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6. 부정적인 말에 욕심내지 말자.

by Momanf

친구가 남편과 이혼을 해야 하나 말아야 하는 문제에서, 친구가 남편 때문에 힘들고 슬퍼한다고 해서 내가 그 자리에서 남편 욕을 더 심하게 해 버리고 돌아왔다.

그런데 영 마음이 편치 않았다. 그래도 아직 친구의 남편이고 아무리 나쁘게 한다고 해도 친구 자식의 아빠인 그를 너무 뭐라고 한 것 같아 미안하다고 문자를 보냈다.

나는 당사자도 아니고 내가 당한 것이 아니니 어쩌면 말이 쉽다. 더군다나 마구잡이로 욕을 하니 마음이 후련해지기까지 했다.


하지만,

내 말을 듣고 있던 친구는 그런 형편없는 남자를 선택하고 여태껏 살아왔다는데 대한 자괴감을 갖을지도 모른다. 또 아무리 힘들어도 자식의 아빠라 아직 마음과 미련이 남아 있을지 모르는데 내 친구를 위한답시고 다른 사람들 앞에서 한 욕들이 얼마나 내 친구 마음을 아프게 했을까?


우리는 내 감정의 쓰레기인 욕을 마구 뱉어낸다. 그 쓰레기를 밖으로 던질 때는 속이 시원하고 쾌감이 느껴진다. 하지만 말은 생명력이 있다.

폭력적인 말은 폭력성을 가지고 다른 사람의 마음을 아프게 치고 파괴한다.

상대를 아프게 하는 말은 죄성으로 작동되는 자기감정과 생각이라 그 속에 주님은 없다. 결과는 상대와 갈등, 관계의 단절


나는 친구를 서포트하는 선을 넘어 그 친구의 남편을 파괴하며 친구의 마음을 아프게 하고 듣고 있는 다른 사람들에게 당사자를 미워하도록 부추기까지 했다.

나는 예의가 없었다. 그저 쓰레기처럼 내 감정을 마구 쏟아내면서 이기적으로 굴었다.


물론 주님이 우리에게 분노를 주셨다. 하지만 불의를 보고 참지 말고 다른 사람을 기꺼이 돕고 주님을 사랑하고 악을 미워하라고 주신 것이다. 하지만 나는 내 생각이 옳고 내 생각에 벗어나는 상대는 비정상이기에 분노하고 욕해도 마땅하다 생각했다. 나의 분노는 내가 옳고 상대는 틀렸다는 마음이 저변에 깔려있기에 시작부터 틀렸다. 그 속에는 내가 주인 되어 타인을 비난하고 정죄하고자 한다.

모든 기준이 주님보다 내가 앞선다.

분노로 하는 모든 말의 근원이 애초부터 마귀에게 나왔기에 나의 욕심의 말은 분명히 상대에게, 또 그곳에 없는 대화의 당사자에게 큰 상처를 준다.


험담, 분노의 말은 더 이상 하지 말자.

그것은 철저히 이기적이고 갈등을 조장시키는 마귀의 말이며 다른 사람 마음을 난도질하는 말이다.

한바탕 욕을 쏟아붓고 나면 속이 시원하다고 여겨지는 것은 사탄이 우리에게 준 달콤한 유혹이었던 것을, 우리는 그것을 별미삼아 즐기며 사랑하는 사람들을 아프게 해 왔다.

그것은 주님의 뜻이 결코 아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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