40Y 내가 원하는 내가 되기 위한 마인드 세트 퍼스트

문득, 우연을 잘 캐치해보라.

by Momanf


일상에서 ‘문득’ 일어나는 사건이나 문득 스치는 사람, 문득 드는 생각이나 느낌, 영감 등이 문득 그저 스치는 것이 아니라면... 하는 생각이 들었다.

오늘 아침. 한영 성경을 처음 펼쳐보며 “문득” 그런 생각이 떠올랐다.

뭐야? 내가 품고 있던 생각이나 이미지가 정말 내게 오고 그런 상황을 만들고 있잖아?

문득. 이란 이 찰나 같은 일에 얼마나 많은 과거와 생각들이 면밀히 연결되어있었는지를 생각해보았다.


매일 성경을 읽었다. 3월부터였던 것 같다. 창세기부터 매일 1 단락씩 읽었다. 하지만 약 한 달 동안 열심히 하지 않게 되었다.

타이트하게 글 쓰고 운동하며 음식 조절하고 아이들과 뿌듯하게 홈스쿨링 하며 매일 시간을 쪼개 분주하게 쓰던 습관이 너무 힘들었으니까, 이번 주는 누가 오니까, 어떤 행사가 있으니까 하면서 자꾸자꾸 핑계를 대며 매일 습관으로 삼던 것들로부터 자꾸 멀어졌다.

한 달 동안 맘껏 먹고 도를 지나쳐 먹었다. 운동도 제대로 하지 않았다.

물도 마시지 않았고 글도 쓰지 않았다.

홈스쿨링도 제대로 하지 않았다.

무엇보다 기도하지 않게 되었다.

매일 나의 목표를 위해, 습관을 쌓기 위해, 혹은 더 발전하기 위해 내가 해오던 일들과 멀어진 한 달 동안 나는 감사한 습관이나 매 순간 집중하며 감동했던 일상, 살이 빠져 가볍고 건강하던 느낌, 영어 발전, 매일 성경을 열심히 하지는 않아도 읽으며 하느님을 생각하며 마음이 편안해지며 고요해지던 느낌, 수많은 영감과 설레고 떨리던 인생에서 의미 발견들과는 자꾸 멀어지기 시작했다. 외려 온몸이 찌뿌둥한 체력적으로 지치는 느낌과 내 속도 함께 물에 젖은 스펀지처럼 피곤하기만 했다.


그래서 다시 한번 마음을 다잡자 싶었다.

거의 2달 만이다.

먼저 심적으로 흔들리는 원인을 성경 읽는 것을 중단했다는 생각에 일단 아침에 일어나 감사기도 하며 제일 먼저 할 일을 성경을 읽고 시작하기로 마음을 먹었다.

그리고 오늘 그것을 다시 시작하다 ‘문득’이란 생각이 든 것이다.

미국에 살면서도 영어문제 때문에도 마음이 무거웠는데 마침 늘 읽던 성경을 레이크 하우스에 두어서 내게 있던 시어머니 성경, 남편 어릴 때 읽던 영문 성경과 10년 전 아는 언니에게 잠깐 빌렸지만 한 번도 열어보지 못한 영어/한글 번역판 성경이 함께 있었다.

그렇잖아도 영어 성경을 아침에 읽으며 영어 공부도 좀 다시 해볼까 하던 생각차였다.

그래서 일단 영어/한글이 함께 있는 성경책을 보다 ‘문득’ 이런 일말에 생각들이 밀려오며 내가 오늘 아침 이 성경을 집어 들고 읽는 일이 결코 우연이 아니란 걸 깨달았다.


6월 말에 플로리다로 친구랑 여행을 가게 되었고 그 무렵 내가 다이어트 성공을 했고 내 목표의 몸무게로부터 머지않았기에 바디 프로필 촬영 겸, 가족사진 찍으려고 스튜디오를 찾다 문득 함께 가는 친구가 내 웨딩사진을 찍어준 사진작가라는 사실을 상기하고 서칭 하던 것을 중단하고 그 친구에게 부탁해 무료로 가족사진과 내 사진을 가진 것도 우연이 아니었다.

3년 동안 집을 찾기 위해 남편과 내가 우리가 사는 곳에 집을 봤지만 마땅한 집이 없었을 때에도, 다 포기하고 렌털 하며 집을 알아볼 생각을 했던 그때, 갑자기 나온 집을 보러 가게 되었고 우리가 예상했던 3층 집보다는 많이 작았지만 어린아이들이 있는 우리 가족에게 확 뚫린 백 야드를 보고 결정했던 끌림과 살면 살수록 더 좋아지는 집과 그 결정 덕분에 레이크 하우스를 팔지 않고 소유하게 된 일. 이 모든 것들이 그저 우연이 아니라 내 마음속에 그리던 꿈, 혹은 생각들이 영사기처럼 빛을 통과하며 내 앞에 사람으로 사물로 그리고 더불어 살고 있는 내 현재의 모습이라는 것을 깨달았다.

무엇보다 무리해서 억지로 계획하고 만들어 내고야 말겠다는 생각은 나를 힘들게 만들곤 했고 스트레스를 주었는데 집을 구할 때의 시점인 작년부터 나는 집은 운명이란 생각을 해왔고 우리에게 꼭 맞는 집이 주어진다는 믿음을 갖고 있었다.

그리고 몇 달 전, 소설을 쓰는 동안 나는 영감이 떠오르지 않을 때, 억지로 쓰려하지 않고 하느님께 맡기겠다는 자세로 노트북을 접었다. 그리고 몇시간 후, 영감이 떠올라 더 잘쓰게 되었고 결국 끝까지 써냈다.

일상에 일어나는 작거나 큰 스트레스조차도 더 좋은 것을 주시기 위한 하느님 계획이란 생각을 하니 크게 영향을 받지 않기도 했다. 그리고 늘 내 계획보다 더 좋은 것들로 결론이 맺어지게 되었다.


어제는 아이들과 “Why is the sky blue?”라는 주제로 가르치다가도 그런 생각을 했다.

햇볕에서 나오는 색깔은 7 색깔 무지개인데 우리는 그 빛의 색깔이 다 섞인 흰색을 보며 햇볕은 흰색이라 말한다. 빛의 굴절 크기 때문에 파란색으로 하늘을 인식하는 우리는 사실 우리가 보지 못하는 것보다 더 많은 것들이 잠재되어 있다는 사실을 다시 한번 생각해본 계기였다. 내가 아무리 많은 것을 알고 있다고 해도 나는 전부를 알 수 없다.

내가 이 세상 전체를 전부 알 수가 없기에, 나는 그저 일부이기에 내가 다 알고 내가 다 맞다는 독단은 잘못되었다. 내가 믿고 내가 알고 있는 걸 안 믿고 모르는 그가 틀렸다고 말하는 것은 잘못되었다. 그리고 내가 알고 있는 그 무엇이나 그 누구도 그것이 전체가 아니다. 그 속에는 또 많은 다른 관점과 사건이 연결되어있고 그 사람은 또 다른 많은 모습이 있다.


그리고 나는 이런 것들로 또 한 번 생각을 정리할 필요가 있다.

전체를 보는 신이 있다. 그것을 종교에 따라 하나님, 부처님, 알라신...

각자의 신을 부르는 말이 있다.

그리고 모든 물질과 동물, 사람은 부분이다.

부분은 전체를 보지 못한다.

이것이 거시적인 관점이라면


나라는 사람은 전체이다.

나의 삶, 나와 연관된 장소, 사람, 사물 모든 것이 연결된 것이 나의 전체이다.

나의 생각, 나의 사고와 행동, 반복적인 일상과 습관, 내가 성취하는 작고 큰 무언가, 내 가족, 친구 모두 부분이다.

그리고 결코 나는 나를 완전히 알지 못한다.

내 전체는 내가 태어난 순간부터 죽는 그날까지 걸쳐져 있고 그것을 전부다 기억하지 못하기 때문이다. 그러니 나조차도 내가 누구인지를 100프로 확실하게 알지 못한다.

시간과 사건과 사람, 상대가 누구냐에 따라 그저 바뀐다. 그리고 한 사건을 보는 견해조차도 시간에 따라 변한다. 이것이 미시적인 관점이다.


그리고 결론은

지금 주어진 환경에서, 내 마음이 원하는 것, 진정으로 내가 원하는 것을 잘 관찰해 현재를 그것으로 목적지를 맞춰놓고 생각하고 말하고 행동하면 된다는 것이다.

때로는 장애물로 여겨지는 것들과 마주할 것이다. 하지만 그것은 내가 생각하는 부분일 뿐이다. 장애물이 아닐지도 모른다. 그것은 도약하기 위한 뜀틀이 되기도 한다.

높은 목표를 잡아도 된다. 그것은 가능하다.

다만 목표만을 쫓아 현 시간을 희생하듯이 힘들게 참고 괴로워하며 버티는 것이 아니라

매일 목표를 위해 하는 작은 습관을 즐기면서 해내야 한다.

습관을 너무 거창하게 잡을 때, 우리는 빨리 지친다.

범위를 두길 바란다. 하나의 목표에 맞게 그것을 위한 행동을 정하고 그날의 기분과 상황에 따라 작은 것에서 큰 범위를 두면 된다. 그리고 그날 그 목표를 위한 행동이 작던지 크던지 하나를 해낸다.

게으름 부릴 때도 있고 힘들어 포기해 버릴 때도 있다. 그것조차도 전부인 자신이 아닌 부분의 자신이니 용납하고 이해하고 납득하고 받아들이면 된다. 다시 시작하기만 하면 된다.

중요한 것은 다시 시작하기만 하면 된다. 다시 시작해야 하는 이유만 정확히 알고, 그것을 하는 이유가 자신의 행복을 위함이기에 또다시 시작할 수가 있다. 누군가를 위해, 남에게 보이기가 아니라면 꾸준히 다시 해나갈 수 있다. 그리고 그 과정에서 스스로가 자신에 대해 더 많이 관찰하고 왜 그것이 좋은지를 깨닫게 되며 그래서 계속해나갈 수 있다.

그리고 어느새 그것이 우연처럼 문득 사물이나 사람처럼 보이기도 하고, 오고 있다는 것이 보이기도 하고 어느새 내가 바라던 그 사람이 되어있기도 하고 그 이상이 되어 있을 것이다. 그저 매일 조금씩 그냥 하면 되는 것이다.

그리고 그것이 내 작은 부분에서 큰 부분. 그렇게 변화하고 새로 연결되는 상황과 사람들이 궁극적으로 내 운명을 바꾸고 그것이 각자의 삶의 스토리가 되는 것이다.

그리고 그것들 모두가 전체이다.


많은 꿈들, 계획을 하며 살고 있고 매번 실패하고 매번 작은 성취감에 기뻐하며 하루하루 살고 있다. 꾸준하지 못한 것이 꾸준함보다 더 많았고 하다가 완전히 포기하거나 게을러보기다 한다.

하지만 나는 그럼에도 불구하고 성장했고 내가 원하는 삶을 사는 중이란 걸 돌이켜본다면 완전히 내 꿈을 이룬 적이 없다고 나를 자책할 필요가 없었다는 걸 깨닫는다.

문득 문득, 지금 내가 사는 삶이 그 언젠가 내가 마음속에 그리던 삶이었다는걸 깨닫는다.



여전히 내 마음속에는 기간이 오래된 꿈들, 작고 크고 막 시작한 꿈들이 있다.

그리고 또 계획을 하고 마음을 다지고 노력하며 살고 있다. 그 방향으로 가고 있기에 그 방향의 삶을 살고 있다는 걸 잘 안다.

그동안 잘 쉬었다.

다시 한번 또 부지런히 가보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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