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는 참 괴물 엄마다.
아들이 책가방에서 도시락을 꺼내놓지 않았다고 앞으로 꺼내놓지 않으면 다음 날 점심을 싸주지 않겠다고 협박했다.
아이가 그럼 나는 점심시간에 어떻게 하냐고 묻자 굶어야지 했다.
가만히 생각하면 얼마나 잔인한 말이었던가?
또 밤에는 매일 폼룰러로 몸을 풀고 자는데 폼룰러가 있어야 할 자리에 없었다.
범인은 항상 내 물건을 마구 쓰고 아무렇게나 던져놓는 '아들'이라 소리를 꽥 질러 잠자리에 막 들려는 아이를 불렀다.
그리고 큰 소리로 야단치니 아이가 겁을 먹고 고개를 끄덕이며 당황했다.
그렇게 그날 밤, 아이를 재웠다.
내 마음은 그때부터 자괴감과 죄책감에 마음이 아팠다.
겁먹고 고개를 끄덕이던 아들의 모습만 내 가슴속에 남아 내가 사랑하는 아들에게 얼마나 잔인하게 굴었는지 너무 미안했다.
예수님이 내게 물으시는 것만 같았다.
"네가 지금 화내고 소리치는 것이 내 가르침을 전하기 위해서냐? 아니면 네가 불편해서냐?"
나는 아무 말도 할 수가 없었다.
그 순간, 예수님의 제자인 내게 아이를 보내신 이유를 생각해 보았다.
내 생각대로 기르고 내 감정대로 함부로 기르라고 아이를 내게 보내주신 것이 아니다.
올바른 믿음의 유산을 전하는 것이 나의 사명이고 그것을 위해 예수님이 누구신지, 무엇 때문에 오셨고 예수님의 품성과 하나님의 말씀이 나로부터 전달되어야 했다.
나는 주님의 나라 대사관으로서 내 자식은 나를 통해 예수님이 누구신지를 분명히 알아야 했다.
하지만 협박하고 쉽게 소리 지르고 훈육이라는 핑계로 아이 마음을 아프게 하고 혼을 내는 것은 다 내가 편하기 위해, 다 나 좋자고 라는 이유뿐이었다.
예수님께 잘못했고 아이에게 잘못했다.
어떻게 이런 괴물 같은 나를 통해 예수님을 전달할 수 있겠는가? 어떻게 이런 불편함을 감수하지 못하고 아이에게 협박하고 소리 지르는 나를 통해 예수님의 품성과 사랑을 보여 줄 수 있겠는가?
아이에게 가장 아이를 사랑해야 할 엄마가 신뢰할 행동을 보이지 못하는데 어떻게 하나님을 알고 신뢰하고 사랑할 수 있겠는가?
내가 주님의 영광을 다 가로막았다. 주님과 아이의 관계를 멀어지게 할 수 있는 것도 나다.
앞으로 아이에게 불편한 감정이 올라올 때마다, 이 질문을 스스로에게 던져야겠다.
"내가 화난 이유가 주님의 말씀을 가르치기 위함인가 , 내가 불편한 것인가?"
하지만 우리는 벌써 이 한 문장의 질문 중에서도 답을 안다.
주님의 말씀을 가르치기 위할 때, 우리는 화가 나지 않는다. 화가 난다는 것은 나를 불편하게 한 것, 즉 죄성이 통제할 수 있어야 했는데 건들린 것이다.
그렇게 생각한다면 아이에게 감정적으로는 화를 낼 이유가 전혀 없다.
예수님의 말씀을 분명히 전하고 반복하고 시간을 주고 끊임없이 용서하고 사랑해야 한다.
그저 우리는 우리가 예수님께 받은 사랑 그대로 전달만 하면 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