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42. 느헤미야의 리더십 1

느헤미야 1장-6장

by Momanf

느헤미야가 이스라엘 소식을 듣고 슬퍼했을 때, 그는 수산궁에서 아닥사스 아래 술관장으로 있었다.

그 당시 술관장이란 직업은 신뢰직+행정직+보안직이라 보면 된다.

보안 책임자로 왕의 생명을 지키는 사람이라 왕이 마시기 전에 술에 독을 탔는지 확인해야 하기에 왕의 생명을 대신 걸고 일하는 사람이다. 항상 왕과 가장 가까운 신뢰받는 사람이기에 왕의 개인적인 이야기도 나눌 수 있는 위치다. 늘 왕과 함께 하기에 단순한 하인이 아니라 정치적 영향력이 상당히 막강한 '고위 관료'다. 실제로 나중에 느헤미야는 유다 총독이 된다. 왕 앞에서는 항상 밝고 안정된 모습을 유지하는 자기감정을 관리해야 하는 직업이다. 슬픈 얼굴은 곧 문제가 있는 사람이다. 왜냐하면 고대 페르시아 궁정에서는 슬픈 얼굴은 위험의 신호이기 때문이다. 왕에 대한 불만으로 보일 수도 있고 반역이나 문제 있는 사람으로 의심도 받고 궁정은 매우 정치적인 곳이기에 작은 표정 하나도 충성문제로 연결된 실제로 처벌받을 수도 있다. 심하면 직위 박탈, 감옥, 심지어 죽음까지 가능하다고 한다. 그래서 느헤미야 2:2절에서 "내가 크게 두려워하여" 하며 왕이 근심 어린 얼굴을 걱정했을 때, 느헤미야는 굉장히 긴장하고 두려워하기까지 했다.


느헤미야는 이스라엘 백성들이 큰 환난과 능욕을 받으며 살아남은 유다사람들이 포로에서 돌아와 고통 속에 살고 있다는 소식을 들었다. 또 성벽이 허물어져 도시를 보호하는 가장 중요한 방어가 없어 누구나 쉽게 공격이 가능한 상태라는 것을 들었다. 더군다나 성문이 불타 없어져 도시의 출입과 안전이 완전히 무너진 상태였다.


느헤미야는 이 소식을 들었을 때, 오랫동안 앉아서 울면서 슬퍼했다. 그리고 금식하며 간절히 기도했다.

하나님을 크고 두려우신 하나님이라 높이고 찬양하며 하나님이 어떤 분인지 먼저 고백한다. 그 기도 속에는 언약을 지키시고 사랑하시는 하나님에 대한 확신이 있다. 또 자기만이 아니라 자기 민족의 죄까지 함께 회개하며 죄를 고백한다. 또 하나님의 말씀을 붙잡고 말씀에 근거한 기도로 하나님이 하신 약속을 기억하며 기도한다. 그리고 우리를 다시 모아 달라고 회복과 구원의 기도를 한다. 그리고 오늘 나에게 은혜를 주시고 왕 앞에서 형통하게 해달라고 구체적인 도움 요청을 한다.

Praise → Confess → Remember → Ask의 순서로 기도한다.

그의 기도 속에서 우리는 전적으로 우리의 문제가->하나님께 달렸다는 방향을 볼 수 있다.

또 개인에서->공동체의 죄로 함께 회개하는 방향과 불행한 상황->하나님의 신실하신 구원과 회복의 약속으로 소망의 방향을 볼 수 있다. 그리고 그 자리에서 슬픔에서 머무는 자리-> 행동하는 자리로 방향이 옮겨가 구체적인 은혜인 왕 앞에서 형통하게 해달라고 구체적인 도움을 요청한다.


여기서 우리는 느헤미야의 첫 번째 리더십을 배운다. 어려운 일과 문제에서, 문제의 너머에 계시는 하나님을 기억한다. 그리고 개인만 생각하는 작은 사고에서 우리 모두의 문제로 심각하게 생각하며 우리 모두의 문제를 나의 문제, 우리 모두의 죄로 깊이 참회하고 회개한다. 그리고 이 불행한 상황으로 끝나는 것이 아닌 구원과 회복하시는 주님께 구체적인 자비와 은혜로 행동하는데 힘과 능력이 되어달라 기도한다.


이 기도는 하나님을 기쁘게 하는 기도가 된다. 그렇게 드린 기도는 '왕의 반응'으로 주님께 필요한 부분을 공급받는다.

먼저 왕의 마음을 움직이셔서 왕이 먼저 “왜 얼굴이 슬프냐?” 하고 묻고 놀랍게도 느헤미야의 요청을 들어준다. 하나님이 왕의 마음을 먼저 움직이셔서 느헤미야가 문제를 해결하는데 필요한 계획을 수용하게 하셨다.

또 공식적인 허락을 받게 하셔서 느헤미야가 요청하는 유다로 갈 수 있는 허락, 안전하게 이동할 수 있는 왕의 편지를 제공한다. 또, 성벽을 지을 재료를 주고 군대 장관과 기병을 함께 보내주며 보호를 제공해 주어 이동 중 안전을 제공한다.

느헤미야 2:8 “내 하나님의 선한 손이 나를 도우시므로” 이 모든 것은 우연이 아니라 하나님의 도우심의 응답, 왕을 통해 느헤미야의 필요를 채우시는 하나님의 손길이다. 느헤미야의 기도는 하나님을 기쁘게 했고 하나님은 사람과 상황을 움직여 필요한 것을 채워주셨다.


두 번째의 리더십도 기도다. 느헤미야는 하나님께 계속 의지함으로 하나님을 기쁘게 했다. 느헤미야 2:4 왕이 내게 이르시되 그러면 네가 무엇을 원하느냐 하시기로 내가 곧 하늘의 하나님께 묵도하고 이렇게 매 순간에도 하나님께 짧게라도 묻는 모습을 볼 수 있다.


세 번째 리더십, 느헤미야는 생각에서 그치는 것이 아니라 즉각적인 행동으로 하나님을 믿는 믿음에 반응한다.

그리고 지체하지 않고 즉각적으로 왕에게 필요한 부분을 구한 후, 바로 예루살렘으로 떠나 밤에 조용히 성문의 파괴된 정도를 정확히 파악했다. 이것은 하나님 뜻을 알아 왕이 도와준다고 했을 때, 하나님의 손길을 보고 즉각적으로 행동하며 순종하고 응답했다는 것을 알 수 있다. 그리고 성벽 재건을 위한 일을 빠르게 실시함으로 믿음은 생각으로 그치는 것이 아니라 행동하는 것임을 가르쳐 준다.


네 번째, 느헤미야는 사람들을 세웠다. 느헤미야는 혼자가 아니라 공동체를 함께 세워 하나님의 일을 한다. 모든 일을 분담해 나누고 같은 일이라도 함께 나눔으로 자신의 업적이라 할 수 없도록 우리 모두의 일로 나누었다.

느헤미야 2:18 또 저희에게 하나님의 선한 손이 나를 도우신 일과 왕이 내게 이른 말씀을 고하였더니 저희의 말이 일어나 건축하자 하고 모두 힘을 내어 이 선한 일을 하려 하매



다섯 번째, 느헤미야는 하나님께 속상함을 고백하고 적과 싸우지 않는다. 주님께 속상한 마음을 토로하고 적들에게 시간, 에너지, 감정을 허비하지 않고 목적을 위해서만 집중한다.

성벽을 건축한다는 소식이 전해지자 호론 사람 산발랏, 암몬 사람 도비야, 아라비아 사람 게셈, 아스돗 사방에서 왕을 배반코자 하느냐고 하며 예루살렘 성을 중건하기 위한 계획을 방해하려고 한다.

느헤미야 4장에서 그들은 비웃음, 무시로 사기를 떨어뜨리려 한다. 왕의 신뢰까지 얻었으니 나 같으면 대거리하고 싸우려 들었을 것이다. 강력하게 나가서 우리 공동체를 기죽이지 않게 하려 했을지도 모르고 개인적으로 화가 나니 분풀이를 하고 싶었을 것이다. 느헤미야도 화가 나지 않은 것은 아니다.

4:4-5 우리 하나님이여 들으시옵소서 우리가 업신여김을 당하나이다 원컨대 저희의 욕하는 것으로 자기의 머리에 돌리사 노략거리가 되어 이방에 사로잡히게 하시고 주의 앞에서 그 악을 덮어 두지 마옵시며 그 죄를 도말하지 마옵소서 저희가 건축하는 자 앞에서 주의 노를 격동하였음이니이다 하고


4:6 이에 우리가 성을 건축하여 전부가 연락되고 고가 절반에 미쳤으니 이는 백성이 마음 들여 역사하였음이니라 7: 산발랏과 도비야와 아라비아 사람들과 암몬 사람들과 아스돗 사람들이 예루살렘 성이 중수되어 그 퇴락한 곳이 수보 되어 간다 함을 듣고 심히 분하여

외부의 공격에도 하나님께만 속상함을 토로하며 적과 싸우지 않는 느헤미야를 위해 주님은 사람들이 리더인 느헤미야를 따라 성벽을 짓는 일에 집중하게 해 빠른 진척을 보게 하시며 그 일의 결과로 적에게 위협이 되시고 심히 분하게 하는 것으로 갚아주신다.


여섯 번째, 느헤미야는 “얼마를 받을까”보다 “얼마를 줄 수 있을까”를 생각하는 진정한 리더다.

먼저 총독으로 12년간 녹을 받지 않았다. 또 다른 총독들은 백성들에게 세금을 거두고 압제했으나 자신은 하나님을 경외하므로 이같이 행치 아니하고 도리어 이 성 역사에 힘을 다하며 땅을 사지 아니하였고 나의 모든 종자도 모여서 역사를 하였으며 자기 밑에 사람들과 이방인들을 대접하면서도 백성의 부역이 중하였기에 전혀 요구하지 않았다.

느헤미야 5:15 “나는 하나님을 경외함으로 그렇게 하지 아니하고”. 무엇보다 하나님을 경외하는 사람으로 다른 총독처럼 굴지 않았다. 사람 눈이 아니라 하나님 앞에서 바르게 살고자 했다. 그는 이미 백성들이 가난했고 세금과 빚으로 힘들어한 것을 알았기에 자기의 녹을 포기함으로 백성들에게 더 큰 부담을 덜어주었다.

오히려 자기 가족들까지도 성벽 쌓는 일을 솔선수범해 공동체를 위해 일하게 했고 자기 돈으로 오히려 사람들을 대접하고 먹이기까지 했다. 그는 받는 리더가 아니라 주는 리더로 섬김을 받기보다 다른 사람을 섬겼다.

그의 목표는 돈이나 권력이 아니라 성벽 재건과 백성회복이라는 사명 중심이었다.


느헤미야가 하나님을 경외하며 이렇게 살았기에 경제계급의 문제로 내부의 문제가 발생했을 때, 하나님은 쉽게 문제를 해결할 수 있게 도와주셨다. 느헤미야가 문제 파악을 하고 귀인과 민장들에게 엄하게 꾸짖고 어려운 백성들을 위해 다 돌려주라고 했을 때, 그들은 단박에 느헤미야의 명령에 순종한다. 하나님을 경외하는 자는 자신의 권리를 포기하고 오히려 "얼마를 줄 수 있을까" 하는 리더로 세워진다. 그래서 공동체 내부의 문제가 생겼을 때, 사람들은 리더를 따라 단박에 죄를 깨닫고 회개할 수 있다. 또 하나님은 리더를 닮아 "얼마를 줄 수 있을까" 하는 사람으로 변화시키시며 문제를 통해 더욱 단합하고 감사하는 공동체로 발전하게 해 주신다.


일곱 번째, 느헤미야는 어떤 방해에도 포기하지 않고 하나님을 믿었다. 두려움의 반대말은 용감함이 아니라 '믿음'이다. 느헤미야는 두려운 상황에 더욱 하나님을 믿고 목적에 집중하고 성실히 일한다.

외부의 비웃음, 위협, 공격뿐 아니라 계속되는 거짓말과 협박, 나중에는 살해위협 속에서도 느헤미야는 절대로 적의 싸움에 넘어가지 않고 피한다. 하나님께 기도하면서 한 손에는 도구, 한 손에는 무기를 들고 어떤 방해에도 목적이 흔들리지 않았던 것은 진짜이신 하나님만을 믿었기 때문이다. 진짜이신 하나님을 정확히 아니 위협과 두려움이 거짓이라는 것을 분명히 분별할 수 있었다. 그래서 그 싸움에 휘말리는 대신 철저히 죄와 분리되어 싸움을 피하고 하나님께 의지할 수 있었다. 위협과 두려움 속에서도 자기 방식대로 나아가 싸우는 대신 철저히 하나님께 의지했고 싸움을 피함으로 하나님의 보호를 받았다. 이 시간 동안 느헤미야와 공동체는 목표에 더욱 집중하고 서로를 보호하며 단합하는 힘이 점점 강화되었다.


그 결과 하나님은 52일 만에 기적적인 속도로 성벽완성을 이루게 하셨다.

느헤미야 6:15 성 역사가 오십 이일만에 엘룰월 이십 오일에 끝나매

또, 하나님이 적들을 두려워하게 하셨다.

느헤미야 6:16 우리 모든 대적과 사면 이방 사람들이 이를 듣고 다 두려워하여 스스로 낙담하였으니 이는 이 역사를 우리 하나님이 이루신 것을 앎이니라.

하나님은 기도하고 끝까지 순종하는 사람을 통해 일을 완성하셨다.


느헤미야의 문제 파악과 해결책, 그리고 목적을 향한 집중력과 실행력을 통해 그가 능력 있고 출중한 리더임을 배운다. 그래서 교만해질 수 있는 충분한 자리에 있을 수 있었다.

하지만 그는 '예수님'처럼 이스라엘과 하나님의 사이에서 죄를 기도하는 중보기도자요, 섬김을 받으려는 리더가 아닌 다른 사람을 먼저 섬기는 리더였으며 무엇보다 하나님을 경외하고 늘 주님과 함께 하는 리더였다.

그가 교만해지지 않았던 이유는 항상 하나님이 하셨다고 고백하고 있는 점을 미루어

느헤미야 2:8 “하나님의 선한 손이 나를 도우셨다”

성공을 자기 능력으로 돌리지 않고 늘 “내가 아니라 하나님”이라고 고백하고 있다는 점이다.

공로를 자신이 아닌 하나님께 돌리고 있다.

시작도 중간도 끝도 오직 기도로 하나님을 만난다. 기도는 자신이 주인이 아니라는 고백으로 자기 생각이 아니라 하나님의 약속과 말씀을 기준으로 정해 살려고 노력한다. 기도는 개인에서 하나님께로 '방향'을 바꾼다. 그래서 기도하는 사람은 '자기 성공'이 아니라 '하나님의 뜻'으로 방향이 바뀐다.

느헤미야는 자기가 문제 파악이 잘 되고 해결책이 있다고 사람들을 자기의 목적대로 뽑아서 일을 시키며 혼자 성벽을 세우지 않는다. 공동체를 세워 “내가 했다”가 아니라 “우리가 함께 했다”에 집중한다. 이것은 죄문제에서도 '너의 죄, 조상의 죄가 아니라' 느헤미야 1장 “나와 내 아버지 집이 죄를 지었습니다”라고 자신의 죄문제로 생각해 낮추고 회개했다. 교만은 '나는 괜찮다'에서 시작하지만 회개는 '내가 잘못했다'는 마음에서 시작되기에 그는 겸손한 태도로 공동체 문제를 인식했다. 성벽 재건은 자신의 명예가 아닌 전적으로 '하나님'을 위한 것이 목적이 되었다. 목적과 명예가 자기에게 돌아올 경우, 교만할 틈이 많지만 그 모든 목적과 영광이 하나님께 돌아갈 때, 교만할 수가 없다.











매거진의 이전글241. 우리는 운명론을 사는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