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국에 머문 지 벌써 나흘이 흘렀다. 미국의 아침은 가족들 중 가장 먼저 일어나는 사람이 주방으로 나와 커피를 내리면 일어나는 순서대로 주방으로 나와 한잔의 커피로 시작했다. 커피머신 한 대로 부족해 하루에 두세 번 커피를 내리기에 아침은 내내 커피 향기가 머물렀다. 보통 아침 식사는 일찍 일어나는 Ryan이나 Kelly의 남편이 도넛을 사들고 와 아침을 먹기도 하고 Kelly나 Shelly가 먼저 일어나는 날이면 토스트나 베이컨, 프렌치토스트, 계란 등을 준비했다.
오늘 아침은 새벽부터 내리는 비로 수경은 늦게까지 잠을 잤고, 오전 늦게 일어나 주방으로 나왔을 때는 이미 아침 식사까지 마친 가족들이 아이들을 데리고 조카의 농구 경기를 보러 간다는 메모가 남겨져 있었다. 거실에는 큰 시누 Shelly가 딸과 통화하는 소리가 들렸고 수경은 커피를 들고 창가 식탁에 앉았다. 뜨거운 커피를 마시며 한참 동안 내리는 비를 바라보았다. ‘언제쯤 자신의 병을 가족들에게 알려야 할까?’라는 질문에 여전히 답을 달지 못한 채 계속 제자리걸음이었다. 어느 날 아침에는 눈을 뜨며 ‘용기를 내보자’ 했지만 가족들이 너무 즐겁고 행복해 보여 포기해야 했고, 또 어떤 날은 가족들이 각자의 스케줄들로 바빠 보여 못한 날도 있었다. 하지만 이 모든 것이 핑계라는 것을 수경은 스스로도 잘 안다.
“Hey. Sukyeong~” (수경!)
큰 시누가 주방으로 나와 생각에 잠겨 있던 수경의 어깨를 감싸 안으며 불렀다.
“What are you thinking about? You didn’t recognize I was here.” (무슨 생각하고 있어? 내가 여기 있는 줄도 모르더라.)
큰 시누가 웃으며 수경에게 물었다.
“Nothing. I just was out. Haha.” (아무것도. 그냥 멍 때리고 있었어.)
수경은 겸연쩍은 웃음으로 그렇게 대답했다.
“Twins make you keep busy, don’t they? But time is so fast. Look. Lucy is already 25 years old, I feel like she is still 7 years old sometimes. She doesn’t listen me anymore like 7 year- old girl.” (쌍둥이들이 너를 바쁘게 만들지? 하지만 시간이 참 빨라. 봐. 루시가 벌써 25살이야. 나는 여전히 걔가 때로는 7살 같은데 말이야. 걔는 더 이상 7살 소녀처럼 내 말을 듣지 않지.)
Shelly는 씁쓸하게 웃으며 말했다.
“Yes. Time is so fast. I still feel like I delivered twins just yesterday, but they are already 4 years old. I am sure you even feel more than me.” (맞아. 시간이 너무 빨라. 나는 그저 어제 애들은 낳은 것 같은 기분이 들 때도 있지만 벌써 4살이야. 넌 나보다 더 느낄 거라고 생각해.)
둘은 서로의 말에 공감하며 비 오는 창밖을 함께 바라보며 차를 마셨다. 수경은 그 순간 먼저 Shelly에게라도 먼저 말을 꺼내야겠다는 생각을 하는데 Shelly가 말했다.
“Sukyeong. Actually, I divorced with Tim last year. Ryan knew about it but I asked him that I want to tell you face to face, so Sorry about that I made Ryan keep this secret for me. It wasn’t a good news, so...” (수경, 사실, 나 작년에 팀이랑 이혼했어. 라이언은 알지만 내가 너의 얼굴을 보고 말하고 싶다고 부탁했어, 그래서 라이언이 너에게 비밀로 하게 해서 미안해. 좋은 소식이 아니라서 말이야....)
수경은 Shelly의 고백에 놀랐다. 수경에게 Shelly 커플은 티격태격 다투긴 했지만 늘 가장 친한 친구 같아 보였고 행복해 보였기 때문이다. 더군다나 대학교 때부터 캠퍼스 커플이라 둘이 함께 지낸 시간이 24년, 인생의 반을 지내온 가족과 이별이라니 수경은 믿기 힘들었다.
“I am so sorry to hear that, Shelly. “ (그 말을 들으니 유감이야. 쉘리.)
수경은 또다시 자신의 병을 말할 기회를 잃고 그녀의 고백에 놀라며 말했다.
“ I am fine. The year we finally decided to divorce was a little bit tough, but we knew we didn’t love each other anymore for a long time. Just for kids or just for responsibilities, those kinds of feelings only left between us, you know? But, finally when we decided divorce, we actually didn’t fight that much or stop hate each other. We could start to a new relationship as parents for our kids. Luckily, kids are all grown-up and they could understand us. Probably, they were not happy either because they knew we were not happy any more. You know?” (난 괜찮아. 우리가 마침내 이혼하기로 했던 그 해는 조금 힘들었지만 우리는 오랫동안 서로 사랑하지 않음을 알았어. 아이들 때문이라거나 책임감 같은 것들만 우리 사이에 남았지. 하지만 우리가 마침내 이혼을 결심했을 때, 우리는 사실 그렇게 많이 싸우지 않았고 서로 미워하는 것을 그만두었어. 우리는 우리 아이들을 위해 부모로서 새로운 관계를 시작할 수 있었지. 다행히 아이들은 다 컸고 우리를 이해하더라고. 아마 그들도 행복하지 않았을 거야. 애들이 우리가 더 이상 행복하지 않다는 걸 알았으니까. 무슨 말인지 알지?)
Shelly는 덤덤하게 자신의 이혼을 얘기했고 그녀에게 이혼이란 죽은 가지를 처낸 가지치기를 한 듯 보였다. 무엇보다 수경이 납득할 수 있었던 말은 아이들이 부모가 행복해하지 않는다는 걸 안다는 것이었고 행복하지 못한 부모를 지켜보고 있는 아이들이 얼마나 가슴 졸이고 마음 아팠을까 생각했다.
“Sometimes we just keep doing even though it is wrong, right? But, one day, when I woke up, I wondered why I have to keep doing it. Because I am a mother? Because I am a wife? Because I am a teacher? Because I don’t want to change? It was my life, not somebody’s. If I want to be happy, I should change and I need to take care of myself too. Do you understand, Sukyeong? To be honest, I am lonely sometimes, but I am not fake any more at least. So, I am free and happy now. (때론 우리는 잘못된 게 있어도 계속하잖아, 그렇지? 그런데 어느 날, 아침에 일어났는데 내가 왜 계속해야만 하지 궁금하더라. 내가 엄마라서? 내가 아내라서? 내가 선생님이라서? 내가 변화를 원치 않아서? 그것은 내 인생이었어, 그 누구도 아닌. 내가 행복하고 싶다면, 나는 변화해야 하고 나 자신도 돌볼 필요가 있어. 이해하지, 수경? 솔직히 말해, 나 가끔 외롭지만 최소한 내가 더 이상 거짓은 아니야. 그래서 나는 자유롭고 정말 행복해. 지금.)
수경은 Shelly의 고백에 공감하며 고개를 끄덕였다.
“When did you find out you didn’t love Tim anymore?” (언제 더 이상 Tim을 사랑하지 않는다는 걸 깨달았어?)
수경이 Shelly에게 질문하자 그녀는 한숨을 쉬더니 대답했다.
“Well. About 10 years ago, probably Lucy was 15 years old and I had stress out as you know, like any mothers of teenagers. Back then, I felt like I was suffocated with mother-daughter relationship because we were too emotional. So, I told Tim about Lucy. I just needed to have an advise and support by him. However, he said I was control freaky and I like to manipulate everyone. He said that that’s why he stressed out with me. I was shocked because that’s not what I wanted to hear that moment at least. Actually, he blamed me about everything. I just needed a teamwork, but it was not. I rather felt like we were enemies. My life was torn back then by my family, especially, by him. Later on, I found out he wanted to leave from me and kids because he had a woman.” (음... 10년 전쯤, 아마 Lucy가 15살쯤이었고 난 스트레스받았어. 알다시피 다른 10대를 가진 엄마들처럼 말이야. 그때에는 우리들은 너무 감정적이라서 딸과 내 관계에 질식할 것만 같았어. 그래서 Tim에게 Lucy에 관해 이야기했지. 난 단지 충고나 그의 지지가 필요했어. 하지만 그는 내가 통제하려는 괴물이고 교묘하게 사람을 조정하는 것을 좋아한다고 말했어. 그래서 그가 스트레스가 많다고 말이야. 난 최소한 그 당시에는 듣고 싶은 말이 아니었기에 충격을 받았어. 사실 그는 내게 모든 것을 불평했지. 난 단지 팀워크만 원했지만 그건 아니었어. 오히려 적 같았어. 내 인생은 그때 가족들에 의해 갈갈 히 찢겼어. 특히, 그에게. 나중에, 나는 그가 여자가 있어서 우리를 떠나려고 했던 걸 알게 되었어.)
Shelly는 차를 마시며 긴 한숨을 내쉬었고 수경은 Ryan과 자신이 싸우던 때를 떠올렸다.
‘이혼....’
수경의 입술 사이로 저절로 한숨이 흘러나왔다. 남편에게 마음이 멀어질수록 아이들에게 집착하게 되었다. 수경은 문득 그렇게도 사랑했던 남녀가 자식을 낳고 기르며 변질되어 가는 관계를 생각해 보았다. 많은 의무와 대화 단절을 통해 사랑은 이제 그 자리에 없고 서로에 대한 미움과 자식에 대한 의무만이 남게 되었다. 그렇게 가정을 계속 지속해 나가는 상황, 지속되지 못해 깨진 상황. 두 상황 다 죄 없는 아이들은 상처를 받는다.
수경은 가만히 Shelly의 손을 가만히 잡았다.
이혼으로 가기 전까지 많은 부부가 얼마나 애썼을까? 사랑했던 남편에게 다른 여자가 있다는 사실을 알았을 때, 어떤 심정이었을까? Shelly를 바라보는 수경은 짐작해보려 애썼다.
“I am O.K now. I will live for myself for the rest of my life.” (난 이제 괜찮아. 남은 인생은 나 자신만을 위해 살 거야.)
수경은 Shelly의 말에 고개를 끄덕였다.
매일을 영원히 살 것이라 생각했었다. 어제도 오늘도 내일도 똑같은 시간들이 주어질 줄 믿었다. 그래서 주어진 많은 시간을, 똑같이 반복되는 시간이라 여겨 버둥대며 힘들어하고 한숨만 짓기도 했었다. ‘내 인생은 고작 이런 것뿐인가?’ 하는 수많은 생각들로 하루를 버거워했던 미련한 날들이 얼마나 많았는가? 문득 수경은 우리가 죽음을 인지한다면 그것이 결정에 어떤 영향을 끼칠까 궁금해졌다.
“Shelly, If you knew you would die soon, how about your decision would be?” (쉘리, 만약 네가 곧 죽는다는 걸 알았다면, 네 결정은 어땠을까?)
Shelly는 잠시 생각을 하는 듯 창밖을 멍하니 바라보았다.
“ If I knew to die, I probably just stayed with him, and I would try to understand him more. At least, I might ask him what did the woman have for him.” (만약 내가 죽는다는 걸 알았다면, 난 아마 그와 지냈겠지. 그리고 그를 더 이해하려고 했을 거야. 최소한, 그에게 그 여자가 그를 위해 가진 게 무엇인지 물어봤을지도 모르지.)
그렇게 말하고 Shelly는 한숨을 길게 내쉬었다.
“You didn’t even ask why he met the woman?” (그가 왜 그 여자를 만났는지 넌 묻지도 않았어?)
Shelly가 고개를 끄덕였다.
“Nothing was important to me anymore to leave him. I just focused on my life.” (그를 떠나는데 더 이상 중요한 것은 내게 아무것도 없었어. 난 단지 내 인생에 집중했어.)
수경은 말없이 그녀의 잡은 손을 쓰다듬었다.
“I want to say sorry to him if I die soon.” (내가 곧 죽는다면 나는 그에게 미안하다고 말하고 싶어.)
Shelly의 눈가가 촉촉해지더니 눈물이 볼을 타고 흘렀다. 그녀는 두 손으로 얼굴을 쓰다듬어 내리며 감정을 추스리기 위해 노력했다.
“Then, do it before too late.” (그렇다면 더 늦기 전에 말해.)
수경과 Shelly는 한동안 말없이 서로를 바라보았다.
“You got me, Sukyeong.” (네 말이 맞아, 수경.)
죽음 앞에 서 있다면 지금 하고 있는 생각이나 결정을 그저 그렇게 흘러가도록 내버려 둘 수는 없을 것이다. 우리가 지금 하는 결정은 오늘 당장이기보다는 약속되어 있지 않은 내일을 위한 경우가 많다. 사람들은 현재를 고통스러워한다. 그래서 장밋빛으로 미래의 희망을 설정하지만 내일이 없다는 것을 알게 된다면 그것이 기준이 되지는 못 할 것이다. 미래에 몰두할 때, 현실은 달려가기에 너무 버겁게 여겨지고 거듭 자신을 평가하고 평가받게 된다. 그래서 이왕이면 현재가 기준이 되어야 한다. 아이러니하게도 매 순간에만 몰두할 때, 삶은 오히려 견딜만하다.
“I know it is a tough question. I just want you to see what else left in your heart not only hate.” (힘든 질문이란 걸 알아. 난 단지 증오 말고 네 가슴에 무언가 다른 게 남아있는지 네가 보기를 원했을 뿐이야.)
수경의 말에 Shelly는 수경을 안았다.
“Actually, I still don’t know what life is.” (사실, 나는 여전히 삶이 뭔지 잘 모르겠어.)
Shelly는 복잡한 얼굴로 긴 한숨을 쉬었다.
“Who knows what life is? Just focus on Now. Don’t make such regrets.” (누가 인생을 알겠어? 현실에 집중해. 후회 같은 거 만들지 말고.)
수경은 Shelly에게 말하며 자기 자신에게 말했다.
두 사람은 비가 내리는 창가로 고개를 돌리며 각자 울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