Luke 11:48-51,
너희 조상들은 예언자들을 죽였고 너희는 그들의 무덤을 꾸미고 있으니 사실 너희는 너희 조상들이 행한 일을 인정하고 있음을 증거하고 있다.
그래서 하나님은 그의 지혜로 말씀하셨다. '내가 그들에게 예언자들과 사도들을 보내겠다. 그들이 더러는 죽이고 더러거는 핍박할 것이다.'
그러므로 세상이 시작된 때부터 지금까지 죽음을 당한 모든 예언자들의 피에 대하여 이 세대가 책임을 져야 할 것이다.
내가 분명히 말해 두지만 아벨의 피로부터 제단과 성전 사이에서 죽음을 당한 사가랴의 피에 대해서까지 이 세대가 죗값을 치르게 될 것이다.
52
너희 율법학자들은 지식의 열쇠를 가지고 있으면서도 너희 자신도 들어가지 않고 또 들어가려고 하는 사람도 못 들어가게 막았다.
창세기에서 아벨도 바벨론 포로 이후 돌아와 하나님을 증거 했던 선지자 사가랴도 하나님을 모르는 사람들이 죽인 것이 아니다. 아벨은 형제인 가인이 함께 제사를 지냈는데 하나님이 자기 제사를 받지 않는다고 질투로 죽이고 선지자 사가랴도 종교지도자들이 죽였다.
예수님도 하나님을 모르는 이방인들이 죽인 것이 아닌 바리새인들, 소위 성경을 잘 알고 하나님을 잘 안다는 그 종교지도자들이 죽였다.
지금도 이 일은 교회 안팎에서 정죄하고 판단하고 따돌리고 험담 하며 하나님을 믿는 사람들이 다른 사람에게 상처 주고 영혼을 죽이는 일을 스스럼없이 한다.
하지만 이들이 뭔가 특별히 나쁜 사람인가? 아니다. 종이 한 장 차이로 우리도 박해받는 성도가 아닌 박해하고 하나님을 아는 지식의 열쇠를 가지고 있으면서도 천국의 문을 잠그고 나와 다른 사람을 들어가지 못하는 존재가 될 수 있다.
어떻게 이런 문제가 발생되는가?
처음에 주님을 만났을 때, 더러운 귀신이 마음에서 나오게 되었을 것이다.
그러다가 성경의 지식이 늘어가고 종교생활이 늘어가며 하나님을 믿고 율법을 따르고 사는 것이 천국으로 가는 길이라고 여기고 자기는 주님 앞에서 깨끗하게 잘 살고 있다고 착각한다. 십일조를 하고 안식일을 잘 지키고 이것도 저것도 잘하기 때문에 의롭다 생각하는 것은 더 악한 귀신 일곱이 들어가 살아 처음보다 비참하게 된 상태가 된 것이다. 그때부터는 말씀과 종교행위로 다른 사람과 자신을 구별하고 더럽게 여기고 정죄하고 판단하며 가르치기 시작한다. 이것은 주님을 위한 예배가 아니라 자신이 옳은 대로 하고 싶은 대로 주님께 일방적으로 드리는 예배다
진정으로 하나님을 아는 마음은 처음에 귀신이 쫓겨 나갈 때, 성경의 지식과 종교 생활로 자신의 의지대로 마음을 청소하는 것이 아님을 깊이 깨닫는다. 오직 성령님의 은혜로 성경을 하나님 말씀으로 이해하고 종교생활이 아닌 하나님을 사랑하고 종 된 자로 여기며 말씀을 깊이 이해하고 따르려고 노력하는 것이 곧 기쁨인 것을 알아가는 데 시간을 보내데 된다. 그 과정 중에 오직 하나님이 누구신지, 내가 누군지를 끊임없이 발견하고 그 가운데서 우리는 하나님이 아니면 아무도 구원받지 못하는 존재임을 완전히 인식할 수 있어야 한다. 우리는 스스로 성경 지식을 늘려 알고 가르치고 종교 생활을 하려는 대신 끊임없이 깊이 내가 누구인지, 하나님이 누구인지를 아는데 모든 시간을 쏟아야 하는 것이다. 그때서야 비로소 구원의 의미를 정확히 알고 주님께 감사와 사랑이 깊어져 기쁨과 즐거움이 넘쳐흘러 주님을 위해 무엇이든 하고 싶은 상태. 사랑하는 주님을 위해 무엇이든 하고 싶어 설레고 기대되며 기뻐하는 상태. 그래서 주님의 계명을 지키는 것이 우리에게 유익하므로 따르고 고난과 고통 속에서 주님의 뜻을 보고 좁은 길을 기꺼이 따르며 주님께 온통 몰입해 누군가와 비교하거나 따지지 않는 상태.
그것이 진정으로 주님을 이해하는 것 같다.
모두 죄 사함을 받았다고 천국 가는 것이 아니라 죄 사함을 받고 그 이후, 나의 죄성의 깊이를 알고 주님의 존재를 깊이 알아가는 것.
남들에게 보여주는 것이 아닌, 잘난 체 하는 지식이 아닌, 종교생활이 아닌 정말 오로지 주님과 내 관계만 생각해서 일할 수 있을 때, 우리는 진정으로 예배하는 아벨이고 포로 생활 이후 하나님께 바로 서게 하기 위해 메시지를 전하는 선지자가 될 수 있다.
죄 사함을 받아 구원에 이르렀다고 생각하는 것은 아주 어리석은 일이다. 죄 사함을 받은 그 이후가 가장 중요하다. 그 이후의 과정이 우리가 진정으로 주님의 성도가 되느냐 아니면 주님을 죽이는 종교인이 되느냐의 큰 차이를 가져온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