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제 황석희 번역가님이 연사로 나오시는 강연을 들었다. 번역가의 강연에서 나는 무엇을 얻고 싶었는가. 실물을 영접하니 잠시 '내가 팬심으로 강연을 신청했나?' 싶었지만 빠르게 정신을 차렸다.
나는 단어에 매우 민감하다. 맥락과 단어에 민감해서 누군가가 (내 기준) 맥락상 적합하지 않은 어휘를 사용하면 그 말이 귀에 탁, 하고 걸린다. 물론 그럴 때마다 따져 물을 정도로 사회성이 부족한 사람은 아니다. 다행이지. 아무튼 그래서 글을 쓰거나 말을 할 때 적합한 단어를 고르려 애쓴다. 평소에는 어떤 단어가 선명하게 와닿지 않으면 국어사전에서 유의어, 반의어를 한참 검색하기도 한다. 그러니 초월번역으로 유명한 황석희 번역가에게 듣고 싶었던 바는 분명했다. 그가 생각하는 적확한 단어의 힘에 대해 듣고 싶었던 것이다. 정확히는 언어를 요리조리 요리해야 하는 일을 직업으로 삼는 천재 번역가의 필살 노하우(?)가 궁금했던 것일 게다. 아마 나를 포함하여 어제 같은 자리에 있었던 청중들 대부분이 언어의 귀재인 그처럼 천재적인 글솜씨를 가지고 싶은 마음으로 그 자리를 찾지 않았을까?
그러나 우리의 예상은 보기 좋게 무너졌다. 황석희 번역가는 자신이 마술사처럼 멋들어지게, 한 번에 문장을 번역하는 경우는 많지 않다고 했다. 즉 그만의 필살 노하우는 없다는 거다. 물론 업력이 쌓이니 가끔 쉽사리 번역할 수 있는 문장을 만나는 경우도 있지만 대체로는 '피지컬로 한다'라고 말했다. 엉덩이로 한다고 했다. 엉덩이를 무겁게 하고, 책상에 앉아서 같은 문장을 수십, 수백 번을 읽으며 고치고 다시 고치고 그러고도 또 고치는 과정을 거친다고 했다. 내 머릿속에 어느샌가 만들어진 '천재 번역가 황석희'라는 환상을 깨부수기에 충분한 말이었다.
환상은 깨졌지만 나는 뭔지 모를 희망을 품게 됐다. '성공이라는 것은 운인가요?'라는 질문에 스스로를 납득시킬 수 있을 답변을 찾았다고, 그것은 바로 '결실'이라는 한 단어라는 말. 그가 강연 초반에 우리에게 던진 말과 엉덩이로 번역을 한다는 말에 나는 묘한 해방감을 느꼈다. 재능의 영역보다 중요한 것은 피지컬. 엉덩이. 나에게는 그 말이 내가 마음먹고 행한다면 무엇이든 할 수 있다는 말처럼 들렸기 때문이다. 나의 작은 재능을 찾으려 헤매고 이게 정말 남과 차별점이 될 만큼의 재능인지 의심하는 것에 지쳐서 그랬을까.
얼마 전, 나는 20대 내내 마음에 품었던 일을 마음속에서 밀어내기로 했다. 오랜 시간 꿈으로 불렀던 것에 미련이라는 새 이름표를 붙여주었다. 그러고 나니 그 꿈을 꾸지 않는, 이루지 못한 나는 도대체 어떤 사람인건지 도대체 알 수가 없었다. 그래서 1년여를 방황하고 있다. 30대 중반을 바라보면서 이제는 정말 제대로 된 하나를 정해서 거기에 최대한 응집된 에너지, 시간을 쏟아야 한다고 매일 스스로를 채찍질했다. 10년을 넘게 헤맨 이유는 내가 내 그릇에 맞지 않는 것을 꿈이랍시고 잡고 있었기 때문이라고 생각하니까, 이제는 정말 '운명적일 정도로 엄선된, 나에게 꼭 맞는 단 하나'를 잘 정해야 한다는 생각이었다. 그러니까 정말 잘할 수 있는 단 하나를 찾기 위해서 내가 뭘 잘하는지, 뭘 좋아하는지 알아보겠다고 그렇게도 스스로를 괴롭힌 거다. 하지만 그렇게 애태운다고 해서 운명 같은 단 하나의 직업을 찾을 수 있을 리 없었고 부서질 대로 부서진 자아가 회복될 리 만무했다. 갖지 못하고 찾지 못한 재능을 탓하면서 시기질투로 가득 찬 추한 마음을 마주할 때면 누군가에게 들킬까 나부터도 나를 외면했다.
그런데 그의 말을 듣고 나니 어쩌면 나의 고민이 선후가 바뀐 것이었을 수도 있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무언가를 정해 열심히 하는 것이 아니라 닥치는 대로 열심히 했는데 그중 더 열심히 하고 싶은 것, 더 열심히 할 수 있는 것이 있다면 그것이 나의 일이 되는 것이 아닐까. 일은 그냥 그런 것이 아닐까. 운명은 지나 봐야 아는 것인데, 나는 알 수도 없는 미래를 더듬거리며 운명을 찾아 헤맸던 것이 아닐까. 그렇다면 우선은 엉덩이를 붙이고 앉아볼까. 찾는데 온 힘을 쏟지 말고 시간이 지나가며 나에게 남겨지는 것들을 잘 모아볼까. 엉덩이를 붙이고 하다 보니 어느새 이렇게 되었네요-라고 말할 수 있는 사람이 되어볼까.
매일 물음표만 찍고 마침표를 찍지 못하던 숱한 밤들이 스쳐간다. 오늘은 부러 밀려드는 마음들에 물음표를 찍지 않고 마침표를 찍어본다. 묻거나 의심하지 않고 그렇게 하겠노라 하는 다짐의 의미다. 언제나 마음은 연약하지만 다행히 내 엉덩이는 꽤 강건하니까. 엉덩이를 믿어볼까 해.