35. 어제와 다른 세상

by Momanf

Ryan은 잠들지 못하고 몇 번이나 눈을 떠 수경과 아이들을 바라보며 눈시울을 붉혔다. 수경을 향해 계속 빠져 드는 연민으로 감정을 주체할 수 없게 되자 자리에서 일어났다. Ryan은 일어나 거실로 나가며 손목시계로 새벽 5시 10분을 확인했다. 화장실을 쓰고 나와 운동화를 신고 밖으로 나갔다. 무거운 구름으로 뒤덮인 하늘은 어두웠다. Ryan은 바지 주머니에 손을 찔러 넣고 걷기 시작했다. 30분 정도 걸었지만 Ryan의 머릿속은 그저 화장실 바닥에 쓰러져있던 수경의 모습과 아이들의 잠든 얼굴뿐이었다.

‘다시 여기서 검사를 받고 정확하게 내 귀와 눈으로 확인하자. 정말로 4개월밖에 남지 않았다면 나의 미련으로 그녀를 희망 고문하고 시간 낭비하는 일은 없어야 한다.’

Ryan은 그렇게 마음을 먹었지만 완전히 미련을 버릴 자신이 없었다.

‘그녀의 말대로라면 4개월 후에 그녀는 더 이상 없다. 아이들에게 수경은 온 우주이고 나는 수경의 몫까지 아이들을 지켜야만 한다. 떠나는 그녀가 남겨질 아이들에 대해 걱정하지 않도록 그녀가 없는 삶을 계획해야 한다. 수경과 하루를 한 달처럼 사랑하며 살아야 한다.’

Ryan은 깊은 생각 속에 한참을 걷다 갑자기 걷던 길에서 멈춰 섰다.

그동안 가족들을 위해서라는 명분으로 일만 했던 자신의 모습과 더 많은 시간을 함께하자고, 아이들과 더 많은 시간을 보냈으면 좋겠다고 말하던 수경의 모습이 떠올랐다. 지금껏 이렇게 가족을 위해, 미래를 위한다는 이유로 가족과 떨어져 홀로 길을 걷고 있지 않았던가 생각해 보았다. 가족이 원했던 것은 그저 ‘함께’였다. 그녀에게 가족과 남은 시간 무엇을 하고 싶은지, 그녀 없이 아이들과 자신이 어떻게 지냈으면 좋은지 물어보고 의논해야 한다는 걸 깨달았다.

가족의 미래를 위해 현재라는 시간을 상납해온 건 그 누구의 명령도 아닌 자신의 결정이었다. 아이들 대학까지 부지런히 돈을 벌고 수경이 원했던 시간은 그 후에 주려고 했었다. 미래에 아이들과 그녀가 자신의 계획 설계를 감사해 주리라 생각하며 아직도 13년이나 남은 그 오랜 시간을 그저 참으라고만 했다는 것을 깨달았다. 그래서 정작 수경과 아이들 곁에 있지 못했다는 사실도.

Ryan은 헛웃음이 나왔다. 아이들은 이제 겨우 4세이고 아내는 이제 4개월밖에 남지 않았다는 시간을 계산해보았다. Ryan은 멈춰 섰던 그 자리에서 발걸음을 돌려 집을 향해 걷기 시작했다.

‘수경 없이 아무도 없는 한국에서 아이들을 키우는 것은 현실적으로 힘들다. 미국에서 직장과 집을 구해야 한다. 누나들에게도 이 사실을 알리고 아내를 더욱 사랑할 수 있는 시간을 주어야 한다. 아이들이 어릴 때만이라도 누나들에게 도와달라고 부탁을 해보자. 누나들 곁이라면 수경의 걱정을 조금이라도 들어줄 수 있을 것 같다.’

빗방울이 떨어지기 시작했다.

풀리지 않을 것만 같던 생각은 정리되기 시작했고 남은 시간 일을 줄이고 온전히 그녀와 아이들과 함께 하겠다고 다짐했다. 무엇보다 이번에는 혼자가 아닌 수경과 의논해 계획해야겠다고 마음먹었다.

비는 순식간에 소나기가 되어 Ryan의 시야가 흐려질 만큼 세차게 내렸다. 하지만 Ryan은 내리는 비를 피하려 하지 않고, 눈을 똑바로 뜨고 앞을 보며 걸어갔다.

‘감정에 기대 그녀를 끌어안고 울고 있기엔 그녀에겐 시간이 없다. 엄마의 빈자리가 느껴지지 않도록 아빠인 내가 엄마의 몫까지 살아내야 한다.’

거친 빗속을 뚫으며 Ryan의 표정은 비장해졌다. 출근을 하던 옆집 남자가 Ryan을 보고 창문을 열어 인사했지만 Ryan은 인식하지 못하고 그를 지나쳤다. Ryan 은 파도 속을 헤치고 나오는 사람처럼 걸었다.

비를 맞으며 매몰찬 현실을 받아들이고 그동안의 후회와 미안함, 서러움, 슬픔, 걱정 같은 감정도 씻어 내야만 했다. 어젯밤 화장실 문을 열어 아내의 얼굴을 본 순간 이미 자신은 자기가 살던 어제와는 다른 세상으로 들어왔다. Ryan의 계획도 수정되었다.

“Ryan?”

현관문 소리에 큰 누나 Shelly가 주방에서 커피를 내리다가 걸어 나와 흠뻑 젖은 Ryan을 놀란 눈으로 보며 외쳤다.

Shelly에게 ‘괜찮다’는 미소를 지어 보이려 입꼬리를 올리려 했으나 의도와는 상관없이 울음이 터졌다. Shelly는 너무 놀라 Ryan에게 다가갔고 Ryan은 터져 나온 자신의 울음에 당황하며 들어온 문을 열고 밖으로 나갔다. Ryan은 차고 쪽으로 걸어가며 울었고 다행히 세차게 내리는 비에 부담을 느끼지 않고 목놓아 울기 시작했다. Shelly도 그를 따라 밖으로 나왔고 어릴 때부터 키워 온 자식 같은 동생 Ryan이 우는 모습에 심장이 녹아내리는 것만 같았다.

“Hey. What’s up?” (무슨 일이야?)

Shelly는 떨리는 목소리로 물으며 Ryan의 팔을 잡고 물었다. Ryan의 얼굴은 비와 눈물로 흠뻑 젖어 있었고, 두 눈과 볼은 벌겋게 달아 올라 있었다. Shelly는 말없이 Ryan을 안았고 Ryan은 Shelly의 어깨에 머리를 파묻고 울기 시작했다. 그렇게 한참 비가 내리는 집 앞에서 Ryan은 울었고 Shelly는 그의 등을 쓸어내리며 울었다. Ryan의 우는 소리가 점점 잦아들자 Shelly는 Ryan의 두 어깨를 잡고 그의 눈을 바라보았다. Ryan은 울음을 떨쳐 버리려 헛기침을 하며 목소리를 가다듬었다.

“Shelly, Sukyeong is really sick. She has a pancreatic cancer. Her stage is 4 and She has 4 month left.” (누나, 수경이 많이 아파. 췌장암이래. 말기이고 그녀는 4개월밖에 안 남았대.)

Ryan이 더듬거리며 말을 마치자 몸에 힘이 풀린 Shelly의 두 손이 Ryan의 팔로 미끄러졌다. 오히려 이번에는 Ryan이 놀라 그녀의 팔을 잡았다.

“Oh my God.” (세상에나)

Shelly는 두 손으로 입을 막았다.

“I can’t believe it. Let’s check up one more.” (믿을 수 없어. 한번 더 확인해보자.)

그녀의 말에 Ryan은 고개를 끄덕였다.

“There should be something to save her. Let’s find out everything.” (그녀를 구할게 뭔가 있을 거야. 모두 찾아보자.)

Ryan은 Shelly의 말에 고개를 끄덕이며 동의했다. 둘은 한동안 아무 말도 하지 못한 채 내리는 비만 쳐다보며 지붕 아래에 서 있었다.

갑자기 Shelly가 Ryan의 팔을 잡고 집으로 이끌었다.

“Let’s have breakfast first.” (아침부터 먹자.)

주방에서 준이와 보리의 목소리가 들렸고 Shelly와 Ryan이 들어섰다. 수경은 과일을 자르고 있었고 아이들은 시리얼을 먹고 있었다. Kelly는 토스트를 구우려고 빵을 꺼내다 두 사람의 인기척에 고개를 들어 바라보았다. 수경은 Ryan의 흠뻑 젖은 모습을 보고 칼을 놓고 달려가 Ryan을 안았다.

“Oh, honey.I’m so sorry.” (오, 여보. 미안해.)

수경은 눈을 질끈 감으며 그의 등을 쓰다듬으며 눈물을 흘렸다. Shelly는 그런 수경의 뒤로 다가가 그녀의 어깨에 손을 얹고 머리에 입을 맞추었다. Kelly는 이 상황에 어리둥절한 표정으로 Shelly에게 두 어깨를 올리며 ‘무슨 일이냐?’는 제스처를 취했고 Shelly는 나지막하게 “Later.”이라고 답했다.

“Go take a shower first, Ryan.” (샤워부터 해. Ryan.)

Ryan은 수경의 말에 고개를 끄덕이며 방으로 들어갔다. Shelly는 보리와 준이에게 아침 인사를 하고 두 아이들 사이에 앉아 식사를 도와주었다. Kelly는 심상치 않은 분위기를 느끼고는 조용히 머그잔에 커피를 따르며 Shelly를 돌아보며 물었다.

“Hey. Shelly. Do you want some coffee?” (Shelly. 커피 마실래?)

Shelly는 고개를 끄덕였고 수경은 젖은 눈으로 Shelly를 보았다. 두 사람은 눈이 마주치자 울음이 터지려 했지만 애써 참으며 아이들에게 시선을 돌렸다. 주방에 남은 세 사람은 서로 아무 말도 하지 않은 채, 각자 분주히 아이들의 식사를 돕거나 아침 식사를 준비했다. 아이들이 식사를 마친 때 마침 Kelly의 대학생 딸 Lia가 방에서 나와 아이들과 아침 인사를 했다.

“Lia, Would you take them to read some books?” (Lia, 아이들 데리고 가서 책 좀 읽어줄래?)

Kelly가 Lia에게 부탁했고 Lia가 아이들을 데리고 서재로 들어갔다. 주방에는 세 사람이 남았고 Kelly는 Shelly에게 이제 말해보라는 듯 눈빛으로 의사를 전달하자 Shelly는 헛기침을 했다.

“Sukyeong, I heard you are sick from Ryan. Oh dear.” (수경, 난 네가 아프다는 말을 Ryan에게서 들었어. 이런)

Shelly는 말을 마치자마자 일어나 접시를 정리하고 있는 수경에게로 걸어가 수경을 안았다. 수경은 Shelly가 그녀를 안자 눈물을 터트렸다. Kelly는 여전히 상황을 완전히 파악하지 못한 복잡한 얼굴로 둘을 바라보았다.

“Kelly, Sukyeong has a pancreatic cancer, and 4th stage. Her doctor said that she has only 4 months left.” (Keylly, 수경이 췌장암에 걸렸고 말기래. 의사가 4개월밖에 남지 않았다고 말했대.)

Shelly는 설명했고 Kelly는 충격을 받아 입을 다물지 못했다.

“I am so sorry.” (미안해.)

수경은 흐느끼며 말했다.

“Oh my gosh, Don’t say that, Sukyeong. It is not your fault. Poor thing.” (세상에. 그런 말 마, 수경. 그것은 네 잘못이 아니야. 불쌍한 것.)

Kelly도 수경의 어깨를 안으며 말했다. 세 사람은 서로를 껴안으며 울었다.

“Let’s check up here again. I will contact some of my doctor friends, O.K? How bad is your pain? Were you painful while you were here? How could you tolerate alone?” (한번 더 여기서 확인하자. 내가 내 의사 친구들에게 연락할 거야. 알겠지? 네 고통이 얼마나 심각하니? 여기 있을 동안도 아팠니? 어떻게 홀로 겪었니?)

Shelly는 질문을 던지다 목이 메었다.

“You have us. You know that!” (너에겐 우리가 있어. 너 알잖아.)

수경은 고개를 끄덕였다.

Kelly는 여전히 충격적인 얼굴로 천장을 향해 고개를 젓고만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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