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험을 치를 때, 정답이 되는 책
이석증으로 여전히 어질어질했기에 대구에서 해운대까지 운전해 가는 것이 그 전날부터 부담스러웠다. 가는 동안 거의 2시간이 걸리는 거리에 피곤해지면서 핑핑 돌았던 그 날의 공포를 떠올리게 되자 불안감이 언습해와 애써 다른 생각을 하고 라디오를 들었다. 미정 언니에게 받은 아로마 오일과 지선아 사랑해 책을 들고 해운대 병원에 도착했다. 미국 이민 비자 신체검사를 마치고 일부러 해운대 맛집을 찾아가 밀면을 먹다 첫 장을 펼쳤는데 울컥했다.
[모든 걸 잃은 것 같지만 아무것도 할 수 없게 돼버렸지만 가고 싶은 교회도 학교도 맘대로 갈 수 없지만 오 주님, 감사합니다. 살아 있어서 흰 눈도 보게 하시고 겨울을 다시 맞게 하시니! 저는 축복받은 사람입니다.]
밀면 집에서 국물을 튀기며 읽을 수가 없어 허겁지겁 먹고 가방을 챙겨 해운대 바다가 보이는 카페를 검색해 edge993이라는 곳을 갔다. 루프탑은 더웠고 5층으로 내려가 시원하게 뻥 뚫린 4~5 사람 자리를 차지하고 기쁜 마음으로 바다를 봤다. 도착하자마자 내가 좋아하는 Moonriver가 흘러나왔고 난 운명처럼 느껴졌다. 거기서 이지선 씨의 글을 읽는다는 게.
하지만 어지러웠다. 이놈의 이석증. 잔잔한 파도에 아무리 집중해 떨쳐버리려 해도 너무너무 어지러워 눈을 몇 번이고 감았다가 다시 보고 정말로 이제는 바다를 즐길 수 없는 건가? 조금 절망감이 밀려오다가 책을 들고 있으면서 왠지 이런 생각도 사치일지도 모른다. 그래. 이석증 가지고 뭘. 하며 화상으로 얼굴이 무너진 것으로만 알았던 이지선 씨와 독대를 시작하려고 책을 펼쳤다.
[밤 10시 10분, 학교 후문에서 오빠를 만났습니다]에서 벌써 나는 나와 이지선 씨가 인연이구나 생각했다. 내가 문득문득 우연히 시계보다 10:10이면 다 멈추고 2012년에 하늘로 간 내 시월 이를 생각하고 고맙다 사랑한다, 또는 기도를 하기 때문이다.
그녀는 뉴스에서 나오는 사건사고가, 그저 흘려듣고 “에휴, 누가 또 다쳤나 보다” 하고 무심코 지나쳤던 사건의 주인공이 되며 글을 읽고 있던 나를, 그때까지도 그렇게 흘리고는 대수롭지 않게 생각하지 않았던 나를. 몇 문단의 단락으로 죄책감을 느끼게 했다. 아니, 그녀의 의도는 아니었다 정확히 말해서. 사건의 대상이 내 가족, 친구, 내가 아니면 무관심하게 흘려들으며 나에게는 전혀 일어나지 않을 거라는 내 무모한 확신에 “왜 너에게는 일어나지 않는다고 장담하는 거니?” 하는 질문을 던졌고 당황한 나는 아무 말도 할 수 없었다. 나에게도 일어날 수 있고 내가 사랑하는 이에게 일어날 수 있을, 끔찍한 상황. 이제까지 편안하다고 편안한 걸 장담할 수 없는 건데 당장 몇 분, 몇 시간 후에 어떤 일이 일어날지도 모르는 삶을 살면서 어떻게 그렇게 장담하고 살았을까? 죽음이라는 정해진 시간이 있건만 어떻게 평생을 살 것처럼 장담하면서 살고 있을까? 죽음보다 더한 고통이 올 지도 모르는 순간을 어떻게 나는 그 사건의 주인공이 절대 되지 않을 거란 장담을 하고 살아가고 있을까? 그냥 믿고 싶은 대로 믿고 편안하게 살아가고 싶었겠지.
갑자기 불안해지고 아쉬워졌으며 한편 모든 것이 감사함이었다. 남편 얼굴, 아이들 얼굴까지 떠올랐다.
이지선 씨는 만취한 운전자가 사고를 내 오빠와 집에 평소처럼 귀가하는 시간에 온 몸에 3도의 중화상을 입고 응급실로 옮겨졌다. 사고를 낸 차와 오빠의 마티즈 차에 걸쳐져 있는 다리 위로 상체는 이미 불길 속에 휩싸이고 충돌과 함께 연료통이 터지고 차가 몇 바퀴 돌며 불이 난 상황에 오빠는 최선을 다해 여동생을 꺼내고 급한 마음에 불을 끄려고 두 팔로 끌어안았다. 그때 의식을 잃었다가 잠깐 깨 [오빠, 나 이러고 어떻게 살아, 나 죽여줘] 했다고 했다. 그 날의 사건은 오빠에게도 큰 괴로움이었을 거라는 걸 짐작한다. 이지선 씨가 화상의 고통으로 너무 힘든 시간을 보낼 때, 그때 동생을 도와줘 죽도록 했어야 했던 게 아닌가? 자신에게 몇 번이고 물었을 질문이었을 것이다. 동생이 고통 속에 모든 걸 포기하거나 스스로 삶을 놓는 일을 선택했다면 오빠는 죽는 날까지 얼마나 힘들었을까? 하지만 해피엔딩 영화의 한 장면처럼 이지선 씨는 살기 위해 지옥을 경험했고 그리고 이겨내서 담담히 그 날의 사고를 터닝 포인트로 삼아 더욱 행복하다고 말해 오빠가 살려낸 선택에 죄책감이 아닌, 자부심을 갖도록 만들었다.
10년을 넘게 하느님을 믿어 온 이지선 씨는 어떻게 이런 일이 나에게 일어났나 몇 번이고 생각했을 것이지만 목사님이 [이때를 위한 믿음이라, 이 사건을 위한 믿음입니다]라고 전했고 이지선 씨는 [하느님을 믿는다고 해서 아무런 고난이 없을 것이라고 하신 적은 없습니다. 비가 내리면 누구나 비를 맞듯이 어려움은 누구에게나 생길 수 있습니다. 그러나 믿음을 가지면 누구나에게 닥칠 수 있는 고난을 넉넉히 이길 힘을 갖게 되는 것 같습니다. 우리 가족이 가진 최대의 재산은 바로 그 믿음이었습니다. 바로 이때를 위한 믿음이었습니다] 깨달았다. 그리고 그것은 내가 좋은 교회에 가서 성경 말씀을 공부해야겠구나. 내가 영성을 공부하고 있는 것이 다 하나로 통하지만 교회에는 실로 그 큰 믿음으로 지혜를 나누고 서로를 형제자매로 생각하며 기꺼이 사랑하는 이들을 만날 자리가 될지 모른다. 교회에 나가 성경 공부도 꾸준히 하고 불교의 가르침도 공부하며 영성에 밝은 몇 분의 저자들의 책으로 우주를 보는 지혜를 갖고 싶다는 생각을 일으켰다.
이지선 씨는 [ 살아 있기 때문에 맛볼 수 있는 그 작지만 어마어마한 기쁨을, 전에는 몰랐던 소소한 행복을 세어보며 살아가는 맛을 기억하면서 말입니다] 하며 사고 후 일주일 만에 처음으로 물을 마신 느낌을 이야기하며 이렇게 얘기한다.
[죽음에서 삶으로 옮겨지며 저는 아이러니하게도 살기 위해 죽음과도 같은 싸움을 해야 했습니다. 저는 죽음 같은 시간이 올 때마다 그 물맛을 기억했습니다. 살아 있기 때문에 맛볼 수 있는 그 작지만 어마어마한 기쁨을, 전에는 몰랐던 소소한 행복을 세어보며 살아가는 맛을 기억하면서 말입니다.]
그녀가 손가락 절단으로 쓴 글을 보면 [나중에 손을 움직이게 되면서는 더욱더 감사할 수밖에 없었습니다. 아마 1센티미터라도 더 긴 손가락이 얼마나 유용했는지 모르는 사람은 할 수 없는 감사일 것입니다. 모든 관절이 구부러지고 펴지는 손가락이 사는 데 얼마나 필요한 것인지 느껴보지 못한 사람은 할 수 없는 감사일 지도 모르겠습니다. 누구도 예상하지 못하는 것이 사고이고, 막을 수 없었기에 일어나는 것이 사고입니다. 그리고 어느 누구도 사고 때 ‘이만큼만 다쳐야지’ 하고 선택할 수도 없습니다. 손가락뿐 아니라, 하마터면 손목까지, 아니 팔 전체를 잃을 수도 있었던 것이 사고입니다. 그렇기 때문에 더 짧아지지 않은 손가락에 감사할 수밖에 없는 것이지요] 숙연해졌다. 조금 어지럽지만 나는 운전해 해운대까지 왔고 카페에 앉아 책을 읽을 정도인데 이석증으로 한 2주일 너무 힘들다고만 생각했다. 그녀의 오빠 말을 빌어 나는 옥에 티를 겪으면서 티에 집중했고 그녀는 티의 옥처럼 옥에 집중했다. 지금은 이석증이라는 병 하나로 이렇게 이석증 앓기 전의 완전한 몸상태가 아님에 좌절하고 힘들어하고 월경 중 증후군 기간에는 두통까지 겹쳐 더 심해지는 상황을 두려워하고 있었다. 그 보다 더 많이 누리고 있는 99%를 잠시 망각해 지선 씨의 말에 뜨끔해지며 미안해졌다. 이것은 비단 몸뿐만이 아니었을 것이다. 누구와 비교해도 최고인 남편, 모두 부러워하고 복 많다고 말하는 남매 쌍둥이, 착한 강아지와 넉넉한 생활을 하고 있는 너무나도 풍족한 생활을 하면서도 나는 없는 것을 쫓고 물건을 쉽게 구입했고 내게 있는 것을 소홀히 대하지 않았는가? 돌아보게 했다.
[추운 겨울날 아무 희망 없이 길에서 꼬부리고 누워 잠을 청해야 하는 노숙자도, 평생을 입이 아닌 목에 인공적으로 구멍을 뚫어 숨을 쉬어햐 하는 사람도, 아무도 보이지 않는 곳에 자라나는 들풀도, 이 땅에서의 생명이 허락된 이상 그의 생명은, 그의 사람은 충분히 귀하고 소중하며 존중받아야 할 가치가 있습니다] 지선 씨는 사람들이 쉽게 하는 “저러고 어떻게 살아.... 저건 사는 게 아니다.” 나 같으면 죽었을 거다.라고 말하는 사람들, 나에게 [사는 것은, 살아남는 것은 죽는 것보다 천 배 만 배는 더 힘들었습니다] [죽음에서 삶으로 옮겨지며 저는 아이러니하게도 살기 위해 죽음과도 같은 싸움을 해야 했습니다.]라는 말로 내가 너무 멋대로, 혹은 함부로 타인의 고통에 대해 판단하고 입을 대고 그 고난의 극복을 영웅담 하나 듣듯 쉬이 들었는 게 아닌지 반성하게 했다.
전신 55퍼센트의 3도 화상에다 30번이 넘는 큰 수술을 하며 견뎌 낸 지선 씨가 내게 전해오는 이 문자는 문자라는 한계에 갇혀 그 고통을 보고 읽기만 할 뿐 1도 느끼지 못하면서 내 고통만 100처럼 판단하며 살고 있는 이기심을 발견하게 해 주었다. 그리고 상대의 고통을 1도 못 느끼는 이 가벼운 말로 쉽게 말하고 생각 없이 타인에게 상처 주지 않았는지 죄책감이 밀려온다. 그녀는 톨스토이 말처럼 시련을 그저 지나치지 않고 가치 있게 만들어 내었다. 그리고 영혼에 깊이 새겨진 마음의 언어로 그 시간들과 이겨내고 얻은 깨달음을 많은 이들에게 그 메시지를 전달해 감동뿐 아니라 인생의 참 의미, 인생의 비밀들을 기꺼이 이익을 바라지 않고 공유하고 있다. 글은 보기만 할 뿐이긴 하지만, 그래서 그 고통은 1도 못 느끼지만 분명히 읽는 상대의 마음을 감동시키며 깨닫게 하는 힘이 있다. 그녀의 그 힘든 고통과 대비, 글은 너무도 눈물겹게 아름다워 다시 한번 나의 사명은 글임을 다짐했다.
내가 생각하는 글은 이렇게 타임머신처럼 순간을 날아가고, 찰나에 지나치는 사건을 잡아두는 사진인 것만 같다. 당시의 기록이 되기도 하지만 순간과 일상을 잡아 두기도 하고 내 마음속, 머릿속 보이지 않는 생각, 느낌까지 시각화하는 힘이 있다. 그리고 나는 지선 씨를 통해 다시 한번 꼭 눈에 보이지 않는 것을 의미 있게 만들어 시각화시키고 시간과 공간과 느낌과 생각을 흘러가는 대로 두지 않고 잡아두고 보관해 내 인생에 의미를 두겠다. 그리고 그것을 공유함으로써 위로가, 정보가 필요한 그 누군가에게 읽히면서 감동을 줄 수 있는 글쓰기를 꼭 지속하겠다. 사실 쓰면서 말하면서 정리되고 더 많이 깨닫고 있는 것은 나 스스로이다. 지선 씨가 고난의 시간을 공유하면서 자신이 더 많이 은혜를 입는다고 표현한 것처럼...
[전에는... 친구들의 예쁜 옷이 부러웠고 언니들이 신은 멋진 구두가 부러웠습니다. 그리고 폼 나는 가방도 갖고 싶어 했습니다. 이제는... 친구의 깜빡거릴 수 있는 두 눈이 부럽습니다. 입을 꼭 다물고 침을 흘리지 않는 그 입술이 부럽습니다. 젓가락질을 할 수 있는 그 손이 부럽습니다.] 지선씨의 이 글을 보면서 있는 것에, 주어진 것에 감사하며 살기로 했다. 욕심이나 사치가 얼마나 미련한 일인지 이제 조금 알 것 같다. 반성했다. 하느님은 지선씨를 세상 가운데 다시 세우고 힘들고 아프고 고달픈 자들에게 희망의 메시지가 되게 하셨다. 지선 씨가 다시 한번 나에게 눈으로 보는 것이 전부가 아니라는 걸, 보이지 않는 것이 더 아름답고 강하다는 걸, 천국일 수 있다는 걸 가르쳐 주었다.
그리고 작가의 꿈을 가진 내게 그녀의 재치, [PS. 사실 성형외과를 나타내는 말이었으나, 추신에 담아, 이지선입니다. 지금은 아픔으로 시작된 추신이지만, 진짜 중요한 말은 아직, 아직입니다.라는 말이 너무 좋았다.
[어쩌면 이 고통 안에 가해자까지 들어올 자리가 없었는지도 모르겠습니다. 어쩌면 우리가 가진 고통이 너무 커서 가해자를 미워할 자리조차 없었는지도 모르겠습니다. 그래서 누군가를 미워하고 원망할 시간에 이렇게라도 딸과 동생을 볼 수 있고, 목소리를 들을 수 있는 것에 감사할 수밖에 없었는지도 모르겠습니다] [글쎄요. 제가 누군가를 용서할 자격이... 용서할 능력이 있는 사람일까요? 누군가를 미워할 힘도 없던 우리 가족에게 차라리 서로를 더 사랑할 시간이 주어져, 그 누군가를 가엾게 여기는 마음속 자그마한 자리가 생긴 것에 대해 그저 감사만 드리기로 합니다.] [인생은 지레 겁먹고, 해보지도 않고 백기를 먼저 든 사람이 지는 싸움입니다. 내가 나를 사랑할 수 없었던 순간에도 나를 사랑해준 이들 때문에 나는 나를 감히 버리지 않습니다. 이것이 이 싸움의 승리가 결국 나의 것이 될 수밖에 없는 이유입니다.] 용서에 대해서, 전쟁 같은 삶에 대해서 내가 고난에만 치우쳐 타인을 원망하기에 바쁘고 그 응어리 진 마음에 독기를 품었던 날이 얼마나 많았던가? 사랑하는 이들에게 원인 제공자라 굴레를 씌우고 타당하다 여기며 했던 독선들과 언어, 행동으로 했던 폭력들을 얼마나 많이 자행해왔고 지금도 남편에게 아이들에게 내 몸이 힘들다는 핑계나 말을 듣지 않거나 이해하지 못한다고 해서 온 몸으로 짜증내고 화내고 목소리를 높이며 상처를 주었는지를. 짧은 순간일지라도 미워했고 귀찮아한 적도 있다.
사랑하기에 너무나 부족한 시간, 이 찰나를 깨닫지 못하고 남 탓하기만 바쁘지 않았던가? 지레 겁먹거나 판단해 백기를 든 일도 많았고 그래서 여전히 방황하던 순간들도 얼마나 많았던가?
[고난당한 것이 내게 유익이라 이로 말미암아 내가 주의 율례를 배우게 되었나이다. 시편 119 71절] [벼랑 끝을 걷던 그해 겨울에 저와 저희 가족에게 보여주신 새살이 나오는 기적은 지금도 제 이마와 코끝에 고스란히 남아 있습니다. 살다가 제 마음속의 믿음이 희미해질 때마다 두려움과 의문과 갈등의 순간마다 저는 그 피부를 바라봅니다][그러므로 우리가 낙심하지 아니하노니 우리의 겉사람은 낡아지나 우리의 속 사람은 날로 새로워지도다 고린도후서 4:16] 20대 초반 집을 나와 철없어 겪어야 했던 온갖 고난 속에서 30대에 이르러서야 희미하게 깨닫기 시작했다. 고난이 오는 것은 나에게 수업이 필요한 시간이구나. 그 시간이 지나면 나는 가진 것에 감사하고 배우고 깨닫게 되었다 늘. 그래서 고난이 오면 응당 배움의 열매가 있겠거니 했기에 겸허히 받아들일 수 있게 되었다. 그러면서 어느 날 그런 생각이 들었다. 고난이 많은 사람은 하느님이 더 빨리 우주의 비밀을 알려주시는 사람이구나. 내가 늘 필요할 때마다 있어주시는 빽 같아 그때부터 부모복은 없어도 하느님 빽이 있다고 당당하게 외쳤다. 그리고 자살하고 싶던 어느 날, 나는 눈물겹도록 큰 비밀을 발견해 하느님께 감사하다고 울면서 글을 썼다. 불공평하다고만 생각했는데 사실 정말로 공평한 것이었다고. 그전, 그 후 여전히 나는 신을 곁에서 느끼며 기적 같은 일, 의미 있는 일들을 발견하며 산다. 나는 속 사람이 날로 새로워지며 겉사람까지 새로워지는 경험을 하고 있다. 나는 내 모습이 어느 때 나이보다 가장 아름답게 느껴지기까지 한다. 여전히 고난은 두렵고 힘들지만 그것에 허우적거리는 일이 갈수록 짧아지고 받아들이며 의미를 찾는 일에 분주하다. 그리고 또 하나 깨닫고는 평온해진다. 나를 깨닫고 성숙해지는 시간임을 안다. 다만 안타까운 건 그 깨달음이 왔을 때, 지속적인 마음으로 그 날의 기적이나 큰 비밀을 순간순간 깊이 느끼고 감사하며 낡은 행동, 후회할 행동을 제발 뜯어고치고 새로운, 추구하는 아름다운 행동과 말을 하며 살아야 하는데 늘 그 믿음이 희미해지고 나는 여전하며 쉬운 것을 택하고 후회하고 자책하기 일쑤이다. 열심히 습관 잡아 뺀 살을 다시 찌우고 있는 요즘처럼, 나의 행동과 습관은 변함이 없고 그래서 갈등 속에 있나 보다.
이번만큼은 노력해야지. 다시 운동화 끈 동여매고 오늘 쓰고 있는 글을 마음에 새기며 으쌰!!!! [감사는 그동안 진통제가 결코 줄 수 없었던 마음의 평화를 가져다주었습니다. 감사는 미미하지만 어제보다 좋아진 오늘을 발견할 눈을 뜨게 해 주었고, 또 오늘보다 좋아질 내일을 소망할 힘을 주었습니다.] 지선씨, 이 말은 절대적으로 지지하기에 감사하다. [감사는 기적을 만드는 습관입니다][마음에 욕심이 하나씩 기어올라와 저를 괴롭힐 때면 저는 또 잠시 잊고 있었던 ‘사실’을 기억해냅니다. 덤으로 살고 있다는 사실을 말입니다. 덤은 그런 것입니다. 내가 사과 한 개를 샀는데 주인이 그날 장사가 잘되었는지, 내가 단골손님 이어서든지, 하나 더 얹어주는 게 덤입니다. 그런데 그 덤으로 얹어준 사과가 조금 뭉그러졌거나, 깨져 있다 하더라도, 그것은 공짜니깐, 덤이니깐 고맙게 받는 게 덤입니다. 이것이 제 삶이 감사일 수밖에 없는 이유입니다.]”맞아. 덤으로 사는 거지. 그저 살아 있음이 감사한데...”]
철학을 공부하다 죽음을 생각한 적이 있다. 죽음이 정해져 있다는 것만 알지 우리는 사실 때는 알지 못한다. 그래서 어떨 때는 좋기도 하고 싫기도 하다. 좋은 것은 아직도 많이 남은 시간을 보내고 있으니 때론 게으름 부리고 싶으면 맘껏 부리고 대수롭지 않은 것에 깔깔 웃고 널브러져 자기도 한다. 화려하고 비싼 물건을 오랫동안 간직할 것처럼 사기도 하고 내 감정이 가장 중요하다고 생각해 화도 내고 짜증도 내고 무시해 버리기도 한다. 귀찮아서 외면하거나 부탁을 거절하는 일도 있고 다음에 만나기로 하기도 하고 다음에 잘해야지 다짐하기도 한다. 그냥 미룰 수 있는 건 다 미뤄버린다. 감정도 사람도 현실도, 다음번에 내가 여유가 생기면 하며 미룰 수가 있다. 싫은 건 사랑하는 사람들과 헤어지는 시간을 손꼽으며 슬픈 시간을 보낼 것 같고 남은 이들이 보내야 할 일상을 무시하고 내 옆에 있어 달라 떼 부리 거나 죄책감을 줄 것 같다. 남은 시간에 뭐라도 해야 하지 않나, 뭐라도 남겨야 할 거야 하며 필사적으로 몸부림 칠 것 같다. 잠도 자고 싶지 않을 듯해 계속 피곤한 상태에서도 무리하게 남은 시간을 보내려고 애쓸 것 같다.
그래서 모르는 편으로 이렇게 살아가는 게 어쩌면 가장 행복한 것인지 모르겠다. 한정되어있다는 사실만 염두에 두고 웬만하면 다음으로 미루지 않고 사랑하는 이들과 시간을 보내면서도 혼자 있을 때는 의미 있는 시간을 보내며 나의 삶에 의미를 매 순간 주며 살아가겠다. 지선 씨는 그 힘든 시간을 보내고 이겨내 덤으로 사는 삶이라 여기고 그 형태가 무엇이든지 감사하는 마음으로 살아 보통 사람보다 더 온전하게 살아갈는지 모른다. 그런 생각으로 지선 씨는 사고 전으로 돌아가고 싶냐는 물음에 되돌아가고 싶지 않다고 정확히 말한다. [때로는 고난 자체가 가장 큰 축복이 될 수도 있습니다. 왜냐하면 고난이 아니면 절대 가질 수 없는 보물이 있기 때문입니다. 돈 주고는 절대 사지 못하는 보물이, 학교에서도 배울 수 없는 것들이 고난과 기다림의 시간 가운데 주어지기 때문입니다. 저는 이제 그 삶의 비밀을 알게 되었습니다. 그렇기에 고난은 제게 축복이었다고 말할 수 있습니다.] [왜냐하면 정말로 중요하고 정말로 영원한 것은 눈에 보이지 않는 것 안에 있다는 사실을 깨달았기 때문입니다. 예전에는 몰랐던 사랑을 알게 되었고, 은혜를 맛보았기 때문입니다. 지금 제 안에 담겨 있는 고난이 가져다준 축복의 보물들은 정말 그 무엇과도 바꾸고 싶지 않은 것이기 때문입니다] [언젠가 썩어 없어질 것을 갖겠다고 지금 제 마음에 담긴 것이 눈에 보이지 않는다고 이 보물을 다 버리고 보물이 뭔지 모르던 예전의 삶으로 돌아가고 싶지 않다는 말입니다] [생명이 얼마나 소중한 것인지, 사랑이 얼마나 따뜻한 것인지, 절망이 얼마큼 사람을 죽일 수 있는지, 희망의 힘은 얼마나 큰지, 행복은 얼마나 가까이에 있는지, 기쁨과 감사는 얼마나 작은 것에서부터 시작되는지, 진정 세상에 부질없는 것들이 무엇인지, 우리 인생에 정말 중요한 것이 무엇인지, 내가 앞으로 마음을 쏟고 시간을 바쳐야 할 영원한 가치는 무엇인지, 지난 10여 년의 시간이 제게 알려주었습니다.]
[그리고 돌아가고 싶지 않다고 이리도 진심으로 말할 수 있는 것은 제가 맛본 행복 때문입니다. 성공한 인생만이 행복한 인생은 아닐 것입니다. 쫙 뻗은 대로를 걷는 것만이 행복은 아닐 것입니다. 굽이굽이 치는 계곡이나, 사람이 한 번도 지나다니지 않은 오솔길을 걸어가더라도... 그 길 위에서 내가 숨 쉬는 지금, 새 봄에 피어난 꽃의 향기를 맡고, 아무것도 없었던 앙상한 가지에 빠끔히 올라온 초록 잎의 신비로움을 알고, 예전엔 보이지 않았던 것을 이제 보게 되는 것. 형체는 없는 것이라서 손에 잡히진 않았지만 이제는 맛볼 수 있는 것, 이게 제가 발견한 행복입니다. 보이지 않는 것을 보고 느끼며 사는 삶, 이것이 제가 꿈꾸는 삶입니다.] 고난을 극복하고 고난의 크기만큼 큰 열매를 얻은 그녀의 노고와 성공에 일어나 박수를 보낸다. 그리고 그 고난으로 얻은 삶의 가장 큰 비밀과 강한 무기를 얻었기에 다시 돌아가고 싶지 않다는 그녀의 말이 조금은 이해가 될 것 같다. 앞으로 한정적인 시간 동안 어떤 고난과 만날지는 모르겠지만 지선 씨의 글이 분명히 내가 포기하지 않고 견뎌내야만 하는 답안지가 될 것 같다. 지선 씨의 글은 내가 앞으로 이 의미가 희미해질 때거나 시험이 닥치면 다시 꺼내 봐야 하는 답안지가 되어 줄 것이니 지선 씨 덕분에 나는 든든해졌다.
지선 씨의 엄마는 내게 우리 블레어 제임스에게 이런 엄마가 돼 줄 거야, 하는 엄마의 본보기를 주셨다. 우리 아이들에게 해 줄 엄마의 이미지가 내 맘 속에 가득 차자 나 자체가 그런 엄마가 되어 내 자신에게도 내가 바라던 엄마를 선물 받은 것 같다. 지선 씨가 처음 중환자실에 있을 때, 자신의 상처를 보고 엄마께 마음의 준비를 하시라고 하니 [제 말을 듣고, 엄마는 잠시 떨리시는 듯했지만 금세 결연한 표정으로 저에게 앞으로 다시는 상처를 보지 않기로 약속하자고 하셨습니다. 그러고는 기도를 하셨습니다. “성경 속 에스겔 골짜기의 마른 뼈에 살을 입히시고 힘줄을 넣으시고 가죽을 덮으시고, 생기의 영을 불어넣으셨을 때, 그 마른 뼈들이 하나님의 군대가 되게 하셨던 주님, 이 밥이 지선이의 살이 되고 피부가 되게 해 주세요”] 기도 하시며 밥을 많이 먹이는 일에 최선을 다하셨다. 그래서 지선씨는 [커튼 뒤로 삶과 죽음이 오고 가는 그 순간에도 저는 이를 악물고 계속 먹었습니다.] 엄마의 음식으로 새 살을 만들고 일본에서 공부할 때 [엄마는 아침마다 제가 책가방을 메고 학교로 빼딱빼딱 걸어가는 게 너무 좋아서, 너무 감사해서, 매일 창문을 열고 제가 안 보일 때까지 내다보셨습니다.] 나는 이 구절이 내 눈앞에 선한 것처럼 블레어 제임스가 오버랩되고 내가 지선 씨의 엄마가 되어 아이들의 등 뒤를 보고 있는 것 같았다. 엄마가 제안한 ‘하루 한 가지씩 감사할 거리를 찾자’로 [처음엔 입술로 시작한 감사가 내 귀를 통해 다시 나의 마음으로 들어와 그 감사는 점점 진심 어린 고백이 되었고, 오늘의 감사거리를 찾게 하신 분께서 분명히 내일도 또 다른 감 사랄 거리를 주시리라는 믿음이 생기기 시작했습니다] 지선씨와 엄마가 나누는 감사의 얘기가 그래 혼자 마음속으로 하는 감사 말고 아이들과 매일 감사하다고 입밖으로 얘기하고 나눠야겠다는 생각도 들었다. [감사는 기적을 만드는 습관입니다] 진짜 그런것 같다.
지선씨의 표현으로 [저는 꿈꾸고 주님이 일하셨습니다.]에선 내가 결혼식에서 결혼 서약서로 남편에게 말했던 ‘I am a dreamer, and you are a planner, so I dream and you make my dream come true’ 했던 결혼식날도 떠오르며 꿈꾼 자들에게는 늘 그 꿈을 현실로 바꿔줄 그 누군가 있다는 생각에 다시 한번 꿈을 꿔야겠다는 용기를 얻었다. [A crown of beauty instead of ashes]는 지선씨 지인의 말씀처럼 가장 지선씨의 삶을 잘 표현한 구절이라는 공감을 했다. [그런 날들이 있었습니다. 보이는 것을 꾸미기에 바빠서 보이지 않는 것이 일그러져가는 줄 몰랐던 나에게 정말 중요한 것은 눈에 보이지 않는다는 것을 알려주는 지선이의 간증이 그동안 볼 수 없던 것들을 마음의 눈으로 보게 하던 그런 날들이 있었습니다.] [그런 날들이 있었습니다. 아직 가지지 못한 것을 좇기에 바빠서 이미 가진 것에 감사할 줄 모르던 나에게 많이 잃었음에도 불구하고 아직 남아 있는 것에 감사하는 지선이의 모습이 감사는 매 순간 할 수 있는 것임을 가르쳐준 그런 날들이 있었습니다.] 많은 사람들이 지선 씨에게서 배운 것들이 아닐까 싶다. 그리고 십자가에 못 박혀 우리를 위해 죽은 예수가 못을 박고 있는 자들을 용서하라고 무지해서 그렇다고 기도하는 모습이 지선 씨에게로 오버랩이 된다. 3도 화상 55프로 이상을 화상 속에서 10년을 고군분투하고 우리가 가늠할 수 없는 그 고통을 우리에게 보여주며 그 고난을 탓하기보다는 사랑하는 가족들과 지인들, 자신에게 주어진 것들에 감사하고 자신의 할 일에 집중하며 그녀가 찾은 삶의 비밀과 눈으로 보이는 것보다 보이지 않는 것의 중요성을 기꺼이 나눠준다. 아낌없이 그녀가 고통스럽게 지나온 고난에서 얻은 참진리를 많은 사람들에게 기꺼이 나눠주며 삶의 의미를 되새겨 주는 그녀가 정말로 아름답다.
그리고 아름다운 그녀의 이야기는 이석증, 이것쯤이야? 하며 옥의 티로 만들어 버리게 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