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4. 여자

by Momanf

수경은 평소에 아이들이 일어나는 시간보다 1시간 일찍 일어나 동영상을 보며 30분짜리 요가를 했다. 아이들을 어린이집에 데려다주고 집에 들어온 후에는 애써 어질러진 집을 무시하고 샤워를 했다. 샤워 후, 옷장에서 원피스를 꺼내 입고 화장을 했고 유통기한이 한참 지난 향수를 뿌리고 귀걸이도 걸어 보았다.

수경은 백화점으로 갔다. 비록 명품백은 아니더라도 모아 놓은 돈으로 근사한 옷 한 벌은 살 수 있었다. 20대 늘 들락거리던 3층 여성복 코너를 아이 낳은 후 처음이라는 사실에 이방인 같은 감정이 들기도 했지만 곧 설렘으로 바뀌었다. 몇 벌의 옷이 마음에 들긴 했지만 가격표를 확인한 후, 선뜻 살 수가 없어 이곳저곳을 기웃거리고 있는데 마네킹에 걸리 화사한 꽃무늬 원피스가 눈에 들어왔다. 흡사 꽃나무에서 다양한 종류의 꽃들이 실크 치마 끝자락으로 낙화하듯 흩날리는 것처럼 보였다. 하늘거리는 실크 소재도 마음에 들었지만 허리 뒤에 매어 있는 리본이 흩날리는 꽃 들 사이를 날고 있는 나비 같아 수경의 마음에 쏙 들었다.

“들어와 한번 입어 보세요. 잘 어울리실 거 같아요”

원피스를 이리저리 보고 있는 수경을 놓치지 않고 점원이 다가와 물었고, 수경은 미처 금액을 확인하지도 못하고 엉겁결에 매장 안으로 들어갔다.

“음. 날씬하셔서 사이즈는 44 하시면 될 듯해요. 여기 탈의실이니 들어가서 입어보세요.”

점원이 시키는 대로 탈의실로 가 직원이 내미는 원피스를 갈아입었다. 몸에 꼭 맞았고 하늘거리는 촉감까지 마음에 쏙 들었다. 수경은 탈의실 밖으로 나와 전신 거울 앞에 자신을 비춰 보았다.

“어머 이것 좀 보세요! 완전히 딱 손님 옷 같네요. 길이 하며 품하며. 꼭 맞네요”

옷을 팔기위한 상술이든간에 수경은 칭찬이 마음에 들었다.

“이런 옷이 제게 어울릴까요? 젊고 예쁜 아가씨들 옷 같은데.”

자신의 입에서 뱉어낸 그 말이 우스웠다.

‘무슨 옷이 학교에 소속된 학생들의 교복처럼 젊고 예쁜 아가씨들 옷, 아줌마 옷이 구별되어 있단 말인가?’

“아이~ 손님, 모두 젊게 사는 세상에 무슨 말씀이세요? 무엇보다 손님께 너무 잘 어울리세요~ 나이가 많으세요? 제 보기엔 이제 막 30대이신 거 같은데.”

“애 둘 엄마예요. 내일모레 40이고.”

20대 아가씨로 왔던 3층 매장을 40대 아줌마로 왔다는 생각이 스쳐 웃으며 대답했다.

“요즘에는 정말 외모로는 나이를 가늠하기 힘들다니까요.”

점원은 넉살 좋게 수경에게 말했다.

“얼마예요?”

수경도 거울에 비친 자신을 보며 물었다.

“가격도 참 착하게 나왔어요. 38만 원이에요. 소재도 좋아 관리만 잘하시면 오래오래 입으실 거 같아요.”

원피스의 가격에 수경은 조금 당혹스러웠다. 자주 가는 시장에서 마음에 드는 옷을 들면 비싸 봐야 10만 원이면 구입할 수 있었기에 옷 한 벌에 부르는 숫자에 거리감이 느껴졌다. 그 돈이면 우리 가족 모두 옷 한벌씩 살 수 있겠다는 계산기가 두드려졌다.

‘거기다 오래오래 입을 수 있을 것 같다니....’

옷에 티라도 찾아내 벗을 구실을 만들기라도 할 듯 이리저리 찬찬히 살펴보았지만 옷은 아무 문제가 없었다. 애초에 백화점으로 온 자신이 잠깐 원망스러웠다.

“손님, 참! 그 원피스는 오늘부터 20% 할인 행사가 들어가는 옷이에요. 여름 시즌에 맞춰 오늘부터 3주간 세일 기간이네요. 어쩜 운도 좋으시지~.”

점원은 가격 때문에 망설이던 수경의 마음을 알아차리기라도 한 듯 말했다.

‘그래. 소중한 나에게 주는 선물이야. 이 옷을 입고 영정 사진을 찍어야지. 두고두고 가족들이 보는 사진이라면 비싼 돈 값어치가 되겠네.’

“계산해 주세요”

계산을 끝내고 새 옷을 입은 채로 백화점 지하 푸드코트로 내려갔다. 회전초밥 테이블에 앉아 접시들 색깔마다 가격표가 다르다는 안내를 읽었다. 저절로 제일 싼 가격의 파란 접시에 눈이 갔지만 가장 비싼 보라색 접시 위에 더 먹음직스러운 초밥을 바라보았다. 그리고는 돌아가는 회전판에서 보라색 접시를 집어 들었다. 수경은 눈을 감고 충분히 즐겼다.

만족스러운 식사를 마친 후, 오랜만에 화장을 하고 예쁜 옷을 사 입고 그냥 집으로 들어가는 것이 못내 아쉬워 Ryan에게 전화를 걸었다. 마침 Ryan의 수업이 오전에 일찍 끝나는 수요일이었다.

“Hey. What’s up?”(어쩐 일이야?)

평소에 전화를 잘하지 않는 수경이기에 전화를 받은 Ryan이 걱정스레 물었다.

“Honey. Did you finish your work? If you don’t have any plan after, I would love to have a cup of coffee with you near your work. That little cute coffee shop we used to go, remember? I hope it is still there.” (여보. 일 끝났어? 뒤에 별다른 계획 없으면 당신 직장 근처에서 커피 한 잔 했으면 좋겠어. 우리가 예전에 갔던 작고 귀여운 커피숍, 기억해? 그곳이 여전히 거기 있었으면 좋겠는데.)

“I would go to Costco, but OK if you want to go. Sure! Are you at home? I can pick you up.” (나 코스트코 가려고 했었는데 당신이 원한다면 좋아. 가지 뭐. 집이야? 내가 당신 태우러 갈 수 있어.)

“Actually, I came out for shopping, so I will be there by 2.” (사실, 나 쇼핑하러 나와 있어서 내가 거기로 2시까지 갈게.)

“OK. See you then.” (알았어. 그럼 그때 봐.)

아이들이 태어난 후, 부부의 생활 중심이 온통 아이들 뿐이었다. 수경은 출산 우울증을 겪었지만 당시에는 그 사실을 자각하지 못했기에 부부의 문제로만 생각했다. 둘의 문화 차이로 서로 다른 육아 방식을 이해하지 못했다. 수경은 Ryan에게 지지나 이해를 받는 대신 비난을 받는다 여겨졌다. 수경에게는 조언할 사람이 마땅찮았기에 쌍둥이를 안고 혼자 인터넷이나 친구들의 경험담에 의지해 밤낮 씨름해야 했다. 임신 기간 동안 늘어난 15킬로의 체중은 빠지지 않고 조금만 움직여도 땀이 쏟아졌다. 스스로 땀 냄새와 자신의 외모에 혐오를 느꼈기에 부부의 갈등이 자신의 외모 때문인 것만 같아 남편이 더 이상 자신을 사랑하지 않는다는 생각에 사로 잡히기도 했다. 그렇게 정신적으로나 육체적으로 매일 지쳐 혼자 울기도 하고 남편이 퇴근하면 그 스트레스를 표현하며 자신의 마음을 알아주길 바랬다. Ryan은 나름대로 육아를 돕기 위해 최선을 다했지만 수경은 그 마저도 마음에 차지 않아 그에게 한숨을 쉬며 툴툴대거나 눈치가 없는 사람이라 비난하기 일쑤였다. 집에서 Ryan이 쉬고 있으면 그가 이기적으로 보여 노려보거나 눈치를 줬다. 돈 벌러 나가는 남편은 그 핑계로 집에서 나가 쉬는 것이라 생각했고, 남편이 잠깐 담배 피운다고 3~5분 정도밖에 나가면 그 시간마저도 참을 수가 없어 화를 냈다. 자기 혼자만 두 아이 육아에 동동 거리는 희생물 같이 여겨졌다. 그렇게 2년 정도 지속적으로 싸우게 되자 두 사람 사이에 휴전선 같은 것이 생기게 되었다. Ryan은 가장으로 가족의 경제를 책임지는 일에 몰두하겠다고 선언하고 대학 수업 외 많은 시간 과외로 채워버렸다. Ryan의 선언은 가정사와 육아는 수경의 책임이라는 말이었기에 수경은 육아에 전념해야 했다. 그렇게 서로의 일을 확실히 정하고 각자 자기 일에 몰두해 위기였던 가족은 지켜냈지만 둘의 관계는 지켜내지 못했다.

수경은 그날들을 후회하고 있다. Ryan도 그때 자기만큼 초보 아빠였다는 걸. 서로 비난할 것이 아니라 초보 엄마 아빠로서 함께 질문하고 육아하며 서로 도와야 했었다는 걸. 반쪽짜리 두 사람이 온전히 하나가 되어 자식을 함께 키워야 했다는 것을. 수경은 그를 비난했던 것에 사과하고 싶었고, 가정을 포기하지 않고 열심히 가정 경제를 책임져주어 감사하다는 말을 하고 싶었다. 의무만 남은 줄로만 알았던 두 사람의 관계에 여전히 사랑이 남았다는 것을 믿기에 회복하고 싶다는 말을 전하고 싶었다.

그러다 문득 그를 사랑했던 기억이 먼 옛날처럼 느껴져 수경은 조금 서글퍼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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