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새롭게 하소서'를 즐겨보는데 어떤 사람의 간증 속에서 '자살'을 새롭게 생각하게 된 계기가 있었다.
그분이 자살을 하려고 락스물을 마시자 그 순간 심장은 가슴이 아니라 머리에서 뛰고 위가 강력하게 저항하며 그 물을 내뱉어냈다고 한다.
그 순간, 내가 죽기로 마음먹어도 내 몸은 죽기 싫어하는구나를 깨달으며 '자살'은 '나를 살인하는 것'이라고 그녀가 말했다.
나는 자살은 나를 살인한다, 내가 죽으려는 의지로 죽으려고 해도 내 몸이 거세게 거부한다는 사실을 다시 생각해 보았다.
인간에게 있는 혼과 육. 혼은 우리의 의지라고 하고 육은 우리의 육신이라고 하는데 이것은 항상 같이 간다고 생각해 왔다.
그런데 생각해 보니 그렇지 않았다.
내가 아무리 의지로 무엇인가 하려 해도 내 몸이 쉽게 따라와 주지 않는다.
예를 들어, 공부를 잘하고 싶고 다이어트를 성공하고 싶어도 우리는 그 방법대로 살기에 너무 힘들다. 방법을 알고 의지가 있지만 행동은 전혀 되지 않는다.
혼과 육이 일치하지 않는 경우다.
또한 육이 무엇인가 본능대로 하고 싶어 해도 혼인 의지가 어느 정도 본능과 욕망을 통제하고 몸이 좋을 대로 하지 않는다.
이 경우도 혼과 육이 일치하지 않는다.
그렇다면 위에 말했던 그분 말씀처럼 '자살'은 내 '혼'이 내 '몸'을 죽이는 행위라는 것이 말이 된다.
우리의 의지대로 우리의 몸을 이끄는 것이 어렵다면 무엇이든 우리에게는 한계가 있다.
성공과 더 나은 환경을 위해 내 몸을 설득시켜하는 일들은 어느 정도는 효과가 있지만 계속 그렇게 몰아붙이면 버틸 수 없다. 몸의 본능은 그 의지대로 욕구를 잠재우고 원하는 대로 살게 두지 않는다.
종교생활도 마찬가지다. 자기 의지대로 착한 일을 많이 하기 위해 노력하지만 언제나 육신에 한계가 있고 또 그 의지의 출처도 자기를 위한 것이지 순수하게 다른 사람을 돕는 일을 할 수는 없다.
우리는 결국 의지가 다른 혼과 육을 가지고 서로 타협하며 절충하고 살아가지만 인간은 불완전하기에 스스로 구원할 수 없다.
그래서 우리는 '영'이 있어야 한다. '영적으로 깨어있어야 한다.' '영적인 생명을 예수님을 통해 부여받아야 한다.
혼과 육은 죄성으로 오염되어 결국 나를 섬기고 내가 좋은 것을 하기 바라는 이기심뿐이다.
하지만 '영'은 내가 아니라 '주님이 주인'이다. 영은 예수님이시고 성령님이시며 하나님이시다.
영이 내 마음속에 주인으로 있을 때만이 혼과 육을 내 것이라 여기며 마음대로 쓰는 것이 아니라 '주님의 명령'대로 '목적대로' 내 혼과 육이 길들여져 선과 사랑을 위해 합치를 이루어 살아갈 수 있게 된다.
주님의 '영'이 주인 되어 있을 때만이 인간의 혼과 육은 마침내 일치한 의지와 행동을 하게 된다.
그러니 예수님이란 주인 없는 사람들의 행동과 그의 속마음을 어떻게 일치한다고 보고 믿을 수 있을까? 결국에는 자기 이로운 대로 거짓말을 할 뿐인 것을.
나 자신이라고 하면서 내 의지와 내 행동의 불일치한 나를, 다른 사람을, 이 사회를 믿을 수 있을까?
오직 우리에게 가장 큰 유익은 창조주이신 영, 즉 예수님을 믿고 살아가는 방법밖에는 없다.
그 방법만이 우리의 혼과 육이 영과 합을 이루어 온전한 사람으로 살아갈 수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