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욕구와 상응할때 불만족스러운 상황에서 생겨나는 감정, 화
남편과 지난주 매일 두 번을 다퉜다.
한 번은 그가 부정적인 말들을 늘어놓아 그런 성격을 비난하다 다투었고 그다음 날에는 저녁식사를 준비하는 줄 알고 아이들과 놀아주었는데 1시간 후 내려와 보니 자신은 인터넷 서칭이나 하고 있었다는 것을 알고 화가 났다.
남편은 우리가 내려오길 기다렸다고 했고, 나는 나와 의사소통을 끝낸 게 아니냐고 반문하며 싸웠다.
그도 배가 고팠지만 우리가 내려오면 요리를 시작하려고 했다면서 억울한 듯 말하기에 처음에는 당황스러웠고 곧 그가 그 1시간을 인터넷 서칭하고 맥주를 마시며 보냈다고 생각하니 화가 치밀었다. 모두들 배가 고파서 더 그랬다. 나는 그 시간에 남편이 요리하기 바랐고 남편은 내가 내려오길 바라면서 우리 모두는 굶주린 채 서로에 대한 바람이 달랐고 서로의 바람을 눈치채지 못했다.
하지만 거듭되는 사과와 당황하며 요리를 재빨리 시작하는 남편을 보면서 내 문제에 대해 생각해보았다.
먼저 내 기준에서 의사소통이 끝났다고 생각했지만 남편은 아니었다.
상대가 일부러 그런 것도 아니고 의도하지 않은 실수였다. 아니, 이 실수도 내 기준에서이다.
이런 식으로 나는 내 방식대로 상대가 따라야 한다는 고집을 많이 부리고 있지 않은가?
내 방식대로, 내가 원하는 대로 고집했던 몇 가지 사건이 떠올랐다.
예를 들어, 레이크 하우스에 갈 때, 나는 한차에 온 가족이 다 타길 바라고 남편은 자기차를 가지고 가는 걸 좋아해 두 차로 움직이길 바란다. 나는 이것저것 합리성을 따졌을 때, 남편을 이해하지 못해 그것에 관해 언짢아했다.
이런 식으로 따져보니 나는 내방 식이 많았고 그것을 상대가 따라주지 않을 때나 내 생각과 어긋났을 때, 내가 짜증을 내고 당황했으며 화를 낸다는 사실을 깨달았다. 기준이나 방식이 많을수록 더 그래 왔던걸 느꼈다.
과연 내가 생각하는 그 합당한 기준이 상대도 합당하게 생각할까?
나는 상대가 합당하다 생각하는 기준을 받아들이며 합당하다 생각하는가? 대부분 아니었다.
그렇다면 상대도 내 기준이 합당하지 않다는 이야기다.
나에게 논리적으로 따져 맞는 말 같지만 상대는 아닐 수 있다. 그것이 감정적이든 논리적이든. 그리고 그 기준이 꼭 논리적인 것에 둘 수만은 없기에 기준 자체도 애매모호한 상황에서 내가 화를 낸다면 이 화는 내문제지 상대가 아니다.
그리고 혹 상대가 내 기준과 달라 화가 나면 화를 분출해 상대를 탓하기보다는 의사소통과 서로의 기준이 다르니 가장 좋은 최선책을 찾기 위해, 해결하기 위해 충분히 대화하고 조율해야 한다.
생각해보면 화란 감정은 내 감정이다. 내 욕구에 반해서 생겨난 모든 것이다.
나의 바람과 상대의 바람이 다르고, 내 기준에서 다르고, 내 예상과는 다르고, 내 생각이 그러하기에 불만족스럽고 급기야 화가 나는 것이다. 기준이 모두 내게 있다.
그러니 상대가 나를 화나게 만들기보다는 내 불만족이 나를 화나게 하는 것이다.
아이들이 말을 안 들을 때 화가 나는 것도, 내 말을 들어주길 바라는데 듣지 않아서 화가 나는 것이다. 남편이 눈치껏 해주길 바라는데 해주지 않으니 실망스러워하고 화를 냈는데 남편은 내가 말하지 않으면 내 의도를 전혀 알 수 없다.
내가 정해 놓은 내 방식이나 기준 자체가 옳다 그르다 이성적인가 감정적인가로 나눌 수가 없는데 나는 숱한 내 기준으로 내 방식으로 상대가 따라와 주기를 강요해왔던 건 아닐까?
때로는 그 기준을 합당화 시키기 위해 상대를 비난하는 일로, 다수가 그러하니 이것이 상식이라고 말하지 않았는가? 내 기준이 상대의 기준보다 늘 옳을 수 있는가?
옳고 그름이 없고 정확한 기준이 없으면서 나는 왜 그렇게 상대에게 화를 내는가?
화는 상대가 나를 화나게 만드는 것이 아니라 상대가 내 기준에 맞지 않는다 부리는 억지이다.
그런 화를 나는 참 쉽게 거칠게 표현해왔다. 가족에게 친구에게 그리고 스쳐 지나가는 사람들에게.
내가 상대의 기준이 납득가지 않거나 요구가 합당하지 않다고 생각하듯 상대도 내 기준이 전혀 이해되지 않을 수 있다. 갈등은 여기서부터 비롯된 것이고 화는 올곧이 내가 다루어야 할 감정이지 상대와는 관련이 없기에 상황과 상대를 완전히 분리해야 한다는 사실을 깨달았다.
그렇다면 최선은 상대의 이야기를 들어보고 상대의 기준을 파악하고 내 바람을 전한다.
충분히 의사소통이 이루어지는 과정에서도 서로 목소리를 높일 필요는 없다. 자기의 바람을 설명하는 자리이니 상대를 비난하는 말을 할 필요도 없다. 내가 원하는 것만 전달하면 된다.
그리고 서로의 의견을 조금씩 양보해 절충해 새로운 방법을 찾아 문제를 해결하고 서로 만족할 만한 결과로 이끌면 된다.
이것은 아이에게도 적용된다.
아이가 원하는 것을 얻기 위해 떼쓰고 화를 내면 내가 원하는 것을 전달하면 된다.
그리고 아이와 무엇이 최선일까 고민하고 방법을 찾으면 된다.
여기서 명심할 것은 언제나 내 기준이 옳은 게 아닐 수 있다는 점, 누가 옳고 누가 그르냐가 애초에 없다는 점을 명심하면 된다. 또 나와 상대는 기준이 다르듯 삶의 방식, 문제를 다루는 방식이 완전히 다르다. 그것을 명심해야 한다. 불만족으로부터 생겨나는 화는 상대와는 관련 없는 내 감정이다. 그렇다면 상대가 그 화를 감당할 이유가 하나도 없다. 그렇지만 우리는 종종 그 화를 상대에게 모두 퍼부어 버리고 상처를 준다. 상대는 억울하기도 하고 어떨 땐 죄책감마저 들기도 하고 내가 하는 공격에 맞받아 치다 화가 나서 나를 공격하고 타인에게 화풀이를 해버릴 수도 있다.
이렇게 화는 올곧이 내 감정인데 그것이 상대에게 전달될 때에는 제삼자에게까지 미칠 수 있는 것이란 걸 기억한다면, 내가 내 바람대로 되지 않아 불만족해 화가 나는구나 생각한다면, 상대에게 내 바람을 정확하고 친절하게 전달한다고 나도 상대가 원하는 것에 대해 듣는다면 모든 불협화음을 좀 더 성숙하게 다룰 수 있게 되지 않을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