연말에 크게 깨달은 사건 두 가지가 있는데 생각해 보니 연결이 된다.
첫 번째는, 한국에 있는 가족들에 대한 분노로 깨달은 것과 두 번째는, 지금 내가 만든 가족들을 통해 깨달았는데 모든 문제가 내 안에 있다는 것을 진정으로 이해했다.
한국에 있는 고모와 삼촌들에게 매번 서운하고 오히려 더 그들에게서 내가 더 '고아'라고 느껴져 '불쑥불쑥' 분노가 올라왔다. 제대로 된 부모가 없어 나도 모르게 고모와 삼촌들에게 부모의 자리를 기대한 줄도 몰랐던 것을 지난해 여름 한국에 방문하면서 깨달았다. 그것이 부담스럽다고 하는 고모의 말에서 오랫동안 '고아'라는 말이 싫어서 엄마 같은 고모, 아빠 같은 삼촌이라 생각하며 대체했고 기대해 왔다는 것을, 그 단어를 피해 20년 동안 숨어 다녔다는 것을 깨달았다. 그 사실과 대면했을 때, 너무 많이 아팠다.
이번 연말, 한국 가족들에게 문자를 먼저 보냈던 날, 나는 그 분노가 6개월이 지났으니 어느 정도 가라앉았다, 이해하고 넘겼다고 생각했었는데 완전히 착각했다는 것을 알게 되었다.
알 수 없는 분노가 갑자기 나를 삼킨 것 같았는데 실제 그 분노의 당사자는 내 아빠였고 내 엄마였다. 그런데 그런 사람이 없으니 나를 조카 이상 사랑해 주고, 내가 엄마 아빠 역할을 기대했던 그들에게 불똥이 튄 거였다.
나는 오랫동안 친척들이 정작 나를 '고아'로 느껴지게 한다고 원망했었는데 내 기대만큼 내 부모가 돼주지 못하는 '친척들에 대한 서운함, 분노'였다. 하지만 그 분노의 실체는 내 부모가 그 자리에 있어주지 않은 것이었다. 하지만 나는 이제야 깨달았다.
이제 아빠가 죽고 엄마를 만나지 않으니 대상이 없기에 잊혀졌다고 생각했던, 용서했다고, 내게 하나님이 계시니 괜찮다고 생각해 왔었는데 아니었다. 내 분노는 여전히 내 안에 남아있었다.
한 편, 나는 좋은 부모가 없었기에 좋은 아내, 좋은 부모에 대한 모델이 없어 책을 통해, 주위 사람들을 통해, 드라마나 영화, 여하튼 내 상상력, 내가 원했던 좋은 부모상, 아내상을 나 스스로 만들었다.
좋은 엄마, 좋은 아내가 되려고 노력해 왔다.
하나님을 만나고 하나님 뜻이라 배워가는 나의 신앙인으로서의 삶과는 달리 부부싸움은 끝이 없었고 아이들이 자라면서 소리 지를 일이 자꾸 더 많이 생겨만 갔다.
주님 뜻 안에서 많은 것을 다짐하고 회개하고 반성하며 매일매일 잘해야지, 잘해야지 다짐하고 기도하고 회개하고 또 노력하자 마음먹고 노력해 온 것이 벌써 3년이 되었다.
하지만 나는 내 이상형인 아내와 엄마의 모습이 아니었다. 거기에 늘 죄책감이 있었고 자신이 없었다.
잘하자! 다짐하면 할수록 나는 절대로 변화할 수 없는 사람처럼 똑같은 잘못을 매일매일 반복했다.
연말에 어김없이 아이들에게 소리 지르고, 남편에게 막무가내로 화를 냈다. 그러자 남편도 나에게 화를 내며 나에게 항상 화내고 자신이 사랑받고 있는 느낌이 전혀 들지 않는다 소리치고는 방문을 닫았다.
아이들도 눈치가 보여 밖에서 나가 노는 동안, 혼자 남아 이런저런 생각을 했다.
'나 때문에 괴롭다고 하니 남편을 떠나 줘야지, 아이들은 어쩌나? 클 때까지는 참을까? 다 크고 나면 독립시켜 버리고 나도 자유롭게 이제 얽매이지 말고 살아야겠다'.
그런데 갑자기 나에게 화가 나 나 때문에 행복한 일이 없다고 소리치고 자기 방으로 들어간 남편의 말을 이렇게 들어주는 것이, 내가 남편에게 미안한 마음이 있으니 갚는 길이 아닐까? 이게 진짜 저 사람을 위해 내가 해줄 수 있는 일이 아닐까?
그냥 이 자리에서 떠나지 말고 원망하면 원망하는 대로, 자기도 소리치고 싶으면 소리치는 대로 화를 낼 수 있는 대상으로 있어주는 것이 남편을 아프게 했던 내 행동에 대한 사과가 될 수 있지 않을까? 뭘 좋은 아내가 되자고 내 성격과도 맞지 않는 일을 하려고 애쓰지 말고 그냥 이렇게 아내로 옆을 잘 지켜주는 일이, 이렇게 나 때문에 화가 나면 화낼 수 있는 대상으로 있어주는 것, 아내로 곁을 끝까지 지켜주는 것이 가장 좋은 일이라는 생각이 들었다.
사실, 내 부모에 대한 분노는 그 대상들이 없기에 해소될 수 없었던, 나 혼자 무시해야 했던 감정이었다는 것을 깨달은 직후이기도 했다. 이제 하나님을 만났으니 내 참 아버지가 있으니 이제 괜찮다고 내가 내 분노를 꾹꾹 눌러 담았을 뿐, 분노는 해소되지 않은 채, 그곳에 그대로 있었다.
분노대상인 부모가 없었기에 그게 고모에게로, 삼촌에게로, 내가 부모처럼 의지하고 싶었던 그들에게로 향했다는 것을 깨달았다.
인생에서 한 번쯤이라도 "아빠, 나 그때 상처받았어. 왜 그랬어? 엄마, 어릴 때도 나를 버리고 가놓고는 나를 다시 만났을 때도 나를 어떻게 버릴 수가 있어?" 한 번쯤, 물어보고 화를 내보기도 하고 원망도 할 수 있었더라면, 그런 대상이 돼주었더라면, "미안했다. 상처받았지?" 부모로서 한 번만 그 말을 해주었더라면.
이제와 내게 해 줄 수 있었던 부모 역할을 다 해준 것이 될 수 있었을 텐데...
내 안에 해소되지 못한 분노가 동시에 내게 '좋은 아내, 좋은 엄마'란 그런 대상으로 있어주는 것. 비록 남편이 화가 나면 소리 지를 수 있는 대상인 아내로 있어 주는 것, 아이들이 나중에 커서 "엄마 때문에 이렇게 됐잖아." 원망하고 싶을 때 그 대상이 되어주는 것이라고 가르쳐주었다. 아내, 엄마라는 존재 자체로 그렇게 그 자리를 지켜주는 것이 좋은 엄마, 아내였다. 내 의지가 아니라 주님이 만들어주신 이 자리에 머무르는 것만으로도 충분했다.
그 충분한 자리를 내 부모는 지켜주지 않아 내 마음에는 부모가 분노가 되었고 한이 되었다.
늘 좋은 아내 엄마가 되어야 된다는 강박의 끝에는 내게 좋은 모델이 없어 서글프고 원망으로 전이되었다 분노와 함께 부모 없는 것에 서러움을 느끼는 결론에 도달하면 다시 내가 바라던, 원하던 엄마, 아내를 상상했다. 나한테는 없지만 내 남편과 내 아이들에게는 주고 싶다고 다시 노력하기 시작했다. 하지만 실패하고 또 실패하며 이 상황만 무한 반복해 왔다.
잘나든, 못나든 그냥 부모 자리가 부모가 있어주고 자식 자리에 자식이 잘 있어주고 아내와 남편이 각자 충실히 자기 자리에 잘 있어주는 것. 그것으로 충분했다.
나는 고모와 삼촌에게 그 부모에 대한 자리와 그 분노를 전가시키는 일을 그만둬야 한다는 것을 깨달았다.
그리고 내 가족에게는 내게 없었던 것을 주려고 노력하기보다 아내, 엄마로서 그냥 이 자리에 잘 있어주는 것만 모든 힘을 빼고 하면 된다.
요한복음 15장 1-5
나는 참 포도나무요 내 아버지는 농부라 무릇 내게 붙어 있어 열매를 맺지 아니하는 가지는 아버지께서 그것을 제거해 버리시고 무릇 열매를 맺는 가지는 더 열매를 맺게 하려 하여 그것을 깨끗하게 하시느니라
너희는 내가 일러준 말로 깨끗하여졌으니
내 안에 거하라 나도 너희 안에 거하리라 가지가 포도나무에 붙어 있지 아니하면 스스로 열매를 맺을 수 없음같이 너희도 내 안에 있지 아니하면 그러하리라.
나는 포도나무요 너희는 가지라 그가 내 안에, 내가 그 안에 거하며 사람이 열매를 많이 맺나니 나를 떠나서는 너희가 아무것도 할 수 없음이라.
나는 주님께 접붙여 힘을 빼고 있으면 될 뿐이다.
고모와 삼촌에 대한 분노로 소리치며 "주님, 도와주세요. 마음을 잡아주세요!" 절규하던 그날, 주님이 안아주시는 응답을 받고 그 분노가 썰물처럼 갑자기 빠져나간 상황을 경험하며 나와 주님이 있어야 할 자리, 내가 삶 속에서 어디에 있어야 할지가 더 분명해졌다.
주님께 접붙여 있어 주님 안에 거하는 것, 그 자리가 나의 참 자리였다.
원망조차 해보지 못한, 부모가 없다고 분노하며, 없는 부모 앞에서 분노하고 왜 안 있어주냐고 울부짖는 자리가 이제 더 이상 내 자리가 아님을 깨달았다.
하나님 앞에 서 있어야 하는 자리와 함께 지금 내가 서 있는 아내, 엄마의 자리가 가장 중요하다.
고아, 아웃사이더가 '나를 강하게 만든 단어야, 내 정체성이야' 하면서도 동시에 그 단어들이 나를 가장 자극시키고 분노하게 하는 내 약점임을 알지 못했다. 주님은 분명 그것을 통해 나를 결국 브리지 역할하게 하는 훈련용으로 쓰셨지만 그 단어에 얽혀있는 나의 서러움과 분노, 아픔, 고통을 이용하고 자극시켜 마귀는 나를 자꾸 제자리에 머무르지 못하게, 그 자리를 나가라고 유혹하고 거짓말을 하며 궤계들을 부려왔다는 사실을 깨달았다.
포도나무에 접붙여 있어 주님 안에 있는, 주님의 능력으로 힘 뺀 이 자리가 내 자리임을 이제는 진짜 알 것 같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