Woman 관찰하면 오류에서 벗어날 수 있다

관찰을 하면 하나로 분류하지 않게 된다

by Momanf

지난해 9월부터 대생, 이번해 1월부터 유화 아크릴 수업을 시작했다.


미술을 하고 나서

빛, 그림자,

색깔에 관심 갖고 사물을 보다 몇 주전부터 사물 하나하나를 가만히 서서 관찰하게 되었다.

벚꽃이 그리고 싶어 벚꽃 하나를 유심히 살펴보는 일이 시작이었다. 벚꽃 안에 별이 하나 들어있고 동그란 꽃잎이 가장자리에 붙어 있었고 가운데 수술들이 있었다.

자연의 색깔들의 매치도 기가 막혔다.

선생님께 이를 말씀드리니 미술 시작하면 겪는 첫 번째 변화라고 하셨다.

관찰!


오늘 운전해 집 근처 벚꽃나무 가로수 길로 향하는데 막 개화하기 시작한 그 나무는 멀리 서는 짙은 고동색 나무 위, 연지 색 점들로 보였다.

하지만 관찰자가 된 내 기대처럼 가까이 지나가 보면 흰색, 자주색, 선홍색, 자주색, 초록색 등 꽃이 열리는 봉오리마다 색깔들이 다 달랐고 멀리서 볼 땐 크기가 점점 작아지던 나무들이 사실 다가가 보면 앞에 나무와 비슷하거나 더 컸다.


찰나에 스치는 생각 한줄기가 떠올랐다.


관찰하면 작은 것 하나하나 모양 색깔 크기가 다른 것처럼 내가 막연히 맞다고 생각하는 것이 어쩌면 다양한 속성을 생각하지 않고 두리뭉실 대충 판단하고 그것이 사실인 양 착각하고 살고 있는 건 아닐까?


멀리서 지켜보던 다수의 의견이 한 색깔을 띤다고 다가설 엄두조차 내지 못했는데 다가가 찬찬히 살펴보면 각자의 색깔이 달라 나의 색깔도 그 하나하나 앞에 정확히 보여준다면 이해를 얻을 수도, 동감을 얻게 될지도, 어쩌면 이미 멀리서 나를 지지하고 있을지도 모를 일이었다.


세상에 모든 사물은 내 안에 많은 다른 색 에고가 있듯 여러 가지 색깔로 어우러져 있지 단색은 절대로 없다. 그래서 하나로 고정해 버리고 선입견을 가지면 안 된다.


한정적인 언어를 배우고,

인간 사고가 그렇게 짜여 있어서 일까?

계속 많이 드러나고 자주 노출된 색깔이라는 이유로 하나의 단어에 꾸역꾸역 집어넣으려 했다. 그것을 하나로 분류하고 기억해 그 비슷한 것만 봐도 그 하나로 선입견을 갖고 좋다 싫다로 빠르게 나누어 버린다. 그리고 그것이 정의라고 성격이라 이분법적인 결론을 맺는다. 흑이냐 백이냐


인간은 이미 단어를 배워 그것으로 밖에 말로 설명할 수 없다. 사고의 처리 과정과 생존을 담당하는 편도체의 순기능으로 분류하기 바쁘고 이분법적인 사고만을 하며 착각하고 살아가기만 한다.

그렇다면 나는 늘 멀리서 대충 보고 그것을 정의인 양 진리인 양 믿고 한평생 살아갈 것인가?

그렇게 언어와 생리학적인 뇌의 한 부분에 갇혀 평생을 살아갈 것인가?


관찰이 중요하다는 언어와 분류로 또 정의를 내린다.

그러기 위해서는 올곧이 시공간을 한 곳에 두고 천천히 바라보고 음미할 시간이 충분히 필요하다.

그것은 현재에 충실하고

매 순간 내 앞의 사건을 받아들이고

내 앞의 사람이 누군가가 되었듯 그 사람에게 귀 기울여 대화하고

나는 그 장소와 매 순간을 일치시켜야 한다.

관찰 대상은 내 앞뿐만 아니라

내 뒤, 내 안 모든 것이고

분류해 고정시킬 필요 없이 매 순간 그것에 가장 합리적이라 여겨지는 것만 처리하면서 살면 된다.


그렇다면 바쁘게 살기보단 여유 있게 살아가고

계획하기보단 주어진 것을 받아들이며

순간만 살아가겠다.










keyword