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43. 은혜로 생명을 건질 수 있다.

느헤미야의 리더십 2

by Momanf

은혜란 무엇인가?

은혜란 먼저 '선물'이다. 그렇다면 일반적인 선물(gift, present)과는 무엇이 다른가?

보통 선물은 어떤 이유나 관계를 바탕으로 준다. 그러나 은혜는 다르다. 선물을 받을 자격이 없는 사람이 받는 것이 은혜다. 잘못해서 벌을 받아야 마땅한데 오히려 용서를 받는 것, 잘한 것이 없는데 상을 받는 것, 아무것도 해준 것이 없거나 오히려 해를 끼쳤는데 선함과 도움이 돌아오는 것—이 모든 것이 은혜다.


사람이 베푸는 은혜, 그 한계

그렇다면 사람들끼리도 이 은혜를 베풀 수 있을까? 물론 베풀 수는 있다. 하지만 그것은 언제나 한정적이고 영원할 수 없다. 또한 상황의 심각성에 따라 사람이 도저히 베풀 수 없는 은혜도 존재한다.

부모가 자식을 사랑하는 것이 그 가장 가까운 예다. 아이가 거듭 잘못을 저질러도, 부모에게 돌려주는 것이 아무것도 없어도, 부모는 끊임없이 용서하고 사랑한다. 잘나서가 아니라 못나도 내 자식이기에, 그 존재만으로도 사랑하는 것이다.

그러나 아이가 계속해서 부모를 무시하고, 그 무한한 사랑을 감사히 여기기는커녕 오히려 이용한다면, 부모도 끝까지 은혜를 베풀기는 힘들다. 부모 역시 감정을 가진 사람이고, 자식에 대한 기대를 완전히 내려놓을 수 없기 때문이다. 인간과 인간 사이에는 서로에 대한 기대가 사라질 수 없다. 그렇기에 부모조차도 불완전한 은혜를 줄 수밖에 없다. 부모도 결국 나약한 인간일 뿐이다.


하나님의 은혜

그렇다면 하나님의 은혜는 어떠한가?

하나님은 먼저 세상을 창조하셔서 인간이 살아갈 수 있는 터전을 주셨고, 공급하시고 보호하신다. 우리는 모두 죄인으로, 스스로는 죄를 용서받을 수 없는 존재다. 그럼에도 자격 없는 우리에게 가장 큰 선물이 주어졌다.

바로 '예수님'이다.

주님의 은혜는 조건이 없다. 늘 먼저 다가오시고, 먼저 주시고, 끝까지 포기하지 않는 사랑이다. 스스로는 구원할 수 없는 죄로부터 예수님을 통해 우리를 건져내시고, 동시에 '우리 자신의 죄'를 깨닫게 하신다. 죄를 깨달을 때 우리는 비로소 참으로 회개하고 주님께 돌아오며, 진정한 변화를 얻는다. 주님은 우리를 끝까지 설득하셔서, 죄를 깨닫고 회개하며 돌아와 전혀 다른 존재로 변화되게 하신다.


두 가지 질문

이제 두 가지 질문을 해보고 싶다.

첫 번째 질문: 결혼, 출산, 시험 합격, 오랫동안 염원하던 일의 성취—이런 일들이 일어날 때 우리는 기쁘다. 가진 것 하나 없이 태어난 것 같아도, 내가 이미 누리고 있는 것들을 돌아보면 너무 많은 것이 주어져 있음을 발견하게 된다. 이것을 은혜로 생각할 수 있는가?

두 번째 질문: 반면, 다른 사람에게 지적받고, 바라던 일에 실패하고, 거짓말이 탄로 나 수치심을 느끼고, 갈등과 다툼이 생기고, 오래 바라던 것이 좌절될 때 우리는 기쁘지 않다. 슬픔, 좌절감, 죄책감, 자기 연민이 밀려온다. 이것을 은혜로 생각할 수 있는가?

첫 번째 질문에는 누구나 쉽게 '그렇다'라고 답할 수 있다. 내가 원하고 표면적으로 좋은 일이 일어나면 기쁘고, 그것은 선물이며 은혜라고 자연스럽게 느끼기 때문이다.

하지만 두 번째 질문에는 쉽게 '그렇다'라고 답하기 어렵다.


질병의 비유

두 번째 질문을 본격적으로 다루기 전에, 먼저 이런 상황을 생각해 보자.

당신의 몸 안에 위험한 질병이 있다. 이것을 모른 채 지금처럼 편안하게 살기를 원하는가? 아니면 힘들고 고통스럽겠지만, 발견되어 수술을 받기를 원하는가?

대부분은 답을 안다. 아프고 힘들더라도 질병을 발견해 수술하면 건강하게 오래 살 수 있다. 모른 채 편안하게 지내다가 질병이 악화되면, 결국 훨씬 더 큰 고통 속에 일찍 삶을 마감할 수밖에 없다.


고난도 은혜인가?

이제 두 번째 질문으로 돌아가자.

사람들에게 찾아오는 고난과 고통은 하나님의 은혜가 아닌가? 지적받고, 실패하고, 수치심을 느끼고, 갈등과 다툼이 생기는 것은 하나님이 벌을 주시는 것인가? 그 순간 주님은 나와 함께 계시지 않는 것인가?

아니다. 그때에도 주님은 나와 함께 계신다.

우리는 질병을 싫어한다. 불편한 감정도 마찬가지다. 그러나 질병을 조기에 발견한 것이 감사한 것처럼, 고통과 고난이야말로 내 안의 죄를 발견하게 해주는 진단의 순간일 수 있다. 외부의 원인만 탓하던 시선을 멈추고, 이 고통이 내 안의 어떤 죄로부터 비롯된 것인지를 돌아볼 수 있는 기회가 되는 것이다.

그 진단의 순간에 주님은 힘든 수술을 시작하신다. 이 과정은 우리로 하여금 죄를 깨닫고 진심으로 회개하게 한다. 그렇게 옛 악습관에서 벗어나 성장하고 성숙해지며, 죄를 도려내고 건강한 삶을 되찾게 된다.

성경은 이 은혜를 삶으로 보여준 사람들로 가득하다.

다윗은 간음과 살인이라는 씻을 수 없는 죄를 저질렀지만, 선지자 나단의 지적 앞에 "내가 여호와께 죄를 범하였노라" 고백하며 무너졌다. 그 회개가 그를 하나님의 마음에 합한 자로 회복시켰다.

삭개오는 세리장으로 오랫동안 백성의 것을 착취하며 살았다. 그러나 예수님이 먼저 그의 이름을 부르시고 집에 찾아오셨을 때, 그는 그 자리에서 "소유의 절반을 가난한 자들에게 주겠고, 토색한 것이 있으면 네 갑절이나 갚겠나이다"라고 선언했다. 자격 없는 자에게 먼저 찾아오시는 은혜가 그의 삶 전체를 바꾸어 놓았다.

베드로는 "주를 위해 목숨도 버리겠다" 장담했지만, 정작 예수님이 잡혀가던 날 밤 세 번이나 모른다고 부인했다. 닭 울음소리에 밖으로 나가 심히 통곡한 그 자리가 베드로를 완전히 다른 사람으로 만들었고, 이후 그는 목숨을 걸고 복음을 전하는 사람이 되었다.

바울은 한때 예수 믿는 자들을 잡아 죽이는 일에 앞장섰다. 그러나 다마스쿠스 길에서 부활하신 예수님을 만난 후, 스스로를 "죄인 중에 괴수"라 부르며 가장 열정적인 복음 전도자로 변화되었다. 깊은 죄의 자각이 깊은 은혜의 감격으로 이어진 것이다.


고난과 고통은 불편하고 싫지만, 그 안에도 하나님의 은혜는 분명히 있다. 내 속의 죄를 깨닫게 하는 은혜, 진심으로 뉘우치고 하나님께 돌아오는 회개의 은혜, 그리고 주님께 용서받은 존재임을 알기에 다른 사람을 진심으로 용서하고 미움에서 자유로워지는 은혜가 그 안에 있다. 이런 과정을 통해 관계는 진정한 화해로 나아가고, 서로 더욱 성숙해져 간다.

이렇게 성숙해져 가는 사람에게 고통과 고난은 더 이상 단순히 불편한 감정이 아니다. 자신의 죄를 발견하고, 그 죄에서 자유로워져 영적으로 건강해지게 하는 하나님의 전적인 은혜가 된다. 그리고 이웃은, 나의 죄를 진단해 주고 내가 용서받은 존재임을 깨닫게 해 주며 죄의 속박으로부터 나를 자유롭게 해주는 존재로 뜨겁게 사랑할 수 있게 된다. 또, 더 이상 고통과 고난이 이전보다 더 크고 잦게 다가오지 않는다.


느헤미야의 선포

느헤미야 8장에서 성벽이 건축된 후, 백성들이 말씀을 듣고 그 뜻을 깨달았을 때 모두 울음을 터뜨렸다. 그때 느헤미야는 이렇게 말했다.

느헤미야 8:9–10 "오늘은 너희 하나님 여호와의 성일이니 슬퍼하거나 울지 말라." "가서 좋은 것을 먹고, 단 것을 마시며 준비하지 못한 자에게 나누어 주라." "이 날은 우리 주의 거룩한 날이니 근심하지 말라." "여호와로 인한 기쁨이 너희의 힘이니라."


말씀을 통해 자신의 죄를 깨닫고 울며 죄책감을 느끼는 것—그것 자체가 크나큰 하나님의 은혜다. 죄를 진단받고 도려내어 진정으로 건강하게 살 수 있는 출발점이 되기 때문이다.


은혜 없이는 살 수 없는 존재

이 세상 모든 사람은 죄인이다. 하나님은 '예수님'이라는 선물을 자격 없는 전 인류에게, 먼저 다가가시고, 포기하지 않으시고 주신다.

그러나 많은 사람들이 이 은혜를 거부한다. 이 은혜를 받아야만 죄라는 질병을 도려내고 건강하게 영생을 누릴 수 있는데도 필요 없다고 한다. 예수님을 믿고 영접할 때 우리 안에 성령이 임하셔서, 모든 문제 앞에서 외부 요인만 탓하며 갈등하고 분열하는 대신, 내 안의 죄를 발견하고 주님께 진정으로 회개하게 하신다.

용서받지 못할 내가 예수님을 통해 죄를 용서받은 존재임을 알기에, 잘잘못을 따지기 전에 내가 깨달은 죄에 대해 용기 있게 사과할 수 있다. 또한 다른 사람을 진심으로 용서할 수 있다. 두 사람이 모두 하나님의 은혜 안에 있다면, 서로 회개하고 서로 용서함으로 진정한 화해에 이를 수 있으며, 그 관계는 이전보다 훨씬 성숙해진다.

설령 한 사람이 진정으로 사과하지 않더라도, 은혜 안에 있는 사람은 먼저 자신의 죄를 발견했기에 타인을 탓하기 전에 그 죄를 발견하게 해 준 상대에게 오히려 감사할 수 있고, 미워하지 않을 자유를 얻는다.

그러므로 인간은 은혜 없이는 살아갈 수 없는 존재다. 은혜를 모르는 사람들끼리 갈등하고 분열하는 것은 어쩌면 당연한 일이다. 은혜를 알아야 비로소 우리는 죄를 깨닫고, 다른 사람을 진정으로 용서하며, 그 죄에서 완전히 해방되어 영원히 살아갈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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