Woman 여행의 이유를 읽고

그림자를 판 나는 여행자가 되기로했다

by Momanf

10여 년을 일 년에 두 번 애틀란타에서, 지금의 이 콘도에서 지내며 이 곳을 거점 삼아 많은 곳을 여행했다. 애틀란타 콘도에서 며칠을 지내다 보면 남편은 세금이며 아파트 관리 및 할 일들로 바쁘고 나는 한국에 내 일상들이 고스란히 있다고 여겨 운동도 하지 않고 배우지도 않으며 식단도 신경 쓰지 않는다. 무료해 우울할 것 같으면 책을 읽거나 쇼핑하거나 새로운 TV 시리즈를 시작하곤 하며 시간을 보내다 한국으로 귀국해 다시 일상으로 돌아가 바쁘게 산다.


어제 나는 계속 머리만 대면 쉽게 잠들어 버리는 나를 보며 한국에서 미국으로 두 아이들을 데리고 이사해 그동안 지쳤구나란 생각과 동시에 내가 조금 우울해져 그런 게 아닌가란 생각이 번뜩 들었다. 그러다가 자꾸 휴대폰만 뒤적이지 말고 책을 읽자 싶어 김영하의 여행의 이유를 읽기 시작했다. 첫 몇 페이지 만을 읽고도 나는 그 전날 밤 잠을 잘 잔 덕분인지, 아니면 글 쓰고 여행하는 작가로부터의 공감으로 오는 에너지를 얻은 덕분인지 기운이 나기 시작하며 이번 미국행은 잠깐 여행 온 게 아니라 내 생활의 중심지로 대면하기 시작해봐야겠다 마음먹었다. 왜 그런지 혼자서도 잘 지냈음에도 미국에서 하는 모든 일이 부담스러웠다. 언어문제도 있을 것이고 이제 나 혼자 홀홀이가 아니라 아이들 둘을 대동하고이기에 더욱 부담스러워졌으리라.


그래서 일단 아이들과 애틀란타에서 해볼 일을 찾아보다가 가까운 piedment park로 데리고 나갔다. 집이랑 가까워 가는 길을 대충 알면서도 네비를 켜고도 생각했던 곳과 다르게 가 빙빙 돌다 처음으로 차를 돈 내지 않고 입구 맞은편에 떡하니 세우고 아이들을 데리고 들어섰다.

걱정에 앞섰던 내 아이들은 새로운 미국 친구들에게 한국말로 “친구들아 놀자”하며 뛰어갔고 나는 마음이 놓였다. 멀찍이서 지켜보는데 어떤 소녀가 딸에게 타도되냐? 는 말을 한 것 같았고 블레어는 고개를 끄덕였다. 집에 오는 길에 “그 언니가 뭐래?” 물으니 “타도 되냐고 했어”.라고 해 갑자기 영어로 생활해야 해 아이들 걱정이 많았는데 한시름 놓으며 아이들을 믿어보자 싶었다.


그렇게 돌아와 점심 먹이고 수영을 시키며 틈틈이 읽다가 다 읽은 여행의 이유.

나는 새로운 여행지에 놓인 것만 같은 이 상황에서 김영하 작가의 말이, 특히 그림자를 판 사나이의 구절이 내 상황을 짚어주고 아폴로 우주선이 찍은 지구별 이야기에서 우리는 승객이란 표현으로 미국인들 사이에서 함께 살아갈 친구로 만들어 주어 불안감이 감소된 기분이 들었다.


몇 번을 다녀와 잘 안다고 믿은 애틀란타는 내게 사실 그동안은 여행지나 다름없었다. 때론 잘 어울리며 즐겁다가도 언어나 문화 차이로 완전히 동화되지 못한 기분이 들 때면 어차피 나는 돌아갈 한국이 있어 그리 대수롭지 않게 생각했었다. 나는 그림자를 판 사나이처럼 그림자 없이 사람들을 만난 격이었다. 그저 여행자였다.

그림자, 완전한 그들의 문화와 언어를 이해해 그들과 같은 하나로 받아들여지는 매개체를 난 가지고 있지 않은 느낌이 들었다. 한 인류학자의 ‘사람, 장소, 환대’에 대해 생각해본다면, 나의 기대는 환대에 모든 촉수가 서있어 이만큼 불안한 것이리라. 정말로 생각해보니 공원에서나 엘리베이터에서 만나는 사람들의 미소로 내 마음이 편안해진 게 사실이다. 이번에는 여행자가 아닌 이주자로 여기에 뿌리내릴 사람이니 환대에 더욱 예민해져 있었고 예민해진 만큼 불안감도 컸고 편치 않았다.


여행이 인간의 추구의 플롯이고 인생의 여정이라고 본다면 내 한국생활의 첫 탄생부터 만 38살 떠나올 때까지 생각해본다. 나는 태어났지만 부모의 환대가 없어 늘 환대를 확인하고자 다른 사람들에게 잘 보이려고 노력하면서 그들의 평판에 매달려 나를 힘들게 했었다. 그래서 질투도 많았고 자격지심을 감추려고 나를 부풀리기도 했었다. 그러다 상처를 받지 않으려고 마음을 주지 않거나 관계를 쉽게 끊어버리거나 표독하고 냉정한 태도를 취하기도 하며 사람을 밀어내고 외로워져도 봤고 매달려도 봤다.

그러다 마법의 장화를 신고 마침내 전 세계를 여행하는 그림자 판 사나이처럼 나 자신을 받아들이고 여행객처럼 살다 보니 어느새 마음이 편안해지고 나 자신이 스스로 나를 깊게 환대하고 있었단 사실을 깨달았다. 한국을 떠나올 때 되돌아보니 진심으로 깊이 내 존재에 환대해주는 사람들이 많았음을 확인했다.


나는 현재 인생의 여행에서 또 다른 낯선 곳에 도착한 기분이다. 첫 며칠은 무기력한 나를 보았다. 남편이 살갑게 말하지 않으면 금방 또 예민해지기도 했다. 내 어린 시절처럼, 또 새로운 환경에서 나를 받아들여줄까? 환대해줄까 했었던 그 불안감이 어느덧 반복되었던 것 같다.


하지만 이제 나는 안다.

의도적으로 부를 얻기 위해 그림자를 판 사나이처럼 나는 미국인 남편과 결혼해 자식을 낳으면서 내 홈그라운드에만 머무르지 않고 내 인생을 확장시키고자 운명이었는지, 내 선택이었는지 모를 그림자를 바꿔 이 선택을 했다는 것을.

그림자에 연연해 애원하며 좌절하기보다는 혹은 아무리 힘든 상황에서도 그림자를 돌려줄 테니 죽은 뒤 영혼을 달라는 거래를 과감히 거절하고 여행자로 나 자신의 외향적인 꿈을 이루고 알지 못하는 내면적인 꿈도 이루며 살면서, 나는 모든 이를 함께 지구별에 탄 승객들처럼 생각하며 살면 되는 것이다.

한국에서 그랬던 것처럼, 아니 그 경험을 바탕으로 이번에는 더욱 현명하게 살아 내, 40여 년 후에는 내가 한국에서 사람 장소 환대를 느끼며 받아들여졌듯 미국에서도 환대로 마무리되는 삶을 살아가길 바란다.

그렇다면 나는 지구별을 떠날 때,

적어도 확실히 두 곳에서 받은 많은 환대로 즐거웠던 여행이라 흡족해하며 떠날 수 있을 것이다.


김영하 작가의 여행의 이유는 내게,

낯선 땅에 착륙해 여행자로 이곳을 가능한 한 불안해 하기보단 신뢰하고 이 곳에서 만난 이들에게 나를 노바디로 낮추며, 내 목적지대로 향하는 여정에서 얻어지는 내가 알거나 알지 못하는 많은 산물들을 깨닫게 해 주었다. 그리고 종착역인 탄생의 전으로 돌아가는 것이 정말로 나의 홈이라 생각한다면 어느 곳이나 여행지이고 여행은 과거 미래가 아닌 현재를 살아간다는 것, 그리고 한 곳에 정착해 환대에만 매달리기 보단 나를 알아가고 받아들이고 타인을 함께 여행하는 이들로 신뢰한다면 서로를 환대한다는 사실을 알려주었다. 이 책이 불안감에 휩싸여있던 내게 답을 주어 참으로 감사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