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59. 세상이 이해되지 않는다면,

by Momanf

나와 상대의 관점이 다르듯, 나와 하나님의 관점 차이는 너무도 크다.

그런데 내 작은 머리로 주님을 해석하니 자꾸 전능하신 주님을 저능하게, 신실하신 주님을 시시하게 만들어 버리곤 한다.

내가 주님을 작게 만든다. 주님의 영광을 작게 만들고 하찮게 생각한다.


믿음 깊은 욥도 그랬다.

육신과 정신이 힘들 때, 자기는 분명히 죄지은 것이 없다고, 인과응보를 말하는 친구들을 부정하고 자기처럼 옳은 자가 왜 고난을 당해야 하는가에 끊임없이 의문을 품고 저항한다.

자기의 상식으로 이해하려고 괴로워하는 그 모습에서 우리의 모습을 본다.

또, 자기의 머리로 아는 정도의 지식과 경험을 바탕으로 하나님이 누구신지를 정의하는 욥의 친구들의 모습에서 우리 모습을 본다.


하나님은 그 너머에 계신다. 권선징악을 넘어서 인간 사회를 초월한 존재로서 창조주이시며 모든 만물 권세를 가지고 계신다. 무엇보다 그 손에 생명이 있고 사망이 있다.

질서가 있고 목적이 있다.


인간은 그것을 전부 볼 수도 알 수도 없기에 완전히 이해하지 못한다.

그래서 이해되지 않아도 무조건 믿으라는 말은 아니다.

지성을 주신 이유가 따지고 분석하고 이해하려고 노력하라고 주셨다.

그렇다면 인간의 작은 머리로 이해되지 않는 사건이나 현상은 어떻게 바라보는 것이 좋은가?


내 관점으로 보는 것이 아니라 주님의 관점으로 생각하고 봐야 한다.

아이 마음을 이해하려면 아이 관점에서 생각해야 하듯.

주님의 관점과 시각으로 보기 위해 노력한다면, 가령 '예수님은 어떻게 생각하셨을까? 예수님은 무엇을 하셨을까?'라는 식으로 생각한다면,

예수님을 이해하고 내가 생각하는 결과와 내가 행동하는 결과와는 분명히 다를 수 있다.


내 관점이 아닌 주님의 관점으로 생각하고 주님의 방식으로 이해하는 것.

그것이 이해하지 못하는 모든 세상의 문제를 조금은 더 잘 이해할 수 있는 방법이 아닐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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