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7. 여행자의 준비

by Momanf

Ryan이 현관문 앞으로 와 수경을 맞이했다.

“How’s your feeling?” (몸은 좀 어때?)

“Feel much better now. Thank you, honey. You must be busy this morning. How were the kids?” (지금은 훨씬 나아. 고마워. 아침에 바빴겠네. 아이들은 어땠어?)

“Not bad. They were looking for you at the first time a little bit, but they played and had breakfast. And then, they left for the daycare with big smile. Everything was fine. By the way, what did the doctor say?” (나쁘지 않았어. 처음에는 당신을 좀 찾았지만 놀고 아침을 먹더라고. 그러고 나서 웃으면서 어린이집을 갔어. 다 괜찮았어. 그건 그렇고, 의사는 뭐래?)

수경은 Ryan의 말에 안도하며 웃었다.

“Just stomach was upset. It was just cramp. You know, I used to have the stomach problem. That kind of. I’m fine now. Don’t worry” (그냥 위가 탈 난 거였어. 위경련 같은 거. 당신도 알다시피 나 문제가 있었잖아. 그런 거야. 이제 괜찮아. 걱정하지 마.)

Ryan은 수경의 등에 손을 얹어 쓸어내리며 고개를 끄덕였다.

“And after kids left, I found the tickets for America. It was great deal. But we need to transfer from here to Japan, Japan to Chicago, Chicago to Atlanta.” (애들 보낸 후에 미국으로 가는 항공권을 구했어. 꽤 괜찮은 가격이었어. 하지만 일본에서 시카고, 시카고에서 애틀랜타로 비행기를 갈아타야 해.)

Ryan은 뿌듯해했고 수경은 오랜만에 그렇게 밝게 웃는 Ryan을 보는 게 좋았다.

“Oh, really? Great! honey. When do we leave? ” (그래? 잘됐네. 우리 언제 떠나?)

“It is on July 7th, and early flight. 5 a.m from Busan.” (7월 7일. 부산에서 새벽 5시에 출발하는 이른 비행이야.)

“OK. Wow! 2 weeks from now. Are you excited?” (알았어. 와! 2주 남았네. 당신 신나?)

수경이 Ryan에게 물었다.

“Yes. I am. I will talk to my sisters tonight. They must be thrilled, too.” (응. 오늘 밤 누나들에게 이야기하려고. 누나들도 엄청 기뻐할 거야.)

수경은 얼른 냉장고 옆에 있는 달력에 7월을 넘겨 동그라미를 그렸다.

“What can I prepare for them? I want to buy something for them. I am so excited to see them , too.” (가족들을 위해 뭘 준비할까? 그들을 위해 뭘 좀 사가고 싶은데. 나도 그들을 본다고 생각하니 너무 좋아.)

수경이 환하게 웃으며 Ryan을 안았고 그도 그녀를 꼭 안아주었다. 순간 머릿속에 약과 주사기가 스쳐 지나갔지만 ‘다 괜찮을 거야’ 혼잣말을 하며 그 걱정을 급히 덮었다. Ryan이 오후 수업을 위해 떠나고 난 뒤, 수경은 급하게 집안일을 시작했다. 아침에 아이들이 옷 갈아입은 흔적, 밥 먹은 흔적들을 정리하며 집안일을 하고 있는 것에 감사했다. 냉동실에서 생선을 꺼내며 시간을 확인했다. 4시까지는 20분이 남아 있는 것을 확인하고 식탁에 메모장과 펜을 들고 앉았다. 시누들 선물, 조카들 선물, 아이들 3주 지낼 옷, 아이들이 쉽게 먹을 수 있는 여행용 반찬과 밥 등 여행에 필요한 물품들과 해야 할 일을 소소하게 적어 내려가기 시작했다. 글자들을 글적이고 있자니 수경도 설레기 시작했다. 하지만 사랑하는 가족들이 오랜만에 만나는 자리에서 폭탄을 터트려야 한다는 생각이 들자 곧 마음이 무거워졌다. 수경은 자신뿐만 아니라 남겨질 가족들도 준비해야 한다는 사실이 마음 아팠다. 홀로 준비하다 훌쩍 떠날 수는 없기에 이제 곧 가족들에게 시한부라고 말해야 한다고 생각하자 가슴이 두근거리기 시작했다.

‘내 가족을 부탁할 사람들은 시누들 뿐이다’는 생각이 들자 울컥 목구멍이 뜨거워지며 심장에 무엇인가 쿵 떨어지는 느낌이 들었다.

‘매일 똑같은 일상에서 성실히 잘 살아가고 있는 아이들과 남편의 세상 전체를 흔들 폭탄을 던져야만 한다.’

엄마의 빈자리가 서러워 눈물 지을 아이들과 Ryan이 내 쉴 한숨과 눈물. 상상하는 모든 것들이 꼬리에 꼬리를 물고 수경을 답답하게 했다. 심지어 어젯밤 숨통이 죄어오는 그 고통이 또 언제 들이닥칠까 두려웠다.

‘미국에 있을 동안 별일 없이 돌아와야 할 텐데. 아무 일이 일어나서는 안되는데. 거기서 죽으면 안 되는데....’

가족들과 생이별하지 않고 아이들과 지금처럼 함께 잠들고 허락한 시간까지 함께 아침을 맞을 수 있기를. 마지막 순간을 차가운 병원 안에서 생명을 연장하며 지내지 않기를. 아내의 병간호와 육아, 직장생활의 무게에 짓눌린 남편의 얼굴이 마지막 인사가 되지 않기를.

수경은 자신도 모르게 두 손을 모아 기도하는 자세로 눈물을 흘렸다.

“내게 부모가 있었더라면. 내게 형제자매가 있었더라면....”

부질없는 소망을 입으로 내뱉는 순간, 곧 더욱 참담해졌다.

이전 04화26. 인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