얼마 전, 미국 교회 성경 공부 수업에 초대되어 두 번째 간증을 하는 자리를 가지게 되었다.
시간도 없었고 무엇보다 처음 간증에서 “준비하지 마라” 하신 메시지가 강해서 이번에도 준비하지 않았다.
성령님의 말씀이 강렬한 경험을 했기에 준비하지 않는 것이 맞을 것 같았다.
하지만 내가 어떤 말을 해야 할까? 한편으로는 막막해서 걱정되는 마음이 스멀스멀 올라왔지만 준비는 하지 못했다.
간증하러 가는 1시간 전에 샤워를 시작했는데 갑자기 “You are an outcast.”라는 말씀을 주셨다. 어떤 의미인지 정확히 알지 못했지만 내가 아웃캐스트, 소위 왕따, 쫓겨난, 버림받은, 의지할 곳 없는, 집 없는, 거절당하고 추방당한 자라는 단어가 납득이 되었다.
하지만 어떻게 연결할지를 잘 몰라 막막한 심정으로 준비하고 운전해 가는데 이번에는 “You are an orphan.”이라고 말씀하셨다. 최근에 한국에서 친척들에게 상처를 받고 이 문장을 받아들이고 있는 중이라 그 말도 납득이 되었다.
그런데 교회에 도착해 차를 주차하는데 “But, You are a bridge.”라고 말씀하셨다.
그제야 주님 하신 Outcast, Orphan이 조금 연결되어 이해가 되는 것 같아 나는 차 안에서 감사의 눈물을 흘렸다.
Outcast, orphan, bridge라는 세 단어를 들고 나는 “ I was an outcast in Korean Society.”로 간증을 시작했다.
아웃캐스트.
어릴 때부터 아빠에게 폭력을 당했고 스물한 살에는 너무 심하게 맞아 집을 나와야만 했다.
나는 부모에게, 집에서 쫓겨났다.
한국 사회는 그때, 시집갈 때까지 부모와 함께 지내는 것이 일반적이었고 나는 친구들과 달랐다.
가족 얘기를 할 때, 나는 아웃캐스트였다. 가족중심 사회인 한국에서 나는 아웃캐스트였다.
부모의 애정을 갈구했으나 얻지 못한 나는 애정결핍을 가졌다. 친구들과 모든 사람에게 잘 보이고 싶었고 주목받고 사랑받고 싶었다. 그래서 혼자 집을 나온 이후, 이를 꽉 물고 일을 시작했다. 돈을 많이 벌면 벌수록 나는 고가의 브랜드로 나의 겉을 꾸미기 시작했다.
내 힘으로 선택할 수 없었던 부모였지만 내 힘으로는 콤플렉스를 감출 수는 있었다.
4시간 자고 14시간, 16시간을 매일 일 할 수 있었던 모든 이유는 돈으로 애정 결핍을 가릴 수 있었기 때문이다. 좋은 차를 몰고 좋은 집으로 이사 갔으며 비싼 옷을 사 입고 좋은 곳에서 밥을 먹었다.
그렇게 남들처럼 살아가니 평범한 부모를 가진 사람 같아 보였다. 아니, 내 힘으로 성공한 자신이 부모 있는 사람들 보다 더 우월하게 느껴졌다.
하지만 나는 안다. 내 마음은 뻥 뚫려 있었다.
비싼 옷으로 아무리 치장하고 돈을 많이 벌고 능력을 인정받아도 뚫린 구멍은 채워지지 않았다. 오히려 남들보다 더 잘하려고, 더 잘되려고 질투하고 더 미워했기에 내 마음은 전쟁터였다.
고아.
나는 네 살쯤 엄마가 집을 나갔고 할아버지 할머니 집에서 거의 어린 시절을 보냈다. 여섯 살 무렵에 새엄마가 집에 왔고 곧 자기 딸을 낳았다. 하지만 자라면서 아빠, 새엄마, 배다른 여동생 세명만 가족이고 나는 가족 같지 않았다. 이런저런 이유로 아빠에게 매를 맞다 스물한 살 심하게 매를 맞고 물건이 다 부서졌기에 집을 나와야만 했다. 나는 그때부터 지금 마흔두 살까지 부모 없는 고아로 지냈다.
어린 시절에는 부모와 한 집에는 있었지만 정서적인 지지가 없었고 스물한 살부터는 물리적으로도 완전히 인연을 끊고 살았던 터라 난 부모가 없었다.
하지만 괜찮았다. 엄마 같은 고모가 있었고 아빠 같은 삼촌, 부모 같은 직장상사, 친자매 같은 친구들이 있다고 생각했기 때문이다. 나는 늘 엄마, 아빠, 형제자매를 대신할 사람들이 있다고 생각했었다.
하지만 이번 한국 방문에서 고모가 정확하게 내게 말해주었다.
나는 그녀에게 존재 자체로도 부담이 되기 때문에 한국에 애들 데리고 오지 말고 미국에서 잘 살라고.
어쩌면 전부터 느꼈지만 애써 부정하고 이해하며 부모를 대신할 사람들에게 매달려 왔었다. 내가 고아라는 사실을 직면하지 못해 ‘엄마 같은, 아빠 같은’ 뒤에 숨고 싶었다.
하지만 진실은 '나는 고아'이고 완전히 받아들여야만 했다.
하지만 나는 다리다.
주님은 처음부터 나를 다리로 지으셨다. 그것이 내가 지어진 목적이고 내 삶의 방향이라 생각하니 내가 아웃캐스트인 것이, 고아인 것이 다 이해되었다.
내 정체성이 다리라면 나는 어딘가에 소속되지 않은 아웃캐스트이고 고아였기 때문이다.
하지만 하나님과 사람을 연결하고 사람과 사람들을 연결한다.
어딘가에 소속되지 않는 것이 내 정체성이라면 이제 더 이상 어떤 그룹에 속하기 위해 노력하며 살지 않아도 된다. 사람들의 사랑과 관심을 받으려고 노력하지 않아도 된다. 엄마 같은, 아빠 같은, 자매 같은 관계로 가족 비슷한 것을 만들려고 애쓰지 않아도 된다.
나는 아웃캐스트와 고아가 되지 않기 위해 고군분투해 왔었다. 동시에 그들에게 내가 너무 의지해 부담을 느낀 그들이 떠날까 봐 겁이 났다. 그래서 내가 먼저 그들을 밀어내고 떠나버리기도 했다. 사람을 잃으면 외로울까 봐 겁났고 사람을 얻으면 집착하게 될까 봐 겁났다.
나는 항상 관계에서 불안하고 겁났다.
그래서,
아웃캐스트와 고아라는 말이 내게 얼마나 큰 자유를 주는지 모르겠다.
아웃캐스트, 고아로 지내는 동안 많은 경험이 내 마음에 고스란히 담겨 있다. 그래서 나처럼 마음이 아픈 사람들, 고아와 왕따들을 이해하게 되었다. 그래서 내게 글쓰기를 재능으로 주셨나 보다.
나를 미국에 데려오신 것도 이해가 된다.
마음 아픈 사람들의 다리가 되고 이방인의 다리가 되라는 뜻인 것 같다.
나는 하나님과 사람들을, 사람과 사람들을 연결하며 살아갈 것이다. 내게 머무는 사람은 없어도 모든 사람은 나를 지나간다. 옛사람이 다시 찾아오고 새 사람들이 내게로 온다.
나는 모든 다른 존재를 연결하는 Bridge 역할하는 내 존재가 좋다.
내가 부족하게만 생각해 왔던 내 외모, 영어, 살림등 늘 넘어지고 실수하고 제대로 못하는 것만 같은 내가 이제는 괜찮다.
가장 낮은 자리였던 아웃캐스트, 고아였던, 그래서 세상적인 눈으로는 불완전한 나는 주님에게는 그의 걸작품이다. 스스로가 부족한 상태라고 생각했던 내 모습조차도 하나님의 계획이라고 생각하니 나는 주님 앞에서 완전하다. 또, 내 자리가 낮아서 고아로 이방인으로 핍박받고 살았지만 주님은 십자가에 그 모든 짐을 짊어지고 나를 주님의 자리로 옮겨 주신 것을 나는 이제 명확히 안다.
나는 더 이상 아웃캐스트, 고아가 아니라 다리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