엄마는 해결사와 청중 사이
펜데믹 속에서 4세 아이들을 키우며 많은 생각에 머리가 복잡해질 때가 많다.
3월 미국, 조지아주에 살 때, 코로나 바이러스가 아이들의 프리스쿨과 방과 후 활동을 했던 발레 교실, 짐네 스틱스, 피아노 모두 문을 닫았다.
그리고 8월 17일 두 아이들의 학교가 문을 다시 열었다.
조지아주는 상황이 나빠 많은 고민을 했다.
내가 사는 곳은 트럼프 지지자들이 많은 것이 보여주듯 보수중에 보수고 트럼프를 믿고 따르기에 안전에도 불감하다. 마스크를 쓰지 않는 사람들도 있다. 지난주 코로나 바이러스 검사를 했는데 결과는 1주일이 지났지만 나오지 않은 상태이고 4세 아이들이 15명 모여있는 프리스쿨로 보내야 한다는 게 마음 내키지 않았다. 나와 함께 있으면 주의할 수 있지만 아이들이 3시간 동안 학교에서 지내며 마스크를 잘 쓰고 있을 리 만무하고 친구들과 뒤섞여 놀 확률이 크기 때문에 사회적 거리두기도 잘 되지 않을 것이기 때문이다.
남편과 나는 8월이 시작되자마자 더욱 고민에 빠졌다.
나는 4월 초부터 집에서 홈스쿨링을 하고 있었기에 더 집에 데리고 있는다고 크게 문제 될 것 같지 않아 아이들을 프리스쿨로 보내는 것을 주저했다.
두 시누가 보스턴에서 그리고 우리 동네에서 프리스쿨 선생님으로 일하기에 대화도 많이 했다. 또 나는 홈스쿨링의 단점 같은 것들도 읽어보기 시작했다.
무엇보다 4~5개월 넘어서자 아이들도 집에 있는걸 너무 지루해하고 나의 홈스쿨링도 한계에 다다랐다. 전문가가 아닌 내가 가르치는 것이 옳은 방향으로 하고 있는지, 집에서 하니 기분에 따라, 날씨에 따라, 시간이 지남에 따라 처음처럼 활동적으로 잘 진행되지도 않았다. 무엇보다 아이들의 뇌가 한참 배우며 친구들과 뛰어놀며 확장되는 시기에 집에만 있어야 한다니 어쩐지 아이들의 사회성 발달도 걱정되었다.
오랜 고민 끝에 그런 생각이 들었다.
자동차 사고나 각종 사고로 우리는 다칠 수도, 죽을 수도 있다. 살아있고 매 활동하는 순간 우리는 위험에 직면해있다. 그리고 그것 하나하나 생각하며 두려움에 떤다면 집 밖을 나갈 수 조차 없을 것이다. 코로나바이러스도 마찬가지로 여겨졌다.
집 밖이 너무 위험하다는 생각에 집에만 있는 것이 과연 옳은 일인가? 그렇게 하는 것이 정말 나와 가족 건강을 위한 최선의 방법인가? 그렇다면 우리가 잃는 건 무엇인가? 백신이 나온다고 해도 예전으로 돌아가는 상황은 힘들다고 전문가들은 말한다. 우리는 with코로나의 자세로 앞으로 이런 바이러스들과 살며 그것으로부터 조심하고 현명하게 살아가는 New Normal을 받아들여야 한다. 남편과 나는 3달 전부터 두려움에 떨고만 있지 말고 새로운 방식의 삶에 맞춰살자곤 얘기했다. 조심하며 처음으로 레스토랑에 나가 식사를 했고 친구들을 만났다. 생활방식이 비슷한 친구들 가족들과 여행을 다니기 시작했고 우리 레이크 하우스에서도 함께 묵으며 이야기도 많이 나누었고 아이들이 몇몇 친구들과 함께 뛰어 놀 수도 있었다.
새로운 방식들과의 적응을 통해 아이들도 절실히 친구가 필요하구나라고 깨달았기에 우리는 드디어 프리스쿨로 보내기로 마음을 먹었다.
마음을 먹고도 남편과 나는 개운하지 않은 마음으로, 또 학교를 보내는 전 날에는 둘 다걱정에 잠을 설치고 충분히 잘 수도 없었다.
특히 내 걱정은 현재부터 미래에 관한 것이었다. 자식은 어리나 나이가 드나 늘 걱정이 아닌가? 앞으로 아이들이 커나가는 많은 성장 단계에서 아무리 위험해 보이고 힘든 상황이라고 해도 부모로서 아이들을 완전히 보호하는 것이 어렵다는 걸 깨달았다.
어떨 때는 그렇게 보호할 수도 있겠지만 그것이 아이들에게 기회를 박탈하게 하는 것, 자신의 의지가 아닌 부모의 의지로 살아가는 나약함을 키울 것이라는 것, 위험으로부터 자신을 지켜보지 못한 아이들이 성인이 되었을 때까지 부모를 의지하게 키울 수는 없는 노릇이었다. 아이들 스스로도 자아가 있어서 어릴 때는 물론 보호자로서, 말 그대로 보호해야 하지만 아이들의 성장과 더불어 부모도 하나씩 통제를 놓고 아이들의 선택을 뒤에서 묵묵히 지켜봐 줘야 한다.
그것이 내가 아이들에 대한 불안감이었다. 점점 험악해지는 세상에, 부모로서 모든 것을 나서서 보호하고 결정해주는 것이 불가능하다고 생각하니, 그렇게 해서는 절대로 안된다고 생각하니 불안감이 더 크게 다가왔다. 나는 그들이 어떤 결정을 하든 뒤에서 묵묵히 지켜봐 주고 문제가 생겼을 때, 함께 고민하고 가장 최선의 방법을 그들이 원할 때에만 제시할 수 있어야 하는 자리에 있다. 물론 어떠한 시련에도 아이들의 편에서 아이들 곁에서 지켜주겠지만 그것은 아이들이 허용하는 범위 내에서여야 한다.
때로는 그들이 내리는 결정부터 내 경험에 미루어 옳지 않음에도, 그 결정이 연속되는 삶의 과정에 어떠한 영향을 끼치며, 어떤 결과를 초래할지, 그것에 책임감을 가지라는 말만을 전하며 입을 다물어야 할 때도 있을 것이다.
쌍둥이 두 아이들은 어제 학교로 가며 너무 설레어했고 돌아와서도 즐거워했다.
이번해에는 두 아이다 반도 분리되었는데 염려와는 달리, 두 아이 다 만족한다.
아이들을 보내고 처음으로 가지는 오전 3시간이 낯설었지만 나는 강아지를 산책시키고 조용한 집에서 빨래를 개는 것에도 집중할 수 있었다. 무엇보다 남편과 거실 TV를 어른을 위해 처음 켜는 듯했다. 우리 둘은 2020 democratic convention 녹화분을 시청하며 첫 번째 convention에서 나온 사연들이나 연설에 울기도 하며 대화를 했다.
실로 남편과 이렇게 둘이 오랜만에 앉아 이야기할 수 있는 시간이었다.
남편은 어제 몇 번이고 너무 행복한 하루였다고 말했다.
몇 가지 이유가 있을 것이다. 아이들을 학교에 태워주며 우리 부부는 아이의 즐거운 뒷모습과 선생님들이 아이들의 안전을 위해 얼마나 준비를 많이 했는지를 확인하며 그동안의 염려와 불안도 조금 줄어들었다. 또, 민주당이 제시하는 비전에 그동안 트럼프 정부에 진저리를 치며 화가 나 있던 남편이 희망을 느꼈기 때문이었다. 그리고 어쩐지 아이들이 학교에 가기 시작하고 우리는 픽업하는 이 일상의 광경이 이런 바이러스로 걱정하지 않던 예전으로 돌아간 것 같은, 일상으로의 복귀에 감격했을지도 모른다.
나는 조금 후, 또 아이들이 일어나면 학교에 갈 준비를 시켜 마스크를 끼고 학교에 보내야 한다. 당장 내일을 모르겠고 미래를 생각하면 두려울 때도 있다. day by day 우리 부부는 이 말을 즐겨 쓴다. 그저 하루하루 선생님들, 아이들, 학부모들에게 행운을 빌며, 아이들이 수업하는 동안 나는 내 자리에서 최선을 다하는 일로, 아이들이 프리스쿨에서 돌아오면 옷을 갈아입히고 손을 씻기고 남은 시간 아이들과 홈스쿨링을 하며 함께 놀아준다. 아이들이 행복하게 잠들면 오늘 하루 가족이나 내가 무탈함에 감사하고 눈을 뜨면 주어진 하루에 감사한다.
그렇게 살면서 나는 오늘도 아이들을 통제하는 것이 무엇인지 돌아본다. 4세 나이에 아이들이 할 수 있는 것을 직접 선택하게 하며 그들의 결정을 존중하려고 노력한다. 답답하고 도와주고 싶은 마음이 가득하고 남의 시선이 의식되어 바로잡아 주고 싶어도, 불안하고 두려워도 나는 그저 조용히 그들 뒤에 서서 지켜보려고 노력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