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31. 마귀의 궤계와 그 궤계에 쉽게 넘어가는 이유

by Momanf

창세기 3장 1절

뱀이 여자에게 "하나님이 정말 너희에게 동산에 있는 모든 과일을 먹지 말라고 하셨느냐?"하고 묻자

'정말, 모든'이란 단어로 진짜 그렇게 말했냐? 고 물으며 과장하고 상대가 반박하며 대답할 수 있는 모든 이란 단어를 사용해 자기를 무시하고 지나치지 않게 했다. 교묘하게 몇 가지 단어를 살짝 바꿔 대화를 시작하게 했다.


2절 여자가 뱀에게 대답했다. "우리가 동산의 과일을 먹을 수 있으나

3절 동산 중앙에 있는 과일은 하나님이 '먹지도 말고 만지지도 말아라. 그렇지 않으면 너희가 죽게 될 것이다.'라고 말씀하셨다"


4절: 그때 뱀이 여자에게 "너희는 절대로 죽지 않을 것이다."

본격적인 거짓말, 알고 있던 사실을 완전히 부정한다.


5절: 하나님이 너희에게 그렇게 말씀하신 것은 너희가 그것을 먹으면 눈이 밝아져서 하나님과 같이 되어 선악을 분별하게 될 것을 하나님이 아셨기 때문이다."라고 말하였다.

'먼저 그렇게 말씀하신 것'이 하나님의 숨겨진 의도가 있었다고 말하며 이간질을 시작한다.

'그것을 먹으면 눈이 밝아져 하나님과 같이 된다.' 창조주 하나님을 우리 수준으로 끌어내리며 동등한 수준으로 생각하게 만든다. 하나님을 동등하게 만들면 하나님만 갖고 계신 것이 어쩐지 불공평하게 느껴진다. 그래서 질투를 유발하게 만든다. '나도 하나님처럼 눈이 밝아지고 싶어.' '왜 하나님만 눈 밝아질 자격이 있어? 나도 그렇게 될 수 있지?'

이것은 주님과 성립되어 있던 '신뢰'관계를 깨뜨린다.


6절: 여자가 그 나무의 과일을 보니 먹음직스럽고 보기에 아름다우며 지혜롭게 할 만큼 탐스럽기도 하였다.

또, 하나님만 가지고 있던 것을 취하고 싶은 욕망이 생긴다.


이것이 하나님의 백성 곧 최초 교회였던 아담과 하와를 무너뜨린 마귀의 궤계이다.

주님 믿는 마음 사라지게 하고 인간 자신을 믿게 된 거짓말에 미혹된 마음이 죄이다.

인간이 이 거짓에 미혹되면 하나님의 영광으로 사는 것이 아닌 자기의 영광, 자기의 의, 자기의 옳은 소견대로 사는 존재가 된다.

마귀의 거짓말은 인간이 자기 의대로 살아가도록 미혹한다.


그렇다면 아담과 하와가 그 궤계에 넘어간 이유는 무엇인가?


주님이 인간을 만드실 때 면역체계를 만드셨다. 면역체게가 강할 때는 외부에서 병균이 들어오는 것은 문제가 되지 않고 건강이 유지된다.

그런데 면역력이 약할 때는 병균이 들어오면 쉽게 감기에 걸리거나 아프고 병든다. 질병에 걸릴 확률이 현저히 높아진다.

이처럼 아담과 이브는 주님과 연합하는 동안에는 면역체계가 단단했을 것이다.


그런데 2-3장 사이, 아마 그 면역체계가 서서히 붕괴되고 있었던 시간이 있었던 것 같다.

죄는 단박에 오지 않기 때문이다.

아담과 하와는 주님과 멀어져 매일 한 발자국씩 뒤로 물러서고 있었던 것 같다. 완벽한 에덴동산에서 너무도 편안한 상태로 예수님과 매일 살 필요가 없었을 수도 있다. 그래서 안전한 삶을 지루해하며 평범하고 편안한 상태를 무기력하게 생각하며 한 걸음씩 뒷걸음 치며 주님과의 관계가 멀어지고 있었을 것이다.

마지막 딱 한 걸음이, 이 창세기 3장이었던 것이다.

계속 뒤로 물러가다 낭떠러지 앞에 딱 한 걸음 남겨두었던 그 순간에, 죄가 속삭였고 너무도 쉽게 뒷걸음질 치다가 낭떠러지로 떨어진 것이다.

우리가 사소하게 생각하며 주님과 멀어지던 그 모든 것들이 낭떠러지로 향한 뒷걸음질이었다.

편안한 생활에 만족하고 안전만 추구하며 평탄한 삶이 좋아 매일 내가 아는 세이프존에서만 머무는 것이 오히려 위험한 뒷걸음질일 수 있다. 뭐 이 정도쯤이야, 세상에서 사니 대충대충 타협하고 살다가 이렇게 떨어질 수 있다.


우리에게는 주님을 붙잡고 기도하고 말씀 읽고 묵상하는 시간이 면역력을 높이는 시간이 된다.

말씀을 경험케 하시는 주님이 인생을 치열하고 고통스럽게 엎치락뒤치락 살아가게 훈련시키시고 말씀을 적용하고 실제로 만들며 배우는 동안 우리의 면역체계는 올라간다.

쉽게 생각하면 건강한 신체를 위해 노력하는 모든 것을 생각해 보면 된다.

힘들어도 운동하는 것이 고통 고난을 피하지 않고 감당하며 사는 것, 좋은 음식 먹고 좋은 습관을 위해 절제하는 습관이 내 본성인 감정과 생각대로 살지 않고 절제해 주님 말씀대로 살기 위해 치열하게 노력하는 것이다.

내추럴한 본성대로 살게 놔둬서는 안 된다. 면역력을 떨어뜨리는 나쁜 습관이기 때문이다.

절제 못한 습관으로 건강을 잃어가는 것을 염려해 다시 통제하고 절제하며 건강한 습관을 들이는 과정은 분명히 힘들다. 기존의 삶의 방식과 완전히 바꿔야 하기 때문이다. 하지만 건강한 생활습관으로 돌이키는 동안, 긍정적인 결과를 보고 몸이 가벼워지고 건강해지면 어느새 새로운 방식이 더 자연스럽고 편안해지는 것과 같은 원리다.

우리 멋대로 살아왔기에 성화과정은 힘들지만 어느새 성화과정을 통해 깨달은 경험으로 주님 뜻대로 사는 것이 더 편안하고 자연스러워진다.

그리고 이것이 나의 신앙 면역력이 된다.

평상시에 내가 주님과 어떻게 하고 있는지, 무엇을 얼마큼 하고 있는지가 나의 영적 면역력을 판가름하는 기준이 된다

이뿐만 아니다. 영적인 전쟁은 일어나기 전에 이미 승패가 확실히 정해져 있다. 평상시에 내가 주님과 얼마큼 시간을 보내고 집중하는지를 통해 내가 영적인 전쟁에서 승리할지 실패할지 이미 전쟁 시작 전 승패가 결정된다.


면역력을 높이기 위해 성경 말씀을 잘 묵상하고 잘 이해하고 인생에 잘 적용해 주님 뜻대로 살아야 한다.

그런데 이때, 말씀을 무조건 많이 읽고 묵상한다고 면역력을 높일 수는 없다.

마귀의 궤계에 넘어가지 않으려면 예수님과의 연합, 인격적인 관계에 집중해야 한다.

매사에 말씀으로 주님과 대화하고 가까이 있을 때, 진리 속에 굳건히 서 있을 때, 예수님이란 코어가 단단할 때, 우리는 거짓말에 쉽게 아프거나 병들지 않는다.

말씀을 볼 때, 자기식으로 해석하는 것은 오히려 위험하다.

예수님이 누구신지, 무엇을 위해 오셨는지, 내 상태가 어떤지. 그 핵심을 반복해서 생각하고 깨달아야 한다.

여기서 바리새인과 예수님의 차이를 생각해 보면 된다.

예수님이 우리 가운데 오셨을 때, 그는 지식적으로는 바리새인들보다 말씀을 더 교육받지 못했고 바리새인들의 세련된 교수법도 없었다. 지식적으로나 교수법으로는 바리새인들보다 더 모자라게 보였을 수도 있다.

하지만 예수님 같은 선생님은 없다. 예수님보다 하나님과 전적으로 연합하고 그 말씀 그대로만 순종해 말하고 적용해 사는 선생은 이 땅에 아무도 없다. 예수님은 전적으로 함께 계시는 아버지로부터 온 것만 말씀하셨다.

우리가 바리새인들 같은 선생님은 쉽게 될 수 있어도 전적으로 보내주신 분을 신뢰하고 인도에 따라 전달하는 예수님과 같은 선생님은 절대로 되는 것은 어렵다.


말씀을 전적으로 성령의 인도를 받으려면 먼저 예수님이 누구신지, 무엇을 위해 오셨는지를 분명히 아는 것이 그래서 중요하다. 그것이 영적인 면역력을 높이는 가장 중요한 핵심이고 마귀의 궤계에 쉽게 무너지지 않는 방법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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