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41. 우리는 운명론을 사는가?

by Momanf


Exodus 9:12 “여호와께서 바로의 마음을 강퍅하게 하셨다.”

Romans 9:17 “내가 너를 세운 것은 내 능력을 보이기 위함이다.”

Proverbs 21:1 “왕의 마음은 여호와의 손에 있는 물과 같아서 그가 원하는 대로 이끄신다.”

Ephesians 1:5 “그 기쁘신 뜻대로 우리를 예정하사…

Romans 9:21 “토기장이가 같은 진흙으로 어떤 것은 귀하게, 어떤 것은 천하게 만들 권한이 없느냐”

우리는 이런 구절들을 읽으면 문득, 우리의 운명이 이미 정해져 있다는 생각이 강력하게 들어 마음에서 뭔가 억울한 생각이 밀려온다. 두 가지 반응이다. '하나님은 불공평하다.' '이미 정해져 있다면, 우리가 무엇 때문에 노력하며 사나? 맘대로 살면 될 것을.' 이것은 운명론적 사고다.


먼저, 사전적인 운명론은 무슨 뜻일까?

한자의미: 運(운) : 움직이다, 돌아가다, 命(명) : 목숨, 하늘이 내린 정해진 것, 論(론) : 이론, 주장

운명론 = 인간의 삶이 이미 정해진 운명에 의해 결정된다는 이론

운명론의 기본 생각

미래는 이미 정해져 있다

인간의 선택은 결과를 바꾸지 못한다

노력이나 행동이 결과에 큰 영향을 주지 않는다

영어로는 fate(운명) ism(사상, 이론)-> fatalism

이 운명론대로라면 사람들은 로보트다. 하나님이 계획하고 결론과 목적이 정해져 있는 대로 연극에서 특별한 캐릭터를 정해놓은 것처럼 인간을 만드셨다. 바로는 나쁜 역할, 모세는 구원자의 역할로 이미 역할이 지정되었다. 하나님은 이 연극을 쓴 작가로 그 속에 있는 인간들은 그저 하나님이 만드신 캐릭터들에 불과하다. 나쁜 놈은 항상 나쁘고 좋은 놈은 항상 좋고 하나님 마음대로 캐릭터들을 조정하신다.

그렇다면 우리는 결국, 우리 멋대로 살아도 된다. 어차피 운명은 좋은 놈, 나쁜 놈으로 정해져 있기 때문이다.

진정 그렇게 생각하는가?


운명론적으로 결론 맺기에는 그래도 뭔가 석연찮은 느낌이 있지 않은가?


맞다. '우리 인간이 그래도 어느 정도 영향력이 있겠지.' 하는 마음이 들기 때문이다.

동양에서는 천리 사상이 있고, 서양에서는 자연법이 이 생각을 보완해 준다.

두 가지 사상이 비슷하다. 하지만 조금의 차이는 있다.

천리의 의미는 하늘이 정해 놓은 우주의 도덕적 질서가 있고 우주에 존재하는 보편적 이치가 있다는 사상이다. 인간은 수양을 통해 그 이치를 따라야 하고 우주의 도덕 질서가 강조된다. 대표사상가는 '주자'다.

부모공경, 도덕, 조화로운 삶 등이 천리라고 보고 아마 우리가 흔히 말하는 '하늘은 스스로 돕는 자를 돕는다, 뿌린 대로 거둔다, 카르마, 선이 결국 이긴다. 응과응보'가 이 천리에 속한다.

천리와 비슷한연법(Natural Law)은 서양 철학, 법 철학 개념으로 자연과 인간 이성에 내재된 보편적 도덕 법칙으로 인간의 이성으로 발견이 가능하고 법과 윤리의 기초가 되는 사상이다. 신앙과 연결되기도 하지만 철학적, 법적 개념에 가깝다. 대표 사상가로는 Thomas Aquinas로 '남에게 대접받고 싶은 대로 대접하라'는 보편적 도덕률인, 황금률이 여기에 속한다. '정의는 반드시 이루어진다. 살인은 어디서든 잘못된 것이다, 진실은 거짓보다 낫다, 권리는 정부가 아니라 자연에서 온다.' 이렇게 인간의 이성으로 알 수 있는 보편적인 도덕 법칙이 있다는 사상이다.

두 가지 사상의 차이는 천리는 주어가 하늘에, 자연법은 주어가 인간의 이성에 있다. 그래서 천리는 우주의 도덕적 원리를 주장하고 인간의 이성과 양심을 주장한다. 천리는 자연과 도덕이 하나가 되기에 인간이 수양을 통해 그 이치를 따라야 한다고 주장하고 자연법은 인간의 양심에 입각한 정의와 인간의 책임과 권리를 주장한다.

천리와 자연법을 생각하다 보면, 자연스럽게 '우리는 우주의 질서나 양심으로 착한 것이 무엇인지를 알고 마음을 수양해 그것을 따르고 살거나 그 질서를 따르고 사는 것이 바람직하다'라는 사상으로 결론지어진다.

하늘에 기준점을 둔 천리는 유교사상과 연결이 되고 도덕적 삶, 사회윤리가 강조된다. 결과는 원인이 있기 때문이다라는 연기설에서는 차이가 있지만 카르마 사상과 수양을 강조하는 데에서는 불교와도 비슷한 점이 있다. 자연법에서는 도덕적 삶이 올바르고 가치가 있기에 선한 일을 하는 것이 의무이고 중요한 점이라고 생각한다. 그것이 자연스럽게 '착한 일을 하면 하늘의 질서로 좋은 일로 돌아오고, 착한 일을 하는 바람직한 행동으로 천국을 갈 수 있다'라는 "기독교적인 사상처럼 보이는" 종교사상과도 자연스레 연결이 된다.


종교는 기독교가 아니다.

종교는 인간이 노력해서 하나님께 간다라는 사상이 있고, 기독교는 하나님이 인간에게 먼저 오셨다는 사상이다. 종교는 선행이 구원을 이룬다고 전적으로 인간의 행위에 중심을 두고 있고 기독교는 인간은 스스로 구원을 할 수 없고 죄지은 인간에게 하나님의 전적인 은혜가 구원을 이룬다고 말한다. 그리고 이 구원이 인간의 선한 삶을 이끈다고 말한다. 그래서 모든 종교는 도덕, 깨달음, 수행에 입각한 좋은 삶을 가르치는 데 중점을 두고, 기독교는 하나님의 구원 사건에 중점을 두니 예수님의 십자가와 부활에 중점을 둔다. 종교는 인간의 양심에 입각해 성선설을 주장하며 깨달을 수 있는 존재로 생각하고 기독교 성악설에 입각해 인간은 스스로 구원할 수 없는 죄인으로 전적으로 하나님의 은혜가 있어야 한다고 주장한다. 종교는 인간이 하나님을 찾는 길이고 기독교는 하나님이 인간을 찾아오신 이야기다.


여기에 목적을 가진 하나님의 '섭리'가 있다.

국어사전의 섭리(攝理)란,

자연이나 인간 세계를 지배하고 있는 보이지 않는 질서나 이치 또는 세상 만물을 질서 있게 다스리고 이끄는 원리라고 한다.

한자: 攝(섭) : 거두어 다스리다, 통치하다, 理(리) : 이치, 원리, 질서

섭리란 세상을 질서 있게 다스리고 이끄는 이치다. 누가? 주어는 '하나님'이다.

기독교에서 섭리란 하나님이 세상과 인간의 삶을 목적과 지혜를 가지고 보존하고 인도하시는 것.

즉, 세상을 창조만 하신 것이 아니라 지금도 다스리고 역사를 목적을 향해 이끌고 계신다고 믿는 것이다.

하나님이 사건과 상황을 사용하여 선한 목적을 이루신다는 섭리의 대표적인 예는 로마서에 표현되어 있다.

Romans 8:28 “하나님을 사랑하는 자들에게는 모든 것이 합력하여 선을 이룬다.

하나님이 주체가 되시는 '섭리'는 하나님이 이 세상을 만들고 지배하시고 질서 있게 다스리시고 이끄신다.

하나님이 세상의 생명을 유지하시고 하나님이 역사를 이끄신다. 개인의 삶도 주님이 간섭하신다.

요셉은 하나님의 '섭리'를 가장 잘 이해한 사람이다. 형들의 악한 행동조차 하나님이 구원의 역사에 사용하셨다는 의미이다.

Genesis 50:20 “당신들은 나를 해하려 했지만 하나님은 그것을 선으로 바꾸셨다.

하나님의 섭리를 이해하면 자연히 하나님은 주체이시기에 살아계신 인격적인 하나님이시다는 것을 알 수 있다. 또, 역사는 우연히 일어나는 것이 아니라 인간이 저지른 행동에 대한 결과 위에 하나님이 목적대로 사용하심을 알 수 있다. 인간의 죄와 악을 선으로 하나님의 목적대로 합력하시며 역사를 이끄신다.

이것은 인간의 선택과 하나님의 계획이 함께 존재한다는 결론에 이른다.

섭리를 영어로도 살펴보자. 섭리의 영어 단어는 Providence다. 라틴어에서 왔고

pro = 미리, 앞에 (before)

videre = 보다 (to see)

providere = 미리 보다 / 앞을 내다보다

여기서 나온 명사가 providentia → providence이다.

앞을 미리 보고 준비하는 것, 앞으로 일어날 일을 미리 살펴 돌보는 것이다. 세상을 미리 보고 인도하는 힘이 있다. 누구에게? 하나님께. 그래서 영어에서 Providence는 하나님이 미래를 아시고 세상을 미리 보고 돌보며 인도하는 것이라는 뜻으로 발전했다.


결론적으로 섭리란 하나님이 세상과 인간의 역사를 지혜와 목적을 가지고 보존하고 다스리며 인도하시는 것. 즉, 하나님은 세상을 창조만 하고 떠나신 것이 아니라 지금도 유지하고 통치하고 목적을 향해 인도하신다.

하나님은 섭리를 통해 세상을 계속 존재하게 유지하신다.

1. 보존(Preservation): 하나님이 세상을 계속 존재하게 유지하심

Colossians 1:17

“그가 만물보다 먼저 계시고 만물이 그 안에 함께 서 있다.”

2. 통치(government) : 하나님이 역사와 사건을 다스리심

Psalms 103:19

“여호와께서 그의 보좌를 하늘에 세우시고 그의 나라가 만유를 다스린다.”

3. 협력(Concurrence): 하나님이 인간의 행동 속에서도 함께 역사하여 결과를 이루심

Romans 8:28

“모든 것이 합력하여 선을 이룬다.”


하나님의 깊은 사랑이 이 섭리에 있다. 목적이 있고 사랑하는 인간을 구원하기 위한 질서와 지혜가 있다. 역사의 방향 끝에는 목적으로 이끄신다. 우연하게 일어나는 것 같아도 주권자 하나님이 목적으로 이끌어 가신다.

섭리와 운명론을 그래서 결정적인 차이가 있다. 섭리의 주체는 살아있는 하나님이시고 운명론의 주체는 이미 고정된 결과이다. 섭리는 살아있는 하나님은 목적이 있고 사랑을 한다. 운명론은 주체가 비인격적이라 의미가 없고 인간의 지분이 그 안에 없다. 섭리에는 하나님의 목적이 있고 인간의 자율의지가 있어 인간의 책임이 존재한다. 인간과 하나님은 관계를 맺고 유동적으로 서로에게 간섭하고 영향을 미친다. 인격적인 관계를 맺고 산다. 예를 들어, 주님은 우리 한 사람에게 우동 그릇의 목적을 두었다고 하자. 하지만 인간은 그것을 간장 종지만큼만 채울 수도 있고 우동그릇을 금방 채울 수도 있다. 이 채우는 그릇은 주님이 제공하셨어도 채우는 주체는 인간이다. 하지만 주님은 우리의 능력과 힘이 몰자라 간장종지밖에 채우지 못하게 되면 직접적인 간섭으로 힘과 능력을 주셔서 우동 그릇을 채울 수 있도록 간섭하시고 직접 부모처럼 끌어당기며 목적대로 이끌어주신다. 이 과정 중에 우리는 인격적인 하나님과 부모와 자식처럼 갈등도 하고 서로 사랑을 느끼고 후회화 반성을 하며 가르치고 배우며 서로 깨닫고 결국 서로를 존중해 서로에게 순종하고 섬기는 시간을 갖는다. 주님은 이 과정 중에 끊임없이 우리를 설득시키며 창조주로서 우리를 함부로 대하시지 않는다. 오히려 우리를 사랑하고 존중하며 인내하시며 우리의 존재가 주님께 얼마나 가치가 있고 영향을 미치는지를 알게 해 주신다. 섭리 안에서의 인간은 하나님께 존중받고 하나님의 일에 초청받고 그의 일을 함께 하는 사역을 하는 인간으로 영향력이 크다. 하나님은 동등한 관계로 인간을 끌어올려 사랑하신다.

운명론에서는 인간의 죄성으로 역사는 서로를 죽이고 끝나는 결론밖에 이르지 못한다. 하지만 하나님의 섭리 안에서는 하나님이 직접 역사 안으로 , 우리의 시간 속에 들어오시고 우리의 육신을 입고 우리 가운데서 역사를 선으로 이끌어 주신다. 방향을 바꾸어 주신다.


Exodus 9:12 “여호와께서 바로의 마음을 강퍅하게 하셨다.”

Romans 9:17 “내가 너를 세운 것은 내 능력을 보이기 위함이다.”

Proverbs 21:1 “왕의 마음은 여호와의 손에 있는 물과 같아서 그가 원하는 대로 이끄신다.”

Ephesians 1:5 “그 기쁘신 뜻대로 우리를 예정하사…

Romans 9:21 “토기장이가 같은 진흙으로 어떤 것은 귀하게, 어떤 것은 천하게 만들 권한이 없느냐”

이제 이 구절들을 다시 읽어보자. 여전히 하나님은 불공평하시고 우리의 운명이 이미 정해진 것으로 생각이 드는가? 억울한가?


Exodus 9:12 “여호와께서 바로의 마음을 강퍅하게 하셨다.”

바로는 이미 자기의 마음을 강퍅하게 하기로 자율의지로 마음을 굳힌 것을 주님은 아셨기에 그것을 살아있는 주님이 구원해 내는 감동적인 장면으로 보여주는 것으로 사용하셨다. 10가지 재앙에서 이스라엘을 구원하시고 홍해가 갈라지는 하나님을 만나도록 쓰셨다.

Romans 9:17 “내가 너를 세운 것은 내 능력을 보이기 위함이다.”

두 번째 구절에서는 주님은 '세상적인 잘난 사람'을 선택하시지 않는다. 자세히 들여다보면, 소위 힘없고 능력 없고 살인이나 나쁜 짓을 한 사람을 통해 하나님의 능력을 보여주셨다. 죄와 나약한 인간으로부터 주님의 능력과 영광을 보게 하셨다.

Proverbs 21:1 “왕의 마음은 여호와의 손에 있는 물과 같아서 그가 원하는 대로 이끄신다.”

세상왕은 한낱 인간에 불과하기에 모든 인간이 그러하듯 욕망과 욕심과 교만이 있다. 자신의 자율의지로 주님의 명령대로 살려고 노력하는 왕은 주님이 도우시고 주님의 존재를 알면서도 자신이 하나님 되고자 하는 왕은 주님이 경고하시며 마음을 돌이켜도 돌아오지 않으면 내버려 두신 후, 그를 구원의 역사에서 그의 어떤 방해가 있을지라도 반드시 승리하시는 주님의 존재를 드러내신다.

Ephesians 1:5 “그 기쁘신 뜻대로 우리를 예정하사…

우리 모두는 다른 환경을 타고 다른 재능을 타고 주님의 목적대로, 다른 지체대로 지어졌다. 좋고 나쁘고 옳고 그르고는 세상 기준의 우리 판단이다. 주님은 모든 인간을 사랑하사 그 역할대로 지으셨고 서로 다른 지체에 맡는 사역을 주셨다. 하지만 하나의 목적이 있다. 하나님의 나라이다.

Romans 9:21 “토기장이가 같은 진흙으로 어떤 것은 귀하게, 어떤 것은 천하게 만들 권한이 없느냐”

귀하고 천하고의 판단을 우리는 세상 기준으로 한다. 하지만 하나님의 천하고 귀한 기준은 우리와 전혀 다른 점을 생각해야 한다. 이 세상의 모든 사람의 재능과 강점 약점이 서로 다르다. 주님은 이 다른 인간들이 서로 합력하여 하나님의 나라를 이루는데 그 최종적인 목적이 있으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