수경이 커피숍으로 들어서자 휴대폰을 들여다보고 앉아 있는 Ryan이 보였다.
“Honey. Sorry. I’m late” (미안, 나 늦었어.)
Ryan은 고개를 들어 수경을 보고 놀라며 말했다.
“Wow! You look great, Sukyoeng.” (와! 당신 오늘 멋진데?)
수경은 Ryan의 말에 미소를 지었다.
“Do I? I went shopping and bought this dress. It’s been a long time to get something for myself. Do you like it?” (괜찮아? 나 쇼핑 가서 이 드레스 샀어. 나를 위해 뭔가를 산 게 정말 오랜만이야. 맘에 들어?)
수경은 그렇게 말하면서도 어쩐지 돈 쓴 게 미안해 Ryan의 눈치를 보며 말했다.
Ryan은 고개를 끄덕이며 말했다.
“I like it! It looks really good on you.” (정말 마음에 들어. 당신한테 너무 잘 어울리네.)
Ryan의 말에 수경은 마음이 놓였다.
“What do you want?” (뭐 마실래?)
Ryan이 자리에 일어서며 묻자 수경은 메뉴를 훑어보다 대답했다.
“latte please.” (라테로 부탁해.)
Ryan이 주문하러 간 사이 수경은 거울을 꺼내 립스틱을 발랐다. Ryan이 커피를 들고 와 앉았고 수경의 가슴은 두근거렸다. 반갑게도 예전에 이곳에서 데이트할 때의 두 사람의 모습이 떠올랐기 때문이다.
“How was work?” (일은 어땠어?)
수경이 자리에 돌아온 Ryan에게 물었다.
“Not bad.” (나쁘지 않았어.)
Ryan은 언제나처럼 그렇게 대답했다. 수경은 고개를 끄덕이며 라테를 한 잔 마셨고 침묵이 흘렀다. 두 사람이 한창 연애할 때 오던 커피숍은 그대로였지만 이 공간에서 다정하게 대화하던 둘의 모습이 연기처럼 공중에서 사라졌다.
“You know? Bori and June are talking about you a lot these days. Like where’s daddy? When does he come back home, they keep asking when they come back from day care.” (그거 알아? 보리와 준이가 요새 당신 이야기를 많이 해. 아빠는 어딨어? 아빠는 언제 와? 어린이집에서 돌아오면 당신 대해서 물어.)
수경은 아이들이 Ryan을 많이 사랑하고 그와 함께 하고 싶어 한다는 것을 전해주고 싶었다. Ryan은 고개만 끄덕였다.
“I hope they can spend more time with you.” (아이들이 당신과 좀 더 시간을 보냈으면 좋겠어.)
수경은 말을 마치고 습관처럼 한숨을 쉬었다. 곧, 수경은 그 습관적인 한숨이 부적절하다는 걸 깨달았다. 늘 그와 말다툼을 할 때 나오던 한숨이었다.
“As you know, I don’t have time for myself, either.”(당신도 알다시피 나는 나를 위한 시간조차 없어.)
Ryan은 수경의 말에 언제나처럼 굳은 얼굴을 하고 차갑게 대답했다. 수경의 의도와는 다르게 Ryan이 그를 비난하는 말로 받아들였다는 것을 눈치챈 수경이 고개를 흔들며 재빨리 말했다.
“No. No. I didn’t mean attacking or blaming you. I know that you are doing great for our family. But, because of that, you don’t have any time for kids and me, so I’m sad. That’s why they can’t speak English that much and you guys can’t communicate each other. It’s been getting worse. I feel like It makes you guys are apart, too. That’s it. Plus, I want to spend time more with you.” (아니, 아니, 당신을 공격하거나 비난하려는 게 아니야. 당신이 우리 가족을 위해 최선을 다하는 거 알아. 하지만 그것 때문에, 당신이 나와 아이들을 위한 시간이 없으니까 슬퍼. 그래서 아이들은 영어로 말하지 못하고 당신과 서로 대화를 잘할 수 없잖아. 점점 나빠지는 것 같아. 내가 느끼기에는 당신과 아이들이 자꾸 멀어지는 것 같아. 그뿐이야. 그리고 나도 당신과 더 많은 시간을 보내고 싶어.)
수경은 Ryan에게 자신의 진심이 전해지길 바라며 말했다.
“We live in Korea now, so I don’t worry about our communication problem. Anyway, they will speak in English eventually.” (우리는 지금 한국에 살고 있으니까 우리의 의사소통 문제에 대해 걱정하지 않아. 어쨌든 결국에 아이들은 영어로 말할 거야.)
수경은 그를 비난하려는 생각이 전혀 없었기에 일부러 그의 말에 수긍하고 있다는 다소 과장된 표현으로 고개를 끄덕였다. 하지만 Ryan이 자기의 의도를 이해하지 못한 것이 분명했기에 계속하면 싸움만 될 뿐이라는 걸 수경은 잘 알고 있었다.
“I just want to say I love you. And thank you for doing everything for us. Ryan. I wish we could have more fun time for you and me, and kids. That’s it.” (난 단지 당신한테 사랑한다고 말하고 싶어. 그리고 우리를 위해 하는 모든 것에 당신께 감사해. 라이언. 나는 나와 당신, 그리고 아이들이 더 재미있는 시간을 보냈으면 좋겠어. 단지 그뿐이야.)
수경은 Ryan의 눈을 진지하게 바라보며 말했다.
“I am sorry but I am doing my best for my family.” (미안하지만 나는 가족을 위해서 최선을 다하는 중이야.)
Ryan은 그렇게 대답하며 자리에서 일어났다.
“Excuse me. Cigarette.” (담배 좀 피고 올게. 실례해.)
Ryan은 바지 주머니에서 담배와 라이터를 꺼내며 커피숍 밖으로 나갔다.
‘그런 뜻이 아닌데, 우리를 위해 당신의 시간을 희생하라는 것이 아닌데... 사랑해서 함께 하고 싶다고 얘기하고 있는 것인데.... 이런 식으로 선을 긋고 아이의 일은 전적으로 내 몫이고 당신은 돈 버는 일로 의무를 다하고만 있다고 생각한다면 이것은 진정한 가족일 수 없잖아. 아이들 이야기만 나오면 이렇게 방어태세를 갖춘 적처럼 굴면 내가 아프다는 이야기를 할 수가 없잖아. Ryan.’
수경은 5개월이라는 자신에게 남겨진 시간이 떠올랐다. Ryan은 4년 동안 돈을 버는 것으로 육아에 참여하지 않았고 수경이 아이들을 하나부터 열까지 챙기며 살다 보니 아이들은 하루 종일 엄마 뒤만 졸졸 따라다니게 되었다. 이런 상황에서 자신의 부재를 어떻게 남편과 아이들이 감당할지 수경은 겁이 났다.
Ryan이 돌아와 자리에 앉았다.
“Do you love me?” (날 사랑해?)
수경이 애써 울음을 참으며 Ryan에게 물었다.
Ryan은 그 질문에 한참을 생각하다 말을 시작했다.
“Yes. I think I still love you, but our relationship is not good. I can’t connect to you, Sukyeong. We are just living for our kids now.” (응. 여전히 사랑하는 것 같아. 하지만 우리 관계는 좋지 않아. 나는 당신이랑 연결된 것 같지 않아, 수경. 우리는 지금 단지 아이들 때문에 살고 있어.)
수경의 눈에서 한줄기 눈물이 흘리며 떨리는 목소리로 말했다.
“I love you, Ryan.” (난 당신을 사랑해. 라이언.)
Ryan은 수경을 보며 한숨을 내쉬었다.
“Honestly, I don’t feel love from you. I feel like you’ve been criticizing me all the time.” (솔직히 나는 당신에게서 나를 사랑하는 마음이 안 느껴져. 당신은 늘 나를 비판하는 것만 같아.)
수경 자신도 Ryan과 똑같이 그에게 끊임없는 비판을 받는다고 생각해왔다. 그리고 두 사람이 함께 사는 이유가 단지 아이들에 대한 의무감인 것도 알았다. 수경은 출구도 없는 어두운 방 안에 갇혀 그곳에서 체념한 채, 구석에 고개를 다리 사이에 묻고 움츠려 앉은 자신이 보였다. 보리와 준이가 울면서 엄마를 찾는 소리가 방 안에 가득 울렸고 Ryan의 한숨 소리와 내뿜는 담배 연기가 그곳에 자욱하게 퍼졌다.
수경은 암으로 죽는 게 아니라 오늘 이 자리에서, 이 방구석에 갇혀 아이들이 울부짖는 소리와 남편의 내쉬는 담배연기로 질식해서 죽을지도 모른다는 생각이 들었다. 온몸에 힘이 빠졌다. 시간을 확인했다. 3시 40분. 아이들을 데리고 갈 시간.
수경이 아무 말 없이 멍한 눈으로 자리에서 일어나자 Ryan이 무슨 일이냐는 얼굴로 그녀를 올려 보았다.
“It’s time to pick up kids.” (아이들을 데리러 갈 시간이야.)
대화는 오늘도 여기서 끝나고 말았다. 둘은 지친 얼굴을 하고 차에 올랐다.
두 사람의 한숨으로 차 안의 공기가 무겁게 느껴진 Ryan이 차문을 열고 담배에 불을 붙였다.
“Please stop smoking. I feel like I’m dying of suffocation.” (담배 좀 그만 피워. 나 질식해서 죽을 것만 같아.)
수경이 소리를 지르며 눈물을 터트리고야 말았고 Ryan은 창 밖으로 담배를 훽 던지고 일그러진 얼굴로 핸들을 거칠게 돌렸다.
한 때는 두 사람 사이의 이야기가 끊이지 않았고 서로를 바라보면 미소가 번졌다. 서로의 힘든 어깨를 두드려 주며 위로해주던 사람들이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