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1. 던져 놓았던 기억

by Momanf

아이들을 재운 밤, 조용히 거실에 나와 불 꺼진 소파에 앉아 차를 마시며 수경은 깊은 생각에 잠겨있다. 남겨질 아이들과 Ryan을 도와줄 그 누군가에게라도 도움을 요청해야 한다는 생각이 들자 ‘친정’이라는 단어에 생각이 멈춘 까닭이었다.

거의 20년을 보고 살지 않았던 부모에게 갑자기 나타나 자신이 죽으니 남겨질 아이들을 부탁한다고 말할 수는 없었다. 하지만 자신에게 조금이라도 미안함이 있거든 우리 아이들한테 정성 쏟으며 죄 갚 하라고 소리도 지르고 싶은 마음도 있었다.

수경의 친엄마는 수경이 세 살 무렵, 매일 술을 마시고 자주 아내를 때리던 남편을 견디지 못하고 집을 나갔다. 수경은 그 후 2년 동안 고모나 삼촌들의 보호로 이 집 저 집 다니며 살다가 다섯 살, 새어머니가 들어온 후, 아버지와 함께 살게 되었다. 수경이 아버지의 무자비한 폭력을 경험한 건 여섯 살 때였다. 친구들처럼 인형이 갖고 싶었지만 아무도 수경의 말을 들어주지 않자 어느 날, 만원을 훔쳐 동네 문구점에서 인형을 사서 놀다가 아버지에게 들켜 몽둥이로 엉덩이와 다리를 맞으며 도둑년 소리를 들었다. 다짜고짜 매를 들고 한참을 때린 아버지에게 공포를 느낀 수경은 그때부터 아무것도 요구하지 않고 그의 말에 순종했다. 새어머니가 여동생을 낳았고 수경은 초등학생이 되었다. 그 무렵, 아버지는 새어머니에게 ‘창녀’라는 말을 하며 때리기 시작했다. 두 사람은 하루가 멀다 하고 싸웠고 수경은 새어머니가 떠날까 봐 늘 가슴을 졸이며 불안해했다. 하지만 새어머니는 고아나 다름없었기에 갈 곳이 없었고 수경은 그것이 고마웠다. 새어머니는 아버지의 폭력을 견뎌가며 나름 자기가 낳은 딸과 수경에게 엄마 노릇을 다해주려고 노력했다. 물론 차별을 격지 않은 것은 아니다. 수경은 새어머니가 낳은 일곱 살 터울인 여동생에게 몰래 옷을 사주거나 용돈을 주는 것을 알았지만 친 딸에게 팔이 안으로 굽는 그녀를 이해할 수 있었다. 중학생이 되자 수경은 아버지에게 대들기 시작했고 아버지는 술만 마시면 수경을 불러 야단을 치거나 때리기 시작했다. 아버지가 자신과 새어머니를 때릴 때면 부엌칼로 아버지를 찔러 죽이고 소년원에 들어가는 상상을 하며 마음속으로는 아버지를 부엌칼로 몇 번이나 찔러 죽였다.

수경은 비 오는 날을 싫어했다. 교실 창문 밖으로 비가 내리는 것을 볼 때면 가슴이 두근거리기 시작했다. 비가 내리는 날은 어김없이 아버지가 술을 마신다는 의미였고 수경은 ‘오늘은 어디로 도망가 있다가 몰래 집으로 들어가서 잠을 잘까?’ 하는 생각으로 수업에 집중할 수가 없었다. 피신할 친구들의 집을 기웃거리다 그것도 마땅치 않으면 패스트푸드 음식점에서 한참 동안 시간을 보낸 뒤늦게 집에 들어가곤 했다. 수경에겐 비가 오는 날은 항상 춥고 배고팠던 날로 기억되었다. 수경에게 집은 안전하거나 쉴 수 있는 공간이 돼주지 못해 늘 집 밖으로 돌았다. 다행히 동네 도서관을 찾았고 수경은 그곳에서 소설을 읽으며 현실에서 도피했고 꿈을 꾸기 시작했다. 수경은 문학도의 꿈을 갖고 인문학부 특차에 지원해 합격했으나 아버지는 문학도는 돈벌이가 시원찮다는 이유로 반대해 4년제가 아닌 2년제 전문대로 보내 버렸다. 수경은 첫 학기 등록금을 제외한 나머지 학비와 용돈은 아르바이트로 벌어서 써야 했고 집은 그저 잠 잘 곳에 불과했다. 그러던 어느 날 술에 취한 아버지와 심하게 말다툼을 했고 아버지는 자기가 앉아 있던 철제 의자로 수경의 머리며 온 온몸을 때렸다. 간신히 달아났지만 머리를 맞은 수경은 어지러워 골목에 쓰러져 있었고 다행히 수경의 전화를 받고 친구가 와주었다. 그날, 친구 집에서 샤워를 하려고 옷을 갈아입다 속옷에 대변이 묻어 있는 것을 본 수경은 더 이상 집으로 들어가지 않았다.

한 달 동안 친구 집에서 지내며 이것저것 많은 일을 해 100만 원을 만들어 원룸을 구했다. 주택에 딸린 보증금 100만 원, 월세 20만 원의 창문 하나 없는 방 하나를 얻었고 전문대 휴학을 했다. 정규직을 찾던 중 영어 학원에서 잡무를 보는 데스크 선생님 일을 시작하게 되었다. 20대 초, 친구들이 멋 부리며 캠퍼스를 누릴 때, 그녀는 12시간 일했고 어쩌다 학자금 대출 빚과 생활비가 모자라면 새벽에 노래방 카운터를 보는 일도 했다. 수경은 창문 하나 없는 방과 하루 16시간 일을 하면서도 폭력의 공포로부터 벗어나 마음 편히 쉴 수 있는 혼자만의 공간이 있어 좋았다.

성실히 근무하는 수경을 지켜본 원장은 수경에게 영어를 가르치기 시작했고 시간이 흐르자 막 영어를 시작한 꼬마 아이들을 가르쳐 보라는 기회를 주었다. 그렇게 시작한 영어 공부로 전문대를 마치고 영문과로 편입할 수 있게 되었다. 수업은 초등학생부터 중학생으로 확장되었고 수경의 영어 실력이 향상되어 학원 잡무를 보던 그녀를 영어강사로 만들어 주었다. 그리고 그곳에서 Ryan을 만나 오랜 소망이던 가정을 이루게 되었다.

수경은 친엄마를 만난 적이 없다. 그래서 그녀에 대한 기억도 없다.

수경의 기억 속에 새어머니와의 관계는 그리 나쁜 편은 아니었다. 아버지의 폭력을 함께 견딘 덕분이었는지 그녀에게 눈칫밥을 받아먹은 기억은 없다. 새어머니는 요리 솜씨가 뛰어났고 수경에게는 좋은 사람이었다. 새어머니의 심성을 떠올리면 수경이 없더라도 보리와 준이에게 맛있는 음식을 챙겨 먹일 수 있을 것 같았다. 수경은 그렇게라도 자기의 빈자리를 한 사람이라도 더 채워주고 싶었다.

하지만 기억 속에 아버지는 여전히 난폭하고 폭력적이며 이기적인 사람이었다. 아버지가 마음 깊이 반성하고 자신에게 사과를 해주기를, 자신이 떠난 자리를 채워주려고 노력하며 Ryan과 아이들을 챙겨주는 할아버지 모습은 그저 수경의 기대이거나 꿈일지 모른다. 아버지가 변하지 않은 채 예전과 똑같은 모습으로 수경 앞에 서게 된다면 그동안 쌓여있던 분노가 폭발해 오히려 수경이 폭력적으로 굴지도 모를 일이었다.

그동안 부모를 부정하고 살아왔고 그들이 죽어도 찾아가지 않으리라 다짐했었다. 하지만 죽는다고 생각하니 마지막으로 부모를 만나고 화해하고 싶은 마음도 생겼다. 하지만 늘 자신을 아프게 했던 아버지에게 또 상처를 받게 될까 봐 두려운 마음도 존재했다.

자식을 낳고 보니 어떻게 이렇게 귀한 자식을 그토록 무자비하게 때릴 수 있었을까? 보호받아야 할 나이에 학대를 당한 것에 분노와 원망하는 마음이 있었다. 하지만 때론 쌍둥이를 낳아 이렇게 행복하게 지낼 수 있도록 세상에 낳아 준 부모에게 감사한 마음도 들었다. 고아원에 보내지 않고 어쨌든 스무 살까지 밥먹여주고 공부시켜준 것에 감사하자 마음을 먹기도 했다. 현재 서른아홉의 수경은 자신을 낳았을 때, 아버지 나이가 스물넷, 친어머니 나이 스물, 새어머니가 아버지에게 시집온 나이가 스물여섯이라는 나이를 생각해 볼 때, 미성숙한 그들을 이해하자고도 생각했다.

하지만 이제 와서 괜히 늙고 아프거나 가난한 그들이 자신과 Ryan에게 오히려 부담을 주게 된다면 하는 걱정이 들었다. 동시에 아픈 내가 그들에게 부담이 되면 어쩌나 고민도 되었다.

머릿속은 생각의 생각이 꼬리를 물고 두 가지 상충하는 생각들이 복잡하게 얽혀 죽음 앞에서도 이렇게 복잡한 자신이 어쩐지 마음에 들지 않았다. 낳아주고 길러주셔서 감사하다는 말과 딸이 얼마나 열심히 살았는지, 행복한 가정을 꾸리고 잘 살아왔다는 말을 심플하고 가볍게 하고 싶었다. 그리고 가능하다면 가끔 아이들을 들여다봐 달라는 부탁. 거기까지가 수경이 부모와의 관계에서 원하는 것뿐이었지만 그런 도움조차 받을 수 있으리라는 확신도 없었다. 부모와 함께 산 20년 생활은 수경에게 너무 아팠고 그들과 떨어져 낯설게 산 세월이 20년이었다. 수경과 부모 사이엔 신뢰가 없었다.

책을 읽을 때, 할아버지 할머니 이야기가 나오면 수경에게 묻곤 하던 아이들의 모습이 떠올랐다. 그럴 때마다 수경은 Ryan의 부모님이 일찍 돌아가셔서 하늘나라에 계시다고 말하며 자신의 부모도 그 하늘나라에 슬쩍 밀어 넣어 버리곤 했다. 하지만 아이들과 그들의 할아버지, 할머니의 관계는 시작도 못한 채 죽은 사람으로 만들어 단절시키는 데에는 늘 조금의 죄책감이 있었다.

하지만 부모를 만나는 결정은 결코 쉽지 않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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