가정은 하나님이 주신 가장 소중한 선물이다. 특히 여자에겐 남편을, 남자에겐 부인을. 부모에겐 자식을. 그런데 우리는 가끔 이 선물을 나의 소유라고 여기게 되는 경우가 참 많다.
우리가 상대방을 나의 소유로 여길 때, 어느 순간 우리는 나의 방식대로 상대가 따라와 주길 요구하기 시작한다.
돈은 어떻게 써야 하는지, 옷은 어떻게 벗어나야 하는지, 인간관계에서는 어떻게 해야 하는지 많은 것들을 정해주려고 한다.
하지만 부부 관계에서는 다른 두 사람이 서로를 이해하려고 하고 상대를 이해시키고자 하는 노력이 있었는지는 중요하다. 왜냐하면 바로 그것이 서로에 대한 존중이기 때문이다.
[로마서 12:10 사랑하여 서로 우애하고 존경하기를 서로 먼저 하며]
서로에 대한 존중이 없으면 사랑은 불가능하다. 존중이 없는 사랑은 가짜다. 그냥 사랑하는 척만 하는 것이다.
[마태복음 7:12 그러므로 무엇이든지 남에게 대접을 받고자 하는 대로 너희도 남을 대접하라 이것이 율법이요 선지자니라]
우리는 어떤 대상이 나의 소유라고 여기는 순간 더 이상 존중을 하지 않게 된다.
마치 주인이 노예나 종을 소유했을 때와 같다. 주인은 종의 의견이나 노예의 입장을 고려하지 않는다. 오직 지시만 하고 명령을 내리며 잘못한 것을 지적하고 혼내기만 한다.
상대를 종이나 노예로 여긴다는 건 다른 게 아니다. 내가 원하는 방식대로 내가 맞다고 생각하는 방향대로 따라와 줘야 한다는 전제로 상대를 대하는 것이다. 그렇기에 상대가 무엇을 원하는지 어떤 방식을 선호하는지 어떤 취향을 갖고 있는지 아주 자연스럽게 무시하는 행위다. 그래서 무의식 중에 나의 배우자나 아이를 가르치려고 하고 또 지적하려고 한다. 그리고 자신이 그렇게 하는 것이 매우 타당하다고 여긴다.
누구의 말이 맞는지 틀린 지를 따져보는 게 중요한 게 아니다. 예수님께서는 열 두 제자들의 연약한 모습과 부족한 부분들을 다 알고 계셨다. 그런데 그것을 하나서부터 열까지 다 지적하지는 않으셨다. 도마에게 의심이 많다고 뭐라고 야단치지 않으셨고 베드로에게 너무 잘난척한다고 나무라지도 않으셨다. 가롯유다에게도 계산적이라 혼내지 않으셨고 나중에 배신을 할 때도 그냥 내버려 두셨다.
만약 예수님이 제자들의 잘못된 점들과 연약한 부분들을 다 바르게 잡아주셔야 했다면 매일같이 밤마다 한 명씩 붙잡고 쉴 새 없이 말씀하셨어야 했을 것이다. 그렇지만 전혀 그러지 않으셨다. 있는 모습 그대로 그들의 연약한 모습을 품어주시고 오히려 사랑으로 그들을 기다려주셨다. 죄가 없으시고 완벽하신 예수님도 우리에게 그리 하셨는데 우리는 어떻게 이토록 상대방의 잘못을 지적하고 틀린 것을 고치고 변하길 기대할 수 있을까?
밖에서는 사람들에게 잘하고 지적하지 않는데 왜 나에게 하나뿐인 배우자와 아이에게 그렇게 하는 걸까? 바로 이 사람을 내가 소유했다고 생각하기 때문이다. 내가 할 말을 마음대로 다 하고 마음에 안 드는걸 다 지적해도 된다라고 여기기 때문이다. 다시 말해 내 가족을 이해해 주고 존중하려는 마음이 없다는 뜻이다.
우리가 기억해야 할 것은 결혼은 상대의 단점과 부족한 부분을 내가 채워주며 살아가는 것이지 연약한 부분을 계속 지적하고 고쳐주려고 하면서 살아가는 게 아니라는 것이다. 설사 틀린 선택을 할지라도 혹은 당장에 금전적인 손해를 볼지라도 우선 그 사람의 선택을 존중해 주며 이해하고자 하는 과정을 지혜롭게 밟아가는 것이다.
사람들은 잔소리라도 해서 이 정도밖에 하지 않는 것이다. 해도 해도 너무 하다고 불평한다.
맞다. 우리가 그나마 잔소리를 해서 그 정도고 우리가 지적을 하니 그 정도다. “우리가 해서” 겨우 그 정도인 것이다.
하나님이 일하시면 변화시키신다. 인간이 직접 하려고 하니 그 정도밖에 변하지 못하고 있는 것이다. 우리가 하나님 보다 높아져 있다는 것이 다른 게 아니다. 바로 내가 말해서, 내가 지적해서, 내가 내 방식대로 고쳐서 쓰겠다는 것이다. 우리가 정말로 하나님의 말씀을 믿고 그분을 신뢰한다면 그분께 믿고 맡길 수 있다.
우리의 역할은 사랑이고 존중이고 배려고 섬김이다. 그리고 나머지는 하나님께 나아가 열심히 기도하며 맡길 때 그분께서 일하신다.
[시편 127:1 ] 여호와께서 집을 세우지 아니하시면 세우는 자의 수고는 헛되다. 여호와께서 성을 지키지 아니하시면 파수꾼의 깨어 이음이 헛되도다.]
결국 하나님이 우리의 가정을 세웠고 지켜주시는 것이다. 우리의 잔소리가, 우리의 지적이 결코 가정을 세워주거나 부부관계를 개선시켜주지 못한다.
혹시 우리가 배우자의 잘못된 부분에만 집중하고 부족한 면만 기억하고 있지 않은지 , 배우자의 잘못된 모습을 하나님께 갖고 나와 고쳐달라고만 기도하진 않는지 생각해 보자.
하나님은 그걸 고쳐주실 이유가 없다.
우리가 그런 기도를 왜 하는지 깊이 생각해 보면 사실 나를 위함이다. 내가 더 편하기 위함이고 내 방식대로 따라와 주길 원하는 것이고 내 취향대로, 내 스타일대로 가정이 돌아가길 원하는 이기적인 마음에서 나오는 기도이다.
진정으로 자기 자신을 부인한 사람은 자기주장을 하거나 자기 의를 펼치려고 하지 않는다.
오히려 상대방의 의사를 존중해 주며 그 사람에게 맞춰주려고 한다. 마치 예수님이 우리에게 맞춰주신 것과 같이.
가족은 우리의 소유가 아니다. 하나님께 믿고 맡기고 기도로 나가면 하나님이 일하신다.
결혼은 애초부터 상대의 장점이나 매력적인 점을 보고 하는 게 아니다. 오히려 상대의 단점과 부족한 점을 냉정하게 파악해 보고 그걸 내가 평생 품고 갈 수 있는지를 진지하게 고민해보고 하는 것이다. 만약 우리가 지금 배우자의 단점으로 인해 힘들어하는 부분이 있다면 그건 사실 누구를 탓할게 아니라 그런 단점이 있는 사람을 선택해서 그 사람과 결혼하기로 결정한 자신을 제일 먼저 탓해야 한다. 그러나 처음부터 단점을 다 파악하고 결혼하는 사람은 거의 없다. 결혼하고 살아보니 단점이 보이기 시작하고 마음에 안 드는 점이 나타나기 시작한다.
그렇기에 결혼은 완벽한 사람을 찾아서 하는 게 아니다. 서로 부족한 부분이 보일 때마다 그걸 서로 채워주려고 하는 것이다. 그것을 잘하는 부부가 서로 채워줌의 행복을 느끼며 더욱 하나님의 사랑 안에서 하나가 되는 것이고 그것을 계속 불만을 삼는 부부가 점점 정죄함의 괴로움을 느끼며 더욱 멀어지는 것이다.
사람은 사람이 변화시킬 수 없다.
하나님께서 변화시키는 것이다. 결혼생활의 주목적은 내 배우자가 변화되는 것이 아니다. 내가 먼저 사랑을 실천하며 더 예수님의 마음을 닮아가는 것이다.
먼저 하나님이 묶어주신 아름다운 부부 관계 속에서 하나님의 진정한 사랑을 실천해 보자.
(유튜브 믿음이 배우자를 나의 소유로 여길 때,
Carecorners 영상을 보고 정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