냉장고 문을 열다 문득 냉장고에 붙여져 있는 친구 Kate의 사진을 봤다.
그녀는 정말로 늘씬하고 키가 크다. 체질적으로 날씬하고 잘은 모르겠지만 그녀의 온 생애는 늘 날씬하게 보냈을 것만 같다.
반면 냉장고 문을 열고 있을 때에 나는 살이쪄 목표한 체중으로 빼려고 다이어트 주스를 만들기 위해 케일이며 샐러리 같은 것들을 꺼내고 있었다.
나는 다이어트 과정이 이렇게 힘든데 이런 노력을 Kate는 한 적이 있었을까?
외모가 아름답고 체질적으로 늘씬하니 그냥 그게 당연한 줄 알고 살 거야.
한 번도 죽을 만큼 음식을 참아보고 매일 운동을 해야 한다는 강박관념에 사로잡혀 살아본 적은 한 번도 없을 거야.
부러웠냐고?
예전에 나라면 그랬을지 모른다.
그런데 의지와 운명, 내가 할 수 있는 것과 없는 것의 차이를 구별하며 살고자 노력하는 요즈음에 나는 그렇지가 않았다.
나는 그녀처럼 누구나 부러워하는 몸매를 가지지 않았지만 장애를 가진 또 누군가와 비교한다면 신체가 건강한 이유로다 다 가지고 있기 때문이다. 그리고 이렇게 비교하는 것 자체가 상대적이기에 무엇이 최고다라고 정의할 수도 없다.
지금 사회적인 기준의 미는 그녀이지만 사람마다 사회마다 시대마다 미의 기준이 다르기에 그녀가 절대적이라고 할 수도 없다.
무엇보다 나는 평범한 몸을 갖고 있어 꿈이나 목표를 47.5킬로라고 정했고 내 기준에 내가 입고 싶어 하는 옷을 자유롭고 과감하게 입고 싶은 희망과 흔들리는 살 없이 탄탄하게 만들고 싶다.
나이가 들지만 좀 더 날씬하고 건강하고 여자로서 아름다워지고 싶다.
그 과정 동안 힘들게 음식을 참고 칼로리를 확인하고 좀 더 건강하게 맛있는 음식을 먹기 위해 연구하고 운동을 하며 나름 깨닫는 점들, 노하우가 생기고 몸무게가 줄고 목표치에 가까울수록 성취감을 느낀다.
무엇보다 다이어트로 깨닫는 삶에 적용되는 지혜마저 넘친다. 다이어트를 시작했을 뿐이지만 체중감량뿐 아니라 내 정신력이 강해지고 몸이 가벼워지면서 생활 속에서 적극적으로 활동하고 주어진 음식에 감사할 수 있는 마음가짐이 되었다. 운동을 하며 듣는 정보에서 많은 영감을 얻기도 했고 이렇게 아픈 곳 한 곳 없이 운동할 수 있는 신체에 감사하기도 했다.
작고 몸의 균형이 잘 맞지 않고 얼굴도 크며 뼈대도 굵고 외모가 그다지 타고난 게 없기에
아름다워지고 싶은 욕망이 있고 그것이 꿈이 되었고 목표가 되었다.
그렇게 몸매를 다듬고 목표에 다가가는 동안 나는 나만의 이야기를 만들고 있다.
사람들이 좋아하는 성공스토리처럼, 한계를 넘어선 사람들에 누구나 감동을 받는 것처럼,
부족하기에, 남들처럼 없기에 이 노력과 과정에서 오는 성취감이 가치가 있다.
오로지 내 노력과 의지로 만들어내는 스토리이기 때문이다.
그리고 그 과정에서 배우는 것은 정말로 많기에 자신이 스스로 열정을 가지고 다하는 인생 공부이기도 하다.
지금 생각해보면 나는 어릴 때부터 허황돼 보이는 꿈을 꾸고 상상하고 공상하길 좋아했으며 말도 안 돼 보이는 수많은 계획들을 세우며 고군분투하며 살았다.
정말로 그랬다.
내가 글자를 쓰기 시작하고 생각하기 시작한 초등학교 시절부터 내 수첩 속은 내 현실과는 전혀 다른 세계를 꿈꾸느라 빽빽했고 여전히 예쁜 수첩을 좋아한다.
한 30년 가까이 참 많은 꿈을 꾸고 계획해왔던 게 습관이 되었다.
부모로부터 독립해 한창 힘든 20대 초반에는 현실에서 가질 수 없는 모든 꿈 꾸는 것들을 집대성해 화장실에 붙여놓기도 했다.
현실은 이랬다.
나는 얼굴이 그리 이쁘지도 않았고 날씬하지도 않았다.
나는 돈 있는 부모가 없었다. 오히려 부모에게 학대를 받고 사이가 좋지 않아 돈 한 푼 없이 쫓겨나 살았다.
나는 창문 하나 없는 원룸에서 강아지 한 마리를 키우고 책임져야 했다.
경제관념이 없었기에 늘 돈이 없고 부족했다. 나는 가난했다.
집 나올 때 전문대마저도 졸업 못해 휴학을 했고 학자금 빚이 있었다.
차가 없었다.
너무 외로웠고 자격지심이 강했다.
하지만 내가 오랫동안 집대성한 꿈의 내용은 이랬다
빨간 외제차를 탈것이다.
전 세계를 여행하며 살 것이다.
48kg 몸무게를 한번 가져보고 싶다.
소설을 쓰고 영화화하겠다.
마음과 생활이 여유가 있고 내가 배우고 싶은 남자를 만나 결혼하겠다.
나는 부자로 살겠다.
등등 다 기억할 순 없지만 한 30개는 되었다.
소설을 영화화하겠다는 것만 빼면 나는 여기에 있는 모든 것들을 다 이뤘다는 걸 30대 초반에 깨달았다.
한동안 잊고 지내고 살았던 목록들이었기에 나는 그것들을 여전히 소중하게 간직하고 있다. 그리고 지금 소설을 영화화하기 위한 꿈을 위해 소설을 쓰고 있다.
누가 알겠는가? 이 시간이 지나고 나면 나는 꿈을 이루었는지?
신체가 완전하다면 잘한다는 기준도 높아 잘하지 못한것이 될 수도 있고
학력이 빵빵하고 부자인 부모 밑에서 자란 자녀가 서울대에 합격한다고
평범하게 잘 자란 사람이 마음 아픈 사람을 공감하는 한계가 있고
원래 부자가 더 부자가 된다고 해서 그것을 스토리라 하지 않는다.
부족하기에 꿈을 꾼다. 내가 없기에 소망한다.
없는것에 원망하기보다는 혹은 있는 사람을 질투하기보다는 나만의 스토리를 만들어 보면 어떨까?
팔이 없는 사람이 발로 그림을 그리고 축구를 하고
공장에서 일하던 사람이 공부해 서울대에 들어가고
가정폭력에 시달린 사람이 마음 치유자가 되어 다른 사람의 마음을 움직이고
가난한 사람이 자수성가 해 큰 부자가 되는 것에 우리는 감동하고 열광하고 그것을 대단한 스토리라고 하지 않는가?
나는 여전히 부족한 게 많고 그래서 꿈이 많다.
그래서 매일이 바쁘고 노력하는 과정이 힘들다.
그렇지만 할 일이 많기에 나는 하루하루 보람되고 하루하루가 다르다.
이 글을 읽는 이들이 나와 함께 스토리를 만들어 공유하길 희망하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