갔고 잡고 있던 목줄이 팽팽해졌다.
‘이렇게나 네가 산책을 좋아하는데 바쁘고 귀찮다는 핑계로 자주 빼먹고 너와 많은 시간을 보내주지 못했구나. 그동안 나는 무엇을 보고 무엇을 향해 걸었던 걸까? 그냥 이렇게 함께 걷는 것에만 집중하면 됐을 텐데....’
수경은 이제야 지저분해 보이던 집안에서 왜 안심을 할 수 있었는지를 깨닫는다.
아직은 아무것도 변하지 않은 일상이 있었고 가족을 위해 일을 할 수 있어 다행이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