36. 일상의 위대함

by Momanf

수경이 아프다는 사실을 모든 가족들이 알게 된 후, 한꺼번에 외출하는 일 없이 누구든 한 사람은 수경의 곁을 지켰다. 보리와 준이를 다들 전보다 더 적극적으로 돌보았고 Kelly와 Shelly는 자신의 인맥 모두를 동원해 전문의를 찾아 가장 빠른 예약을 해두었다. 수경은 삼일 후면 미국에서 다시 한번 모든 검사를 받아볼 수 있게 되었다. 수경은 약과 주사 덕분에 다행히 속이 불편한 것을 제외하고는 극심한 고통을 느끼지는 않았지만 약기운으로 피곤해 잠을 많이 자게 되었다.

어쩐지 아이들에게 미안한 생각이 든 수경은 고모들과 놀고 있던 아이들을 불렀다. 아이들의 머리를 쓰다듬고 입을 맞추며 책을 읽어 주었고 아이들은 엄마가 읽어 주는 동화책 세상에 흠뻑 빠졌다. 보리는 엄마가 책을 다 읽기가 무섭게 뛰어가 다른 책을 꺼내왔다.

“엄마, Bambi 읽어줘”

아이들은 책 속에 귀여운 토끼와 사슴의 장난에 까르르 웃었고 사냥꾼이 Bambi 엄마를 총으로 쏴 죽여 혼자가 된 Bambi가 울자 아이들도 울먹거렸다.

“엄마. 슬퍼.”

준이가 이야기에 흠뻑 빠져 수경의 눈을 보며 말했다. 보리는 엄마를 꽉 안으며 말했다.

“엄마, 엄만 죽지 마, 죽으면 안 돼. 알았지?”

이제 아이들은 죽으면 영원히 못 본다는 사실을 알 수 있을 만큼 자랐다. 수경은 보리의 말에 눈물이 울컥 터지려는 것을 간신히 참으며 보리와 준이를 꼭 껴안았다.

“보리야, 준아. Bambi와 엄마는 영원히 헤어지는 게 아니야. 비록 엄마를 안거나 말을 할 수는 없어도 엄마가 죽어서 Bambi의 심장으로 들어가 Bambi와 영원히 함께 살아갈 수 있게 된 거야. Bambi와 엄마는 이제 그 어느 곳에서나 언제든지 함께 할 수 있게 된 거야.”

아이들은 잘 이해되지 않는 눈빛으로 수경을 쳐다보았다.

“이해하기 어려워? 음 어디 보자. 그래. 얘들아, 사랑하고 감사하고 소중하게 생각하는 감정들은 눈으로는 보이지 않지만 엄마가 우리 보리 준이 사랑하는 거 알아?, 몰라?”

아이들은 안다고 힘주어 말했다.

“우리가 함께 살아갈 때에는 그 마음이 각자의 몸속에 있단다. Bambi의 사랑은 Bambi 마음에, Bambi 엄마의 사랑은 Bambi 엄마 마음에 있지.”

수경의 목구멍이 뜨거워졌다.

수경은 아이들이 자신이 하고 있는 말을 이해하길 바랬다. 그것은 아이들 뿐만 아니라 자신을 지켜주는 믿음이기도 했다.

“Bambi엄마는 이렇게 큰데 어떻게 Bambi 속으로 들어가?”

보리가 동화책의 그림을 가리키며 수경에게 물었다.

“보리야, 우리가 기분이 좋고 슬픈 것을 느끼거나 머릿속으로 생각하는 게 뭐라고 했지?”

“생각 주머니!”

“응. 엄마가 보리와 준이를 사랑하는 마음, 그래서 행복한 감정, 소중하고 재밌고 기분이 좋은 기억들은 모두 생각 주머니 안에 있단다.”

수경은 그렇게 말하며 손가락으로 동그라미를 만들어 머리에 갖다 대었다.

“이 생각주머니는 요렇게 작아. 그리고 너무 소중해서 우리 눈에 보이지 않아. 그런데 엄마가 죽으면 이제 엄마 몸속에 있을 수 없으니까 이 생각주머니가 뾰~옹 날아서 엄마를 가장 사랑하는 사람 마음 안으로 들어가게 되는 거야. Bambi엄마를 가장 사랑하는 사람이 누구야?”

“Bambi!”

준이가 힘차게 말했다.

“맞아. 그래서 Bambi 마음속으로 쏘~옥 들어가는 거란다. Bambi 엄마의 생각주머니가 Bambi 심장 속으로 들어가서 이제 Bambi가 가는 곳 어디든지 함께 다니며 마음속 이야기를 나눌 수 있단다. Bambi가 친구들하고 놀 때도 따라다니고 어린이집 갈 때도 함께 있단다. 잠을 잘 때에도 함께이고 화장실까지도 따라다닌대. 엄마 말 이해할 수 있어?”

보리가 고개를 끄덕거리자 덩달아 옆에 있던 준이도 고개를 끄덕거렸다. 수경은 그런 아이들을 꼭 안으며 이마에 입 맞추었다.

“엄마 강아지들 아주 똑똑해.”

아이들은 수경의 칭찬에 미소를 지었다.

“보리와 준이도 엄마가 한 말 절대로 잊으면 안 돼. 엄마가 나쁜 사냥꾼을 만나서 죽게 되더라도 엄마의 생각 주머니가 우리 아기들 마음속으로 쏘~옥 들어갈 거야.”

수경은 자신의 머리에서 생각주머니를 꺼내는 시늉을 했다.

“누가 엄마를 가장 사랑하지?”

아이들은 각자 자기가 엄마를 더 사랑한다며 실랑이를 벌였다.

“싸울 필요 없어. 누구든지 엄마를 사랑하는 사람에게 모두 똑같이 엄마의 생각 주머니가 가슴속으로 들어간단다.”

수경은 생각주머니가 허공을 날아 아이들 심장 속으로 들어가는 제스처를 취하며 아이들의 작은 가슴을 쓰다듬었다.

“쏘~옥 이렇게 들어가면 이제 엄마와 보리 준이가 언제나 함께 있다는 걸 기억해~.”

준이가 물었다.

“그럼 아빠는?”

“아빠도 엄마를 사랑하니 엄마의 생각주머니가 아빠 마음속으로도 들어갈 거야.”

수경이 그렇게 답하며 준이의 머리를 쓰다듬어 주었다.

“몸보다 더 중요한 것은 눈에 보이지 않는 이 생각주머니거든. 사람한테는 이 생각주머니보다 더 중요한 건 없어. 그리고 생각주머니는 어디에서든 살아야 하니까 몸이 없으면 자신을 가장 사랑하는 사람 몸속으로 들어가 살게 되는 거야. 엄마가 혹시 나쁜 사냥꾼의 총에 죽더라도 엄마를 가장 사랑하는 아빠, 보리, 준이 마음에서 함께 살아갈 거니까 걱정하지 마. 늘 너희들을 가장 사랑하는 엄마가 너희들을 보호하고 지켜줄 거야. 그러니 엄마가 죽더라도 너희들 속에 있으니 너무 슬퍼하거나 많이 울지는 마. 알겠지?”

아이들은 수경의 말에 고개를 끄덕였지만 슬픈 표정을 지었다. 수경은 그것을 눈치를 채고 얼른 말을 이었다.

“심지어 푸푸 쌀 때도 엄마가 함께 있을 거야. 아휴~ 똥냄새가 너무 심해서 엄마가 쓰러질지도 몰라.”

수경이 손사래를 치며 쓰러지는 척을 했다. 아이들은 ‘푸푸’라는 말에 심각하게 듣고 있던 얼굴에서 웃음이 번져 올랐다.

“푸푸. 푸푸”

아이들은 까르르 웃었다.

“그래. 엄마가 푸푸 피피 할 때도, 잠잘 때도, 밥 먹을 때, 친구들이랑 놀 때도 목욕할 때도, 공부할 때도 혼자 생각할 때도, 늘 함께 할 거니까 지금보다 더 많이 함께 있을 수 있는 거야. 준이 보리가 지금처럼 작을 때도, 커서 형아가 되고 언니가 되고 엄마 아빠처럼 어른이 되어도 늘 엄마의 생각주머니는 너희들과 함께 하는 거야.”

준이는 계속 “푸푸 푸푸” 하며 침대에서 뛰기 시작했고 보리도 까르르 웃으며 함께 점프를 시작했다.

‘준이야, 보리야, 엄마 말 잊으면 안 돼. 꼭 기억해주렴. 두려워하거나 슬퍼하지 말고, 아파하지 말고 지금처럼 웃으며 행복하게 지내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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