초저녁 무렵, 아이들은 백야드에서 비누 방울을 불며 놀았다.
한국에서 병원 두 곳을 확인했더라도 미국에서는 결과가 조금 다르진 않을까? 요즘 다행히 심한 고통을 느끼지 못하는데 혹시 기적적으로 증세가 호전되고 있는 게 아닐까? 미국에서는 좀 더 진보된 혁신적인 약이나 치료 방법이 있지는 않을까?
그 모든 기대들이 수경과 Ryan, 시누들 앞에서 비눗방울이 터지듯 터지고 있었다. 현실은 기대감이 완전히 소거된 남은 시간 100일, 그것마저도 한 치 앞도 모르는 삶에서 장담하기는 힘들었다.
의사는 이제 남은 시간은 ‘정리의 시간’이라고 했다. 갈 사람과 남겨질 사람들을 위해 준비하고 정리하고 계획하는 것이 최선이라고 했다. 병원에서 재 검사를 하고 결과가 나오기까지의 시간을 차라리 축복이었다고 말하고 싶었다. 어른들이 병원에 다녀온 후 침묵하자 눈치 빠른 조카들이 보리와 준을 데리고 놀이터로 데려가겠다며 나갔다. 수경은 아이들과 조카가 놀이터로 떠나자 방에 들어가 누웠고 Ryan은 맥주병을 들고 조금 전까지 아이들이 놀던 뒷마당으로 돌아가 앉았다. Kelly는 주방에서 와인병과 와인 잔 두 개를 꺼냈고 Shelly는 혼자 팔짱을 낀 채, 거실을 서성거렸다. 모두 각자의 상황과 현실, 떠날 이와 남겨질 이를 위해 무엇을 해야 할지에 관한 생각들을 했다.
곧 모두 각자의 자리로 돌아가야 한다. 초등학교 선생님인 두 시누들과 Ryan은 학교로, Kelly가 와인잔을 들고 주방에서 나와 거실에 서성거리는 Shelly에게 와인잔을 내밀었다. 마침 수경이 물을 마시기 위해 밖으로 나왔다.
“What do you need, Sukyeong? I will get for you.” (뭐가 필요해, 수경? 내가 가져다줄게.)
Kelly가 수경을 보고 물었다.
“Water, please.” (물을 부탁해.)
수경은 Kelly에게 말하고 Shelly 옆에 앉았다. Kelly가 물을 들고 나와 수경에게 건네며 그녀 옆에 앉았다. 소파에 나란히 앉은 세 사람은 말없이 각자의 잔을 들이켰다. 마침내 Kelly가 수경에게 물었다.
“Where do you want to stay the rest of your life, Sukeyong? I mean...” (어디에서 남은 날을 지내고 싶니? 내 말은....)
Kelly는 질문을 하다 질문이 어이없다는 듯 피식 웃었다.
“What am I asking you. Of course Korea, your hometown.” (내가 뭘 묻고 있을까? 물론 한국이겠지. 네 고향.)
수경은 조금이라도 곁에서 도와주고 싶어 질문한 것을 알기에 Kelly의 손을 잡으며 말했다.
“Yes. But I am afraid that I can’t take care of my kids well. We don’t have any family in Korea.” (응. 하지만 내가 아이들을 잘 보살펴 주지 못할 것 같아 겁나. 한국에는 가족이 없잖아.)
“If You guys stay with me, I can take a care of you guys after work. I usually finish my school around 2. and Saturday and Sunday....” (너희들이 여기 있겠다면 내가 일 끝나고 너희들을 돌볼 수 있어. 내 일은 보통 2시에는 끝나. 그리고 토요일과 일요일....)
Kelly는 어떻게든 수경을 도와주고 싶어 구체적으로 말을 늘어놓다 의미 없는 일인 줄을 깨닫고 말끝을 흐렸다.
“Thank you so much, Kelly.” (고마워. Kelly.)
그때, Ryan이 들어서며 그들의 대화를 듣고 대답했다.
“But you must go to your home, Sukyeong. You need to see your friends, and....” (하지만 너는 집에 가야지, 수경. 친구들을 봐야 하고, 그리고....)
Ryan은 말 끝을 흐렸다.
“You could say good bye to your dad.” (너의 아버지에게 마지막 인사를 할 수도 있어.)
Ryan은 망설였던 말을 내뱉는 순간 가슴속에 묵직한 돌이 떨어지는 느낌을 받았다.
‘Say Goodbye.’ 수경은 갈 시간을 아는 사람이기에 마지막 인사를 선택할 수 있었다.
“Thank you, Kelly, but we must go back to Korea for Sukyeong. And I can handle it. I will keep in touch with you.” (고마워. Kelly, 하지만 우리는 수경을 위해서 한국으로 가야 해. 그리고 내가 할 수 있어. 내가 연락할게.)
Ryan가 말을 마치자 한참 동안 아무 말 어던 Shelly가 마침내 입을 열었다.
“I will ask my school to be possible me take off for this semester. If it says yes, I can go to Korea with you guys. As you know, I don’t have my husband and kids left already for their life. So I think I am a easier to take care of you guys than Kelly. Sukyeong, you also need to be taken care by somebody.” (내가 학교에 이번 학기에 쉴 수 있을는지 물어볼게. 만약 학교에서 된다고 한다면, 너희들과 한국에 갈 수 있어. 너희들도 알다싶히, 나는 남편도 없고 아이들도 각자의 생활로 이미 떠나고 없잖아. 내 생각에는 Kelly보다 내가 너희들을 돌보기에는 쉬울 거야. 수경, 너도 누군가에 의해 보살펴져야 하고.)
“Thank you, Shell but I will be O.K and I will find somebody for me and my family. I could ask my friends. I don’t want you guys take off or quit the job because of me. You must keep living your lives.” (고마워, Shelly. 너무 고마워, 하지만 난 괜찮을 거야. 그리고 나와 가족을 보살펴줄 사람을 찾아볼게. 친구들에게 물어볼 수도 있어. 나 때문에 너희들이 직장에서 쉬거나 그만두는걸 원치 않아. 너희들은 너희들의 삶을 살아야 해.)
수경은 물을 한 모금 마시고 곧 다시 말을 이어갔다.
“I want to ask you guys bigger favors. When I am gone, could you take care of Ryan, your little brother?” (나는 더 큰 부탁을 하고 싶어. 내가 가고 없을 때, Ryan, 너희의 동생을 보살펴 줄 수 있니?)
수경이 울먹 거리며 두 사람을 보며 말했고 시누들도 눈시울을 붉혔다.
“Of course, Sukyeong. Of course.” (물론이지, 수경. 물론.)
Shelly는 수경의 손을 두 손을 감싸며 고개를 끄덕였고 Ryan은 울음을 삼키며 주방에서 맥주를 들고 백 야드로 나갔다.
“I have three days left here. Let’s make great memories. O.K? Let’s not cry anymore please. I don’t want to remember only your sad faces.” (나는 여기에서 3일 남았어. 멋진 계획을 해보자. 알았지? 더 이상 울지 말자. 나는 너희들의 우는 얼굴만 기억하고 싶지 않아.)
수경은 둘을 번갈아 보며 미소를 지었고 두 시누는 고개를 끄덕였다. 수경은 두 사람의 손을 꼭 잡았다.
이들이 없었다면 떠나는 발걸음이 더 무겁게 느껴졌을 것이다. 수경이 떠난 후에는 남편과 아이들은 이곳으로 돌아와 살 것이고 시누들은 자기의 빈자리를 대신해 줄 것이다. 수경에게도 그녀들은 유일한 가족이었기에 두 사람을 가만히 껴안았다. 이미 그들 사이는 서로에게 가장 필요한 것이 무엇인지, 무엇을 하는 게 가장 최선인지 충분히 알고 있었기에 구체적인 대화는 필요 없었다.
“I want to wash my hands.” (나 손 좀 씻고 싶어.)
수경은 복받치는 감정으로 자리에서 일어나며 말했다.
세면대에서 서서 감정을 추스르고 있자 한국에서 해야 할 일들이 떠오르기 시작했다. 아이들을 위해 Ryan에게 당부해야 할 말들을 기록해 두어야 한다. 장례식 후, Ryan이 미국으로 이사할 때 필요한 것들을 작성해두고 업체를 미리 알아보는 일과 그런 일을 맡아줄 친구도 알아봐야 한다. 개인 보험 약관을 꼼꼼히 읽고 얼마큼의 보상을 받는 일이 가능한지 확인해야 한다.
마지막 병원 결과에 마음 한편에 있던 미련은 사라지고 짧은 시간 준비해야 할 일로 마음이 바빠졌다.
수경은 손을 씻으며 거울 속 자신의 모습을 쳐다보았다. 그녀는 힘든 시간을 겪어 오며 가능한 한 빨리 부정적인 감정을 추스르고 일어나 주어진 상황 속에서 가장 최고의 선택을 하는 것이 현명하다는 것을 배웠다. 자신의 의지와는 무관하게 일어나는 죽음을 상대로 원망하고 앉아 울기만 하는 것은 어리석었다. 수경은 자신에게 그러한 경험이 있어서 다행이라고 생각했다.
사람이 죽으면 그저 훌쩍 여행을 떠나는 것이라 생각했다. 한 번도 죽음 앞에서 이렇게 많은 준비를 해야 할지 상상도 못 했었다. 수경은 그런 생각이 들자 두 손을 모으고 작은 목소리로 속삭였다.
“사고로 갑작스럽게 죽음을 맞지 않게 해 주셔서 감사합니다. 가족들을 위해 준비할 수 있는 시간을 주심에 너무나도 감사드립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