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3. 느리게 걷는 아이

by Momanf

수경은 잠든 아이들을 돌아보며 이불을 덮어주고 시간을 확인하니 평소 일어나야 할 시간보다 10분이 늦어 아이들을 깨우기 시작했다.

“보리야. 일어나. 우리 어린이집 가야 해.”

보리는 늘 그렇듯 수경의 재촉에 단박에 일어나 기지개를 켰다.

“준. 준 일어나 우리 어린이집 가자.”

준이는 수경이 흔들어 깨우자 싫다는 듯 이불속으로 파고들었다.

“어린이집 가자~ 선생님이랑 친구들이 기다리시겠다~ 모두들 우리 준이와 놀고 싶을 거야”

준은 귀찮다는 듯 신음했고 수경은 그런 준을 안고 얼굴과 머리를 쓰다듬으며 깨우려고 노력했다.

“아이고 우리 멋있는 형아가 벌~떡 일어나 즐겁게 어린이집 가려고 하네?”

준이는 여전히 눈을 감고 일어나기 싫은 듯 인상을 찌푸렸다. 보리가 물끄러미 자신을 쳐다보고 있자 수경은 보리의 다리를 쓰다듬으며 미소를 지었다.

“우리 보리는 진짜 잘 일어난다.”

“엄마 그런데 잠이 많이 와.”

보리가 눈을 비비며 말했다.

“응. 아침에 일어나는 것이 조금 힘들지? 우리 앞으로는 아침에 기분 좋게 일찍 일어날 수 있게 밤에 좀 더 빨리 잠자리에 들자.”

보리가 수경의 말에 고개를 끄덕였다.

“보리야, 화장실 가서 피피 하고 혼자 얼굴 씻을 수 있겠어? 이 닦고?”

보리는 고개를 끄덕였다.

“와. 정말 멋진 누나다. 그리고 와서 엄마랑 어떤 이쁜 옷을 입고 갈지 골라보자.””

보리는 예쁜 옷이란 말에 침대에서 일어나 화장실로 향했다.

준이는 여전히 엄마 품에서 눈을 감고 있었다. 마음이 급해진 수경은 앉은 채로 기어가 옷장 서랍을 열었다. 준이가 입을 적당한 옷을 꺼내 준이의 잠옷을 벗기자 준이는 귀찮다는 듯 신음하며 징징댔다.

“우리 준이. 오늘 아침 힘들구나. 엄마가 우리 준이 옷 갈아입혀 줄게.”

“어린이집 안 갈 거야. 싫어.”

준이가 짜증을 내며 몸을 비틀었고 수경은 땀을 흘리며 아이를 안고 옷을 갈아입히려 애쓰며 말했다.

“우리 준이 많이 피곤했구나. 엄마가 오늘은 얼굴도 씻겨줄게.”

수경은 준을 달랬지만 아이가 계속 칭얼거리며 눈을 감고 있자 문득 좋은 생각이 떠올랐다.

“우리 준이의 미키마우스 어디 갔지? 미키마우스는 어젯밤 어디서 잠이 들었나? 우리 찾아볼까?”

준이가 좋아하는 인형 미키마우스를 찾으려고 아이가 눈을 크게 떴다. 그러더니 평소에 침대에서 함께 잠들던 미키마우스가 보이지 않자 인형을 찾으려고 이불을 뒤집어 보았다. 방에 없는 것을 확인하자 벌떡 일어나 거실로 나갔다.

“엄마. 찾았어. 미키마우스가 소파에서 자고 있었어.”

준이가 거실에서 수경에게 큰 소리로 말했고 수경은 준이의 옷을 들고 거실로 나갔다.

“아이고, 우리 미키마우스 어젯밤 준이 형아 보고 싶었겠네? 준이야 미안하다고 말하고 많이 안아줘. 미키마우스 어제 혼자 자서 슬펐겠다. 그렇지?”

준이는 미키마우스에게 사과하고 꼭 안아주었다. 그 모습에 수경의 얼굴에 미소가 번졌다. 준이가 기분 좋은 틈을 타 얼른 옷을 입히고 혼자 씻고 있는 보리를 확인하기 위해 욕실로 갔다.

“어머~우리 보리 혼자 로션까지 다 발랐네?”

아이가 서툰 손으로 바른 로션의 흔적이 이마에 묻어 있어 수경은 그것을 얼른 문질러 펴 바르며 머리를 쓰다듬어 주었다.

“엄마가 머리 묶어줄게. 어떤 머리 묶어 줄까?”

“음. 사과머리?”

“그래. 좋아.”

수경은 정수리 부분의 머리 한 줌을 잡아 묶으며 고개를 문 쪽으로 돌려 준이를 부른다.

“준~ 우리 준이 형도 세수 잘하는 걸 미키마우스한테 좀 보여주는 게 어떨까?.”

준이가 미키마우스를 데리고 와 욕실 앞에 앉혔다.

“미키마우스야, 잘 봐. 나 세수하는 거.”

물을 틀어 한 손으로 입가에 물만 조금 묻힌 채 세수를 끝내는 준이를 본 수경은 물을 틀어 준이의 얼굴을 씻겼다.

“아직 눈에 눈곱이 껴있네~ 세수할 때 두 손으로 하세요”

수경은 준이의 얼굴에 서둘러 로션을 발라주고 아이들 방으로 들어가 보리가 옷 입는 것을 도와주었다. 토스트와 시리얼, 과일을 준비해 아이들 아침을 챙겨 먹였다. 수경은 잠옷을 갈아입기 위해 아이들을 현관으로 데려가 먼저 신발을 신고 있으라고 말했다. 수경이 현관에 나오니 보리는 신발을 바르게 신었고 준이는 현관 바닥에 앉아 한 발에 반댓발 신발을 신었고, 다른 발에 그 나머지 반댓발 신발을 신기 위해 한 손으로 낑낑대고 있었다. 수경은 준이가 잘못 신은 신발을 벗겨 다시 바르게 신겨 주었다. 겨우 제시간에 맞춰 아이들을 어린이집으로 보낸 후 수경의 입에서는 저절로 깊은 한숨이 흘러나왔다.

아침에 일어나기를 힘들어하던 준이가 떠올랐다. 먹을 때도 많이 흘리고 늘 손가락 사용이 서투르며 매일 신발을 거꾸로 신는 준이가 걱정스러웠다.

“시월아, 오늘은 산에 갈까?”

집으로 돌아온 수경은 개 목줄을 찾아 목에 걸며 운동화로 바꿔 신었다.

산을 오르며 준이가 수경을 처음 보고 “엄마.”하고 불렀던 때를 떠올렸다. 그것은 준이가 30개월쯤이었다. 그 전에는 그 비슷한 소리로 음... 마 하는 엄마 비슷한 소리를 냈지만 그날처럼 또렷하게 수경의 눈을 보고 필요한 것을 요구하기 위해 “엄마”라고 부른 것은 그날이 처음이었다.

준이는 이름을 불러도 돌아보지 않았고 말을 걸어도 눈을 마주치지 않았다. 가끔 혼자 중얼거리며 무엇엔가 몰두하기도 하고 보리를 피해 혼자 놀기도 했다. 수경은 아이마다 발달에 차이가 있고 보통 딸이 아들보다 빠르니 문제로 여기지 않았지만 Ryan은 몇 차례 아이가 조금 이상한 것 같다고 말했다. 하지만 그런 Ryan을 별난 사람 취급하며 오히려 아이랑 잘 놀아주지도 않으면서 함부로 말한다고 화를 냈었다.

하지만 두 살이 넘었는데 자기 이름이 불리어지는대도 돌아보지 않거나 눈을 마주치지 않자 수경도 점차 걱정되기 시작했다. 그러던 어느 날, 가족이 다 함께 거실에 모여 장난감으로 놀고 있는데 준이가 혼자 방으로 들어갔다. 수경이 몰래 따라가 보니 준이가 벽을 보며 마치 사람이 있는 것처럼 혼자 말하며 놀고 있는 걸 보자 가슴이 철렁 내려앉았다. 조심스레 다가가 준이를 불렀지만 자신만의 세계에 흠뻑 빠져 있었고 그제야 수경은 아이가 자폐일지도 모른다는 생각을 하게 됐다. 다음 날 아이를 데리고 발달센터로 갔고 아이의 모습을 보던 담당자가 몇 가지 심각한 문제가 보인다며 대학병원에서 자폐 검사를 권유했다. 모든 게 아이를 제대로 돌보지 않은 자신의 잘못으로 여겨져 센터에서 나오면서 수경은 울었다. 2주간에 거쳐 준이의 발달 검사를 두 병원에서 따로 진행했다. 정확하게 아이를 진단해 준이의 상태를 확실히 알고 싶었기 때문이다. 결과가 나오기까지 6주 동안 Ryan과 수경은 준이가 자폐일지도 모른다는 불안감으로 일이 손에 잡히지 않았다. 준이에게 온통 정신이 팔려 보리를 많이 신경 써주지 못하는 죄책감도 느꼈다. 수경은 하루에도 몇 번이나 밀려오는 후회와 죄책감, 두려움과 씨름하며 결과를 기다렸다. 그저 준이를 자폐로 만든 것이 ‘나’다 하는 전제에 합당한 최악의 기억들만 떠올라 울고 또 울었다. 아이를 돌보면서 한숨 지어댄 자신이 미웠다. 하루를 어떻게 버텨내나 싶어 아침에 눈뜨면 얼른 밤이 오길 바랬던 자신이 미웠고 아이들 앞에서 남편에게 대한 분노를 쏟아낸 자신도 미웠다. 돈 벌러 가는 남편은 육아에서 벗어나 쉬는 것처럼 여겨져 자신이 돈을 벌겠으니 한번 집에서 애를 보라며 악다구니도 했었고 밤마다 술을 마신 적도 있었다. 이유식을 만드는 것도 힘들어했고 공들여 만들었는데 아이들이 잘 먹지 않는 것에도 화를 낸 자신에게, 매일 아이들 옷과 이불 빨래를 하며 한숨을 쉬어대던 자신에게 엄마 자격이 없다고 소리 질러주고 싶었다.

아이에 대한 걱정으로 많은 육아 서적과 관련 동영상을 찾아보며 육아에 힘들었던 이유가 산후 우울증을 겪었기 때문이란 것도 알게 되었다. 하지만 그때는 자신이 나약해서 산후 우울증을 겪은 것 같아 그마저도 원망스러웠다.

육아 서적을 통해 자신의 마음에 문제가 있다는 것을 알아차린 후부터 매일 아침 시월이와 아파트 뒷산으로 한 시간씩 등산을 하며 선불교 말씀을 듣기 시작했다. 육아 강연에도 적극 참여하기 시작하면서 엄마인 자신의 마음을 먼저 치료해야 한다는 사실도 배웠다. 그렇게 검사 결과를 기다리는 동안 수경은 처음으로 자신의 내면을 다독이기 시작했고 아이의 존재가 엄마를 성숙시키는 존재임도 깨달았다. 어느새 아이가 다행히 죽을병이 아님에 감사했고 보리의 성장이 당연한 게 아니었음에 정상적인 성장에 감사할 수 있게 되었다.

6주 후, 결과가 나왔고 다행히 자폐는 아니었다. 또래보다 발달이 10개월 정도 느린 정도로 소근육의 발달과 인지 및 언어 발달이 현저히 느렸다. 수경은 곧 언어치료와 감각통합 전문의를 찾았고 준이는 1주일에 4회의 교육을 받기 시작했다. 수경은 가족들을 위해 하는 일에 정성을 기울이기 시작했고 아이들을 관찰하며 눈높이를 맞춰 놀아주기 위해 노력했다. 주문해 먹이던 배달 반찬도 끊고 정성을 들여 요리하기 시작했다. 아이들 앞에서 남편에게 소리를 지르거나 싸우지 않기 위해 노력했으며 웃는 표정을 위해 노력했다. 집안을 말끔히 청소하고 최상의 컨디션을 유지하기 위해 아이들이 돌아올 때까지 쉬려고 노력했다. 아이들이 어린이집에서 돌아오면 다양한 체험을 위해 집에서 놀이를 준비하기도 하고 아빠 없이 많은 곳을 데리고 다녔다. TV 시청 시간에 노출시키지 않으려고 더 많은 책을 읽어주었다. 피곤했지만 엄마로서 뿌듯한 하루를 살아가며 수경의 삶이 긍정적으로 변했고 무엇보다 준이가 좋아지기 시작하는 것이 확연히 보였다. 아이의 아주 작은 변화에도 수경은 감사하는 마음을 갖게 되었고 그렇게 엄마가 되어 가는 자신이 자랑스러웠다.

준이는 지금도 또래 아이들에 비해 많은 것이 서툴렀다. 아이도 답답한지 그래서 칭얼대거나 짜증을 부리며 곧 잘 울었다. 발음이 좋지 않아 엄마인 수경만 겨우 알아들을 때가 많고 다른 사람과 의사소통이 잘 되지 않았다.

수경에게 준은 아픈 손가락 같은 것이었다. 아이가 시간이 지나면 모든 것이 괜찮아질 거라는 것은 믿지만 엄마 없이 그 모든 난관을 헤쳐나가야 한다고 생각하니 마음이 미어졌다.

‘준아, 엄마는 엄마의 역할을 제대로 못한 것만 같아 늘 네게 미안해. 엄마가 끝까지 너를 지켜주면서 신경 써줘야 하는데 정말 미안해. 하지만 발달지연일 뿐이라 고맙고 이 정도로 좋아져서 고맙고 남은 5개월이라도 네 옆에 있을 수 있음에 고마워. 엄마가 무책임하게 우리 준이를 떠날 수밖에 없어 참 속상해. 그리고 보리야. 준이에게 신경 쓰느라 너에게 소홀했던 것도 미안해. 너희들에게 남은 날 동안 정말 최선을 다할게.’

수경은 터져 나오는 울음에 가던 길을 멈추고 큰 바위 위에 걸터앉았다. 주위에 사람들이 없는 걸 확인하고는 목 놓아 한참을 울었다. 멀리서 등산객이 보이자 일어나 마음을 추스르고 다시 걷기 시작했다. 걷다가 몇 번을 더 산속에서 소리 내어 울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