수경은 계절에 맞지 않는 가족들의 옷가지를 차곡히 정리해 상자에 넣었다. 오전부터 정리한 가족들의 옷 정리는 중간중간 점심과 저녁 준비, 청소, 육아를 해야 했기에 아이들을 재우고 겨우 마무리가 되었다. 새벽 2:10분이라는 시간을 확인하고 수경은 마지막으로 거실 불을 끄고 아이들의 방으로 들어갔다. 목과 등 근육의 뻐근함을 느끼며 오늘 하루 무리했다고 생각하며 잠이 들었다. 하지만 곧 수경은 몸속에서 뜨거운 열기를 느끼며 일어났다. 당황하며 일어나는 순간 수경을 둘러싼 방 전체가 빙빙 돌기 시작했다. 배가 찢어질 듯 아파오기 시작했고 명치와 허리가 끊어질 듯 아팠다. 수경은 아이들을 깨우지 않기 위해 한 손으로 배를 움켜잡고 다른 손으로 터져 나오는 비명을 막으며 기어 나와 욕실로 갔다. 몸속이 타는 듯했고 온 몸에 뜨거운 열이 나며 땀이 흘렀다. 어지러움이 심해 바닥에 엎드려 눈을 꼭 감았지만 울렁거려 세면대에 기대고 일어나 차가운 물을 마시기 시작했다. 하지만 곧 맑은 물을 욕조안에 토해 버리고 말았다. 한참 동안 복통으로 배를 끌어안고 화장실 바닥에서 몸을 웅크리며 신음했다. 풀어헤친 머리카락 끝으로 땀이 흘러내렸고 수경은 고통에 몸부림을 쳤다.
“살려주세요. 살려주세요. 제발 살려주세요.”
수경은 나직이, 그렇지만 필사적으로 울부짖었다. 다시 욕조에 물을 틀어 서늘한 물속으로 옷을 입은 채 들어가 앉았다. 고통은 금방 사그라들 것 같지 않았다. 수경은 이대로 죽게 될까 두렵기 시작했다. 고통을 마주하고 보니 공포스러웠다.
‘하나님, 아직 제대로 한 게 아무것도 없어요. 더 욕심내지 않을게요. 5개월은 주세요. 의사의 말처럼 제발 5개월만이라도 버티게 해 주세요.’
울면서 두 손을 모아 빌고 또 빌었다. 정신을 잃으면 죽게 될까 두려워 아득해지는 정신을 잡으려고 노력했다. 하지만 정신을 차리려 할수록 세포 하나하나 갈기갈기 찢어지는 것 같은 고통에 차라리 정신을 잃어버리고도 싶었다. 다행히 핑핑 도는 어지러움이 조금씩 가시기 시작했다. 몸이 타들어가는 것 같은 고통도 점차 사그라들기 시작했다. 욕조에 앉아 정신을 집중하려고 노력하는 사이, 조금씩 고통이 잦아드는 것을 느끼며 수경은 ‘감사합니다’라는 말을 계속 중얼거렸다. 욕조에서 마지막까지 사그라드는 고통을 느끼며 수경은 비로소 자신의 몸속 암과 첫인사를 한 느낌이 들었다.
‘너로구나.’
결코 반가운 손님은 아니었지만 언제든 찾아오고 또 만날 것이 예정된, 무엇보다 자신과 함께 생을 마칠 존재였다.
욕조에서 몸을 추스르고 일어나 젖은 옷을 벗고 넓은 타올로 자신의 몸을 감쌌다. 욕조 거울에 비친 얼굴을 보니 노랗게 변해 있었다. 수경은 거울 가까이로 바짝 다가서 자신의 얼굴을 비춰 보았다. 얼굴뿐만 아니라 눈 흰자까지 노랗게 변해 있었다. 황달이었다. 수경은 자신의 뺨을 쓰다듬으며 한동안 물끄러미 거울 속의 자신을 쳐다보았다. 눈물이 맺히더니 걷잡을 수 없는 감정이 떠밀려 나와 울음을 터트렸다.
이제 수경의 귓가에는 째깍대는 시계 소리가 들리는 듯했다. 울고 있는 자신의 모습이 서러워 입을 막으려 하자 울음은 더 거칠게 밀려 나왔다. 죽는다는 사실을 실감했다. 수경은 다리가 풀려 바닥에 주저앉아 엎드려 울었다. 외롭고 추웠다. 수경은 그때, 문득 미정의 얼굴이 떠오르며 그녀의 목소리가 들렸다.
“호스피스 병원에서 일하고 싶어요.”
미정은 수경과 Ryan이 일하던 때, 영어 학원에서 함께 파트타임으로 아르바이트를 했던 의과대생이었다. 그리 친하게 지내지는 않지만 그때의 인연으로 지금까지 가끔 새해 인사를 주고받고 있었다. 의과대생 미정이 호스피스 병원에 대해 이야기하기 전까지는 수경은 그런 곳이 있다는 사실조차 몰랐다. 회식 자리에서 호스피스 이야기가 나와 수경이 궁금해하자 미정은 그곳에 관해 상세하게 설명해주었다. 특히 암성 고통을 견뎌내야 하는 환자에게 인간으로서 마지막을 준비할 수 있는 존엄을 지켜주기 위한 일이라며 사뭇 진지했던 그녀의 얼굴이 떠올랐다. 그 후로도 가끔 ‘호스피스’라는 단어를 들을 때마다 미정을 떠올려 왔었다.
수경은 일어나 젖은 머리카락을 닦고 옷을 입고 거울 속에 비친 자신을 바라보았다. 어제까지 알던 쌍둥이들을 돌보며 남편과 싸우기도 하면서 부부애를 느끼던 사람, 친구들을 만나 수다 떨고 빨래를 정리하며 TV에 나오는 웃긴 장면에 혼자 키득대며 웃던 사람, 초등학교 분식점 앞에 서서 떡뽂이를 먹으며 혼자만의 시간을 즐거워했던 사람, 아이들과 숨바꼭질을 하며 들킬세라 숨으며 소리 죽여 웃던 사람도 분명히 그곳에 있었다. 하지만 고통 속에 만신창이가 되어 화장실 바닥을 기어 다니며 울던 여자, 종교가 없는데 ‘하나님 살려 주세요’ 애원하며 울부짖던 여자, 눈물로 범벅된 노란빛의 얼굴로 외롭게 서 있는 여자도 낯설지만 이 여자였다. 새로운 만남이 몸서리치게 무섭고 낯설어도 그녀에게 적응해야 한다는 사실을 알고 있다.
고통과 함께 찾아온 이 여자와 함께 남은 생을 살아가게 될 것이다. 그리고 이 여자와 생을 마감하게 될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