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6. 인연

by Momanf

수경은 아침 8시쯤, Ryan에게 간밤에 속이 좋지 않아 병원에 가야겠다고 대충 얼버무리고 집을 나섰다. 초음파 사진을 찍고 몇 가지 검사를 거친 후, 링거를 맞으며 침대에 누워 잠이 들었다. 몇 시간 후 만난 의사는 첫 진단 사진과 아침에 찍은 사진을 비교해 보여주며 암이 림프절로 전이가 되기 시작했고 황달은 담즙이 제대로 흐르지 못해 발생한 증상이었다고 말했다. 의사는 항암치료와 방사선 치료에 대해 설명을 했고 수경은 의사에게 미국으로 짧게 여행을 다녀와야 된다고 말했다. 의사는 무리라고 말했지만 오랜 상담과 수경의 부탁으로 약과 모르핀 주사에 관해 의논했고 항암치료 스케줄을 맞추었다. 의사가 처방한 약과 모르핀 주사기의 양을 보며 수경은 간밤에 찾아온 손님이 얼마나 고약했는지를 가늠할 수 있었다. 거울로 황달기가 사라진 얼굴을 확인하고 최소한 그녀가 말하기 전까지 사람들은 그녀가 아픈 줄 모를 테니 다행이라 생각했다. 약국 유리창으로 매무새를 가다듬고 시계를 확인한 후, 걷기 시작했다.

어느덧 길가에는 푸르고 무성한 잎들이 태양볕을 받으려고 하늘 위로 곧게 뻗어 있었고 가볍게 부는 바람과 나무들 사이로 날아가는 새들의 소리가 처음 느끼는 감각들처럼 자극적이었다. 새벽에 느꼈던 끔찍한 고통에서 벗어나 이렇게 편안한 몸상태로 걷고 있다는 자체가 기적처럼 여겨졌다.

이렇게 뭔가를 잃어버린 후에야 그것이 당연한 게 아니었다는 걸, 가장 중요한 것을 가지고 있었음에도 만족할 줄 몰랐고 감사하지 못했다는 것을 깨닫는다. 오히려 삶을 버거워하며 늘 무엇인가에 쫓겨 계절의 변화, 자연 따위라고만 생각했다. 눈앞에 보이는 것보다 보이지 않는 것을 걱정하고 바랬고 원했고 쫓았다.

수경은 오랜만에 자신의 발걸음과 손의 움직임, 온몸의 생동감을 느꼈다. 고통이 없는 편안함이 얼마나 감사한 일인지, 살아있다는 것이 얼마나 찬란한 일이었는지를 느꼈다. 이렇게 단순하게 살았어야 했다. 건강하고 편안히 쉴 집과 배를 채울 먹을거리, 사랑하는 가족과 이야기를 나눌 친구 외에 중요한 것이 더 무엇이었나? 늘 미래를 준비해야 한다는 걱정으로 현재를 즐길 수 없었다. 그래서 현재에 갖고 있는 충분함을 미처 보지 못한 채, 미래에 기준을 두고 한숨짓는데 시간을 낭비해왔다. 그토록 계획했던 미래에 도착하는 순간, 늙고 병든 생명을 연장하는데 나머지 시간과 돈이 쓰일 뿐이라는 사실을 깨닫게 된다. 특별히 노력한다고 해서 오래 사는 것도, 조심해서 건강하게 사는 것도 아니다. 그저 모든 사람들에게 주어진 시간이 다를 뿐이고 비교 대상에 따라 수경의 삶은 긴 편이었을지도 모른다. 문제는 비교와 경쟁을 통해 지금 보다 더 많이, 더 좋은 것을 욕심내는 데에 있었다. 더 많은 정보를 알아내야 나와 내 가족이 안전하고 남들보다 더 유리한 조건에 들어갈 수 있다는 것에 집착해왔다.

수경은 언젠가 다시 찾아올 암성 고통을 두려워하는 대신 지금 당장의 편안한 몸 상태에 감사하기로 했다. 그리고 만지고 사랑한다 전할 수 있는 가족들과 친구들과 시간을 보내고 감각으로 느껴지는 자연을 즐기기로 했다. 남은 시간이 있다는 것을 감사하기로 했다. 갑작스러운 사고로 이별하는 이들 앞에서 마지막으로 자신의 삶과 자신의 사람들에게 인사할 수 있다는 사실이 감사했다. 삶은 기준에 따라 불평불만 대신 어쩌면 감사할 이유밖에 없을지도 모른다.

수경은 걷다가 나무 그늘 아래 벤치를 발견하고 앉았다. 목적지를 향해 발걸음을 재촉하고 싶지 않았다. 간밤에 미정을 떠올린 것이 생각나 휴대폰을 꺼내 그녀의 이름을 찾았다.

[미정 선생님, 잘 지내죠? 선생님을 한번 만났으면 좋겠어요.]

둘은 함께 일했던 인연으로 생긴 호칭인 ‘선생님’이라 서로를 부르고 있다. 수경은 메시지를 보낸 후, 자신을 둘러싼 주위를 돌아보았다. 다들 바쁘게 무언가를 향해 걸어가고 있었다. 그 한 사람 한 사람을 붙들고 ‘어디로 향해 걷고 있냐?’고 물어보고도 싶었고, 지금을 충분히 살라고 말해주고도 싶었다. 그때, 건너편 교회의 십자가가 눈에 들어왔다. 살려달라고 애원하며 불렀던 하나님은 도대체 누구일까? 그를 잘 알지 못했지만 데려가지 말라고 부탁했고 고통은 다행히 멎었다. 그가 내 부탁을 들은 것일까? 그런 생각을 하고 있는데 휴대폰 문자 알림음이 울렸다. 미정이었다.

[네. 저는 잘 지내고 있어요. 마침 오늘 휴무라 서점에서 책 읽고 있는데 선생님 문자를 보고 너무 반가웠어요. 언제 시간 되세요?]

수경은 많은 죽음을 접하는 그녀에게 질문하고 싶은 게 많았다.

[혹시 서점이시라면 시내에 계신가요? 저도 외출했다가 그냥 집에 들어가기 아쉬워 괜찮으시면 제가 그쪽으로 갈게요. 아쉬워서요.]

미정은 그리 멀지 않은 곳에 있었고 수경은 택시를 타고 서점에 도착했다. 서점 한가운데 있는 커피숍에서 미정을 찾기 위해 두리번거리고 있을 때, 미정이 수경에게 손짓했다. 기억 속에 그 앳된 의대생이 아닌 믿음직스러운 의사의 모습으로 앉아 있는 그녀를 보고 수경은 두 사람 사이의 긴 시간의 갭을 느꼈다. 오랜 시간의 다리 위를 건너 두 사람은 손을 맞잡고 반가워했다. 함께 일하는 동안에는 근무 시간 동안이나 회식 자리 외에 따로 만난 적은 없었지만 서로에게 좋은 감정이 남아서였는지 오랫동안 친하게 지낸 친구처럼 낯설지 않았다. 미정은 수경의 가족의 안부를 물었고 그녀의 바람대로 호스피스 병원에서 근무하는 의사가 되었다고 했다.

“그곳은 곧 죽을 사람만 가는 거죠? 거기서 살아 나오는 사람은 없는 거죠?”

수경이 조심스레 물었고 미정은 미소를 지으며 답했다.

“모두들 호스피스 병원은 죽으러 오는 것으로 여겨요. 물론 육체는 병으로 무너져가고 의학적으로 더 이상 가망 없는 상태로 오긴 해요. 하지만 고통 속에서 생명만을 연장하며 지내는 일반 병원이 꼭 사람을 살리는 곳이라고 말하기는 어렵잖아요? 그런 점에서 호스피스 병원은 암성 고통에서 벗어나 마지막으로 사랑하는 사람들과 소중한 시간을 보내고 아름답게 자신의 생을 마감할 수 있도록 준비하는 곳이라고 생각해요. 그것을 위해 환자의 육체적 고통을 덜어주는 것이 제가 하는 일이고요. 그밖에 환자들은 봉사하러 오신 분들과 삶을 나누고 수녀님들, 목사님들, 스님들과 삶과 죽음에 대한 깊은 대화를 하세요. 죽음을 그저 두려움의 대상으로만 여기지 않고 삶의 한 부분으로 받아들이는 것이 저희 병원의 역할이라 생각해요.”

“종교를 갖고 있는 것이 그곳에 계신 분들께 도움이 되나요?”

미정은 잠깐 생각해보더니 대답했다.

“제 생각엔 확실히 그렇다고 할 수 있어요.”

수경은 이유가 궁금해 미정의 다음 말을 기다렸다.

“사실 모두에게 죽음은 쉽지 않잖아요? 두렵고 외롭고. 하지만 우리가 어디서 왔고 어디로 가는지를 정확히 안다면. 그리고 이 세상에 온 이유와 누군가에게 돌아가는 것을 안다면 큰 위안이 되는 건 사실이에요. 저는 크리스천이라 그것이 얼마나 큰 힘인지 잘 알아요.”

수경은 고개를 끄덕였다.

“가끔 미정 선생님을 떠올리면 회식 자리에서 내게 아주 진지한 얼굴로 호스피스 병원에서 일하겠다고 말하던 반짝 거리는 눈이 기억났어요. 선생님을 통해 호스피스라는 병원에 대해 알게 되었고 늘 궁금했던 건 어떻게 그 어린 나이에 거기서 일 할 생각을 했어요?”

“제가 어릴 때부터 어머니가 그곳에서 봉사를 하셨어요. 그곳에서 죽음을 맞이하는 분들의 이야기를 들으며 자란 영향이 큰 것 같아요. 죽음을 바라보고 우리가 마지막으로 가는 방향을 알고 살아가니 삶이 얼마나 풍성하고 감사할 것 밖에 없는지! 어머니가 늘 하시던 말씀이셨어요. 세뇌당한 것 같아요. 하하. 사실 결정적인 계기는 가정의학과 수련 과정에서 암성 통증으로 고통스럽게 죽는 환자를 본 거예요. 눈앞에서 아주 생생히 죽음을 목격했어요. 생을 무서움에 비명 지르며 마감하는 환자들이 너무 안타까웠어요. 그래서 환자들이 이 세상에 온 이유를 발견하고 남은 시간 동안 자신의 생의 의미를 찾고 생을 잘 정리하는 일을 돕고 싶었어요.”

둘은 진지하게 서로의 눈을 바라보았다.

“미정 선생님은 참 지혜로운 어머니 밑에서 어릴 때부터 소중한 교육을 받고 자랐네요. 그러니 남달랐나 봐요. 대부분의 사람들은 돈을 많이 벌기 위해, 혹은 명예나 성공을 위해 의사 한다고 하잖아요. 제 주위에서 호스피스 병동에서 근무할 거라고 의과 공부를 하는 사람은 한 번도 본 적 없는 것 같아요.”

미정은 고개를 끄덕였다.

“네. 자원하는 사람은 많지 않아요. 사실 이곳에서 제가 배우는 게 더 많아요. 명예나 큰 성공, 돈 보다 더 귀한 걸 얻고 배우죠. 덕분에 풍성한 삶을 살아요. 내가 가진 것이 없다고 여겨질 때조차 최소한 내게 건강한 몸이 있다는 것에 감사할 수 있어요. 그런데 그게 최소한이 아니란 거죠. 아파서 돌아가시는 분께는 건강이 전부니까요. 이렇게 내가 가진 게 사소한 것이 아니라는 것과 그것에 감사하면 갖지 못한 것을 갖기 위해 지치지 않게 돼요. 여기서 일하면서 보통 사람들이 바빠서 보지 못하거나 매일 잊고 사는 것들을 저는 반복해서 볼 수 있어요. 매일 배우기에 오히려 제게는 학교와도 같아요. 인간이 만든 사회의 인정이나 그들 기준의 성공이 아닌 나 자신과 하나님만 아시는 성공을 이루었다고 할까요? 아무튼 저는 진정 행복한 사람 같아요.”

수경은 그녀의 눈이 반짝이는 별 같다고 생각했다.

“정말 귀중한 재산을 어머님께 물려받았네요. 또 언젠가 그 귀중한 재산을 선생님 꼭 닮은 예쁜 아기에게 전달해주시겠죠? 말씀 듣고 보니 그것이 정말 부모가 해줄 수 있는 최고의 교육 같아요. 죽음을 진정 바로 봐야 내 삶이 풍성해지는군요.”

“아이러니하지만 삶 속에서 죽음을 바로 알고 준비하는 자세로 살아간다면 두려움 공포의 대상이 아니라 행복한 삶을 위한 열쇠로 볼 수 있어요. 대부분의 사람들이 행복을 위한 파랑새를 멀리서만 쫓고 있잖아요? 자기 안에 있는 줄 모르고 물질, 명예, 돈 뭐 그런 것들이 파랑새라 생각하잖아요. 장황했나요? 하하.”

미정이 멋쩍게 웃었고 수경은 고개를 흔들었다.

“오늘 선생님을 만난 게 얼마나 내게 소중한지 모를 거예요. 미정 선생님.”

수경은 눈물을 글썽였고 미정은 물끄러미 수경을 보다가 조심스럽게 물었다.

“혹시 주위에 아픈 분 계세요?”

수경은 눈물을 머금고 천장으로 고개를 들어 그 눈물이 흘러내리지 않게 담으며 웃었지만 눈물은 담기지 않고 볼 위를 타고 흘러내렸다.

미정은 걱정스러운 듯 그녀를 지켜보았고 수경은 눈을 잠시 감으며 마음을 추스르고는 곧 나직이 말했다.

“제가 많이 아파요. 사실 병원에서 나오는 길에 선생님께 문자 보낸 거였어요.”

미정은 잠깐 당황했지만 수경의 두 손을 잡으며 가늘고 긴 한숨을 쉬었다.

“선생님. 얼마나 힘드셨어요? 이제 보니 하나님께서 오늘 우리 둘을 만나게 해 주신 이유가 있었네요.”

수경의 어깨가 들썩 거리기 시작했고 크게 울지 않으려고 입술을 꽉 깨물었다.

“선생님, 제 차로 가요. 여기 주차장에 있어요. 그리고 다시 이야기해요.”

차에 올라타고 문이 잠기자마자 수경은 오열하기 시작했다. 미정은 묵묵히 그녀의 등에 손을 얹고 아무 말도 하지 않고 등을 쓸어내려주었다. 수경은 그렇게 한참을 울었고 얼마 후 차분하게 수경이 목소리를 가다듬고 말했다.

“고마워요. 미정 선생님.”

“가족들도 아세요?”

수경이 고개를 저었다.

“오늘 미정 선생님께 처음 말한 거예요.”

미정이 고개를 끄덕이며 수경을 안아주었다.

“얼마나 힘드셨어요?”

수경은 진단받은 과정과 지금의 몸 상태를 설명하기 시작했고 미정은 담담히 수경의 이야기를 들었다.

“배 안쪽에 묵직하게 눌리는 게 있어요. 평생 처음 겪는 느낌이라 뭐라고 표현은 못하겠지만. 뭘 먹으면 더 답답해지고. 병원에서 준 패치를 주면 통증은 덜한데 몸이 좀 가라앉아요.”

“혹시 너무 고통스럽다고 느끼시면 저희 병원으로 오세요. 앞으로 필요하시면 언제든 연락하시고요.”

수경은 그러겠노라 말을 제대로 잇지 못하고 미정의 두 손을 잡았다.

“수경 선생님, 하나님 만나세요. 하나님께서 선생님이 지금 느끼시는 두려움과 싸워주실 거예요. 이제 하나님께 맡기시고 마음을 편히 가지셨으면 좋겠어요.”

그 말에 수경이 정색해하는 얼굴로 말했다.

“신이 진정으로 있나요? 하나님이 있다면 내가 이렇게 암에 걸릴 수는 없어요. 이렇게 절망적인 상황에서 믿을 것은 오로지 나예요. 이 상황을 긍정적으로 보려고 애쓰고 감사하기로 마음먹으며 나를 위로한 것은 결국 제 자신 뿐이었어요.”

미정은 고개를 끄덕였고 수경은 말을 이었다.

“사실 근래에 저는 병으로 죽는다는 사실 때문에 사랑하는 가족들과 지내는 모든 순간에 감사하게 되었고 지난날을 많이 반성했어요. 올곧이 제가 마음을 바꿔 먹으려고 생각한 거예요. 남은 시간을 절망만 하고 울 수만은 없으니까. 이것이 죽음을 앞두고 내가 선택 나의 삶의 태도죠.”

수경은 잠깐 말을 멈추고는 무언가를 생각하는 듯하더니 다시 말했다.

“하지만 진짜 하나님이 있다면 따져 묻고 싶어요. 왜 나한테 이 모든 상처를 주느냐고? 부모로부터 몸과 마음에 큰 상처를 받고 아주 오랫동안 아파했어요. 하지만 내게 가족이 생겼고 이제 엄마가 이 세상 전부인 줄 아는 네 살 아들 딸이 있어요. 그런데 암이라니? 췌장암 말기라니? 이제야 부모의 상처로부터 벗어나 사는 것처럼 사는가 보다 했는데.... 이제 5개월밖에 살지 못하는 시한부가 되었어요. 미정 선생님, 정말로 나는 궁금해요. 신이 있다면 어떻게 한 사람에게 이 많은 불행 폭탄을 심어두신 거죠? 미정 선생님이 믿는 그 하나님이 진정으로 계시다면 힘든 어린 시절을 겪고 최선을 다해 살아보려는 사람에게는 오히려 상을 줘야 되지 않나요? 그 하나님이 생각하는 정의란 과연 무엇인가요?”

수경은 분노하고 있었다.

“정말 따지고 싶어요. 정말 따져 묻고 싶어요. 어떻게 나를 지켜보면서 이토록 잔인할 수 있냐고? 내가 하나님을 믿지 않아 벌 받는 건가요? 하나님을 부정하고 믿지 않은 대가인가요? 그의 복수인가요? 그렇다면 그런 하나님을 믿을 필요가 있나요? 어렸을 때도 나를 다독인 건 나 자신뿐이었고 지금 이 순간에도 죽음을 받아들이고 남은 시간을 감사하게 살자라고 격려하고 있는 건 나 자신뿐이에요. 나는 나 자신 말고는 아무도 없어요.”

미정은 말없이 고개를 저었다.

“수경 선생님 마음 이해해요. 그럼 저희 교회에 따지로 오실래요? 수경 선생님께서 지금 느끼시는 이 마음속 분노를 하나님께 고백하고 따지고 싸우러 오세요.”

따지러 싸우러 오라는 그 말이 수경의 마음을 움직였다. 가슴속 밑바닥부터 차오르던 분노를 표현할 대상이 없어 참아야 했다. 따지고 소리 지르고 공격하며 하나님과 싸우고 싶었다.

“선생님 교회에 가고 싶어요. 예배 중에 소리를 지르거나 난리를 부릴지도 모르지만요.”

“그럼요. 얼마든지요. 오셔서 수경 선생님이 느끼시는 이 괴로움. 이제 하나님께 맡기세요. 혼자 감당하시지 마시고요.”

수경은 하나님께 맡기라는 말이 잘 이해되지 않았지만 분노를 표출할 대상이 생겨 위안이 되었다. 이렇게 스칠 인연이었던 미정에게 자신의 병을 처음으로 고백하며 목놓아 울고 나자 가슴이 시원해졌다. 수경을 안타까워하거나 아이들을 걱정하는 말을 하지 않고 그저 등을 쓸어내려 주며 손을 잡아 주는 미정의 행동에 감사했다.

사실 가족이나 지인들에게 자신의 병에 알렸을 때, 그들이 지을 슬픈 표정과 자신에 대한 동정의 말, 아이들을 걱정하는 이야기를 듣는 것이 가장 두려웠다. 암을 진단받은 날부터 지금의 몸 상태와 5개월밖에 남지 않았다는 사실을 설명해야 하는 것도 피곤했다. 하지만 누군가에게는 알려야 했고 그 첫 대상이 미정이라 다행이라고 생각했다. 호스피스 전문의답게 자신의 상황을 잘 알고 있었기에 하지 않은 말 까지 그녀가 완전히 이해하고 있다는 생각이 들었다.

인연은 때론 참으로 이상하다.

가장 가까운 가족이나 친구에게는 차마 알리지 못했던 어려운 고백을 10여 년간을 만나지 못했던, 그리 가까운 사이도 아니었던 미정에게 털어놓았다. 그리고 그녀 덕분에 분노를 풀 대상을 발견했다. ‘미정과의 인연이 이러한 역할을 하기 위해 10여 년 전 이미, 그저 스쳐지나 칠 수 있었던 동료의 모습으로 나타나 있었던 게 아니었을까?’라는 생각에 미쳤다. 암성 고통을 느끼던 새벽, 하나님께 살려 달라고 애원하며 미정과 호스피스를 떠올렸던 것이 어쩌면 우연이 아니라는 생각도 들었다.

수경은 하나님이 정말로 존재하는지 확인하고 싶어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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