모든 사람들이 그렇겠지만 나와 남편의 문제도 신혼 초부터 계속되었다.
남편은 술을 마시면 더 다른 사람 이야기를 듣지 않았고 어떤 의견에 대해 이야기하면 곧바로 단정정적으로 내 생각을 전부 아는 양 결론을 맺었다.
나는 남편의 기억처럼 극단적으로 이야기하지 않았기에 남편이 그렇게 다른 사람들 앞에서 몰아세울 때, 억울했다.
특히나 그가 술을 마시면 더 다른 사람 말을 듣지 않고 자기 얘기하기만 바쁘니 싫었다.
연애포함 결혼을 합치면 17년.
여전히 같은 문제로 싸우고 있던 어느 날,
왜 아이들에게는 이토록 인내심이 강한데 남편에게는 조금도 참을 수 없는 것일까? 골똘히 생각해 봤다.
결론은 내가 통제력이 강하다는 것을 깨달았다. 아이들은 엄마인 내 말을 잘 들었고 남편은 그렇지 않았다.
그 마음이 들자 순간 두려워졌다. 지금에야 아이들이 어리니 내 말을 잘 들어주고 따르지만 이런 식으로 살다가는 언젠가는 아이들과의 관계가 지금의 나와 남편의 관계가 될 것이라 생각하니 무서웠다.
나의 통제력은 어디서부터 온 것일까?
먼저 내게는 원 가족으로부터 온 두려움이 있었다. 아빠도 술 문제가 있었기에 술 마시는 사람은 똑바르지 못하다는 불신. 가정이 깨질지도 모른다는 두려움. 아이들이 행복해하지 않는다는 생각에서 다른 가정을 주고 싶은 욕심.
남편이 술 마실 때, 나는 일단 불편하고 예민하다. 그래서 무시하고 싫은 티를 많이 내거나 피한다.
그래서인지 아이들 교육에서 남편에게 온전히 가장의 주도권을 넘기진 못하겠다.
결국 내가 통제하게 된 것이다.
주님이 주인이라 했으면서, 정작 나는 주님께 이 가정을 맡기고 기도하는 대신 내가 통제권을 잡고 내가 남편을 싫어하고 나무라고 벌주고 있었던 것이다.
아이들에게도 바른생활을 가르치면서 그것을 보호라고 착각했었다.
이 가정에 주님이 주인이 아니라 완전히 내가 장악하고 내 마음대로 하고 있었다.
이런 깨달음이 일자 이 문제는 나와 남편의 문제가 아니라 나와 하나님의 문제임을 깨달았다.
주님께 이 문제를 가지고 나아가 질문하고 말씀에 순종하며 남편을 위해 기도하고 사랑하기 위해 노력했어야 했는데...
아이들에게 해야 할 것들을 나열하기보다는 사랑으로 함께하는 시간에 집중하고 문제에 대해서는 함께 기도하는 자세를 가졌어야 했는데...
내가 주인인 주님의 자리에 앉아 내가 통제력을 갖고 있었다는 사실을 지금에라도 깨닫지 못했다면
나와 아이들의 관계도 그 언젠가 힘들어졌을지도 모르는 일이다.
지금에라도 이것을 깨닫게 해 주신 주님께 정말 감사했다.
하마터면 아이들과 남편을 내 통제력으로 비난하고 정죄하면서 오히려 나를 따라주지 않는 그들을 원망하며 살았을지 모른다.
내가 할 수 있는 일이란 주님께 통제권을 내어 드리고 나와 가족을 위해 기도하고 이해되지 않는 와중에서도 사랑하고 엄마로서 아내로서 내가 할 수 있는 최선을 다하는 것임을 깨닫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