40Y 가난한 마음 갖고 살기

성경을 배우는 막 태어난 아기의 생각

by Momanf



혼자 읽을 때는 별 뜻 없이 읽게 되는데 성경은 누군가와 함께 읽고 지도를 받으면 많은 뜻이 내포되어 있다는 걸 배우고 많은 것을 깨닫게 된다.

오늘도 그랬다. 창세기 3-4장을 읽고 대화를 나누었다.


우리는 뭔가 부족하고 절실할 때 신을 찾는다. 그저 평안하면 신을 찾지 않는다. 아프면 의사를 찾듯 우리가 아프면 신과 대화하고 신을 찾고 작은 것에 감사할 줄 알고 원하는 것을 절실히 기도한다.

사람의 마음의 교만해서 잘살면 내가 잘해 잘 산다고 생각하기도 하고, 또 평탄한 삶에 감사하기보다 지루해하기도 한다.


창세기를 보면 아담과 하와도 하느님께서 모든 걸 주셨을 때, 뱀의 꾐에 빠져 하느님이 먹지 말라고 한 선악과를 먹고 하느님처럼 되고자 했다. 아담과 하와가 그전에 고난을 알아 고생했고 하느님이 얼마나 크신 줄 깨달은 계기가 있었다면 절대로 하느님처럼 되고자 그런 꾐에 넘어가지 않을 수 있었다. 하지만 편안히 사는 삶, 풍족한 먹거리와 모든 것을 신 다음으로 다스리는 세상에서 감사보다는 지루함을 느껴서 뭔가 새로운 시도를 해본 것이기도 했고, 하느님의 지위와 맞먹을 수 있겠다는 착각도 했을 것이며 하느님처럼 되길 욕심냈을지도 모른다. 그러니 뱀의 꾀일 때, 이미 그런 마음이 동했기에 행동으로 이어질 수 있었다.


그렇다면 왜 하느님은 본래부터 이렇게 인간을 유혹에 잘빠지고 어리석은 실수를 저지르면서 늘 죄를 짓고 하느님을 몰라 다른 것을 숭배하기도 하고 교만하기도 하게 만들었을까?라는 생각을 해보았다. 처음부터 하느님 말씀을 굳게 믿고 따르고 사랑하게 만들었으면 되지 않았을까?


하느님 형상으로 인간을 만들면서 강요나 자신이 만들었기 때문에 자신을 사랑하는 로봇으로는 만들고 싶지 않았을 것이다. 만든 하느님의 자식을 잘 양육하고 풍족하게 기르면서 가르치기도 하고 관계를 맺으면서 본인도 자식의 사랑을 받고 싶었을 것이다. 그렇게 신뢰와 사랑을 쌓고 인간들이 본인의 의지대로 무언가를 창조하고 만들어내고 아이디어를 내면서 행동하고 그걸 하느님께 보여드리는 일에 기쁨으로 삼고 하느님과 사랑과 신뢰를 나누고 싶었을 것이다. 자식과 부모의 관계처럼 내 속에서 나온 자식을 내가 부모이니 그냥 나를 따르고 사랑하게 만들어 낸다면 그들의 진심 어린 사랑보다 감동이 덜하고 그것은 내가 그렇게 만들어냈기에 합당한 사랑일 뿐이다. 하지만 그들 자유의지가 나를 신뢰하고 사랑한다면 내게도 큰 기쁨과 보람으로 다가올 것이다. 그래서 하느님은 이렇듯 우리 인간에게 자유의지를 주셨다. 정말로 사랑해 많은 것들을 풍요롭게 자라게 해 주시고 바라는 것들도 주신다.


하지만 하느님을 알기 전에는 그저 내가 노력하고 잘해서, 혹은 내가 운이 좋아서라고 생각하기도 했다. 하지만 성경을 통해, 교회를 통해 배운 하느님 존재를 점점 알아가면서 하느님의 큰 사랑을 느끼겠다. 성경에 많은 사람들이 실수하고 큰 죄를 저지르고 비틀거리고 쓰러지기도 하고 작고 큰 죄를 저지르며 산다. 그럴 때 우리는 늘 신을 찾으면 그가 응답하고 용서하고 다시 세우는 것도 본다. 가르치기 위해 하느님이 벌을 주시기도 한다. 하지만 그 벌로 자식들을 정말로 고통 속에서 헤매게 하기보다는 그 고통을 시험 삼아 하느님의 가르침과 그 가르침을 통해 지혜를 알게끔, 하느님을 느끼게 하신다. 하느님의 전능을 보여주시기도 한다. 의사처럼 하느님의 치료와 처방에 감사함을 느끼고 하느님의 중요성을 알게 된다. 그리고 나면 또 하느님은 그의 자녀를 풍족하게 먹고 마시고 편안하게 해 주시는 것을 깨닫게 하신다.


예전에는 마음이나 물질이 부자여야만 여유가 있고 편안하다고 생각해왔다. 하지만 지금 하느님을 조금 알기 시작하는 나는, 원래부터 풍요롭고 평화로운 에덴동산에서 하느님은 나를 기르시는 분이다. 그저 절실하고 가난하다고 느낄 때에 하느님을 더 바라고 찾고 대화하고 하느님께서 주시는 어는 작은 것도 알아채고 받을 수 있기에 하느님은 크고 작은 시련을 주시고 그것을 통해 앞으로 걸어가는 자녀들을 예쁘게 보신다. 그리고 우리가 시련을 통해 성장하고 그 안에서 창조해 무언가를 새롭게 만들며 하느님께 자신감 넘쳐 보여드리며 그것을 타인과 나누며 즐거워하고 그것으로 다른 이들에게 도움이 되는 것을 기쁘게 보실 것 같다. 그렇게 하느님은 우리가 소망하는 일을 우리가 알아채지 못하게 사람으로, 상황으로 보내주시며 우리 바라는 일이 되도록 해주시며 이뤄주시는 일들을 우리는 우리가 한 일로 착각하고 살아왔었던 것이다.


내가 궁금히 여겼던 왜 처음부터 이렇게 사람들을 유혹에 잘빠지고 나약하게 지으셨을까 하는 내 질문은 답을 찾은 것 같다. 하느님은 우리에게 많은 권한을 주셨던 것이다. 하느님의 자식이라 모든 지배권과 권한과 풍요와 평안을 얻고 사는 것이다.

하느님을 사랑하고 신뢰하는 것을 중심으로 잡고 하느님 보시기에 열정적으로 아름답게 살도록 노력해야겠다. 때로 넘어지고 쓰러지고 나 자신에게 실망할 때에도 그것으로 나 자신을 너무 탓하지 말고 솔직하게 하느님께 죄를 고하고 용서를 빌어야겠다. 그리고 또 그러한 실수를 하지 않도록 노력하며 때로는 매일 짓는 크고 작은 죄를 통해 하느님을 찾고 하느님을 느끼며 그것을 이겨나감으로 보람을 느끼며 하느님께 보여드리며 감사하며 살고 싶다.


그러기에 그저 풍요로운 마음보다는 항상 부족하고 뭔가 가난하고 배고픈 마음으로 절실히 살아가며 하느님과 대화하고 죄를 고하고 용서받고 또 나아가는 모습으로 살아가야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